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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구에 대한 집착심을 내려놓다.

[명혜망] 법공부를 하고 진상할 때, 추구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한다면 아무 것도 잘 할 수 없다는 것에 주의를 돌렸다. 예를 들면, 법공부를 할 때, 어떤 수련생들은 그들이 법공부가 박해를 줄이고, 모순을 해결하고, 또는 건강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사실 이것은 추구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법공부하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여기서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이지, 속인들의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말씀하셨다,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 불가는 공(空)을 주장하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공문(空門)으로 들어가고, 도가는 무(無 )를 주장하여 아무것도 없으며, 가지지도 않고, 추구하지도 않는다. 연공인(煉功人)은 ‘유심연공(有心煉功), 무심득공(無心得功)’을 주장한다. 일종 무위(無爲)적인 상태로 수련하며 오직 당신의 心性(씬씽)만 수련한다면 당신의 층차는 곧 돌파될 것이며 당신에게 있어야 할 것들이 당연히 있게 된다. 당신이 내려놓지 못하면 집착심이 아닌가? 우리가 여기에서 단번에 이렇게 높은 법을 전수하므로, 물론 당신의 心性(씬씽)에 대한 요구도 높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구하려고 하는 마음을 품고 와서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과거의 종교 수련에서는 공(空)과 무(無)를 요구했지만, 대법 수련은 더욱 높은 표준을 가져야 한다. 나의 이해로는 법이 우리의 인도자이며, 우리가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고, 법에 더욱 동화될 것이며 더욱 제고될 것이다. 나는 책 한 권을 읽음으로서 그처럼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매우 행운이며, 행복과 감사함을 느낀다. 그 이상의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그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진성(眞性)이라기보다는 정말로 탐욕스런 환영의 생각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집착은 완전히 부정해야한다. 나는 법공부하고 수련하는 기회를 소중히 여긴다. 그것이 내가 왜 항상 순수한 마음으로 법공부하는 매 기회를 갖는가 하는 이유이다.

많은 집착심은 진상하는 과정 중에서도 노출된다. 어떤 수련생들은 사람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면 기뻐하고 만족해한다. 반대로,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거나 반대하면 그들은 우울해한다. 어떻게 조용한 마음과 정념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한 번 나는 책에서, 누구에겐가 받겠다는 기대를 하지 않고 한 톨의 쌀을 주는 것이 한 톤의 가치가 있다, 한 편 되받을 조건으로 몇 톤의 금을 주는 것은 진정한 공적이 아니다 라고 쓴 한 구절을 읽었다. 이것은 속인으로부터 나온 격언이다. 우리 대법 수련생들이 그처럼 많은 일을 하고도, 왜 때로는 기대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가? 열쇠는 우리의 마음이 충분히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대법의 위대함을 아무 기대 없이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말을 듣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리라고 믿는다.

수련생이 아닌 사람들은 그들이 상처를 받았을 때 자신들을 보호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수련자로서, 우리는 밖을 향해 찾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안을 향해 우리 자신의 문제를 찾아야 한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의 전체 과정은 끊임없이 인간의 집착심을 제거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구실로도 우리는 집착심을 양육해서는 안 된다. 추구하지 않을 때 우리는 평온을 이룰 수 있다; 조용할 때 우리는 순수함을 달성할 수 있고, 순수할 때 우리는 호의적인 해결을 볼 수 있다.

때때로, 대법 일을 많이 하는 어떤 수련생들은 비교하고 경쟁하는 집착심을 가지고 있고, 그들은 그 만큼 하지 못하는 수련생들을 내려다본다. 모든 중생들이 구도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다만 중생을 구도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한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너무 적은 것도 아니고 만 사람을 구도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도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부동한 능력이 있고, 우리 매 사람이 최선을 다 하는 것이지, 어떤 결과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고층차에 이르는 것은 수련의 결과이지, 추구나 경쟁이 아니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원래의 자리가 있다. 새로운 우주의 각자들은 추구에 대한 집착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문장발표: 2004년 7월 11일
문장완성: 2004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생관점]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6/15/77026.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7/11/5011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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