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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자신을 수련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 4월에 대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올해 85세가 됐습니다. 음악을 전공했는데, 학력은 결코 낮지 않지만 흔히 예술이나 체육 전공자들은 머리가 단순하고 몸만 발달했다는 선입견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도 그런 부류에 속할 겁니다. 시골에서 태어난 저는 어른들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신을 믿어왔습니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타격을 받긴 했으나, 내면 깊숙한 곳의 신앙심만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7년, 직장 동료이자 현재는 수련생이 된 분의 소개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접하게 됐고, 어떤 심리적 장벽도 없이 즉시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전법륜(轉法輪)’을 배우면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매일 기쁜 마음으로 대법 속에서 수련했습니다. 당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수련을 시작했어요. 정말로 신이 존재했던 거예요! 마치 이번 생에 찾던 것(대법)을 반평생 만에 드디어 찾은 것 같아요.”

​Ⅰ. 정념으로 법을 실증하다

1999년 7·20 법난이 일어났을 때, 저는 마침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7월 22일, 저는 여동생(같이 수련함)과 함께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그날 베이징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여기저기 대법제자들로 가득했습니다. 천안문에서 저는 한 젊은 경찰에게 다가가 대법의 좋은 점과 우리가 받은 혜택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경찰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아주머니, 저희도 대법이 좋다는 걸 알고 있어요. 우리 가족 중에도 수련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윗선에서 수련을 금지하는 거예요. 돌아가세요,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저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저녁이 되자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노부모님을 돌봐야 했기에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다시 베이징에 가서 법을 실증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2000년 7월 1일 정오, 저는 마침내 베이징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졌고, 온몸의 무게가 사라진 듯했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런지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일, 가정, 가족에 대한 정(情)을 내려놓고 오직 법을 실증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련생이 물었습니다. “옷 가져오셨어요?” 제가 “네, 가져왔어요”라고 하자, 그녀는 “저는 안 가져왔어요. 법 실증하고 바로 돌아올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저는 사부님의 안배에 따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천안문에 도착했을 때, 날씨가 너무 더워서 광장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녁 국기 하강식 때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고 들었습니다. 법 실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저녁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해가 지고 국기 하강식이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북쪽 입구에서 우연히 한 수련생을 만났고 우리 셋은 군중 뒤에 자리잡았습니다. 국기 하강식이 거의 끝날 무렵, 우리는 가부좌를 통해 법을 실증하기로 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망설이며 “좀 민망한데요…”라고 하자, 제가 “빨리 하세요! 사람들이 다 가버리면 누구에게 법을 실증하겠어요?”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날 이상하게도 제 다리가 무척 부드러워져서 순식간에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5장 공법의 구결부터 세 가지 가지(加持) 동작까지 완전한 세트를 다 해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지켜봤지만, 저는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때 경찰이 와서 제 발을 밀었습니다. 두 손을 합장하고 일어서 보니, 다른 수련생들은 이미 버스에 탑승한 상태였습니다. 제가 결가부좌를 하느라 다리를 푸는 동작이 느렸던 탓에, 경찰이 제 어깨를 밀며 말했습니다. “버스에 타지 마세요. 여기서 잘 수련하세요.” 그 순간 사람마음이 올라와서 다른 수련생들이 모두 버스에 타 있어 저만 타지 않으면 나중에 불평할까 봐 걱정됐습니다. 경찰이 “그럼 당신도 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버스에 올라타자 이미 먼저 붙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고, 우리 넷은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습니다. 한 경찰이 구두 바닥으로 그 젊은이를 때리고 있었고, 앞쪽의 경찰이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지?”라고 물었습니다. 경찰이 계속 젊은이를 때리는 것을 보고 저는 젊은이에게 “왜 말을 안 해요?”라고 했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폭행하던 경찰이 몸을 돌려 제 얼굴을 구두 밑창으로 때렸고, 그 순간 귀에서 휘파람 소리 같은 큰 소리가 났습니다.

