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정법 수련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과정에서 진상 알리기 항목들의 발전과 박해 이후 중국 대륙에서 온 수련생들의 증가로 인해 해외의 수련 환경과 법 실증 환경에 큰 변화가 생겼다.
예를 들어, 많은 항목에서 심성 제고와 법에 대한 인식을 중시하지 않고, 일을 할 때 속인의 관념과 속인의 사상행위가 보편적으로 우세하다. 또한 해외 불학회가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소극적이거나 단순히 메시지 전달자 역할만 하거나, 자신을 항목 책임자로 만들어버렸다(불학회의 책임보다 항목을 업무 중심으로 삼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이에 익숙해졌고, 항목 간의 관계도 협력과 전체 상황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서, 사람을 빼앗고 풍파를 일으키며(어떤 항목이 가장 중요한지, 더 중요한지 비교함), 소통하지 않는 방식으로 변했다. 게다가 중공(중국공산당)의 지속적인 박해로 인해, 수련인 집단에서 나타나서는 안 될 사람들과 일들, 오랫동안 속인 생활에 바쁜 사람들,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않은 사람들, 수련하지 않는 자들, 가짜로 수련하는 자들, 배경에 문제가 있는 자들이 설 땅이 생기고, 세력을 얻어 해외 법을 실증하는 환경과 효과에 손실을 끼치고 있다. 이는 모든 수련생이 자신부터 시작해 안으로 수련하는 것에 힘써야만 외부 환경이 변할 수 있다.
우리 해외 노수련생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해외 각 불학회 책임자의 책임은 현지 수련생들의 수련 환경에 대한 책임이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불학회 책임자로서, 비록 대법이 모든 수련인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고 수련인 스스로도 법에 따라 자신에게 요구하는 바가 있지만, 대법은 불학회 책임자에게 반드시 모두의 수련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는 예외 없이 적용된다. 오히려 책임자도 수련인 중 한 명으로서, 역시 실수할 수 있으며 단지 특정한 사명과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법을 스승으로 삼고, 잘못이 있으면 고치며, 끊임없이 성숙해지고, 함께 법 안에서 수련하며 함께 제고해야 한다. 따라서 불학회 책임자가 자아에 집착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 모두 법에 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 자신에게 하는 비합리적인 비난, 부정 등은 바로 자신의 수련 과정에서의 시련이므로, 오직 심성 제고의 기회로 삼아 자비로운 마음으로 생명을 생각할 때만이 진정으로 이를 넘어서고 더 잘할 수 있다. 사실, 일반 사회에서도 어떤 올바른 일을 하려면 모두 이러한 시련과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데, 하물며 대법제자로서 대법제자의 수련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명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1999년 중공의 박해가 시작된 후, 중국 대륙에서 많은 대륙 수련생들과 특수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나왔다. 게다가 각 지역의 대륙 수련생 수는 곧 원래 해외 수련생 수를 초과했다. 오늘날까지 모두가 볼 수 있듯이, 박해 이후에야 대륙에서 나온 수련생 중 소수는 해외에서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고, 대다수는 박해받는 대륙 환경을 떠나 해외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그 중에는 잔혹한 박해를 받고 중공에 ‘삼서’, ‘오서’(수련 포기 각서)를 썼거나, 박해에 협조하거나, 심지어 ‘도우미[幇敎]’로서 다른 수련생들을 전향시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자유를 회복한 후 엄정성명을 발표했고, 어떤 이들은 체면 때문에 엄정성명을 발표하지 않았다. 또한 박해를 두려워하거나 법리를 명확히 알지 못해 자신을 속인으로 흘러가게 한 사람들도 있었고, ‘삼서’, ‘오서’를 쓰지 않았지만,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해외로 나온 사람들도 있다. 엄정성명을 발표한 사람들은 신수련생으로만 간주할 수 있다. 계속해서 속인 생활을 해왔던 많은 사람들은 수련하지 않거나, 수련할 줄 모르거나, 가짜로 수련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륙 수련 환경의 문제들을 해외로 가져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또한, 박해 이후 중국에서 해외로 온 수련생들은 불가피하게 해외에 중공의 당문화(공산당 문화)를 가져왔다. 당문화는 ‘중국 아줌마 아저씨(中國大媽大爺, 공공장소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중국인들을 일컫는 신조어)’를 만들었고, 중국 아줌마 아저씨의 특성도 대륙 수련생들에게 나타나기 쉽다. 그 비정상적이고, 전통에 반하며, 상식에 반하는 사상과 행동은 선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이며, 강압적인 투쟁 행위인데, 이는 중공의 장기적인 세뇌와 통치로 인해 발생했으며, 중국인이 공산당의 세뇌를 깊이 받은 증거다. 그러나 이러한 대륙에서 가져온 강압, 이기심, 투쟁, 질투, 타인에 대한 불경, 해외에 대한 경멸(‘내 나라가 대단하다’는 마음가짐), 타인에 대해 언제 어디서나 함부로 단정하고, 틈을 노리며, 법규를 지키지 않는 등의 행동은 해외의 정상 사회에서(중공 마귀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장기간 중공과 거래해온 해외 인사들은 제외) 매우 눈에 띄고, 인정받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해외 수련생들 중에서도 착실한 수련 제고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일만 하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은 주변의 대륙 당문화 행동에 오염됐다.
