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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을 쓰고 있는 중임을 맡고있는 동수들과 교류

글 / 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4년 6월 27일】정법노정의 추진에 따라 갈수록 많은 동수들이 주동적으로 여러 가지 진상을 알리는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자신들이 속인사회에서 배운 여러 가지 기능들을 충분하게 이용하여 정법에 사용하고 있으며 보기에 매우 평범한 그 하나하나의 사업들이 우리들이 진상을 알리는 정체를 구성하고 있다. 각종 일들을 협조를 잘하면 작용이 거대하며 위력이 비할 바 없다. 문장을 쓰는 것은 그 중 하나의 중요한 일환이다.

한편 또 한편의 적절하게 선택하고 정곡을 찌르며 조준성이 있는 정법 문장들은 대법의 자비와 위엄을 충분하게 체현시켰으며 확실하게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고 사악을 벌벌 떨게 하였고 제거하는 작용을 하였는데 그 작용이 거대하고 책임이 중대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이점에 대해 이러한 중임을 맡고 있는 동수들은 아마 깊은 체험이 있으리라 믿는다.

오늘 여기서 동수들과 문장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는가를 교류하려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쓰는 이 한 구체적인 진상을 알리는 일 중에 포함된 수련의 요소, 우리들이 이 가운데서 제고해야할 요소들을 교류하고자 한다.

사실상 문장을 쓰는 것이 기타의 진상을 알리는 일과 본질상에서 구별되는 점은 없으며 모두가 진상을 알리는 하나의 주요한 조성 부분으로서, 그저 표면 형식이 같지 않으며 조금 특수하다는 데 불과하다. 당연히 수련의 요소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응당 청성하게 인식해야 하는바, 문장을 쓰는 동수들에게 이러한 책임이 부여되었는데, 그가 속인 중에서 획득한 연관된 능력과 누적된 여러 방면의 지식, 경험 이 모든 것은 사실상 사부님과 대법이 가져다 준 것이다. 대법이 만들어 낸 하나의 생명으로서, 대법에 용입(溶入)된 하나의 입자, 우리의 일체도 대법에서 왔으며 하나도 자기의 것이 없다. 때문에 우리 자신들이 어느 한 방면에서 능력이 어떻게 대단하고, 지식과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고 할지라도 모두가 대법이 우리한테 관건적인 시각에 이 한 배역을 잘하게 하기위하여 부여한 반드시 필요한 그 한 점에 불과한 것이다. 능력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며 문장 역시 자신의 문장이 아니다. 영광은 사부님과 대법에 드려야 한다.

문장을 쓴 동수들은 모두 이러한 느낌이 있는데 어떤 문장들은 정말로 중첩된 곤란들을 극복해서야만이 써낼 수 있었다(왜냐하면 쓰는 과정이 바로 대법을 실증하는 과정으로서, 그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사악과 썩어빠진 귀신들, 낡은 세력 흑수들이 저애와 교란을 하였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얼마나 많은 자신의 심혈이 응결되어 있고 얼마나 되는 반복적인 수개를 하였는지 모른다. 다 쓰고 나면 정말로 생각대로 되고 없는 게 없이 다 갖추어져 있음을 안다…….

바로 이러한 것들이 오게 된 것이 쉽지 않다고 감각하기에 자기가 법에 책임지고 충분하게 고려하였다고 느낀다. 때문에 하나의 문제가 나타나는데 자기가 쓴 문장을 다른 사람이 손을 봐서는 안 되고 누가 만약 그것을 수개하려고 한다면 정말로 화가 나서 마음이 평온할 수가 없으며……. 내가 발견한 데 의하면 이런 것들은 문장을 쓰는 동수들 중에 비교적 돌출하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필자는 이 방면에 경험이 있는데 때로는 자신이 심혈을 기울였거나 혹은 비교적 좋은 상태에서 쓴 문장이 괜찮다고 느끼는데 겉으로는 동수한테 보이면서 다시 참고하거나 더 다듬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속으로는 이미 결정했는바, 참으로 쓸만하고 전혀 수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가져다 보면 적지 않은 곳을 수개하였는데, 응당 버려할 속인의 마음이 이때에 건드려져 때로는 그 불복하는 마음이 불꽃처럼 튀어 오른다.……:내가 이렇게 쓴 진실한 생각, 내가 이렇게 쓴 데는 나로서의 도리가 있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쓴 데는 실천의 고험을 지나온 것인데……. 동수의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렇지만 매번 자신이 냉정하게 정체를 위해 책임지고 동수들의 의견을 참답게 고려할 때에는 동수의 수개가 참 잘됐구나! 라는 감촉이 들며, 왜 내가 당시에 이것을 주의하지 못하고, 이 점을 고려하지 못하였는가? 라고 느끼는데, 어떤 때는 놀라서 식은땀이 나는바, 시작에 문장을 쓸 때 확실히 자비가 부족했고 이지가 부족했던 것으로써 다행히 수련생이 제때에 지적하여 주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후에 와서 동수들이 같지 않은 생각과 수개 의견을 제기했을 때에 나는 모두 참답게 대했는데, 왜냐하면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진정 대법을 위해 책임지는 각도에서 우리들이 하고 있는 모든 대법의 사업들을 사고하게 될 때면 자사자아(自私自我)의 고만한 것이 우리들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비록 어떤 때에 사람의 마음이 표면상에서 법을 위해 책임을 진다는데 감싸져 있어 가능하게 우리가 일시적으로 그것을 보아내지 못할 수 있다).

