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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대법에 동화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는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가정은 우리가 수련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아래는 제가 가정생활 속에서 수련하며 사람의 정과 생각을 버리고 대법에 동화해 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1)

부부인 저희가 매일 시간을 내어 함께 법공부를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이렇게 간단한 일도 지속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동안 함께 법공부를 하다가 갑자기 어떤 말 한마디나 사소한 일 때문에 남편이 화를 내고 더 이상 저와 함께 공부하지 않게 됐습니다. 결국 남편은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고, 저는 혼자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분명히 어떤 좋지 않은 것이 이 일을 교란하고 있었고, 우리가 법공부를 성공적으로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통해 저는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우주의 구(舊)세력들은 사람이 수련하는 것을 질투했습니다. 우주가 이미 멸(滅)의 시기에 이르렀고 모든 것이 멸망해야 하는데, 당신이 여기서 수련해서 불멸의 생명이 되려 하니 그들은 당신이 수련 성취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당신을 교란하고, 법공부를 못하게 하여 결국 당신을 망치려 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제자가 세 가지 일을 하고 사부님을 따라 정법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는 감히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것이 이 일을 교란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어디에서 잘못됐을까요?

저는 밖으로 보는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항상 사부님의 법으로 다른 사람을 수련시키고 요구했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해야 해요, 저렇게 해야 해요” “당신의 이것은 법에 부합하지 않아요, 저것도 법에 부합하지 않아요.” 하지만 법으로 자신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안으로 찾기 시작했고 먼저 원망하는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마음속으로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그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쉽게 화를 낼까?!’ 선하게 대하지 못했고 더욱이 자비심은 전혀 없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수련을 잘하든 못하든, 어느 층차에 있든, 그는 사부님께서 제도하시는 중생이고 사부님의 가족입니다. 어떻게 그에게 화를 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를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더 깊이 찾아보니 정(情)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왜 남편에게 법공부를 하라고 했을까요? 그가 수련을 통해 제고하여 건강해지고 질병에서 벗어나 인간 세상의 가정 행복을 얻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수련의 근본 목적일까요? 이렇게 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어떻게 무사무아(無私無我)한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구우주의 신들이 저를 전혀 존중하지 않았기에 교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기적인 관념을 바꾸기 시작했고, 안으로 찾으며 자신의 문제점을 많이 발견해 바로잡았습니다. 상대방의 문제를 거울로 삼아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니 저희의 수련 환경도 좋아져서 이제 다시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저에게 화를 내며 받아들이기 힘든 말을 했습니다. 대략, 제가 집안의 모든 공로와 업적을 제 이름으로 가져가 그가 매우 불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혼 등 듣기 싫은 말도 했습니다.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눈물을 머금고 《전법륜(轉法輪)》을 읽으면서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습니다. 수련인은 남을 위해야 하니 남편이 이렇게 말한 것은 분명 제가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안으로 수련하며 자신을 살펴보니, 과시심이 정말 크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대화 중에 자주 과거에 제가 얼마나 잘했는지 말했습니다. 비록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 집안의 모든 일이 제가 한 것일까요? 모든 공로가 제 이름 아래 있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이 과시하는 마음은 큰 고름 주머니 같았는데, 남편이 송곳으로 한 번에 터뜨린 것입니다. 저는 후천적인 인간 관념에 너무 깊이 묻혀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고마워요, 저는 그것을 절대 버릴 거예요. 그것은 제가 아니에요. 후천적으로 형성된 소위 작은 지혜로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과시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죠. 본인이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으면 그렇게 견디기 힘들가요? 모든 공로를 자신에게 돌리면 신마저도 존중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과시심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3)

몇 달 동안 제 마음은 무겁고 괴로웠습니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매우 괴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한동안 시댁 어르신의 돈을 제가 관리하던 일 때문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이런 일을 잘 처리하라고 조언했고, 여동생도 장부를 잘 기록하라고 일러줬습니다. 저는 좀 긴장했고 서둘러 모두를 불러 모았습니다. 어르신이 정신이 맑을 때, 장부와 잔액 등을 모두 공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어르신이 이전에 자신의 예금을 점진적으로 자녀들에게 각각 다른 금액으로 나눠주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보니 자녀 중 한 명은 비교적 부유해서 적게 받았는데, 이 자녀는 아버지에게 많은 돈이 남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르신과 상의해서 이 자녀에게 좀 더 주자고 했고, 어르신도 동의했지만 막상 주려고 하니 다시 마음을 바꾸셨습니다.

