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울 중국인 대법제자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동수 여러분, 반갑습니다!
전화 진상을 하면서 저도 다른 동수들처럼 처음엔 수화기만 들어도 긴장되고 두렵던 데로부터 점차 성숙되어 가는 과정을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체득이 깊습니다. 이런 소중한 기회를 빌어 자신의 옅은 감수를 얘기하려 하오니 동수들의 너그러운 지도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진상을 알리는 일을 대법 제자 모두가 중시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들이 응당 전력을 다하여 해야 할 제일 위대한 사업이다.”(《2002년 워싱턴 DC 법회에서의 설법》)
2002년 겨울, 법학습을 하면서 이 단락을 읽는 순간 갑자기 나도 진상 알리기에 전력을 다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동수들의 경험을 학습하고 나서 전화 진상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처음에는 원고를 읽었다.
어느날, 창춘(長春)시 시청의 한 노간부와 이야기를 하였는데 견해가 비슷하여 너무나 자연스레 진상을 알려 줄 수 있었다. 나는 워낙 말주변이 없는 편이었지만 대법이 부여한 지혜로 이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느끼고 이후 전화 진상을 잘 할 수 있다는 신심(信心)이 생겼다. 그 후로 늘 저녁에 전화를 걸었는데 주로 파출소에 많이 걸었다.
파출소의 전화번호를 들고 차례대로 걸었고 연속으로 걸었으며 며칠 후에 또 걸었다. 수화기를 들기 전에는 우선 법학습을 하여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킨 후 발정념을 하고 일체 교란을 제거하였다. 욕부터 하는 사람이나 전화를 끊는 상황에 부딪혀도 상대방의 정서에 끌려 낙심하지 않고 여러 번 걸었다. 진정으로 선행을 권하고 사람을 구도하려는 마음만 먹으면 사부님께서는 구원을 바라는 중생들이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게 안배해 주셨다.
전화할 때 나는 전화를 받는 경찰에게 오빠라고 부르면서 늘 이렇게 말한다. “저는 당신들을 잘 알아요. 당신들은 정말 수고가 많지요. 상사가 부여한 임무라면 어떠한 임무나 당신들은 모두 집행해야죠. 당신들의 생활을 보장해주는 일이니까, 당신들의 잘못은 아니예요. 그러나 당신들은 진상을 알 권리가 있어요… …”
그런 후 “분신 자살 사건”의 진상과 “장xx 기소 사건”의 자초지종을 알려 주었고 “문화 혁명”후 혁명 시기 앞장 섰던 사람들의 비참한 결말을 얘기해 주었다.
또 나 자신이 수련한 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실례를 들어가면서 얘기하다 보면 급급히 자기 변명만 하던 사람들도 말문이 막혀 조용히 듣기만 한다. 마지막에는 늘 이렇게 부탁한다. “당신은 아직 장래가 창창하니 마땅히 아름다운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단지 눈앞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앞날을 위해 잘 생각해 보세요… …”
그들의 집착에 따라 얘기해주면 많은 경찰들은 잘 받아 들였다.
한번은 어떤 경찰이 전화를 받자마자 욕부터 하였다. “밥 먹고 그렇게 할 일이 없니? ” 나는 “우리는 평소 모르는 사이인데 제가 왜 당신한테 전화를 거는지 아세요? 제 돈으로 카드를 사서 전화를 하는데 당신더러 돈을 내라고 했나요? 제 명예와 이익을 위해선가요? 바로 당신을 위해서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당시 정념이 아주 강하여 단번에 그의 미세한 공간까지 치고 들어가 그의 명백한 부분이 의식을 되찾게 하였으며 그가 온순하게 진상을 다 듣게 만들었다.
최근 정부 기관에 진상을 알릴 때는 한국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의 기자 신분으로 화제를 끌어간다. “요즈음 한국 큰 신문들에서 전국을 뒤흔드는 중국 뉴스를 보도했는데 그 뉴스에 관하여 당신과 인터뷰 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즉각 무슨 뉴스냐고 묻는다. 장xx 소송 안건을 얘기한 후 적당히 심도 깊게 얘기하면 대부분 다 잘 받아들인다.
전화 진상을 하면서 나는 내게서 옛날엔 발견하지 못했던 내 몸에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두려움, 쟁투심, 환희심과 조급증이 진상을 알리는 효과를 많이 떨어뜨리는 것을 발견하였다. 한번은 어떤 파출소에 전화를 걸었는데 몇 마디 말하지 않았는데 벌써 교란이 왔다. 상대방 경찰이 “얘기 할 시간이 없습니다.파룬궁 수련생들이 플래카드를 걸었다는 전화가 왔으니 나는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합니다. “하고 말하더니 전화를 끊는 것이었다. 나는 이 때우리 해외 대법 제자들은 평화로운 환경에서 수련하기에 더욱 정진하고 참으로 수련하여야 한다는 것을 심각히 깨닫게 되었다. 절대로 안일을 추구하지 말고 험악한 환경 속에서도 참답게 수련하는 대륙 동수들과 더욱 잘 협력하여야 한다. 아니면 우리는 정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받아들일 자격이 없게 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거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대륙 동수들을 대할 면목이 없게 된다.
오랫동안 나는 줄곧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여 상태가 때론 좋다가도 가끔 여지없이 나빠 질 때가 있었다. 최근에 “단념할 것은 내가 아니라 미혹에 빠져 있는 것이니라”(《홍음》2)는 시구를 보고서야 비로소 내가 아직도 안일을 추구하는 마음을 자신이라고 여겼으며 버리려고 그렇게 애썼지만 줄곧 내려 놓지 못한 것은 본래 “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였다. 내가 진정 정념으로 이것을 제거하자 많이 홀가분해진 느낌이 든다.
깊이 분석해보니 모두 “사심(私心)”이 농간을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멈추지 않고 정진해야만, 늘 자비로 중생을 구도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집착심”은 큰 바다[大海]가 냇물로 변하듯이 작아져 가볍게 살짝 건너 갈 수 있게 된다.
동수 여러분, 다 함께 “신의 길에서 정진합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