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완고한 ‘당문화’를 인식하고 제거하자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수련자는 반드시 선(善)을 수련해야 한다”[정진요지-선을 알기 쉽게 해설(淺說善)]. 이것은 본래 수련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이치인데, 나는 선(善)을 수련하는 길에서 많은 굴곡을 겪었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본성이 선량하다고 여겨서 사부님의 법을 자신의 수련 지침으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1. 가정생활에서 사(私)를 제거하다

나와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만났다. 내가 남편 집에 갔을 때, 온 가족이 마치 대박을 터뜨린 것처럼 기뻐했고, 특히 그의 부모님들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웃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 며느리는 전 세계에 없는 며느리예요, 온 마을 사람들이 우리집을 부러워한답니다.”

나와 남편은 현(縣)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주말에 고향에 돌아가면 마을 사람들이 여러 번 일부러 우리집에 나를 보러 왔다. 나는 농담으로 “제가 마치 판다처럼 구경거리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의 고향 마을과 모든 친척, 친구들 사이에서 남편이 매우 운이 좋다고 여겼고, 얼마나 좋은 아내를 얻었는지 칭찬했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도 그의 친척, 친구들은 종종 당시 생각을 얘기하며, 우리 둘의 여러 면에서 차이가 너무 커서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남편의 가정환경, 학력, 외모 등 여러 면에서 분명히 나보다 못했는데, 내가 그런 것들을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나에게 잘해주었기에 그를 받아들였다.

남편은 나를 보물처럼 여겼고 내가 하는 모든 것이 좋다고 생각했으며, 내 말이라면 무엇이든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그는 나를 세심하게 챙겼고 맛있는 것은 항상 나에게 먼저 주었다. 그는 “내가 먹으면 이 좋은 음식이 아깝다고 느껴져”라고 말했다. 껍질이 있는 음식은 항상 벗겨서 내게 주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교만한 공주처럼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고도 깨닫지 못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인 내가 그와 결혼해줘서 그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그가 내게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어떻게 딴 생각을 품을 수 있겠냐고 생각했다.

우리는 평생 이렇게 살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화가 날 때마다 이혼 얘기를 꺼냈다. 나는 전혀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그가 어린아이처럼 투정만 부린다고 여겼고, 그가 너무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와 티격태격하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때로는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집안일은 대부분 내가 결정했다. 결국 나는 내가 그보다 낫다고 생각했고, 그가 날 떠날 수 없으며, 나와 이혼할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한번은 그의 몇몇 동창들이 나에게 말했다. “그에게 좀 잘해주세요, 그러다 이혼하면 어떡해요?” 나는 “불가능해요, 그는 나와 이혼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내 생각에는 그에게 있어서 나는 그 자신보다 더 중요한 존재였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사부님께서는 갈등이 있으면 자신을 찾으라고 말씀하셨다. 남편과의 갈등은 내 수련 중에 가장 자주 직면하는 문제였다. 내가 수련을 시작한 지 2년 후 사악한 탄압이 시작됐다. 그날 나는 시청에 가서 청원했다가 경찰에게 납치됐고 오후에 직장에서 날 데려갔다. 남편은 시내에서 날 찾아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밤에야 집에 돌아왔다. 그는 매우 화가 나서 “돌아왔으면 한마디라도 해줘야지, 하루 종일 당신을 찾아다녔어. 도처에 연락해서 당신이 어디 있는지 물어봤단 말이야”라고 했다. 이때서야 나는 내가 정말 그를 너무 무시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직장에서 날 데려간 후에도 계속 직장에 억류되어 집에 돌아갈 수 없었고, 직장 상사들이 계속 나에게 압력을 가했지만 나는 분명히 남편에게 제때 알리지 못했다.

그는 자주 불만족스럽게 물었다. “당신 마음속에 내가 있기는 해? 당신 마음속에 내 자리가 조금이라도 있어?” 남편은 나에게 점점 더 냉담해졌고 자주 밖에서 술 마시고 카드놀이를 했다. 내가 전화하면 그는 쌀쌀맞게 대했고, 연락하지 않으면 “왜 나한테 연락도 안 해”라며 투덜거렸다.

비록 나는 속으로는 매우 억울하다고 느꼈지만, 그가 내 태도를 트집 잡는다면 아마도 내가 ‘선(善)’의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래서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밤, 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남편은 아직 밖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으니 남편에게 좀 더 따뜻한 신발을 신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가죽 신발을 찾아서 깨끗이 닦고 구두약을 발라 신발장에 놓았다. 그날 남편이 돌아왔을 때 그의 태도가 분명히 누그러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그 신발을 보고 마음에 약간의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나는 남편과의 갈등에 직면했을 때 처음으로 무언가 제대로 했다는 것을 느꼈다.