경찰은 함께 온 다른 두 수련생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어디서 왔지?” 그들은 “우주에서 왔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에게 물을 때는 “할머니, 어디서 왔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과 다른 대답을 하기로 마음먹고 “위에서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사부님의 설법에서 언급된 ‘위’, 즉 높은 층차에서 왔다는 의미). 경찰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위를 원하지 않아. 아래를 원하지. 잠시 후 당신은 내려.” 그는 먼저 한 수련생을 내리게 했고, 다음에 저도 내리라고 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고, 저는 혼자였으며 아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천안문이었습니다. 방향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베이징과 가까운 고향이라 밤 11시가 훨씬 지나서야 동생의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동생을 만나자마자 그녀가 말했습니다. “언니, 미친 거야? 언니를 못 찾아서 경찰에 신고하려 했어.” 제가 나올 때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베이징 방문은 법을 실증하기 위한 것으로, 다른 잡념 없이 오직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러 간 것이었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잘 수련하세요”라며 버스에 타지 말라고 한 이유는 제가 수련생에게 “사부님의 안배를 따르겠습니다”라는 정념의 말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제자가 사람의 마음을 넘어서기를 바라시지, 고난을 겪으라고 안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련생에 대한 인간적인 마음에서, 함께 온 수련생들이 불평할까 봐 버스에 타고 싶었고, 결국 버스에 탄 후 뺨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왜 깨닫지 못하느냐?’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몰랐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야 그 의미를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알게 된 것은 수련이 정말로 엄숙하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법에 맞춰 행동할 때만 사부님께서 도와주시고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립니다. 사람의 마음을 쓰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결국 고통을 겪게 됩니다.

Ⅱ. 정념으로 가정의 고비를 넘다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은 마중 나오지 않았습니다. 평소 고향에 갈 때마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중 나오곤 했는데 말입니다. 혼자 집에 도착해보니 책상 위에 긴 편지가 놓여 있었습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주로 이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인데 그가 저를 이렇게 대하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습니다. ‘인생이란 결국 이런 거구나. 구걸하며 살아도 하루에 만두 한 개는 얻겠지.’ 그 당시는 두 아들에 대해서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고 극단적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고집이 세서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은 끝까지 가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에 남편이 돌아왔을 때 저는 매우 평온한 상태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소파에 앉아 아주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이혼에 동의해요. 당신도 알다시피, 원래 당신은 아무것도 없었고 제가 우리 가정을 일궜어요. 하지만 집안 물건은 하나도 갖고 가지 않겠어요. 제가 입는 옷만 가져가겠어요. 그런데 당신 가족과 우리 가족을 모두 불러서, 제가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고 싶네요.” 남편은 즉시 “나중에 이야기합시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남편은 집안이 가난했고 우리가 결혼했을 때 그의 집에서 아무것도 준 것이 없으며, 제가 홀로 모든 것을 일궈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연로하신 부모님은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눠주었고, 우리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습니다. 매년 명절이면 오히려 우리가 부모님께 돈을 드려야 했습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는 “우리가 가장 많은 몫을 부담하겠습니다. 우리가 큰돈을 쓰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세 아들 집에 각각 4개월씩 머물기로 약속했지만, 셋째 아들 집에 가서는 겨우 28일 만에 견디지 못하셨습니다. 며느리가 불친절한 표정을 짓자 저는 시어머니를 우리집으로 모셨습니다.

시어머니께는 개인 방을 마련해 드리고 TV도 하나 놓아 드렸습니다. 시어머니가 TV 드라마를 좋아하셔서 원하는 대로 시청하셨고,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식사 때마다 저는 반찬을 챙겨드렸고, 바깥에 산책을 다녀오시면 배고프실까 봐 계란찜이나 계란 국수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이런 음식들은 시어머니가 특히 좋아하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4개월을 지내셨지만, 떠나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고향에 있을 때는 매년 겨울마다 병원에 입원해 수액을 맞아야 했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병도 없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어머니의 큰딸이 세 번이나 장거리 전화를 걸어 오라고 했지만, 시어머니는 가지 않으셨고, 제 사돈댁에게 “내 딸도 나를 이렇게 보살핀 적이 없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수련한 후의 상황을 남편은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대학 동기로, 그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었고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당시 그는 당원이자 부처급 간부였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고, 이혼은 그의 진심이 아니라고 털어놨습니다. 구세력이 이를 통해 제가 집착을 버릴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대법을 처음 얻었을 때를 돌이켜보면, 흥분된 마음에 남편에게 “제가 수련을 시작했으니 세속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수년 간의 실제 수련 과정에서, 비록 가슴 아픈 눈물을 흘렸지만 저는 생각이 단순한 사람입니다. 일단 깨달음을 얻으면 망설임 없이 즉시 내려놓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로 “집착을 내려놓으면 배가 가벼워지고 빨라진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Ⅲ. 정법 수련 중 몇 가지 작은 이야기

1. 급한 성격을 닦아 없애다

1) 1999년 7.20 이후, 수련생들과 연락이 닿게 됐고 저는 계속해서 자료 운반을 담당했습니다. 자료점 수련생들이 인쇄한 자료를 저에게 전달하면, 저는 그것을 여러 수련생에게 나눠주고, 그 수련생들은 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자료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거리에서 만났습니다.

