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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동수들과 수련환경에 좀 더 관심을 가지자.—수련생을 이끌어 온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며

글 / 미국대법제자

【명혜망】주말, 법학습 팀에서 교류할 때 나는 가,나 동수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던 다 동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오랜 시간 그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 수련생은 “그녀의 현재 상태가 좋지 않아 여러분과 만나기를 꺼린다.”고 말했고 나 수련생은 “아마 그녀가 올바른 믿음(正信)에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은데, 며칠 전 그녀의 사무실로 직접 찾아 갔지만 수련에 관한 화제를 의도적으로 딴 데로 돌리면서 나와 대화하기를 꺼렸다.”고 털어 놓았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마음이 아주 괴로웠다. 또 동수 한 명이 이렇게 편안한 북미지역이라는 수련환경에서 뒤처졌기 때문이다. 아픔이 가라 앉은 후에야 이전의 고통을 회상하듯, 나와 주위의 여러 동수들은 진상 알리기와 기타 정법 시기의 여러 과제와 활동에 바삐 보내다 보니 동수에 대한 관심과 배려, 단체 수련 환경에 대한 중시가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다.

사부님은《200년 시카고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여전히 그 한마디 말인데, 나는 한 사람도 빠뜨리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우리 연공장에는 한 가족 식구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1999년 7.20 이후, 걸어 나오는 문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집에서《전법륜》을 보고 연공만 하였다. 동수들이 보내준 명혜망 문장을 보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여러번 반복되자 그들을 다시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 한 동수만이 그들을 마음에 두고 늘 방문하거나 전화를 걸어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늘 욕을 먹으며 쫓겨나다시피 하거나 전화를 걸면 그들은 성의 없이 끊었다. 소중한 것은 여러 번 순조롭게 되지 못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는 “이번엔 아예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시작부터 사부님 경문을 읽어주어야지”라고 생각 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녀는 한두 번 반복해서 그 경문을 읽어주었다. 이번에는 그들이 전화를 끊지 않고 줄곧 듣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 세 사람은 목이 메어 통곡하였으며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단단한 얼음이 마침내 녹아 내려 청성(清醒) 해졌다. 후에 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무언가에 통제 당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지금 서술하기는 아주 간단하나 그녀는 해내기가 그다지 쉽지 않았던 것 같았다. 돌이켜 그녀의 정념정행에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만약 우리 개개인이 시시각각 사부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마음에서 우러나와 동수에게 관심을 갖고, 뒤처진 사람은 끌어 당겨 주어 우리의 정념이 갈수록 강해질 때면 환경은 반드시 더욱더 바르게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의 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들이 가능하면 자주 보지 못하는 동수 분들과 난을 지나는 과정에서 너무 오래 머무른 동수들에게 관심을 가져, 법학습하고 교류하면서 그들의 마음속 매듭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내어 법리상에서 솔직하고 성의 있게, 또한 인내심 있게 마음을 활짝 열어 교류하기 바란다. 실천 속에서 나는 내 심태가 초조하면, 교류하는 효과가 별로였고 심태가 순정할 때에는 상대방이 잘 받아들인다는 걸 발견했다.