남편과의 갈등은 내가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계속 직면해야 했던 문제였다. 이로 인해 나는 매우 고민했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움직였고 무언가를 깨달은 것 같았다. 법공부를 통해 나는 마침내 이해했다. 이 몇 년간 남편의 모습은 사부님께서 나의 업을 소멸하고 제고할 수 있도록 안배하신 것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감사해야 했다!

나중에 남편은 때로 나와 함께 법공부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이 부분을 읽을 때 내가 “이 몇 년간 당신은 항상 나의 업을 소멸하고 제고하도록 도와줬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마치 착한 아이처럼 행복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했다. 이제 남편은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점점 더 느끼고 있으며, 점차 파룬따파의 진선인(眞·善·忍)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생활은 단순하면서도 따뜻해졌다.

2. ‘말의 화살’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해악에 대해 말씀하시고, 대법제자들에게 당문화를 제거하라고 상기시켜 주셨다. 하지만 나는 이 방면의 수련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줄곧 몰랐다. 왜냐하면 당문화는 내게 이미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려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노(老)수련생이 나의 당문화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을 때 나는 매우 놀랐다. 내가 보기에 이 노수련생야말로 매우 짙은 당문화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는 오히려 내가 당문화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수련생의 말은 나의 생각을 불러일으켰지만 나는 여전히 자신에게 어떤 당문화의 표현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고, 더구나 어떻게 당문화를 인식하고 제거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한 가지 일이 내게 매우 큰 충격을 주었다. 수련생 M의 딸이 휴가로 집에 돌아왔고, 나는 수련생 모녀와 함께 법공부를 했다. 우리는 모두 대법책을 들고 결가부좌를 하고 법공부를 준비했다. 이때 의논할 일이 생각나서 조금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그 어머니 수련생이 말하는 중에 책을 든 손을 낮게 하여 결가부좌한 발 위에 책모서리가 걸쳐졌다. 나는 한마디 일러주었다. “책을 발 위에 올리지 마세요.” 수련생은 즉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가며 법을 읽기 시작했는데, 젊은 수련생은 읽는 것이 약간 끊겼다. 두 바퀴 돌고 나서 다시 젊은 수련생 차례가 됐을 때, 그녀는 두 문장을 읽고 더는 못 읽겠다고 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방금 당신의 그 말이 저를 너무 놀라게 했어요!”라고 했다. 나는 젊은 수련생이 법에 대한 공경의 엄숙성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충격을 받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어서 젊은 수련생은 “저는 놀라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요, 몸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매우 충격을 받았고 그녀가 왜 이렇게 놀랐는지 알 수 없어서 “아, 내가 그렇게 대단한가요?”라고 물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엄마는 못 느꼈어요?”라고 물었다. 젊은 수련생은 계속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했을 때, 저는 많은 화살이 ‘슉슉슉’ 하고 날아오는 것을 느꼈어요.”

이후 우리는 계속 법공부를 했지만 젊은 수련생은 밤새도록 우리가 읽는 것만 들었고 한 문장도 읽지 않았다.

다음날, M은 나에게 딸이 밤새도록 충격을 받은 느낌을 극복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어젯밤 배운 그 한 강을 다시 공부했다고 알려줬다.

나는 젊은 수련생이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말해준 것에 매우 감사했다. 젊은 수련생의 느낌은 나로 하여금 ‘말의 화살’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이 일은 나의 주의를 불러일으켰고 나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도대체 내 그 한마디 말에 어떤 것이 담겨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서서히 이해하게 됐다. 표면적으로 내가 그 말을 할 때 어조는 매우 평온했고, 그저 한 번 주의를 환기하는 데 불과했지만, 그 뒤에는 이미 내가 당연시했던 당문화가 숨어 있었다. 그것의 본성은 가짜, 악, 투쟁[假·惡·鬪]이며, 표현되는 것은 잔인함, 악함, 포악함이다.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사람을 상처 입히고 해치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예전에 나는 이런 식으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은 사람들을 상처 입혔던 것이다!

나는 이 수련생과 여러 해 동안 함께 지내왔고, 그녀는 여러 번 나와 교류하면서 내가 말하는 방식이 그녀와 모든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여러 번 사람은 먼저 선량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매우 의아했다. ‘나는 줄곧 내 본성이 선량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녀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닌가?’ 젊은 수련생의 이 일을 통해서야 나는 내가 당문화에 얼마나 깊이 중독되었는지 깨닫게 됐다. 나는 더 이상 자신을 방심하지 않고, 항상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살피며, 자신의 언행을 검토하게 됐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간을 내어 ‘9평 공산당’ 등의 책을 보고, 동시에 전통문화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는지 더 많이 체험하며, 항상 자신을 바로잡으려고 했다.

