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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친척 90여 명이 진상을 알고 삼퇴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어 수련하는 대법제자입니다. 대학에서 은퇴한 교수로, 우리집은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친척, 세상 사람들을 선하게 대함에 있어서, 저는 금전적으로 넉넉하게 베풀고, 누구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줍니다. 대법제자는 재물을 담담히 여기고 이익의 마음을 내려놓아, 그 심성이 어진 군자보다 더 높아야 합니다.

남편 집안의 형제자매, 조카, 손자 세대는 50여 명으로, 대부분 농사를 짓고 수입이 낮아서 몇 푼 안 되는 돈도 따집니다. 하지만 저는 크고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후하게 대하며, 어느 집이든 어려움이 있으면 도와줍니다. 둘째 시숙은 제 남편의 시골집을 차지했고, 시누이는 시집갈 때 집에서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모두 가져갔습니다. 남편은 인사도 없고 생각해주는 마음도 없다며 한탄했습니다. 저는 그를 타일렀습니다. ”우리집은도 그 정도 물건 없이도 살 수 있고, 따지다 보면 체면도 잃고 감정만 상해요. 형제간에 화목하는 것이야말로 돌아가신 어르신들의 소망일 거예요.“

남편이 3년 대기근 시절에 외숙모가 그에게 워터우(窝頭, 옥수수 등 잡곡 가루를 고깔 모양으로 빚어 찐 구황식품)를 주었는데, 이는 그의 목숨을 반쯤 구해준 것과 같다며 은혜를 갚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뜻에 따라 2천 위안(약 40만 원)을 주었습니다. 남편이 가족 모임을 열고 싶어 해서 우리집에서 2천여 위안을 썼고, 30여 명이 참석했는데, 저는 이 기회를 빌려 진상을 알렸고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저는 남편이 다섯 명의 조카, 외조카, 종손들이 고등학교, 중등 전문학교, 대학교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한 외조카는 이미 대학을 졸업했지만, 그 대학 교무처에서 전화로 미납된 500위안의 학비를 요구했습니다. 둘째 시누이의 아들은 대학 입시에서 5천 위안을 사기 당했습니다. 둘째 시누이의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시누이 혼자 두 아이를 키우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축의금 형식으로 둘째 시누이에게 5천 위안을 주자고 제안했습니다. 둘째 시숙이 암에 걸렸을 때 우리는 1만 위안을 지원했습니다. 둘째 시누이가 갑자기 뇌출혈로 입원했을 때는, 제가 강의료로 받은 7,500위안을 모두 보냈습니다(나중에 돌려받았습니다). 한 조카딸이 유방암에 걸려서, 보조 치료 건강식품이 일 년에 400여 위안이었는데, 그녀가 돈이 없어 사지 못하자 제가 사줬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딸이 대학에 다니게 되어 저는 매년 천 위안의 용돈을 지원했습니다. 한 외조카가 결혼집을 사면서 1만 위안을 빌려갔는데, 지금까지 갚지 않았지만 저는 이 일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또 다른 외조카가 결혼할 때 제가 1만 위안을 지원했습니다. 그밖에 저는 그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일들은 대부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제가 직접 한 것들입니다. 처음에 그의 가족들은 제가 어리석고, 살림을 꾸릴 줄 모르며, 돈 벌기가 어렵고 돈이 유용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좋고, 파룬따파가 저에게 진선인(眞·善·忍)을 가르쳐 주었기에 제가 금전적으로 이렇게 후하게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제 친정 형제자매는 일곱이며,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포함하면 대부분 행정, 사법, 교육, 의료, 금융, 통신 등 부문에서 일하고 있으며, 청급, 처급, 과급 관리와 교수, 부교수 등이 있어서 경제적으로 모두 괜찮은 편입니다. 그러나 말세에 이르러 중공 악당의 그릇된 인도 아래, 돈이 많을수록 더 인색해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평소의 단층집에서 난방 조건이 좋은 아파트로 옮기고 싶어 하셨습니다. 말하자면 부끄럽지만, 이런 일을 부모님이 말씀하셔야 할까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2년이 지나도 아파트를 살 수 없자 어머니는 슬픔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여동생과 함께 부모님께 60여 평의 아파트를 사드렸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무렵에는 집값이 두 배로 올랐습니다. 부모님의 근사한 옷가지와 이불 등은 대부분 제가 사드린 것입니다. 어머니는 금팔찌를 좋아하셨는데, 아무도 사드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분수를 모른다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고, 도둑맞거나 잃어버릴까 봐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가 알게 된 후 바로 사드렸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금값이 네 배로 올랐습니다. 노인의 단층집이 철거되어 재개발 아파트를 판매할 때 세금과 비용 분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저는 논쟁이 있는 부분은 제가 부담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속을 밟을 때 정책이 조정되어, 원래 가구당 2천여 위안이던 것이 2백여 위안으로 바뀌어서 제가 부담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모두가 선행에 대한 보답일 것입니다.

