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랜 기간 동안 우리는 수련 중에 무엇이 근본 집착인지, 각 대법제자가 근본 집착을 갖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토론해왔습니다. 관련 교류 글을 읽을 때면 저는 늘 방관자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문제점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아볼 때는 종종 그리 쉽지 않고, 심지어 자신의 근본 집착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저는 오랜 생각과 관찰 끝에 이 문제가 저만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보편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기에, 이를 글로 써서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대법이 좋다고 느껴서 들어온 것인가?
가족 수련생들을 포함해 제가 알고 있는 대법제자 중 많은 이들이 몸이 좋지 않아 병을 제거하고 건강해지기 위해 대법 수련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대법을 접했을 때는 겨우 10대였고 아무런 병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수련생들과 근본 집착 문제를 교류할 때 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는 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저 대법이 ‘좋다’고 느껴서 수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제가 ‘좋다’라는 글자에 작은 따옴표를 붙였을까요? 만약 정말 단순하게 대법이 좋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정말 좋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야 저는 이 ‘좋다’라는 것으로 교활하게 자신의 근본 집착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수련에 들어올 때는 필연적으로 각종 사람마음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만약 ‘신의 마음’으로 들어왔다면 무엇을 수련하겠습니까? 그래서 각 사람은 반드시 자신만의 근본 집착이 있습니다!
20여 년이 지났고, 최근에야 저는 마치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조금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 자신의 그런 상태가 ‘수련하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수련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한 손으로는 속인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수련을 붙잡는 것’이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근본 집착을 버리지 않는 위험 속에서 흐리멍덩하게 지내다가, 시련이 발생한 후에야 오랜 고통과 단련 속에서 천천히 이 점을 깨닫게 됐습니다.
십대에 대법을 접한 후, 비록 실제로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무의식적으로 파룬궁을 일종 ‘대비용’ 피난처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 위치는 매우 낮고 뒤쪽에 있었으며, 마치 사원에서 부처에게 평안을 기원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음에 수련의 이유가 심어졌고, 적어도 수련이 긍정적인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속인들 사이에서 생로병사를 많이 보게 됐고, 특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모두 90세쯤에 돌아가셨는데, 속인들이 보기에는 모두 장수하신 편이었지만, 저는 여전히 그분들이 생전에 겪은 병고의 고통과 병마에 의해 사람다운 모습을 완전히 잃은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비록 당시 저는 겨우 30대 초반이었지만, 생명의 본능으로 병들고 싶지 않고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저는 점점 더 수련하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으로 병을 피하고 죽음을 피하고 싶었으며, 제 생명에 보험을 들고 싶었고, 가능하면 과위(果位)도 ‘얻어서’ 최소한 영원히 생로병사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이것이 당시 제 근본 집착이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속인의 시간을 제가 어떻게 놓을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한창 의기양양한 나이였고, 일단 수련을 시작하면 속인들 사이에서 많은 일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동시에 중국의 특수한 탄압 환경과 함께, 자신은 이렇게 젊으니 큰 병에 걸리지 않을 것이고 노화와 죽음까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각종 이유로 수련 일정을 계속해서 미루다가, 2014년 악당 우두머리 저우융캉(周永康)이 체포된 후, 무의식적으로 수련 기회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해 빨리 들어와야 한다고 느꼈고, 이런 기회주의적인 마음 상태로 ‘수련’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한동안 지나서 탄압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곧 느슨해졌습니다. 확고하게 실제적으로 수련하지 않았기에, 이전에 대법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은 나중에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동시에 몇 가지 새로운 집착도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만약 파룬궁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우주 대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큰 법인데, 내가 여기에 끼어 있으면 아무리 나빠도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인간 세상에서 가장 교활한 기회주의적인 심리입니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보상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하든 무의식적으로 득실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이익을 교환하는 것 같았습니다. 형식적으로 몇 가지 진상을 알렸으니 대법 수련인이 된 것으로 간주하고, 제가 큰 복덕을 누릴 것이며, 병들지 않고 죽지 않아야 하고, 나중에는 신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이 크니까 대충 수련해도 어쩌면 삼계를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본 집착을 버리지 않은 해악
