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슴을 가득 채우는 것만이 우리에게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게 할 수 있다

글 / 장쑤성 대법 수련생

[명혜망]
(1) 한 동안, 수련의 길에서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내 앞에 장벽이 있다는 것을 종종 느꼈다. 그 장벽은 가장 기본적인 일에서 나에게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을 방해했고, 뒤에서 나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는 이 장벽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지난 2년 간, 나는 법륜대법에 대한 진상과 중생을 구도 하는 일을 해온 것으로 보였다.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제고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대법에서 나를 분리시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패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다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은 강철과 철을 녹일 수 있는 무한한 자비심을 가질 수 없다는 것만을 느꼈고, 또한 속인들의 집착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었다.

무엇이 문제의 원인인지 생각해낼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최근 명상하는 동안, 깨달았다, “진짜 문제”는 내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놓여있었다.

(2) 최근의 한 강의에서,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명확하게 낡은 우주의 본질은 이기적인 것이고 새로운 우주는 이기심이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주셨다. 내가 이해한 것으로부터 보면, 이기적인 것은 대법 수련생들을 포함해서 낡은 우주로부터 나온 모든 생명들이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공통적인 특성이다. 정법시기 동안 진정하게 낡은 우주로부터 초월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미래의 가장 위대한 신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사부님께서 《법륜불법 오스트레일리아 법회에서의 설법》에서 우리에게 원하신 것처럼 “새로운 우주의 모범적인 모델”이 되기 위한 열쇠는 이기적인 본성을 변화시켜 아무 것도 없을 때까지 완전히 이를 내려놓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뿌리를 캐다”와 “최후의 집착을 제거하자”에서 우리에게 원하셨다. 무엇이 “뿌리”이며 무엇이 “최후의 집착”인가? 나의 이해로부터 본다면, “뿌리”와 “최후의 집착”은 낡은 우주의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이다. 우리가 “뿌리”를 캐낼 수 있고 “최후의 집착”을 제거할 수 있는가는 매 대법수련생들이 “미래에 가장 위대한 신들”이 되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마지막 고험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지막 고험이기 때문에, 통과하기가 특히 어렵다.

(3) 낡은 우주로부터 나온 이기적인 본성은 모든 층에 존재해 있다. 이 본성은 부동한 층차 또는 한 층차 내에서도 부동한 체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전체 수련과정과 정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과정 중에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한 층 한 층에서 조금 조금씩 제거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조금 제거되었지만 아직도 그곳에 얼마가 남아있다; 이 층차에서 조금 제거되었지만 다음 층차에 아직도 더 많이 있다. 다만 끊임없이 이것을 제거하는 데서 우리는 원만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이것을 본다면, 만약 한 수련생의 가슴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많이 채워져 있다면, 거기에는 중생과 자비심을 위한 공간이 그만큼 적게 남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적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중생과 자비심을 위한 공간이 더 많이 있게 될 것이다. 일단 수련생의 가슴에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이 없고 중생으로 가득 차있을 때, 이 수련생의 가슴은 철과 강철을 녹일 수 있는 자비심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명예, 이익, 그리고 감성은 낮은 층차, 인간 공간에서 낡은 우주 본질의 체현이다. 바로 역사에 있었던 다른 모든 수련들처럼, 법륜대법의 수련은 명예, 이익과 감성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명예, 이익과 감성을 제거함이 개인 수련의 주된 특징이다.

정법 단계로 들어간 후의 차이는 명예, 이익과 감성에 대한 집착심이 점차로 줄어드는 반면에, 원만에 도달하고 위덕을 쌓으며, 그리고 새로운 우주에서 지위를 성취하려는 집착심이 어느 기간 동안 새로운 문제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 또한 초기 수련에서 내가 만났던 하나의 큰 문제이기도 했다.

