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사범대학을 졸업한 후 한 국영기업 유치원에 배치되어 근무하게 됐으며, 1996년 4월에 동료를 통해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갓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2000년,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야외에서 연공하고 대법을 실증하다가 주민위원회 사람들의 고발로 원장 직위를 박탈당하고 회사의 조경부서로 발령받았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노약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직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3년 동안 머물면서 세상 사람들의 냉대, 조롱, 외면, 이해 부족을 충분히 경험했습니다. 자주 경찰의 괴롭힘을 당했고, 보증서 작성을 강요받았으며 세뇌 교육반에 보내질 계획도 있었습니다. 이후 회사가 생산을 중단하자 저와 남편은 임시직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박해가 가장 심했던 시기에도, 저는 파룬따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수련, 그리고 회사의 선한 지도자들의 보호 덕분에 사악(邪惡)의 계획들을 하나씩 부정하며 무사히 어려움을 헤쳐나갔습니다. 회사가 파산한 후 새 일자리를 받기까지, 지역 공립 유치원에서 일하게 됐는데, 지금까지 거의 3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새 직장에 처음 갔을 때, 제 성격이 이 직업과 너무 맞지 않는다는 관념 때문에 마음속으로 계속 거부감을 느끼고 이 직업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유아교육 분야를 떠난 지 거의 20년이 되어 비록 행정업무를 담당했지만 적응하기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동료들과도 친숙하지 않았고, 인정받지 못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꼬투리 잡히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마음이 계속 흔들리고 충격을 받으며, 업무의 모든 측면에서 순조롭지 못해 압박감이 컸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수련인임을 항상 기억하고 대법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했으며, 사부님이 안배하신 수련의 길을 잘 걸으려고 끊임없이 심성을 높이고, 심성을 높일 기회를 소중히 여기면서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 즉 쟁투심, 거부하는 마음, 타인을 못마땅해하는 마음 등을 버리려 노력했습니다. 업무 중에는 최대한 자비롭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유지하며, 저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과 똑같이 대응하지 않고, 높은 자세를 취하면서 세속적이고 바르지 않은 모든 것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자금 지원 업무는 성(省) 정부의 문서 지침에 따르면 공립 유치원이 매년 보육비 수입의 3%를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데 제공하는 것입니다. 저는 원장과 상의한 후 요구사항에 따라 업무를 완수했고, 실제로 원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학부모들은 모두 매우 감사해했으며, 코로나 영향으로 수입이 적었는데 이 지원이 그들의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학부모는 감사의 뜻으로 우승깃발까지 보내왔습니다. 그 기간에 담당 지도자들도 다른 유치원들에 문의했고, 모두 3%를 제공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작년 2월, 교육국에서 각 유치원의 작년 자금 계상 현황을 조사할 때, 단체 채팅방에 보고된 금액 중 우리 원이 가장 많았습니다. 우리 원의 두 배 규모인 유치원이 제공한 금액은 우리의 절반도 안 됐고,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유치원은 우리의 3분의 1도 안 되었습니다. 우리를 제외하고는 문서의 요구사항대로 실행한 곳이 하나도 없었던 겁니다. 중공(中共, 중국공산당) 통치하에서 사람들은 윗사람을 속이고 아랫사람도 속이면서, 말과 행동이 완전히 다른 행태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회계사가 채팅방의 데이터 스크린샷을 저에게 보내며 원장이 왜 우리가 가장 많은지 설명하라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비록 당시 모든 금액 지급에 지도자들이 동의하고 서명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원장은 제가 문서 지침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 ‘바보’, ‘호구’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마음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도덕성이 쇠퇴하는 이 사회에서, 좋은 사람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이 됐으니, 정말 “좋은 사람이 되기도 어렵다”(전법륜)는 말이 맞습니다. 즉시 저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대법 수련자로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 답은 ‘아니다!’였습니다. 저는 마음이 평온해졌고, 다른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판단하든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그저 사부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모든 일에서 제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교육국에서 공립 학교와 유치원의 자금 지원 담당자들에게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지난 4년간 각 학교, 각 유치원의 지원 금액을 보고하도록 요구했습니다. 취합 후 시(市)에 일괄 보고해야 했고, 2025년에 성에서 사람들이 와서 세부적으로 조사하고 엄격하게 점검할 예정이며, 문서 요구사항에 따라 실행했는지 확인하고, 하지 않은 곳은 스스로 해결책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 전에는 이 업무에 대해 성에서 조사한 적이 없어 각 학교와 유치원은 마음대로 규정의 허점을 이용하여 매년 겨우 상징적인 소액만 제공하며 형식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도움받을 기회를 잃었고, 대량의 자금이 용도 외로 사용되어 이미 분야를 막론하고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당황해하며, 일부는 작은 소리로 빨리 돌아가서 지도자와 대책을 상의해야겠다고 속삭였습니다. 조용히 회의실에 서 있던 저는 마음속으로 감회가 깊었습니다. 예전에 ‘호구’ 취급을 받던 제가, 이제는 여유롭고, 떳떳하고, 안정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진선인을 따라 행동하니 정말 좋습니다.