저는 어르신이 누구에게 돈을 줄지 결정할 권리가 있고, 강요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편과 의논해 제 돈에서 몇만 위안을 어르신에게 드리기로 했습니다. 이 일이 어르신 귀에 들어가자, 저에게 손해가 갈까 걱정되어 결국 자신의 돈을 그 자녀에게 주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제 마음의 돌덩이가 내려앉았고, 형제자매 간에 돈 문제로 갈등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들은 제가 어르신의 장부를 불태웠다고 뒤에서 수군거렸습니다. 이 말을 듣자 저는 속에서 화가 치밀었습니다. 저는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지 않았고, 더구나 수련인으로서 더욱 그런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마음을 다 보여드렸는데 어떻게 저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의심과 험담으로 저는 엄청난 고통을 겪었습니다. 어르신이 이미 일을 처리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갈등을 만들까 봐 남편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저와 교류하며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하신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의 병을 잘 봐주었지만 그는 당신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당신이 그의 병을 봐줄 때, 나쁜 것들을 많이 떼어버리고, 그에게 아무리 치료해 주어도 그 당시에 꼭 뚜렷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마음속으로 좋아하지 않고 당신에게 감사하지도 않으며, 당신이 그를 속였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를 겨냥해 당신의 마음을 이런 환경 중에서 연마(魔煉)하게 한다.”(전법륜)

사부님의 법은 마치 제 머리에 맑은 물을 부어주는 듯했고, 제 마음이 순식간에 편안해졌습니다. 괴로움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매일 대법을 공부하는데 왜 오늘 이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까요? 제자가 깨닫지 못하자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통해 제가 이 구절을 기억하게 해주셨습니다. 마치 저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해받지 못하고 의심을 받는다면, 그것은 분명 제 어떤 마음을 겨냥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아! 알고 보니 저에게 명예를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바른가’라는 좋은 명성을 원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자 참을 수 없이 괴로워했는데, 이게 어디 수련인의 모습입니까? 이 일이 없었다면 저는 제가 이런 사람인 줄 몰랐을 것입니다. 제가 수련하고 있기에 이런 일을 만난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께 감사드립니다! 형제자매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인간 세상의 좋고 나쁨을 따지지 말고, 진정한 자비심을 수련해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괴롭지 않고, 남편의 형제자매들을 볼 때도 편안합니다.

(4)

여름방학에 손자가 저희 집에 왔습니다. 본래 아이가 공부를 잘 보충할 수 있도록 많은 돈을 썼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각종 휴대폰 게임과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방해 속에서, 저는 아이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안달이 났고, 아이에 대한 정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또 게임을 하느라 공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고, 저는 너무 무력감을 느껴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이때 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머니,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세요, 할머니 참으세요.” 제 마음이 순간 움직였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울음을 멈췄습니다. 마치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再次成爲神)’의 등장인물 ‘샤오위(小羽)’가 제 곁에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왜 그렇게 괴로웠을까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의 아이가 말을 듣지 않으면 괴롭지 않을까요? 바로 정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공부를 잘하라고 재촉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너무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가 왜 초조해할까요?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공부하고, 미래에 어느 정도 성공할지는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왜 초조해할까요? 게다가, 그는 아직 아이일 뿐입니다. 인내심을 갖고 자비롭게 대해야 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화내고 소리치는 것은 정말로 선(善)도, 인(忍)도 없는 것이며, 이는 수련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오직 아이가 ‘진(眞)·선(善)·인(忍)’의 처세 원리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만이 가장 좋고 가장 이성적인 것입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눈앞의 환경은 모두 제 수련을 위한 것이며, 아이의 행동은 제 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덕분에 제 사람의 마음과 생각, 부족함이 드러났으니, 화를 낼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수련의 기회와 아이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아이가 저희 집에 올 때마다, 남편과 저는 아이와 함께 법공부를 하며 조금씩 아이를 바로잡았습니다.

지금은 손자가 집으로 돌아갔지만, 저는 그의 마음속에 이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쩐싼런하오(眞善忍好)’가 깊이 새겨졌다고 믿습니다. 그는 이미 구원받은 생명입니다.

맺음말

이상은 제 수련의 일부 체득으로 수련생 여러분과 교류합니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저는 약간의 체득을 했습니다. 갈등 속에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괴로운 것은 제가 아니라 후천적인 관념이 우세해질 때 비로소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가짜 자아가 괴로운 것이지, 진실한 자아는 진(眞)·선(善)·인(忍)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찌 괴로울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은 수련을 위해 나타난 것이니 감사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대법을 전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변의 가족, 친구, 수련생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제게 삶의 에피소드를 연출해주었고, 이는 제 수련과 제고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그들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그들을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3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3/5/4913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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