어느 날, 약속 장소에서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날씨가 무척 더웠습니다. 그래서 근처 길가에 있는 한 수련생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가게 주인 수련생이 “왜 이제 오셨어요? 이미 오래 전에 수련생을 보냈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밖에서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여기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라고 하자, 그 수련생은 “그 사람이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전화로는 말할 수 없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서두르지도, 비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조급한 성격을 제거하려 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바로 수련임을 이해했습니다.

2) 또 다른 날, 자료를 전달하러 가면서 두 개의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다른 수련생들은 빨리 자료를 가져갔지만 한 수련생만 오지 않아 길가에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시계를 보니 45분이나 기다린 상태였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사부님!”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건 고통스러운 게 아닌데.’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서 그 수련생이 걸어오고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와보니 당신이 없어서 옷 만드는 곳에 가봤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앞으로는 일찍 오시면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늦지는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또 한 번 제 조급한 성격을 수련할 수 있었습니다.

3) 한 나이 많은 여성 수련생이 있었는데, 항상 자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자주 잊어버렸습니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갔을 때, 나오기 직전에 “잊지 마세요”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녀는 “이번엔 잊지 않을게요”라고 대답했지만, 정작 그날이 되자 또 잊어버렸습니다. 그녀가 오지 않자 저는 그녀 집으로 갔고, 만나자마자 그녀가 “아, 또 잊어버렸네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제가 잊어버렸는데 왜 당신이 잘못했다는 거죠?”라고 물었고, 저는 “상유심생(相由心生), 즉 모든 현상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뜻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그날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둘은 웃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수련을 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한다면 갈등은 결코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자료를 전달하는 다른 수련생들과는 오랜 세월 단 한 번의 갈등도 겪지 않았습니다.

2. 사부님의 보호로 놀라움은 있어도 위험은 없었다

대략 2003년경, 우리 네 명의 수련생이 제 집에서 교류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날이 ‘5.13’이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교류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침실문을 닫은 후 문을 열었더니 파출소 경찰이 서 있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저는 웃으면서 그에게 “저를 아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경찰은 소파에 앉으면서 “이 마을의 포스터는 다 ○○○(수련생 이름)가 붙인 거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냥 눈감아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발정념을 하고 몇 마디 나눈 후, 경찰은 떠났습니다. 큰 사고 없이 상황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되돌아보니 그때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있었고, 그 두려움을 없애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대략 2005년경, 우리 시에서 몇몇 자료점이 급습당했고, 우리 자료점 수련생들도 큰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여러 대의 기계가 동시에 가동되고 있었고, 거리에서 자료 제작 수련생을 만났을 때, 그녀는 “사실, 당신이 한가할 때 기계 하나 줄 테니 당신도 자료를 복사해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사실 당시에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그녀는 프린터를 가져왔고 이틀도 채 되지 않아 그녀의 집도 급습당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이 저와 연락을 취해 주간지, 소책자, 주보 등의 견본을 가져다주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자료 제작을 시작했습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이제 제 차례가 왔고 저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2008년 올림픽 개최 전날인 금요일, 정확히 오후 5시는 수련생이 자료 견본을 가져오기로 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지역 담당 경찰이 방문했습니다. 저는 정념을 보내며 그가 빨리 떠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저에게 불평했습니다. “책임자가 팀장을 추천하면서 저를 추천하지 않았어요. 제가 일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데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해요.” 제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너무 열심히 일할수록(파룬궁 탄압 관련 업무), 오히려 책임자에게 더 큰 골칫거리가 될 텐데 누가 당신을 추천하겠어요?” 경찰은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꼬박 2시간 동안 머물다가 마침내 자리를 떴습니다.

저녁 8시경, 한 수련생이 찾아와 이상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잠시 인쇄가 안 됐어요. 한 장을 인쇄하면 그냥 하얀 종이가 나오고, 또 한 장을 인쇄해도 여전히 하얀 종이만 나왔어요. 그런데 이제야 정상적으로 인쇄가 됩니다.” 저는 “아, 사부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셨군요”라고 말하며 방금 있었던 지역 담당 경찰의 방문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또 한 번 큰 사고 없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Ⅳ. 대면하여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1. DVD를 배포하다

예전에는 그저 큰길을 걷거나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료를 무작정 배포했습니다. 하지만 ‘션윈(神韻)’ DVD를 배포한 이후(주: 초기에 허용됐던 시기),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됐습니다. DVD는 제작 비용이 많이 들고 또한 신성한 것이므로 함부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서 DVD를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무용극에 담긴 전통 이야기나 ‘서유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무용수들이 어떻게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다시 지상에서 천상으로 날아오르는지 설명했습니다. 션윈의 예술과 기술 수준은 세계 최고이며 매우 아름답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습니다.

