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신경문을 배운 후 자신의 근본 집착을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의 신경문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를 배우고 법에 비추어 자신을 반성해보니, 얼마나 많은 때에 내가 나의 뜻대로 행동했는지 알게 됐다. 예를 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싶다, 내가 무엇을 하려한다, 내가 어떻게 하려 한다, 내가 사부님의 대법제자가 되고 싶다’ 등이다. 대법 일을 할 때 많이 하면 기분이 좋고 정신 상태도 좋지만, 적게 하면 기분이 가라앉는다. 어쨌든 모두 ‘나’라는 글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며, 오랫동안 이것을 수련을 통해 없애는 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전에도 이 집착심을 인식한 적이 있지만 수련의 결심이 크지 않고 철저하지 않아 여전히 숨겨져 있었다.

내가 막 입문했을 때를 회상해보면, 대법을 얻기 전에 많은 기공서적을 읽었지만 ‘전법륜(轉法輪)’을 본 후에는 크게 충격을 받았고, 이 법문이 층차가 높다고 느껴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 법문의 층차가 높다’는 것이 당시 내가 대법으로 들어온 이유였고, ‘고층차로 오르는 것’이 내 수련의 원동력이었다. 그때 나는 30여 세였고 어릴 때부터 거의 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진리를 추구하고 고층차를 추구하는 것이 내 인생의 원동력이었다. 이것도 낡은 우주의 근본 속성인 사(私) 중의 ‘나’의 표현이다.

이 ‘나’는 20여 년 수련 과정 내내 이어져 왔다. 1999년 이전, 개인 수련 시기에는 높은 깨달음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자심생마(自心生魔)에 빠진 사람을 따라 ‘고층차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다가 잘못된 깨달음으로 넘어진 적이 있다. 정법수련 시기에는 이 자아에서 비롯된 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항상 많이 하고, 크게 하고, 큰 공헌을 하고 싶어했다. 거의 고요하게 법공부하는 것을 포기하고, 안으로 찾아 집착을 제거하는 시간을 희생하며, 일하고 남은 시간에 자료를 한가득 만들었다. 그 결과 자료가 쌓이고 사악에게 틈을 타게 되어 불필요한 손실을 초래했다(물론 특수한 상황, 인력 부족이나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는 예외다).

자아에 집착하고 자아를 실증하며 ‘고층차로 오르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질투심, 득의양양함 등의 다른 마음도 생겨났다. 그래서 다른 수련생들의 장점이나 잘 수련하는 모습, 잘하는 부분을 볼 때면 자주 마음속에 ‘씁쓸한’ 느낌과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항상 ‘앞다투려 하고, 앞으로 돌진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기세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정진하고, 포기할 수 있고, 고생을 감내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이기적인 마음들은 타인뿐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속였다.

그렇다,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속인 사회의 명예, 이익, 정(情)이 모두 가상이고 허망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수련 중의 위덕,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얻는 위덕은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교활한 이기심이 수련 중에 숨어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사(私)’가 변신한 것으로, 자신을 속이고, 뭇 신들을 속이고, 심지어 창세주마저 속이려 했다. 정법을 이용해 이 겁난을 피하려는 것이니, 이는 죄악이다! ‘이기적인 나’가 있는 한 낡은 우주의 기제 속에 있게 되고, 언제든 틈을 타서 교란과 박해를 받을 이유가 생긴다.

2년 전 내 주변에 2~3명의 수련생들이 있었는데, 그들도 자료를 만드는 일을 했다. 업무량이 많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빴다. 같은 항목을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는 다른 수련생들이 여러 번 자발적으로 바쁜 수련생들의 일부 업무를 분담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항상 거절당했다. 수련생들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나 나중에 보니 그 바쁜 수련생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그 중 한 명은 더 이상 자료를 만들 수 없게 되어 설비도 옮겨가야 했다.

당시 이런 일들을 보고 들었을 때, 자신을 돌아보며 왜 내가 이것을 보고 듣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밖으로만 보면서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자신도 큰 교란을 겪었는데도 이 마음을 철저히 없애기로 결심하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대법이 세상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대법 – 신 우주의 기제는 타인을 위하고 공(公)을 위하는 것이다. 우리가 각종 섞여 있는 사적인 생각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법에 있을 때만이 사람을 구하는 가장 좋은 효과에 도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구하는 것은 법이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는 모든 대법제자가 제고하여 올라오고, 모두가 법 안에서 성숙해지며, 각자 자신의 길을 걷고, 각자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며, 각자 자신이 책임진 범위 내의 중생들을 모두 구하고, 모두가 자리를 찾아 각자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기를 바라신다. 이는 일부 사람들의 원만이 아닌 전체 우주의 대원만이다. 사부님의 정법 기점에 서서 사부님의 소원을 이루는 것은 모든 대법제자의 마땅한 의무와 책임이다. 그렇지 않고 지나치게 개인을 두드러지게 하는 것은 전체 제고에 교란을 줄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것이 말후(末後)에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후에 세상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대법 내부도 청리(清理)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마음속에 내려놓지 못한 것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버림[捨]이다. 이러한 ‘버림’은 단지 속인 이익 속에서의 버림만이 아니라, 수련 중의 버림도 포함해야만 누락 없는 진정한 버림이 된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11/49142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3/11/491422.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