속담에 “당사자는 헷갈려도 옆에서 보는 자는 명확하다(當局者迷, 旁觀者清)” 는 말이 있다. 수련자가 청성하지 못할 때에 바로 이렇지 않는가. 다른 사람을 볼 때에는 분명하지만 자신을 볼 때는 쉽게 얼떨떨해진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문제에 봉착하면 자신을 향해 찾으라고 하셨는데, 이것이 우리들의 정법 수련의 곳곳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자신을 향해 찾아야 만이 우리들은 동수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으며 자신을 수련생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생 중에 있다고 할 수 있는바, 비로소 우리들의 머리가 시종일관 청성하고 민첩할 수 있고, 비로소 시시각각 홍대한 관용과 자비를 유지할 수 있다.

그 밖에 한 사람 그의 능력이 아무리 대단하고 경력과 경험이 풍부할지라도 이것은 사람의 이 한 층에서 말할 때 제한되어 있다. 큰 것으로부터 말할 때, 한 수련자 그의 지혜와 능력은 이 끝없는 우주대법에 비하면 더구나 보잘 것 없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법력은 정체(整体)의 체현이다”라고 말씀하셨다. 한편의 문장 그것이 능히 그렇게 큰 위력을 일으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표면 내용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배후에 있는 내포다. 우리들이 쓴 문장은 우리들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에 다른 수련생이 법을 위해 책임지는데 입각하여 그것을 수개하고 더욱 완벽하게 한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더 많고 더 좋은 것을 첨가한 것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대법의 입자이며 함께 원용한다면 그것은 더욱 큰 위력이 아닌가?

수련생이 문제점을 보아낼 수 있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가 표면상 이 한 면에서 우리만 못하다고 여길지라도, 심지어 그가 문장을 전혀 써낸 적이 없었더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가능하게 사부님의 배치가 그로 하여금 문제를 제기하여 우리더러 개선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게 이 면의 지혜가 수요 될 때에 사부님은 아무 때나 줄 수 있는데 대법은 끝이 없잖은가.

개인의 체험으로서 동수들이 계발이 있기를 바라며 합당하지 않는 곳이 있으면 자비롭게 지적하여주기 바란다.

삼가 사부님께서 쓰신《홍음 (2)》의 두 수의 시로 고무 격려 한다 :

震 懾

神筆震人妖
快刀爛鬼消
舊勢不敬法
揮毫滅狂濤

二零零二年七月二十八日

진 섭

예리한 붓은 사람과 요귀를 뒤흔들고
쾌도(快刀)에 썩은 귀신 사라지노라
낡은 세력 법을 불경하거니
붓 휘둘러 사나운 파도 멸하리라

2002년 7월 28일

讀學員文章
 
利筆著華章
詞勁句蘊强
科學滿身洞
惡黨衣扒光

二零零三年七月二十二日

수련생 문장을 읽다

예리한 붓으로 멋진 글을 쓰거니
단어는 힘있고 구절은 강함이 내포돼 있노라
과학은 온 몸이 실수투성이
악당의 옷을 말끔히 벗기노라

2003년 7월 22일

문장완성 : 2004년 6월 26일
문장발표 : 2004년 6월 27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27일 12:17:31 PM
문장분류 : [제자절차]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6/27/78127p.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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