사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수련생이 이미 너무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장기간 법으로 법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수련하는지 깨닫지 못하며, 진실한 마음으로 수련을 대하지 못한다면, 시간이 길어질수록 당신의 근본 집착이 현실에서 완전히 이뤄지지 못하거나 집착하는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사부님과 법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게 되고 심지어 수련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는 너무 많습니다. 전형적인 예로, 질병 제거와 건강 증진의 목적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온 많은 사람 중에는 수련해 병을 치료하지 못하자 대법을 믿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지어 그중에는 사부님께서 초기에 공을 전하실 때 온몸에 병을 갖고 들어와 연공하여 나았다가, 여러 해 후에 다시 새로운 병업(病業) 시련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대법에서 보험을 들려는 집착을 가진 사람들, 마음속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각종 재난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수련을 통해 ‘길한 것을 따르고 흉한 것을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법제자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고, 마찬가지로 가정과 사회로부터 오는 각종 재난이 있으며, 그중 일부는 ‘유명한’ ‘핵심’ 대법제자들까지도 소송에 휘말리고 감옥에 가고 부부 간에 문제가 생기는 등의 일을 겪는 것을 보면 수련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됩니다.
시련 중에는 사람의 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근본 집착이 오랫동안 제거되지 않으면 결국 속인들의 각종 집착심에 이끌리게 됩니다. 결국 구세력은 당신을 해치기 위해 어쩌면 당신을 천천히 속인보다도 못하게 만들고, 심지어 대법의 반대편으로 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근본 집착이 발생하는 심층 원인
우리는 왜 이런 근본적인 집착을 갖게 될까요? 그것은 아무런 뿌리 없이 생길 수 없습니다.
저는 당시 자신의 근본 집착이 세상의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 색심, 공리심(功利心, 현실적 보상을 중시함), 최소한의 노력(수련하는 척만 함)으로 최대한의 보상(생명보험, 운이 좋으면 최저 과위까지)을 얻으려는 교활한 마음, 주로 이러한 마음들의 작용하에 생겨났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많은 경우 대법 수련을 통해 속인의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것이지, 온 마음으로 수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 정말로 대법 속에서 얼렁뚱땅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근본 집착을 왜 발견하기 어려운가
많은 경우, 우리는 관련 교류 글을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근본적인 집착은 모두 쉽게 찾을 수 있는 것 같은데, 왜 자신의 차례가 되면 그렇게 찾기 어려울까요?
저는 그 이유가 사실 매우 간단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마치 자기 생각인 것처럼 느껴지고, 모든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으로 대조하지 않고 항상 속인의 방식과 방법을 사용한다면, 아마 영원히 이 근본 집착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법으로 가늠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원히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명백하게 거기에 표현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보고 당신에게 지적해주어도 당신 자신은 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사람의 입장에서 당신이 오랫동안 공을 연마해도 ‘병’이 낫지 않았다면 “왜 계속 연마하나요? 머리에 문제가 있나요?”라고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첫 반응이 이 관점에 동의하고 이것이 매우 정상적인 논리라고 느낀다면, 우리는 생각해 봅시다. 이런 근본 집착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당신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관념에 가로막혀 이 모든 것이 너무 정상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근본 집착을 발견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맺음말
저는 오직 성실하게 법공부를 견지하고 모든 일에서 법으로 대조하려고 노력해야만, 법의 힘으로 미혹을 깨뜨리고 우리의 근본 집착을 찾아 수련하여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이 근본 집착을 찾은 후, 문득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었는지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장기간 법공부를 견지하는 기초 없이 사람의 마음과 생각으로 일부 속인식으로 분석하며 수년간 자신에게 근본 집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제 경험을 써내어 수련생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함께 정진하고, 느슨해지지 맙시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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