대법은 이러한 대륙 수련생들이라도 이미 해외에 왔으니 많은 기회를 부여했다. 그들이 대륙에서의 사전(史前)의 서약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도, 제대로 수련하지 않았더라도, 떨어졌더라도, 모두 항목 환경에서 수련하고 제고하며 법을 실증하고, 진상을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기회가 있다. 이것은 대법이 수련생들에게 베푸는 자비로운 제도이며, 또한 구세력의 은밀한 파괴를 부정하는 것이다. 개인적 이해로는, 대법이 그들이 해외 환경에 가져온 부정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중대한 기회를 주었으니, 해외 불학회 책임자로서도 그들의 특수한 어려움(그들 스스로는 자신의 상태가 좋지 않거나 잘못됐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음)을 이해하고, 능력껏 그들의 수련을 지원해야 하지만, 그들의 사람마음과 당문화에 휩쓸리거나 좌우되거나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원래 해외 수련생들은 이성이 강할 수 있지만 자신의 문제도 중시해야 한다. 자신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는 집착과 관념들이 있고, 사부님께서는 99년 이전의 해외 설법에서 이미 이 문제를 언급하셨다. 수련인으로서, 사명이 대륙에 있든 해외에 있든, 사람마음을 버리지 않고, 현대 관념을 버리지 않고, 사적인 이익을 버리지 않으면 성공적으로 수련할 수 없으며, 자신의 어떤 집착도 정법 수련에서의 걸림돌이 되고, 환경 속에서, 항목 속에서, 항목 간에 타인을 교란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해외 불학회 책임자로서, 만약 각종 어려움과 환경 변화가 가져온 복잡함과 압력 때문에 자신의 책임을 포기한다면, 만약 착실한 수련을 통해 제고하지 않는다면, 진상이 널리 알려질 때 후회할 것이다. 끝이 났을 때 깨닫게 되면 각종 손실이 확정된 상황이라 이미 늦은 것이다.
진상 알리기 항목에 관해서는, 그것은 수련생들이 장기적으로 박해에 저항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설립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 표현이나 자기 실증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하기 위한 것이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효과를 더 잘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을 중시하지 않고, 사심과 인간의 관념을 제거하는 데 주의하지 않으면 잘하기 어렵다.
베트남, 러시아, 홍콩과 같은 일부 지역은 공산당의 통제를 받고 있다. 진정한 수련 제자들은 모두 알고 있듯이, 사부님께서는 이러한 수련생들의 수련에 안배가 있지만, 일부 항목은 자신의 항목 발전과 사적 이익을 위해 속인의 자기중심적 사상을 지침으로 삼은 결과, 자신의 항목은 일부 금전적 지원과 인력을 얻었지만, 직간접적으로 이러한 지역의 수련 환경에 문제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베트남 수련생들에 대해 사부님께서는 이미 특별히 경문을 발표해 그들의 수련 문제를 바로잡으셨지만, 일부 해외 항목 때문에 베트남의 일부 수련생들은 여전히 당당하게 대륙 수련생들처럼 요란하고 공개적인 활동에 열중하며, 선의의 조언을 듣지 않고, 자신만의 작은 집단(세력 범위와 관계망)을 만들어 이를 밑천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과시한다. 또한 홍콩의 경우, 원래 불학회 책임자가 불행히도 세상을 떠난 후, 중공의 대법 박해 초기에 홍콩의 한 배신자 집단과 함께 별도의 소집단을 만든 사람이 새 불학회 책임자에 의해 중용되어, 현지에서 착실히 수련하고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에게 큰 교란을 초래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일부 항목(서양인 수련생과 99년 이후 대륙에서 나온 수련생 포함)이, 사람의 정과 속인 관념 속에서 수년간 해외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며 축적한 자원을 장기간 실제로 수련하지 않는 사람들, 수련을 모르는 사람들, 대륙에서 온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런 사람들이 해외 대법제자의 대변인, 연락인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이 해외 대법제자의 권익을 대표할 수 있는가? 압력과 교란 앞에서, 법에서 자신을 잘 파악할 줄 아는가?