팀에서 법학습을 할때 때로는 일에 대해 논할 때가 아주 많아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토론하는데 점유한 시간이 너무 많았다는 걸 발견했다. 사실은 법리상에서 근본적으로 명백하여 하나가 열리면 백 가지가 열리는데 무슨 일이든 모두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이 곳에는 60여세 되는 동수 한 분이 있는데 예전에는 피동적으로 각종 활동에 참가했다. 항상 누가 불러야 갔고 “사람이 모자라나요? 모자라지 않다면 안가고 모자라면 갈께요.”라고 말했다. 후에 교류를 통하여 그녀는 각종 진상 활동을 하는 것은 소란을 피우는데 일조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남는가 모자라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으며 누구도 그녀를 대신해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도할 수 없고,반드시 가야 하며 이는 정법 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법리상에서 명백해진 후, 그녀는 어느 곳이든 활동이 있으면 아주 멀어도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주동적으로 찾아갔고 늘 즐겁게 했다. 조지아주 8개국 수뇌회의 기간, 진상 활동에 다녀온 후 활동에 참가한 다른 할머니들이 열심히 정진한다면서 이후 활동이 있으면 꼭 가겠다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녀의 강인한 표정에서 나는 한 수련생이 법리를 명백하게 알면 반드시 잘 하게 되는 것으로, 짧은 기간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단체 수련환경은 왜 이처럼 중요한가? 우리 개개인은 속인 중에서 사업과 학습을 하고 가정생활을 하며 세상 기풍이 날로 미끄러져 가는 공기에 늘 오염되고 있기 때문에 단체 법학습하는 환경에서 자신의 집착과 응당 버려야 할 것들을 발견하게 되어 “학습한 것을 비교하고 수련을 비교하기 (比学比修)” 아주 좋은 환경이기도 하다.

『《법륜불법》─미국 동부법회에서의 설법』중에는 수련생의 이런 질문이 있었다.

”문: “속인의 사회상태에 부합된다면 시간이 길게 되어 쉽사리 물결치는 대로 표류할 수 있는데요?”
스승: “이러하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더러 노수련생이든지, 신수련생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연공장에 가서 연공하고 법공부 회의 등등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이 환경 중에서 당신을 깨끗이 씻을 것이며 끊임없이 속인에서 오염된 언어, 행위와 관념을 씻어버릴 수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우리 법학습 팀은 일주일에 한차례씩 팀 교류를 하는데 법리상에서 깨달음이 좋은 많은 동수들은 너무 바쁜 탓으로 나오지 않았고 ”무엇을 좀 얻으려고 온” 수련생들은 그다지 큰 수확이 없자 점차 나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오는 사람 대부분은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다. 사실 정진하는 동수들은 법학습을 잘하였기에 일에 봉착하면 사람의 관념에서 떨쳐 나와 문제를 본다. 이 일체는 법의 위력이지 어느 수련생이 얼마나 높다는 것이 아닌 바, 절대로 근본과 표면(本末)이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사부님은 대법수련에는 본보기가 없다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법학습 소조에 가서 속인중의 본보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법을 스승으로 모시고 법의 요구대로 하는 것이다.

일부 동수들은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왔기에 법학습하는 심태가 너무 바르지 못하다. 자신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 느끼면 나오지 않는다. 오래되면 많은 수련생들은 진상 알리기에도 나오지 않고 정말로 다시 만나 보기 힘들다.

일부 수련생은 “난 아무개의 집착심을 보기 싫어 법학습 팀에 가지 않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집에서 학습해도 같다.”고 말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단체 수련환경은 사부님이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으로서 우리가 법리상에서 제고하고 승화함과 더불어 단체 환경 중에서 상호 세가지 일을 잘하기를 교류하는 가운데서 학습하는 것을 비교하고 수련을 비교하며 동수들이 정진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안으로부터 찾는 것이지 겉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어느 개인의 집착심이 강렬하게 눈에 거슬릴 때 자신한테 놓지 못하는 집착심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시간과의 대화》[정진요지(1)]중에는 사부님과 신의 이런 한 단락의 대화내용이 있다.
‘신 : 이러한 문제는 이미 몹시 심각합니다. 그들은 상대방이 여하여하 하다고 본 것을, 반대로 자신을 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스승: 응당 그들더러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들의 환경으로 하여금 하나의 진정하게 수련하는 환경으로 되게끔 하며 하나의 진정한 神이 되게끔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사부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우리의 환경을 진정으로 수련하는 환경으로 바꾸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하자.

문장완성 : 2004년 6월 18일
문장발표:2004년 6월 19일
문장갱신 : 2004년 6월 19일 오후 1시 34분 09초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4/6/19/774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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