한번은 큰 교차로에 도착했을 때, 빨간 신호에 멈춰 선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들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광고 전단을 나눠주고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션윈은 신성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니, 나도 당당하게 배포해야지.’ 그래서 한 사람씩 다가가며 “이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이에요. 정말 훌륭합니다”라고 말하며 DVD를 건넸습니다. 멀리 있던 사람들도 “저에게도 하나 주세요! 이쪽으로 던져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어떤 이는 “당신이 직접 공연하는 거예요?”라고 물었고, 저는 “아니요, 제가 아니에요. 저는 나이가 많아서 공연할 수 없어요. 이건 미국의 한 중국인 예술단이 세계 각지에서 펼치는 공연입니다. 지금 보시고, 나중에 중국에서 공연할 때 함께 가서 관람하면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70대였지만, 음악을 전공했기에 어느 정도 기품이 있어 보였고, 그것이 예술 DVD를 배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거리 모퉁이나 버스 정류장에서도 당당하게 DVD와 진상 자료를 나눠줄 수 있게 됐고, 배포량도 크게 늘었습니다. 물론 환희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하며 안전에도 항상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 않고 계속 이동하면서 배포했습니다. 배포하는 동안에는 발정념을 보내며, 강력한 에너지로 DVD를 가지(加持)하여 그것을 받은 사람의 온 가족이 모두 좋아하고 구원받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2. ‘9평 공산당’과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를 배포하다

1) ‘9평’ 배포 시 내용 설명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을 소개할 때는 공산당의 역사가 얼마나 충격적인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살인을 가르쳤는지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간장과 폐를 먹고, 대기근 시절에는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기까지 했다는 끔찍한 역사를 알려주었습니다.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배포할 때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공산주의를 하는 걸까요? 그 진짜 목적이 무엇일까요? 한번 알아보세요.” 어느 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에게 책을 건네자 그가 뒤돌아보며 물었습니다. “이거 파룬궁 책이죠?” 제가 “네, 맞습니다”라고 하자, 그는 다시 돌아와 책을 받아 기쁜 표정으로 떠났습니다.

2) 시장에서의 진상 전파 경험

한번은 시장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제가 “책 한 권 드릴게요”라고 하자, 그분이 “파룬궁 책이군요. 받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열린 사람들을 만나면 정말 기뻤습니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더 자세한 진상을 알려주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과 그 산하 조직인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하기)를 권유했습니다. 이미 탈퇴한 사람에게는 평안을 기원하고, 아직 탈퇴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탈퇴를 권했습니다.

3) 다른 수련생의 교류 글에서 배운 교훈

한 수련생의 교류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그 수련생이 자료를 배포할 때 중공 악당의 선전에 중독된 사람이 고함을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련생이 “그렇게 하지 마세요. 당신 자신에게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더니 그 사람이 조용해졌다고 했습니다. 이 방법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DVD를 배포할 때 활용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기꺼이 받아갔지만, 두 번째 사람은 거절하면서 큰 소리로 “파룬궁은 당을 반대한다!”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이 했던 방식대로 “그렇게 하지 마세요. 당신에게 좋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더러운 할망구, 죽어버려!”라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저는 그저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고, 발정념을 보내 그가 구원받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사악한 요소가 제거되고 그가 빨리 깨닫기를 바랐습니다. 얼마 후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왔는데, 아마도 몸이 좋지 않아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일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었습니다. 법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하면 안 된다는 것, 수련에는 정해진 본보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길과 심성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수련 길을 걸어야 합니다.

​4) 작은 시장에서의 배포 경험

한번은 작은 시장에서 ‘악마가 우리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한글판: 공산주의 유령은 어떻게 우리 세계를 지배하는가?)라는 책을 한 사람에게 건넸는데, 그는 처음에는 기꺼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그 책을 세게 바닥에 내던지며 “파룬궁”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는 허리를 굽혀 책을 주워들며 부드럽게 말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처음부터 받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내실 필요 없어요.” 그때 맞은편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를 나무랐습니다. “저렇게 나이 많으신 분인데, 책을 던지면 어떡해요!” 저는 그 사람에게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중생들의 도움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책은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습니다.

