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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하게 자아를 내려놓고 협조의 중요성을 깨닫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어 수련하게 되었으며, 초기의 젊은 제자에서 이제는 중년 시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20여 년간 걸어오면서 매 한 걸음, 사소한 일에도 모두 사부님의 무량한 심혈과 거대한 지불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아래에 1년여 동안의 수련 체험을 적어 사부님께 보고하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사악 홍보 게시판을 제거하는 중에서 ‘사(私)’를 제거하다

1) 첫 번째 제거

올해 초, 한 수련생이 지역 내 어떤 곳에서 대법을 모욕하는 게시판을 발견했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때 제 첫 번째 생각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근처 수련생들이 처리하겠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녁 8시가 지나서 L수련생이 메시지로 같은 일에 대해 언급하며, 이런 사악한 게시판이 중생을 세뇌하도록 놔둘 수 없으니 내일 제거하러 가자고 했습니다. L의 메시지를 보고 저는 즉시 내일 함께 가자고 답장했습니다.

답장 후, 저와 A수련생은 L과의 수련 경지 차이를 깨달았습니다. L이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은 대법을 수호하고 중생이 세뇌되지 않도록 하는 ‘타인을 위한’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나와 상관없다’는 태도로 다른 사람이 해결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사심(私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법을 수호하는 것은 모든 진정한 수련자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과 사명인데, 어떻게 수수방관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L의 위치는 오히려 우리보다 더 멀었습니다.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저와 A수련생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날 저녁에 제거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저희는 이틀 동안 일이 있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해 약간 불안했지만 생각을 바꿨습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자. 우리가 하는 일은 우주에서 가장 올바른 일인데, 왜 나쁜 생각을 하겠는가?’

우리는 벽지칼을 가져갔는데, 당시에는 사악한 게시판이 어떤 재질인지 몰랐습니다. 출발 직전 책상 위에 있던 드라이버가 눈에 띄어 그것도 함께 가져갔습니다(사부님의 암시로 다행히 그것을 가져갔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자세히 살펴보니 게시판들의 크기가 제각각이었고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으며, 모두 대법을 모욕하고 비방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우리 마음은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저와 A수련생은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악한 것들은 절대로 하루라도 더 남겨둘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가끔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관찰하며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거의 사람이 없을 때를 기다려, A는 옆에서 발정념하며 주변을 살폈고 저는 게시판 제거를 시작했습니다. 게시판은 플라스틱 재질로 철제 프레임에 고정되어 있어 벽지칼로는 제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때 A가 근처에 CCTV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만 우리는 동요하지 않고 ‘CCTV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며, 오늘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의식중에 제가 드라이버로 힘껏 찌르자 게시판을 파손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게시판을 파괴한 후 떼어내 숨겨진 곳에 버렸고, 벽지칼로 긁을 수 있는 것은 긁고 드라이버로 찌를 수 있는 것은 찔렀습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에너지에 둘러싸인 느낌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를 받아 전혀 피로함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8시가 지나 L이 우리집에 와서 게시판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아침 일찍 가보니 아직 몇 개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저와 A수련생은 어젯밤에 그곳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오늘 저녁에 다시 가서 처리하기로 했습니다. L은 우리가 이미 어제 다녀왔으니 다시 가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당신 혼자 가게 할 수 없습니다. 저희가 저녁에 가서 가까운 거리에서 발정념을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녁에 저와 A수련생은 약속대로 L수련생과 만났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매우 순조롭게 게시판을 제거할 수 있었고, 작업 과정에서 마음이 메우 평온했습니다.

A수련생에게 예상치 못한 일은, 이틀 연속으로 사악한 게시판을 제거한 후 셋째 날, A가 작년에 작성한 법회 교류문이 명혜망에 게재된 것이었습니다. A는 자신이 쓴 글이 게재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고, 항상 자신의 수련이 부족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녀는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열등감과 관념을 제거해주셨고 그녀에게 큰 격려와 인정을 주셨다고 느꼈습니다.