사실, 지난 여러 해 동안 러시아 수련생들의 일부 행동과 수련 상의 명백한 부족함은 일부 항목의 사람마음 작용 하에 이미 현지 수련 환경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이에 대해, 관련 항목뿐만 아니라 다른 공산당 국가의 수련생들도 교훈을 얻고, 법에서의 제고와 성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이 모두 도덕적 우위에 서 있는다면, 누가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려 하겠는가? 몇 명이나 감히 그들이 잘 들으려하지 않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실제로 말해도 몇 명의 당사자가 기꺼이 들으려 하겠는가? 일단 현지에서 비이성적이고 착실한 수련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일하는 것만 강조하는 주류가 형성되면, 필연적으로 이 공간의 중공과 다른 공간의 구세력이 틈을 노려 자신과 자국의 수련 환경에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수년간의 수련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됐다. 어떤 지역이든, 어떤 항목이든, 모두가 책을 보기만 하면 자동으로 정토(淨土)가 될 수는 없다. 수련 환경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 만족스럽지 못한 현상들은 업력 때문이고, 수련 과정 때문이며, 수련이 견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에서 수련하지 않고 사부님의 안배에 따르지 않을 때, 그것은 구세력의 안배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하길 원하신다. 개인적 체득으로는, 이는 우리가 그렇게 해야만 신우주의 표준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련 과정에서 충분한 정념과 강인함, 의지력을 가져야만 혼란을 제거하고, 주도적으로 선의를 갖고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으며, 끊임없는 노력과 수련 제고 속에서 긍정적인, 나아가 건곤(乾坤)을 돌려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대법제자들 사이에서, 형식적인 단체 발정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대규모 법공부 형식만 있고, 지정된 사람이 대규모 모임에서 원고를 읽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단체 법공부, 단체 교류 방식이 아니다. 사람의 근원이 다르고, 성장 환경이 다르며, 교육 배경이 다르고, 문화권이 다른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어찌 쉽겠는가! 게다가 당문화의 깊은 세뇌를 받은 후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와 존중은 또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가!
정상적인 환경, 사랑이 있는 사람들 간의 소통 사례를 들어 요점을 설명하겠다.
한 엄마가 매우 바빠서 자기 아이에게 말했다. “가서 엄마 대신 고양이에게 먹이를 좀 줄래?” 아이는 말없이 사과 하나를 가져와 고양이 밥그릇에 넣었다. 고양이는 먹을 수 없어서 다시 엄마의 관심을 끌었다. 엄마는 의아해하며 확인해보니 고양이 밥그릇에 손대지 않은 사과가 있어서,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 친절하게 아이에게 말했다. “고양이에게 고양이 사료를 주렴.” 이번에 아이는 즉시 올바르게 행동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효과를 달성했다. 이 일상생활의 예는 사람들 간의 사고 차이와 상대방의 관점에서 언어 표현 방식을 선택하는 중요성을 반영한다. 엄마에게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은 당연히 ‘고양이 사료’를 주는 것으로, 이는 상식이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먹이를 준다는 것은 ‘음식’을 주는 것이고, 음식이기만 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만약 엄마가 사과를 보고 아이를 나무랐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엄마가 감정을 쏟아내고, 꾸짖는 요점도 모두 맞을 수 있지만, 아이는 올바른 고양이 먹이주기 요령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상호 존중, 상호 이해는 매우 중요하며 이것은 또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 상식이다.
사소한 것부터 착실하게 시작하길 바란다. 포기하지 말고, 자아에 집착하지 말자. 자신이 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기만 하면 대법의 신통은 자연히 나타날 것이다. 실질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정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대법이지, 개인이 아니다.
급히 작성했다. 위의 교류는 주제가 조금 큰데, 이 글로써 좋은 의견을 끌어내려는 뜻으로, 수련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함께 노력하여 점차 99년 박해 이전의 그러한 정상적인 수련 환경을 회복해, 신수련생과 노수련생들이 모두 마음을 열고 법에서 교류하며, 서로 비교하고 배우고 수련하기를 바란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포용하고 선의로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24/4919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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