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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평온하게 실증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이십여 년간의 정법 수련 여정에서 박해 초기의 혼란스럽고 무기력했던 시기, 갈팡질팡했던 때를 지나 지금은 이성적으로 깨어 있고 정념이 견고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부님의 한량없는 자비와 위덕, 대법의 광대한 법력과 초월적인 힘을 목격했습니다. 사부님을 따라 정법의 길을 오늘날까지 걸어오면서 많은 깨달음이 있었기에, 저의 체득을 글로 작성하여 수련생들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리하신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진상을 알리다 납치된 수련생을 구출하는 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이러한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관련 법률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순수한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대법제자들은 가장 올바른 일, 가장 좋은 일을 하고 있으므로, 사악에 의해 박해받아 구치소나 감옥에 불법 구금되어서는 안 된다.’ 박해받는 대법제자를 구출함으로써 그 가족들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리고 박해로 인한 부정적 영향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동시에 박해에 가담하는 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들에게도 진상을 알려 그들이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고 긍정적 역할을 하여 사악에게 이용당해 미래를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하나의 정체를 형성하고 조화롭게 협력해야 전체적으로 사람을 구하는 힘이 강해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두려움, 불평, 번거로움을 꺼리는 마음 등 여러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조건 없이 묵묵히 협력하여 수련생들과 함께 금강불파(金剛不破)의 정체를 이루었습니다. 항목에서 법에 부합하고 중생 제도에 유익한 일이라면, 온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출 과정에서는 각 단계마다 당국 관계자들에게 신청서를 제출하고 진상을 알릴 때 박해받는 수련생의 가족 협조가 필요했습니다. 제가 가족들과 연락하는 역할을 맡아 자주 며칠마다 물건을 사서 그들의 집을 방문하며 이 기회에 진상을 알렸습니다. 변호사가 구치소에 가서 수련생을 면회할 때는 가족과 함께 동행하여 박해받는 수련생의 상황을 파악하고, 돌아와서는 즉시 발정념을 하는 수련생들과 소통했습니다.

해당 수련생이 속한 법공부 소그룹의 수련생들을 찾아가 교류했습니다. 수련생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내려놓고 각자 자신을 향해 찾으며, 순수하고 선한 마음으로 수련생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진심으로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하여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요소와 생명을 해체하고 제거하자고 했습니다. 수련생 구출에 참여하는 과정은 또한 자신이 법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자아를 계속 내려놓으며 정념을 강화하여 사악에 저항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박해받는 수련생과 친분이 있는 한 수련생 A가 말했습니다. 파출소에서 수련생의 가족이 그녀를 만나러 갔을 때, 그녀는 가족에게 인권변호사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왜 수련생이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고 오히려 속인에게 의지하려 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가 이해한 법리를 A와 교류했습니다.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가장 정의로운 일, 가장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이며, 이는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리하십니다.”

사부님께서 “대법제자는 나의 제자이기에 누구도 관리할 자격이 없으며”(각지 설법6-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사부님을 생각해야 하며, 동시에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수련인이 닦는 것은 선(善), 무사(無私), 위타(爲他)입니다. 제자의 정념을 강화하여 경찰들이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시고, 그들도 대법의 구원을 기다리는 생명이니 선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하며, 구치소나 감옥은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사부님께 청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정념이 견고하다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입니다. 대법 수련은 박해와 무관합니다.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전면 부정하며, 이 박해는 사부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고 우리 대법제자들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굳게 믿어야 합니다. 대법제자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더욱이 박해받아서는 안 됩니다. A는 이에 매우 공감했습니다.

작년에 A가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에게 불법 가택수색을 당하고 파출소로 납치됐을 때 그녀는 정념이 매우 강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계속 ‘사부님, 이 경찰들이 대법제자에게 죄를 짓지 않게 해주십시오. 검은 소굴은 제가 갈 곳이 아니며, 저는 여전히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건강검진이 기준에 미달되어 A는 다음날 오후에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2006년부터 여러 종류의 진상 자료를 제작해 왔으며, 여러 차례 위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매번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당당하고 바르게, 평온하게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대법제자는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와 정법하는 신이며,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지 박해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대법 진상 자료는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빛을 발하는 사악을 제압하고 혼란을 없애는 법기(法器)이지, 사악한 박해의 증거가 아니다. 사부님의 법신은 항상 제자를 지켜보고 계시며, 제자에게 보호막을 내려주셔서 어떤 사악이나 나쁜 사람도 내 공간장(空間場)에 들어올 수 없다. 대법제자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리하신다. 대법제자는 미래에 참고가 될 것을 남기고 있으므로, 사부님의 법을 굳게 믿고 인간 세상에서 대법의 광대한 법력과 위대한 초월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저는 ‘전법륜’을 암송하면서 대법제자의 인생 길을 이해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그날부터 이미 사부님에 의해 변화되었으며, 이는 수련의 일생입니다. 어떤 난(難)이 나타나더라도 그것은 생생세세 지은 업력(業力)을 갚고 모든 사람마음의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이 박해를 인정하지 않으시고, 단지 사악한 박해를 역이용해 대법제자를 성취시키는 것일 뿐으로, 단지 표현 형식이 다를 뿐입니다.