어릴 때 오빠가 저를 6년간 키워주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한 후에는 매년 2백, 3백 위안에서 3천, 5천 위안씩 오빠에게 주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제가 받은 유산도 오빠에게 주었습니다. 오빠는 자기 아들도 자신에게 그렇게 많은 돈을 아낌없이 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오빠는 계속 사부님의 설법을 듣고 많은 법리를 이해하게 되어, 유산으로 받은 돈을 저에게 돌려주었습니다. 요즘 몇 년간 제가 3천, 5천 위안을 주면, 오빠는 상징적으로 2백, 3백 위안만 받습니다. 예전에는 얼마를 주든 당연하다고 생각했었죠. 대법은 정말로 사람을 용련시키고 도덕을 높일 수 있습니다.

한 조카딸이 중병에 걸렸을 때 1만 위안(약 200만 원)을 지원했습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아플 때도 2천, 5천 위안씩 주었습니다. 어머니가 심장병으로 두 달간 입원했을 때는, 분담비용 외에도 5천 위안을 더 냈습니다. 제가 타지에 있어서 자주 간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뇌출혈로 18개월 동안 누워계실 때는, 분담비용 외에도 어머니가 누구 집에 계시든 매달 1천 위안씩 그 집에 몰래 보태주었습니다. 2023년 설날에는 형제자매들에게 각각 666위안(역주: 중국에서 666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의미)의 홍바오(紅包, 돈 봉투)를 보내며 그들이 안전하게 전염병을 넘기길 기원했습니다.

시아버지가 입원하셔서 5천 위안을 빌려가셨는데, 의료보험 환급 후 갚겠다고 하셨지만 지금까지 갚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그냥 없었던 일로 여깁니다. 사돈이 집을 살 때 계약금이 10만 위안이 부족하다고 해서 10만 위안을 드렸습니다. 당시 저는 매달 받는 연금 외에는 한 푼의 저축도 없었습니다. 2년 후, 며느리가 아파서 제가 3만 위안을 냈습니다. 또 2년이 지나 사돈 부부가 두 번이나 코로나로 입원하여 3만여 위안을 지원했습니다. 손녀의 눈 건강관리, 아들의 학업 방문, 박사 시험 등에 10만 위안을 썼습니다. 저는 평소에 생명을 구하는 데 필요한 2만 위안 정도만 남겨두고 돈을 많이 모아두지 않습니다. 이는 수련 중에 돈과 재물에 담담해지고, 물질적 향유에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수련인은 병이 없고 뒷걱정이 없는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저는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남편의 병 치료 기간에 저는 병원과 약국을 자주 다녔습니다. 약을 사는데 3위안, 5위안이 부족한 사람을 보면 보태주었고, 겨울에 술에 취해 길거리나 눈밭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노인을 보면 8위안, 10위안으로 택시를 불러 집으로 보내드렸습니다. 버스에서 잔돈이 없거나, 휴대폰에 잔액도 없고 배터리도 없고 현금도 없는 사람을 여러 번 만났는데, 1위안, 2위안씩 보태주었습니다. 서민들이 병 치료를 받기 어려울 때는 500위안, 300위안, 200위안씩 도와주었습니다. 특별한 어려움을 겪는 예술학과 학생이 있어서 3천 위안을 지원했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학부생들에게는 300위안, 200위안씩 주고, 천 위안, 2천 위안씩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갚지 않는 경우도 그냥 넘어갔습니다. 저는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모두 합니다.

수련생을 구출하고, 떠돌아다니는 수련생을 지원하며, 박해받는 수련생 자녀들의 학업과 생활을 도왔고, 진상 자료나 현수막 같은 대법의 구원 항목들을 지원하는 데에도 3천, 7천, 심지어 1~2만 위안까지 기부했습니다.

제 친절함과 넉넉함은 좋은 정서적 기반을 다졌습니다. 친정과 시댁 가족들은 모두 제 인품을 인정하고 제가 수련하는 대법을 존중하며, 제 말을 경청합니다.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 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할 때도 거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대략 계산해보니, 친정 쪽 50여 명, 시댁 쪽 40여 명이 악당의 당원, 단원, 소선대 조직에서 탈퇴했습니다. 착실한 수련 중에서 저는 선(善)의 위대함, 신성함, 아름다움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성하라(驚醒)’과 ‘법난(法難)’ 속에서 제자들에게 선을 수련하고 감사하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대법제자가 선하지 않으면 사람을 구할 수 없고, 원만에 이를 수도 없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8/4906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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