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당사자는 모르지만 제삼자는 명확하게 본다[當局者迷, 旁觀者淸]”은 사회에서 흔히 쓰이는 말인데, 제게는 이것이 진리처럼 와닿습니다. 우리 파룬따파 수련생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 했을 것입니다. 어떤 친숙한 수련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수련생이 어떤 집착심을 가졌는지, 어떤 부족함이나 문제가 있는지 매우 정확하게 짚어낼 수 있고, 다른 수련생들도 이에 공감하며 동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제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모두가 상황을 매우 선명하게 파악합니다. 다른 수련생으로 대상을 바꿔도 마찬가지로 모두 정확하게 지적합니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의 대상이 된 그 수련생 본인은 ‘당사자는 모르는’ 상태에 빠져 있어, 자신의 집착심과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전혀 깨닫지 못한 채 계속해서 미혹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직접 그 수련생 앞에서 문제점을 지적해주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심지어 어떤 수련생은 오랜 기간 병업(病業) 고비나 교란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주변 수련생들은 분명히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서도 체면을 생각하거나 상대방이 불편해할까 봐 등의 이유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어떤 수련생들은 10여 년을 함께 지내면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현상을 더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먼저 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자주 접촉하는 친한 수련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당사자는 모르지만 제삼자는 명확하게 본다’라는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 수련생들 모두가 이런 현상을 겪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대부분 체면 때문에 상대방의 부족한 점이나 집착심을 직접 지적하기를 꺼려합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어요. 저에게 솔직히 말해주세요. 제가 아직 어떤 집착심이나 부족한 점을 가지고 있는지요. 당신의 지적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요청하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제 문제점을 지적해줍니다(만약 이때도 상대방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사람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지적받은 집착심과 부족함들은 정말 정확한 지적인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제가 10년이 넘도록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도 있습니다.
속인 사회의 예를 두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명나라 ‘인선지치(仁宣之治)’ 시기[명나라 선종(宣宗)과 인종(仁宗) 시기의 태평성대]에 한 황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충성인가? 나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직접 면전에서 지적해 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충성스러운 신하다.”
청나라 ‘강건성세(康乾盛世)’ 시기[청나라의 강희제(康熙帝, 1661-1722)와 건륭제(乾隆帝, 1735-1796) 시기의 번영했던 시대]에는 건륭제가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신하들에게 익명으로 상소를 올리게 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한 대신이 익명으로 상소를 올려 “건륭제께서 여섯 차례나 강남을 순행하셨는데, 이는 너무 많은 인력·재력·물력을 낭비하는 일이며 지나치게 사치스럽습니다”라고 직언했습니다. 건륭제는 이 상소를 읽고 매우 타당하다고 여겼으며, 다음 날 조정에서 이 상소를 작성한 신하를 칭찬하며 “누가 이 글을 썼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 대신이 자신이 작성했다고 인정하자 건륭제는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그를 칭찬했습니다. 이처럼 일반인 중에서도 지혜롭고 마음이 넓은 사람들은 다른 이들이 자신의 부족한 점과 과오를 지적하는 것을 오히려 권장합니다. 이는 ‘당사자만 모르는’ 상태를 최대한 피하고, ‘제삼자’가 문제를 정확하고 적시에 지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속인 사회에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우리 수련자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물론, 수련의 가장 핵심적인 방식은 법(法)에 따라 자신을 제고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갈등에 부딪혔을 때 안으로 자신의 문제를 찾고, 서로 비학비수(比學比修) 해야 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의 문제를 지적해 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물론,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는 사람은 설령 다른 사람이 문제를 지적해 주어도 종종 자기를 변명하고 방어하며, 속인의 층차에서 자신이 옳고 타당하다는 점만 강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너무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국, 수련은 내심에서부터 수련해 올라가야만 비로소 진정한 제고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구우주(舊宇宙)’는 괴멸(壞滅)의 시기에 처해 있고, 많은 구신(舊神)들의 사상은 이미 변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구세력은 2억 년 동안 그들의 계획을 배치했고,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박해로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며, 자신들의 잘못을 보지 못합니다. 그들은 오직 대법제자들의 집착만을 볼 뿐, 자신들이 2억 년이 넘는 배치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얼마나 많은 집착을 가지고 있는지는 오히려 보지 못합니다. 이 또한 ‘당사자는 모르지만 제삼자는 명확하게 본다’라는 현상 아닐까요?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일 뿐이니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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