2) 두 번째 제거

얼마 후, 어떤 수련생이 게시판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저와 A는 다시 상황을 살펴보러 갔고, 과연 사악이 다시 게시판을 복구해 놓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저와 A는 저녁에 다시 제거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돌아왔을 때 L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서 즉시 게시판이 복구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날 저녁에 제거하러 가려 한다고 말했습니다. L은 안전과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다음 날 가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고, 다른 수련생들에게도 발정념 협조를 요청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잠시 고민한 후 L의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날 저녁, 저와 A는 먼저 오랫동안 발정념을 하여 사악을 제거하고, 사부님께 우리의 정념을 가지해주시고 CCTV에 찍히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그 후 현장에 도착하여 제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작업을 시작할 무렵, L도 도착해 정념으로 가지해주며 우리에게 서두르지 말고 마음을 안정시켜 일하라고 격려해주었습니다. 저와 A는 정념이 더욱 강해진 것을 느끼며 게시판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곳을 제거하려 할 때, 사람이 접근하면 조명이 켜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사악이 조명과 카메라 수를 증가시킨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와 A는 일단 물러났습니다. 당시 저는 A를 약간 원망했는데, 출발 전에 제가 우산을 가져가자고 했는데 A가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A는 동요하거나 화내지 않고 평온하게 저에게 “지금은 원망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할지가 중요합니다”라고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즉시 자신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신속히 마음가짐을 조정하여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갑자기 A가 영감을 얻어, 오는 길에 본 우산 가게가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냈습니다. 그녀는 즉시 이것이 사부님께서 주신 지혜라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빠르게 가게를 찾아 우산 두 개를 구입한 후 다시 돌아와 우산을 펼친 채 제거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오늘 너무 부족했다고 느꼈습니다. 중요한 순간에 수련생을 원망했던 것입니다. 이때 사부님께서 저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부족함을 찾아내어 더욱 잘 하라. 당신들은 인류의 희망이다. 북미 대법제자처럼 분발하여 곤란 앞에서 움츠러들지 말라.”(프랑스 법회에 보냄) 저는 자신의 집착, 사람마음과 부족함을 발견하면 그것을 제거해야 하며, 그것이 드러나지 않으면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상태에 빠지지 않고 법에서 제고하여 자신을 순수하게 만들어야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매번 게시판을 제거하기 전, 저와 A는 종종 부정적인 생각, 두려움과 걱정이 들곤 했습니다. 심지어 CCTV가 우리를 찍지는 않을까, 우리가 정말 가야 할까 하는 걱정도 했습니다.

하지만 매번 우리가 정념을 굳건히 하고 가기로 결정했을 때, 사부님께서는 즉시 이러한 나쁜 집착과 사람마음을 제거해주셨고, 동시에 우리를 신속하게 앞으로 밀어주셔서 공간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화롭고 순수해졌습니다. 제자는 단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제자의 생명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주셨습니다.

3) 사악의 방해에 직면해 사악한 게시판에 진상 스티커 붙이기

얼마 전, 한 수련생이 지역 내 다른 구역에서 또 사람들을 세뇌하는 게시판이 나타났다고 알려왔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중생을 세뇌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전에 수련생들이 몇 차례 제거했지만, 악인들이 다시 복구했고 CCTV 등도 증설했습니다. 저와 A는 그날 저녁 살펴보러 갔는데, 게시판이 단단한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있고 네 면이 강철판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당시 A가 바깥쪽으로 구부려보았는데 틈이 조금 생길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살펴본 후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돌아가 의논하기로 했습니다. 돌아온 후 상황을 고려해 게시판에 스티커를 붙여 사악을 제거하기로 의논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저와 A수련생이 스티커를 준비하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관할 지역 파출소 경찰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이 들어오려 하자 저는 즉시 거절했고, A와 함께 즉시 발정념하여 사악의 교란을 제거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떠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계속 가야 할까? 집에서 안전하게 발정념만 할까, 아니면 외부 교란에 영향받지 않고 계획대로 갈까?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우리는 한동안 더 발정념을 했습니다. 이때 갑자기 사부님의 법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일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고, 사람을 구도하는 이처럼 큰일을, 당신들이 해야 할 바를 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좀 착실히 하고, 무슨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 않는 것과 그다지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마주치거나 듣게 되더라도 마음에 두지 말며, 정정당당하게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라. 사악의 교란을 받지 말고 그것에 이끌리지 말라. 그런 좋지 못한 요소가 자신에게서 생기지 않으면 사악은 보잘것없어지고, 당신들 자신은 높고 크며, 정념이 족해질 것이다. 정말로 모두 이러하다.”(각지 설법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저는 즉시 이 법을 A에게 알려주었고, 우리는 스티커를 붙이러 가기로 했습니다. A는 전혀 망설임 없이 저에게 그날 아침 꿈에서 사부님께서 그녀에게 ‘두려움’이 있다고 일깨워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그 의미가 분명해진 게 아닌가요? 사악의 방해에 직면해, 두려워서 가지 않고 자신을 보호할 것인가, 아니면 사악을 제거하고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것인가? 우리는 사부님께서 항상 우리 곁에 계심을 느꼈고, 어떻게 선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며, 이는 인간과 신의 일념(一念) 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스티커를 준비하고 출발하여 도착했을 때 이미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뜻밖에도 사악은 여전히 방해하고 있었고, 길에는 사람들이 오가며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행인이 없어졌는데 또 누군가 근처에 와서 떠나지 않았고, 우리는 이미 게시판 앞에 도착한 상태였습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가는데, 저와 A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스티커를 다 붙인 후 신속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떠나는 순간, 우리는 다른 공간의 사악이 제거된 것을 느꼈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가지 덕분이었습니다.

