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 마음속에 쌓여 왔습니다. 아버지는 타 지역에서 일하고 계셨는데 실제로는 매우 친절하고 부드러운 분이셨지만, 가족 모두가 아버지를 따라야 했고, 가족들이 조금만 실수해도 화를 내곤 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집에 오실 때마다 어머니와 싸우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오실 때마다 저는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잘못 말하면 아버지에게 뺨을 맞을까 봐 무서웠습니다. 이런 일이 많아질수록 운명은 저를 역경 속으로 밀어넣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저를 아버지가 사시는 도시의 중학교로 데려가셨고,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야 했는데 생각만 해도 몸서리치는 일이었습니다. 마지못해 버스를 타고 그 도시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야 깨달았지만, 수련이란 역경 속에서 성장하고 업(業)을 소멸시키는 과정입니다.
아버지는 기관에서 근무하셨고, 저는 방과 후에 아버지 직장으로 갔습니다. 밤에는 다른 사람들의 사무실에서 잠을 자야 했고, 그 층에서 자는 어린아이는 저 혼자뿐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겨우 열 살이었고, 너무 무서워서 아버지께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아버지를 대면하면 차마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학교에서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친구에게 제 어려움을 털어놓았습니다. 친구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제 상황을 이야기했고, 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도 아버지를 만나셨습니다. 아주머니는 제가 그분의 딸과 함께 지내면 둘 다 좋을 것이라며 아버지와 상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매월 그들에게 생활비를 지불하게 됐습니다.
이제 두려움에서 벗어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마다 숙소로 오라고 요구하셨습니다. 한번은 숙제를 마친 후에 혼자서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것이 무서워서 반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바로 여기서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께 갔을 때, 아버지는 오전에 무엇을 했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공부를 마치고 놀러 나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제 친구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셨고, 친구는 숙제를 일찍 끝냈기 때문에 공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놀러 나갔다고만 말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저와 반 친구를 서로 다른 방에 분리시켰습니다. 저는 매 분, 매 초 무엇을 했는지 정확히 말해야 했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정신이 혼미해진 저는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아 그냥 공부했다고만 말했습니다. 제 말이 친구의 말과 일치하지 않자, 아버지는 저를 무릎 꿇게 하고 때리셨습니다. 아버지는 제 얼굴을 때리셨고, 저는 방어할 수도 없었습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 제가 손을 내릴 때까지 계속 손을 때리셨습니다. 그날 얼마나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따귀를 맞았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결국 가벼운 뇌진탕으로 인해 어지러운 상태로 겨우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마음속 두려움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때 저는 고작 열 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를 볼 때마다 혼이 나간 것처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부터 마음속에 원망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수련 중에 사악한 세력 앞에서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들 덕분입니다. 모든 것은 신(神)에 의해 질서 있게 배치된 것이었습니다.
현재 부모님은 모두 80세가 넘으셨고, 남동생이 그분들을 위해 도우미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도우미를 해고하시고 제게 두 분을 돌봐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퇴직한 지 몇 년이 지났고, 두 남동생은 모두 매우 바쁜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했으니 ‘진선인(眞·善·忍)’의 원칙에 따라 부모님을 대하고,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여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여줌으로써 부모님께서 대법을 받아들이고 밝은 미래를 얻으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기관에서 근무하셨기에 항상 중국공산당(중공)에 대한 희망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분들을 돌보는 동안, 오랫동안 사업을 해왔던 저는 요리를 잘 할 줄 몰랐고, 아버지는 제가 만든 음식이 너무 맛없다고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익혔으니 괜찮아요, 있는 그대로 드세요’라는 생각으로 그냥 참고 지냈습니다. 마음속에는 늘 아버지를 볼 때마다 반감이 생겼고, 아버지의 말씀에 수긍할 수 없었으며, 아버지가 말씀하시면 무조건 반발심이 생겼습니다. 또한 음식을 가져다 드릴 때마다 5분도 채 되지 않아 자리를 떠났습니다. 결혼 이후로 명절이나 설날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아버지 댁에서 식사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음식을 가져다 드린 후 최소 30분은 함께 있어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화가 나서 ‘차라리 음식을 가져다 드리지 말까, 그렇게 오래 시간을 같이 보낼 여유가 어디 있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매일 새벽 3시 10분에 일어나 연공을 하고, 6시 30분까지 발정념을 한 후 법을 외웠습니다. 