돌아온 후, 원장에게 이 일을 말했더니 원장은 깊이 감동하며 말했습니다. “역시 실질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군요!” 저는 농담처럼 물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규정대로 할 거죠? 편법을 쓰지 않고요?” 원장은 진지하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죠, 어떻게 요구했으면 그대로 해야지요.” 이후 어느 회식 자리에서, 원장은 잔을 들어 저에게 건배하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부원장과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대법의 법리로 우리의 모든 언행을 이끌어가며, 세인들에게 참고할 길을 남겨두고, 세상의 법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지금 저의 근무 환경은 점점 좋아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속인의 복잡한 근무 환경을 이용하여 저의 업력을 제거하고, 저를 단련시키며, 저를 합격된 대법제자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과정은 힘들었지만, 제 심성은 확실히 많이 향상됐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수련생들 간의 상호 지원과 사부님을 도와 중생 구하기
제 직장은 근무 시간이 길고 업무가 복잡하며, 꽤 힘들고, 집과의 거리도 멀어서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매일 퇴근하면 극도로 피곤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진상 자료를 제작하는 항목을 맡아왔는데,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대면 진상 알리기를 잘해서 자료 수요가 매우 컸습니다. 소책자, 화보, 각종 진상 서적(9평 공산당, 해체 당문화,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 등)부터 연말의 진상 탁상용 달력, 벽걸이 달력까지, 모두 만드는 데 매주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자료를 1층에서 7층까지 옮기고, 완성 후 다시 아래로 운반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가족들이 모두 타지에 있어 집안일이 줄어, 매주 저녁 세 번의 단체 법공부와 정상적인 법공부 및 연공 외에, 남은 시간은 거의 전부 진상 자료 제작에 쏟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힘든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던 저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면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마치 매맞은 것처럼 괴로웠습니다. 신기하게도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가끔 견디기 어려울 때면, 밀레르빠가 집을 지을 때 몸에 구멍이 나고 피까지 흘렸던 것을 떠올리며, 제 고통이 과연 무엇인가 자문했습니다. 고생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데, 이 모든 것이 다 좋은 일입니다.
수련하기 전, 가족들은 제가 잠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서 제가 자는 동안에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정오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도 잘 수 있었으며, 몸은 항상 나른하고 기력이 없었고, 조금만 피곤해도 금세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이런 ‘근골을 힘들게 하는’ 방식을 통해 제 몸의 나쁜 물질과 안일함을 제거하게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종이 한 상자를 들고도 가볍게 계단을 오를 수 있고, 수면 시간도 원래 10시간 이상에서 5~6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최근, 자료를 배달하는 퉁(彤) 수련생은 제가 힘든 상황임을 보고, 우리집에 법공부하러 오는 시간을 활용해, 자료를 각각 직접 만든 큰 천 가방에 담아, 1층에서 다른 수련생들이 올 때를 기다렸다가 함께 위층으로 올려주었습니다. 한번은 10개의 벽걸이 달력 용지를 운반했는데, 법공부 팀의 세 명의 남자 수련생이 모두 일이 있어 오지 못해 우리 다섯 명의 여자 수련생이 한 번에 모두 올렸습니다. 마른 체구의 샤오훙(小虹) 수련생은 왕복 네 번이나 배낭을 메고 오르내려서 저는 매우 감동했으며,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경지에 감동됐습니다. 운반을 마친 후 모두 웃으며 말했습니다. “남자 수련생이 필요할 때는 한 명도 오지 않았네요.” 기계 수리를 담당하는 샤오청(小成)은 기계 점검을 마친 후, 자료 제작실이 약간 어수선한 것을 보고, 제가 시간이 없어 정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깔끔하게 정리해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은 묵묵히 서로 분담하고 협력하며,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길에서 서로 지지하고 격려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사부의 가족을 대함에 정확히 하라’를 조용히 읽었습니다. “대법이 전해질 때부터 세인을, 신을 포함해 고려했는데, 기나긴 우주의 세월 속에서 생생세세 무수한 죄업을 지었다. 특히 세인이 그러하다. 이런 생명을 구도하려면 지나간 악행을 따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얼마나 큰 대법구도의 은혜인가! 얼마나 거대한 慈悲(츠뻬이)인가! 얼마나 신성한 은전(恩典)인가!” 저는 크게 감동받았습니다. 비록 줄곧 수련의 길을 걸어왔고 멈추지 않았으며, 사부님의 지도를 따라 열심히 수련해 왔지만, 대법의 요구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고 느끼며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와 무량한 은혜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앞으로 남은 제한된 시간 안에 용맹정진하여 하루빨리 사부님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4/2/49079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4/2/49079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