2. 항목 참여를 통해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협조하는 중요성을 체험하다

작년부터 N수련생의 항목에 참여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여러 차례의 고통스러운 연마와 사부님의 수많은 고심 어린 일깨움을 통해 신체와 마음의 변화와 승화를 경험했습니다. 과정에서 저는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각지 설법8―2007년 뉴욕법회 설법) 어려움, 고통과 마음의 아픔을 진정으로 느꼈습니다. ‘자아’를 인식하고 극복했을 때는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전법륜)을 느꼈습니다. 이 과정에는 사부님의 수많은 걱정과 희생이 스며들어 있었습니다.

N수련생은 20여 년의 정법 수련 길에서 항상 정념정행하며 매우 잘 해왔습니다. 부당한 투옥에서 벗어난 후, 그녀는 구세력이 강요한 경제적 박해를 당해 정당한 이유 없이 연금을 삭감당했습니다. 여러 차례 관련 부서에 진상을 알리고 신청했지만 결과가 없자, N은 법적 절차를 통해 계속 반(反)박해 활동을 했습니다. N이 당한 박해 상황을 보도하고 폭로할 필요가 있을 때, 사부님께서는 저와 A가 참여하도록 배치하셨습니다. 초기에 N의 항목에 참여할 때, 저는 주로 박해 보도 부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참여하게 된 후, 많은 일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와 A는 관련자들에게 진상 편지를 보내는 일을 자발적으로 맡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N은 종종 제 부족함, 사람의 마음과 항목 협조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N이 지적한 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서 때로는 자신을 변명하고, 때로는 겉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항목이 진행됨에 따라 N과의 심성 마찰이 생겼고, 저는 분명히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가 우리 사이를 이간질하여 저와 N의 협조를 방해하고 저를 그런 상태에 빠지게 한다고 느꼈습니다.

한동안 저는 나약해지고 민감해지며 상처받기 쉬운 ‘유리 마음’이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울게 됐고,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억울함과 부당함을 느꼈고, 열심히 많은 일을 했는데도 항상 불평을 듣고, 이것도 잘못하고 저것도 잘못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미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고, 붕괴 직전까지 가서 심지어 낙담 상태에 빠져 계속할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려 해도 효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이렇게 낙담하고 비관적인 것을 보시고 온갖 방법으로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A도 계속 저에게 나쁜 것에 이끌리지 말고 사악에게 심각하게 교란받지 말라고 상기시켰습니다. 저는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지만 벗어나기가 어려웠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어느 날 명혜망의 한 글을 보게 해주셨습니다. 자세히 보니 작년에 제가 쓴 원고가 게재된 것이었고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저를 격려하시면서도 동시에 제가 여전히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고 일깨워주셨던 것입니다. 저는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인데, 항상 자신이 고생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마음을 버리지 않고 자신을 반성하지 않으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을까요? 갈등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이 드러날 수 있을까요? 이런 방식이 아니었다면 저는 어떻게 깊이 숨겨진 ‘자아’를 인식할 수 있었을까요?

N의 항목에 참여한 후, 저는 자신이 계속 “자아를 내려놓을 수”(정진요지2―위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보니 그것은 매우 피상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는 항목에 참여한 적이 없고 A와의 협조는 단 두 사람이어서 상대적으로 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N의 항목은 그 자체로 다양한 인식과 사악 요소의 방해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을 잘 수련한다는 것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충돌에서 진정한 심성 표현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항상 N이 말하는 것이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자아’에 빠져 있으면서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마음속에서 이해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자아’를 인식하고 제거하지 않는다면 항목 협조에서 잘할 수 없습니다. 항상 자신의 생각대로 하고, 자신의 마음을 따르며, 자신이 기여했다고 생각하면서 보상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모든 것의 기점은 ‘자아’에 있었고, 그래서 사악에게 이용당해 간격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저는 N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N은 항목의 당사자로서, 항목이 진행될 때 얼마나 큰 사악의 압력과 심성 시험에 직면해야 했는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항상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고 초심을 바꾸지 않았는데, 저는 왜 이런 점들을 보지 못했을까요? N이 지적한 제 부족함은 실제로 제가 갖고 있던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법의 표준에 따라 끊임없이 자신을 순정하게 하고 사람마음과 나쁜 관념을 제거해야만 수련생과 잘 협조하고 일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의 심성이 향상된 것을 보시고 항목에 대한 사악의 전반적인 교란을 제거해주셨고, 우리를 앞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저는 또한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의 항목을 할 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끝까지 견지하고 완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에는 이미 사부님의 주신 것과 고심 어린 개척이 녹아있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성취해주신 모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심을 다하고 전력을 다해 잘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맺음말

20여 년의 수련 길을 돌아보면,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큰 고통, 어려움, 힘든 시간을 겪었든지, 그것을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발견합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사부님께서 제자를 성취시키는 과정일 뿐입니다. 남은 길이 얼마나 되든, 제자는 해야 할 일을 잘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며,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13/4886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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