8시에 간단히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다른 수련생들과 만나 진상을 알리러 나갔다가 10시가 넘어서야 급히 돌아와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더운 날씨에 서둘러 음식을 가져다 드리고, 돌아와서는 12시 발정념도 해야 했기에 아버지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아버지의 요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제가 수련인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쟁투심과 원한으로 가득 찬 마음에 지배당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소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열흘이 넘도록 매일 어머니를 차에 태워 중의원에 다녔는데, 그날 어머니의 의료보험증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께 드렸다고 기억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차 안에서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제 말을 믿지 않으셨고 직접 찾아보겠다고 고집하셨습니다. 저는 “오시지 마세요, 너무 먼데요. 내일 가서 다시 찾아볼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오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남편이 급한 일이 있어서 새벽 5시에 차를 갖고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6시가 지나서 오셔서 저에게 내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차가 이미 나갔고, 제가 확인해 봤지만 차 안에는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마음이 놓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기어코 남편이 일하는 곳까지 가서 다시 찾아보자고 하셨습니다. 가서 찾아봤지만 결국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남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가서 의료보험증을 재발급 받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날은 마침 수련생 한 명이 체포되어 변호사가 오는 중이었기 때문에 저는 정말 시간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함께 가지 않는 것에 마음이 불편하셨고 계속 서운해 하셨습니다.
외지에서 지내는 제 아들이 간간이 집에 돌아올 때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러 아버지 댁에 들렀습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저를 오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갔더니 아버지는 여전히 그 의료보험증 문제로 트집을 잡으셨습니다. 더는 참을 수 없어서 저는 큰 소리로 맞받아쳤습니다. 아버지는 다가와 저를 때리려 하셨고, 순간 어린 시절의 모든 억울했던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분을 풀기 위해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고, 그런 다음 문을 세게 닫고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뭐든 하실 말씀이 있으실 때면 늘 제 아들 앞에서든, 며느리 앞에서든, 본인의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셨습니다. 저는 늘 이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사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체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강하게 일깨워 주시며 정진하는 방법을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다툼 이후로 아버지는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셨고, 온 집안이 불안정해졌습니다. 그제야 저는 자신의 개인 수련에 진정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씩 자신을 성찰하며, 아버지가 평생 이렇게 행동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저를 이런 방식으로 단련시키려 하셨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악자(惡者)는 질투심의 소치로 자신을 위하고, 화를 내며, 불공평하다고 한다.”(정진요지-경지)
이토록 오랜 시간 수련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악자’와 다를 바 없이 행동했으며, 속인 사회에서는 원한을 품고 불평하며 불공정하다고 원망하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질투심을 여태까지 버리지 못했고, 그것이 수년간 저를 괴롭혀 왔습니다. 어디에서건 질투심이 표출되었지만, 늘 사부님의 가르침을 흘려듣기만 했고 법에 비추어 자신을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니, 사부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저를 깨우치시고, 일깨워 주시며, 수련을 통해 높은 경지로 승화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셨습니다. 저는 수년간 쌓아온, 마음 깊은 곳의 원망을 이제야 진정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사부님의 신경문 ‘각성하라(驚醒)’를 다시 한번 공부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慈悲(츠뻬이)는 속인사회 중에서 선의와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어 나오는데, 이는 또한 대법제자의 내면이 반영되어 나오는 생명의 상태이다.”(각성)
맞습니다. 제가 친부모에게조차 선의와 사랑의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다른 중생들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은 단지 표면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일 뿐입니다. 저는 자신의 부족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는 사부님께 간절히 청했습니다. “이 가짜 자아를 더 이상 원치 않습니다. 물질이 형성되는 근원에서부터 그것을 해체하겠습니다. 자비로운 마음으로 형성된 모든 원한을 녹여내고, 그것을 완전히 해체하여, 법에서 진정으로 승화하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께 진심으로 사과드렸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얼굴을 맞대며 “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자비로운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고, 부정적인 물질의 층이 해체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기쁘게 “네가 이 말을 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십 년간 쌓여온 원한이 사부님께서 주신 자비심에 의해 마침내 해체되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11/49061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3/11/4906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