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신수련생이 넘어지고 부딪히며 자신을 바로잡다

글/ 중국 대법 수련생

[명혜망] 저는 대법을 얻은 지 2년 가까이 된 젊은 대법제자입니다. 최근 몇 개월 동안 명혜망에 자주 접속하게 되었고, 수련생들의 글과 경험 공유를 통해 많은 이로움을 받았습니다. 아래에 제 경험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초기부터 방화벽을 뚫고 해외 인터넷을 보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었습니다. 저는 청소년기부터 중공(중국공산당)을 싫어하고 자유를 좋아했으며, 중공은 통제하는 것을 좋아하고 이면에는 사악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파룬궁수련생들이 운영하는 매체에서 중공의 악행을 알리는 것을 보았을 때, 저는 믿었고 수련생들이 매우 용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수련생들이 선량하고 이성적이며, 깨끗하고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학식은 존경스러웠고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주는 느낌이 있어 저는 마음속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후 파룬궁수련생들이 만든 역사 프로그램을 통해 중화 전통문화를 다시 인식하게 됐고 그 배후에 ‘유교, 불교, 도교’라는 세 가지 정신적 기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공자와 노자의 저서를 펼쳐보았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인생의 경험을 조금 쌓은 후에 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으면서, 마치 저의 일부가 비추어진 것 같아, 어느 부분에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간혹 가부좌를 하기 시작했고 점점 가부좌 중에 아무런 목적 없이 있는 그 상태가 진정한 나라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현실에서는 점점 괴로워졌고 주변 사람들이 각종 목적을 품고 있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고 마치 모든 것이 체면을 위해 유지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 차라리 용기를 내서 수련을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즈음의 프로그램에서 파룬궁수련생이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에 많은 천기(天機)가 담겨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고 온라인으로 이 책을 보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충격 속에서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후, 저는 사부님께서 여러 방법으로 정법시기 대법제자는 사명이 있다는 것을 저에게 알려주신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진상 자료를 배포한 후 파출소로 끌려갔고, 이어서 구치소에서 한 달을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구세력의 박해에 대한 개념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구세력이 저를 박해한 주요 이유는 두 가지일 것 같습니다. 하나는 제가 매우 괴로울 때도 콜라를 마셨고, 콜라가 일종의 중독이 돼 강한 집착이 됐지만 제가 이를 심각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업무에서 일부 부분에서 심성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당시 저는 새 직장을 구했는데, 슈퍼마켓에서 고객에게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배달 앱과 비슷하게 휴대폰으로 주문을 받고 전동스쿠터로 배달하는 일이었습니다. 때로는 목적지에 거의 도착했지만 주문이 초과 시간이 임박하면, 팀장이 전화해서 먼저 ‘완료됨’으로 표시한 후에 배달하라고 했습니다. 시간 초과가 되면 지점이 벌금을 물게 되고 그런 일이 많아지면 팀장이 많은 압박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주문이 목적지에 도착하기에는 아직 멀었지만, 시간이 초과할 것 같을 때, 팀장이 전화해서 문자 인증 코드를 물어보고 그가 제 계정에 로그인해서 어떻게든 조작하여 정상 완료로 표시되게 한 후, 저보고 먼저 고객에게 전화로 사과하고 배달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대로 따랐고, 완료되지 않았는데도 플랫폼에 완료됐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진실일까요? 저는 팀장과 갈등이 생길까 두려웠고 번거로움이 두려웠으며, 항상 시간을 초과하여 일을 제대로 못 한다고 인정하기 싫어서 이런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집착심이 있었습니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이 두 가지 문제는 모두 수련을 심각하게 대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에서 심성 표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치소에 갇힌 초반부, 제가 비교적 맑은 정신을 유지했던 때, 시간이 날 때마다 저는 필사적으로 ‘전법륜’에서 말씀하신 법을 회상하며 기억하려고 노력했고, 나중에 그에 따라 행동하려고 했습니다. 모든 물품 배분에 있어서 저는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시드니법회 설법)라는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평소 동료 수감자들과 지내면서 제 감정을 내려놓았는지, 사람들에게 자비로웠는지 살펴보았고 일하고 당직 서고 침상 배정 등에서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리에 따르는 마음가짐을 가졌습니다. 나중에 피곤하고 추운 날들 속에서도 저는 “완전히 당신의 인내력과 고생을 견뎌내는 능력에 달렸다”(전법륜)라는 한 가지 생각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 기간, 제 변호사는 편지로 잘못을 인정하면 감형될 수 있다고 말했고 감옥경찰도 저를 찾아와 어떤 서약서를 쓰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편지로 제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어디선가 하신 말씀을 대략 기억했습니다. 일부 수련생들은 체포되면 거기서 끝났다고 생각하고 나갈 생각하지 않는데, 사악은 이를 두려워한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제가 그렇게 높은 경지는 아니었지만, ‘그럼 나가지 않겠다. 앞으로의 수련의 길은 이곳에서 하겠다’라고 생각했고 당시 매우 확고했습니다. 게다가 중공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어떤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인지 의문이었기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피고인 의견서에는 ‘독립선언’에서 천부인권에 관한 구절을 적었고 동료 수감자들이 이를 보고 약간의 소동과 환희가 일어났으며, 일부는 파룬궁을 수련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제가 수련 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렇게 큰 시험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검은 소굴에서도 거의 최선을 다해 법에 따라 행동하고 수련했으며, 나가려는 생각도 없었고 정념이 비교적 강했기 때문에 한 달 후에 석방됐습니다.