한 동안 법공부를 한 후에, 나는 이러한 집착심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법으로부터 나를 가로막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시는 무한한 자비심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 나는 명예, 이익, 감성, 원만에 이르고 새로운 우주에서의 지위를 성취하려는 집착심이 모두 자신에 대한 집착심의 체현이라는 것을 알았다. 체현들을 제거하는 것은 실제로 자신에 대한 집착심을 제거하는 것과는 같지 않다.

과거에 내가 그랬던 것과 비교할 때, 나는 개인적인 원만, 위덕과 새로운 우주에서의 지위를 얻는 것에 훨씬 적게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매일의 수련 상태에 더욱 집착해 가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만약 어느 날 내가 법공부를 잘 하고, 발정념을 잘 하고 진상하는 많은 일을 잘하고, 그리고 어떤 집착심을 제거했다면, 나는 정말로 행복하고 하루를 잘 보냈다고 느낀다. 반대로, 만약 어느 날 내가 법공부를 잘 하지 못하고, 발정념을 잘 하지 못하고, 진상 일을 조금밖에 하지 못하고, 정법 일을 하는데서 성공하지 못했거나, 내게 새로운 집착심을 발견했다면, 나는 내 하루의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낀다.

이런 상태에 있는 것이, 내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세 가지 일에 나의 모든 생각을 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내가 이런 식으로 생각한 것은, 나의 수련 상태가 좋은 것 같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했던 것이지, 많은 중생들이 구도 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낭비했다고 느낀 것은 내가 잘 하지 못해서 중생들이 손상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내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에, 내가 수련의 최후의 결과에 집착했다면, 지금 나는 내 수련의 현 상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상태가 달라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모두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것이 느낌이든 또는 내 생각의 시작점이든 마지막 점이든지에 상관없이, 그것들은 모두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내 안에 있는 자신에 대한 집착의 다른 체현을 발견한다: 나의 현재 수련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집착심이다. 나는 수련의 길에서 비틀거리곤 했었고, 나는 정법의 대단한 추세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그리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배치하신 밝은 길을 향해 돌아가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고 잠재적으로 느꼈다. 동시에, 내가 사악을 제거하고 낡은 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나의 능력에 전적으로 신뢰감이 없었다. 그런고로, 나는 항상 잘못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 수련 상태에서 성취한 것들을 망칠까 봐 걱정했다. 이것 때문에, 나는 종종 중생을 구도 하는 것 대신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더 많은 중점을 두었다. 다른 말로하면, 나 자신과 중생을 놓고 본다면, 나의 마음은 종종 나 자신에게로 기울어졌다. 이런 환경 하에서, 나 자신을 끊임없이 제고했지만, 이것은 결코 나를 대도에서 수련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물론 나는 진정한 수련생들 뒤에 쳐져 있었다. 궁극적인 이유는 자신에 대한 집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수련의 목적은 표면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만약 본질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표면이 얼마나 바뀌든 중요하지 않다. 나를 예로 든다면, 나의 가슴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충만 되어 있다면, 이것이 어떻게 강철과 철을 녹일 수 있는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게 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어떻게 법의 일부가 될 수 있겠는가?

다만 가슴이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할 때 이것은 무한한 자비심을 생성해낼 것이다!

지금 나는 나의 미래 수련의 방향을 보았다.

결론적으로, 우리 모든 수련생들이 함께 제고하기 위해서 나는 사부님의 경문 《“불성무루(佛性無漏)”, 정진요지》의 마지막 부분을 본뜨고자 한다.

“사실 당신들의 이전의 본성은 자신을 위하고 이기적인 것을 위하는(爲我爲私)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을 함에 있어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무사무아(無我無私), 선타후아( 先他后我 )의 正覺으로 수련성취 하도록 하라.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에까지 생각해야 한다! 대법의 永世不變을 위하여 생각해야 한다!”

문장발표: 2004년 8월 22일
문장완성: 2004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생관점]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7/26/80266.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8/22/5162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