5) 중독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자비심 기르기

예전에는 진상을 잘 받아들이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위해 기뻐하고 위로를 느꼈습니다. 반면에 중공의 선전에 깊이 중독된 사람들을 만나면 비록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진정한 자비심도 없이 그저 그들을 ‘불쌍한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법공부와 수련을 더 깊이 하면서, 그들도 한때는 사부님의 가족이었을 수 있고 어쩌면 우리의 가족이었을 수도 있으며, 모두가 구원받아야 할 생명이고 우리와 인연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를 성취시키는 존재들이며, 특히 악랄하게 굴던 사람들은 우리의 업력을 없애고 심성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히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더 많이 자신을 되돌아보고 부족한 점을 수련하여 최대한 빨리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3. 대면해 진상을 알린 몇 가지 사례

처음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할 때, 저는 사람들이 떠날까 봐 두려워 말을 너무 빨리했습니다. 가족들이 “말을 너무 빨리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들어”라고 지적했습니다. 저는 이 단점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고, 이후에는 진상을 알릴 때 말의 속도를 늦추고 숫자에 연연하지 않으며 오직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여 중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삼퇴를 수락했습니다.

한번은 공군 장교에게 진상을 알리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하느님과 서양에서 말하는 창세주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그가 매우 잘 받아들였습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을 하늘이 지켜보고 있으며, 머리 위 삼척 높이에 신령이 있다’는 말에 그도 동의했습니다. 중공이 하늘의 뜻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 그것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것과, 우리 모두가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삼퇴를 통해 평안을 얻을 수 있으며, 그는 체제 내 인사이므로 실제로 조직을 찾아가 탈퇴할 필요 없이 마음속으로 탈퇴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신께선 사람의 마음만 보신다고 했습니다. 또 현재 4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중공)의 조직에서 탈퇴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부드럽게 설명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탈퇴에 동의했습니다.

아래에 두 가지 작은 일화를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1) 한번은 고물상을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말했습니다.“”한 가지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한 노인이 평생 고생해서 땅을 장만했는데, 돌아가시면서 두 아들에게 각각 70무(畝)씩 물려주었습니다. 한 아들은 술, 도박, 매춘에 빠져 얼마 안 되어 모든 땅을 탕진했고, 중공이 계급을 구분할 때 ‘빈농’으로 분류됐습니다. 다른 아들은 근면하고 절약하며 살아 오히려 더 많은 땅을 사들여 ‘지주’가 됐습니다. 지주가 된 아들과 그의 자녀들은 이후 모든 정치운동에서 비판과 박해를 받았지만, 놀랍게도 방탕하게 살며 모든 땅을 날려버린 ‘빈농’ 아들은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았고, 오히려 중공이 그를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게 했습니다. 이걸 보면 공산당이 선한 사람을 격려하는지, 아니면 나쁜 사람을 격려하는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하늘은 이미 중공을 멸망시키기로 정했습니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를 깨닫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2) 또 한번은 살수차 운전기사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지주와 자본가들 중에도 착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물었습니다. “당신이 직접 경험한 거예요?” 제가 직접 들은 사실이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은 중농(中農)이었는데, 그때는 가족 수에 따라 땅을 나눠줬어요. 예를 들어 세 식구면 한 사람당 2무씩 해서 총 6무의 땅을 받고, 그 이상 갖고 있던 땅은 다 몰수당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죠. 지주나 부농뿐만 아니라 중농의 땅도 똑같이 빼앗겼다고요.” 제가 “그때 당신 할아버지나 아버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라고 묻자, 그는 “그들은 별로 학교를 많이 다니지 못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의 진상을 알려주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삼퇴를 한 사람들과 나중에 다시 만나면, 그들은 저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며 자신의 가정사도 터놓고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항상 제가 수련생임을 명심하고, 모든 말에 무조건 동의하거나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대개는 조언을 해주고 인연 관계를 설명하며, 잃고 얻는 법칙에 대해 알려주고,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관심을 가지라고 권했습니다. 시장에서는 많은 상인들이 저를 보면 미소 지으며 “대법은 좋아요”라고 말했고, 진상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중생들이 구원받는 것을 함께 기뻐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온갖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듣지 않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 심지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을 만나면 너무 기뻐하고, 좋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법공부와 수련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점차 성숙해졌습니다. 이제는 좋은 일에 지나치게 기뻐하지 않고, 나쁜 일을 만나도 웃으며 넘기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사람은 사실 우리를 성취시키는 존재들이며, 특히 나쁜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자신을 돌아보며 법공부가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지,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 찾아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도 환희심을 갖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수련이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수련과 정법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저는 세 가지 일을 잘 해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모든 과제가 다 중요하며,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사부님을 따라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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