명혜망에서 이 글을 보기 이틀 전, 작년 6월에 저는 다른 지역에서 일하는 동안 동료에게 제가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말했다가 팀장의 권유로 직장을 그만두게 됐습니다. 경찰도 제 부모님 집을 방문해 제 상황을 물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잘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명예와 이익, 지위를 중요시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고 타락한 사회 환경에서 반대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큰 압박으로 다가왔으며, 사람을 구하고 진상을 알리는 일까지 더해져 일시적으로 압박이 너무 커서 약간 위축됐습니다. 아마도 일부 상황에서 심각하게 대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때 발정념의 요령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직장을 잃은 후, 진지하게 사부님의 신경문 ‘법난(法難)’과 명혜망에 있는 발정념 관련 글들을 보았습니다.

이후 저는 다시 진상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진상 자료를 배포할 때 매우 긴장됐지만,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여 처음에는 한 부만 배포했습니다. 두 번째에는 몇 부를 배포했는데, 바로 다음 날 진상 자료를 배포했던 장소 근처를 지나갈 때 두 명의 공안 요원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검문하고 심문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한 무리의 공안 요원들이 그 마을에서 조사하는 것 같았고 마음에 큰 압박을 느꼈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고 때로는 타인의 문손잡이에 끼워 넣었습니다. 때로는 한적한 작은 정자나 정원의 긴 돌의자 위에 놓고 접어서 돌로 눌러두었습니다. 마치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한 보물처럼 두었는데, 제가 관찰한 바로는 대부분이 살펴보았고 가져간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공장소에 물건을 두는 방법이 그리 좋지 않을 수도 있어 계속 고민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정부인지 공안 요원인지가 제가 사는 마을에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임대 주택 세입자를 등록하기 시작하자,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날 밤 프린터를 가지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제 저축은 매우 적었고 인터넷 등록이 필요 없는 매우 간소한 곳을 찾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은 공간이 작고 모기가 많으며, 날씨도 더웠습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해도 고통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식사도, 잠도, 화장실 가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일자리를 계속 찾을 수 없었습니다. 때로는 밤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해 순간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오직 밖에서 한적한 곳을 찾아 연공을 할 때만 약간의 심신의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일당을 받는 일을 하면서, 매우 더러운 화장실에서 샤워했는데, 뜨거운 물이 떨어질 때 너무 편안해서 조금 더 오래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제 수련의 축소판 같다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가장 더러운 곳에서, 저는 종종 약간의 안락함과 따뜻함에 집착해 여기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물 온도를 낮추고 씻은 후 바로 나왔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정진하고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새로운 우주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12/49072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3/12/490722.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