자신을 박해받는 위치에 두지 않고 마음속에 박해라는 개념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대법도(大法徒)로서 신의 길을 걷는 생명입니다. 마음가짐이 순수하고 정념이 강대하면 사람을 구하는 효과도 좋을 것입니다. 계속해서 법을 배우고 착실히 수련함에 따라 사부님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고 정념도 점점 더 강해집니다.

대면하여 진상을 알릴 때 몇 차례 사복 경찰이나 신고하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지만,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순조롭게 위험에서 벗어났습니다. 갑작스러운 위험 상황에서도 저는 두려움이 없었고, 마음속으로 먼저 사부님께서 제자 곁에 계신다고 생각한 다음 담담하게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그저 그들을 위하는 마음을 품고, 그들이 대법제자 박해에 참여하여 구원받을 기회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들은 대법제자의 선량함을 느꼈고, 처음에는 위세등등했다가 나중에는 태도가 온화해져 마지막에는 모두 “괜찮아요,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 마음은 사부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가장 큰 깨달음은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수련하여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평온하게 잘 걸어가는 것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걸어오면서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의 책임과 사명이 엄숙하고 신성하다는 것을 점점 더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제자의 모든 지혜와 능력은 사부님과 대법에서 비롯되며, 모든 영광과 찬사는 사부님과 대법에 속합니다!

말씀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1. 위챗(微信) 삭제

2018년 6월 30일, 명혜망에서 ‘모든 대법제자들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는 글에서 위챗을 삭제하라는 요구를 보았을 때, 마음에 아무런 의문 없이 즉시 삭제했습니다. 이틀 후, 계정에 약간의 잔액이 있다는 것이 생각나 소프트웨어를 다시 내려받아 잔액을 모두 딸에게 이체하고 위챗을 삭제할 것이며 앞으로는 위챗으로 연락할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연락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당시 딸은 해외에서 유학 중이었습니다). 가족들은 모두 저를 이해했기에 매우 수월하게 위챗을 완전히 끊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분리할 수 없어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10여 년 전에 사용했던 배터리 분리가 가능한 휴대폰에 SIM 카드를 장착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 주방에 두었고, 평소 외출할 때도 거의 지니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직장의 모든 공지사항이 위챗으로 전달되었기에, 업무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같은 부서 동료들에게 중요한 일, 모든 사람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저에게 알려달라고 했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왜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지 매우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항상 휴대폰을 보는 것은 눈에 좋지 않아요. 또한 그룹 채팅방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너무 복잡하게 올라와 보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점차 직장에서 상사부터 동료들까지 모두 제가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수용했고, 중요한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와 알려주었습니다.

3년간의 전염병 봉쇄 기간 동안, 아파트 단지 출입, 공공장소 방문, 버스와 지하철 탑승 시 모두 QR코드를 스캔해야 했지만, 저는 계속해서 위챗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라고 하신 것은 모두 제자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표면적으로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반드시 제자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담담하게 “저는 위챗을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고 아무리 먼 곳이라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정상적인 출근과 진상을 알리러 나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2. 명혜망 접속이 막힘없이 원활하다

작년부터 일부 수련생들이 사악한 당이 인터넷을 심하게 차단하여 명혜망에 접속할 수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들어가자마자 끊겨서 웹페이지를 열 수 없다”고 했고, 대부분 체념한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사악한 당은 그런 능력이 없으며, 겉으로 보이는 인터넷 차단은 단지 가상일 뿐이고 사람 마음을 시험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저는 애초에 인터넷 차단이란 개념 자체를 갖지 않았기에 명혜망 접속은 항상 매우 원활했습니다.

단체 법공부 시간에 저는 명혜망 접속에 관한 제 경험을 그들과 나누었습니다. 매번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오직 사부님의 법만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여태껏 명혜망(明慧網) 봉쇄에 성공한 적이 없다!”(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은 우주에 고정되어 변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으며, 금강부동(金剛不動)함을 굳게 믿었습니다. 진실로 확고하게 믿고 조금의 의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명혜망에 접속하는 것은 항상 매우 순조롭고 장애 없이 원활하며, 신호도 매우 강했습니다. 간혹 접속이 안 될 때는 잠시 멈추고 자신의 문제를 안으로 찾거나 법을 공부하고 암송하면, 잠시 후 명혜망이 열렸습니다. 매번 명혜망을 열 때마다 산중에 앉아 세상을 정관(靜觀)하시는 사부님의 사진을 보면, 항상 공경하게 사부님께 합장하며 제자가 대법제자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도와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명혜망에서 해야 할 모든 일에 결코 차질이 없었습니다.

항상 수련생들이 “저는 왜 명혜망에 접속할 수 없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것은 수련의 문제입니다. 수련 중에는 우연한 일이 없으며, 아마도 심성을 향상해야 할 때이거나 스스로 도(道)를 깨우치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차단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뿐인데, 누가 신을 차단할 수 있겠습니까? 사부님의 법은 매우 명확하게 말씀하셨으니,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정말로 자신의 수련 문제입니다.” 깊이 체득한 것은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과 가지(加持)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는 비록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는 것뿐입니다.

저는 단지 사부님 말씀을 따르는 진수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비록 아직도 너무 많은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 정을 어느 정도까지 내려놓았는지에 따라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도 그만큼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층차의 이치 속박을 돌파해야만 더 높은 층차의 법리가 우리에게 펼쳐질 수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20/49047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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