3. ‘자기를 기준으로 삼다’와 ‘타인을 함부로 대하다’

한번은 수련생들끼리 교류할 때, 내 교류가 A 수련생에 의해 중단됐다. 내 마음은 의아했다. ‘내가 논의하던 내용이 바로 A가 교류하고 싶어 하는 문제였는데, 지금 그가 내 말을 끊다니.’ 나는 인내심을 갖고 A와 다른 수련생들이 잠시 말하는 것을 들었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가 이해하지 못했나?’ 그래서 나는 모두의 화제를 다시 가져와 방금 내 화제를 계속했다. 다른 수련생들도 A가 날 왜 중단시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A의 몸이 천천히 약간 나를 향하지 않는 방향으로 비틀어지는 것을 느꼈고, 그의 마음이 약간 불편한 것 같다고 느꼈다.

내가 다른 수련생의 말을 중단시키고 내 이야기를 계속할 때, 나는 고개를 들어 사부님의 사진을 보았다. 사부님의 표정은 엄숙하셨지만 방금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미소 짓고 계셨다.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 교류에서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도대체 어디가 이상한지 생각했다. 다음날, 집안일을 하면서 명혜 라디오의 교류문을 들었는데 갑자기 한 문장이 들렸다. “자기를 기준으로 삼다.” 나는 이 문장이 마치 나를 일깨우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제 내 행동이 바로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었음을 한순간에 이해했다. 나는 사부님의 안배가 이토록 묘하다는 것에 놀랐다. 사부님께서는 내가 자신을 수련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시고, 다음날 라디오를 듣는 중에 수련생의 교류문을 통해 내 문제점을 지적하도록 안배하셨다.

그 글에는 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악과 시비를 판단하는 기준이 이미 심하게 왜곡되었기 때문에, 감히 습관적으로 함부로 타인을 대하는 것이다.” 나는 즉시 자신의 문제와 대조했다. 타인을 함부로 대하는 것! 내가 대화주제를 다시 가져온 행동은 얼마나 무례했는지, A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비튼 것은 아마도 당시 매우 불편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자신의 당문화적 표현을 보았다. 사람에 대한 불경함, 자만심, 우월감, 이해하지 못함, 타인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음.

나는 예전에는 자신이 편안한지 불편한지만 알았고, 만약 자신이 불편하면 또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비난했으며, 자신의 불편함이 타인에 의해 생겼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다른 사람을 고려하여 매번 문제와 마주칠 때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이 감당해 낼 수 있는지 없는지, 다른 사람에게 해가 되는지 안 되는지를 우선 생각한다면 문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전법륜) 예전에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항상 이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이번에 나는 마침내 타인의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 기뻤고, 자신이 마치 어리석은 아이, 선생님의 수업을 항상 이해하지 못하는 열등생 같다고 느꼈다.

4. 현대의 변이된 관념을 제거해야 진정한 선량함을 이해하게 된다

나와 M은 자주 우리 둘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항상 열심히 공부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자주 칭찬과 상을 받았다. 그래서 나는 내면적으로 지식인이라 자처했고, 지식인은 사회의 양심이며 인류 사회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로 인해 나는 자신이 매우 고상하고 고결하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졌다. M은 어릴 때부터 수도하는 친척이 있어서 항상 수련을 동경했다. 이런 비교를 통해 나는 서로 다른 관념 아래 사고방식의 차이를 관찰할 수 있었고, 무신론과 실증과학의 관념이 내 사상 속에서 여전히 나를 진선인(眞·善·忍) 대법에 진정으로 동화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몇 년 전, 지역의 한 수련생이 납치돼 누명이 씌워졌다. 우리는 변호사를 청해 수련생 구출에 참여하게 했다. 우리는 변호사와 함께 식사하면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변호사는 계속해서 내가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지 물었다. 그는 내가 직책을 가진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매우 의아했다. 나는 학창 시절에 학생회 간부를 한 것 외에는 일을 한 후로 어떠한 직책도 맡은 적이 없었는데, 변호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변호사의 나이는 분명히 나보다 많았지만, 그는 나를 “누님”이라고 불렀고, 그를 다른 지역으로 데려다주는 길에도 계속 나를 칭찬했다. 나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매우 조심하고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반성한다고 말하자, 변호사는 영민하게 태도를 바꾸었다. 우리와의 교류도 솔직해졌으며 나를 “여동생”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 수련생의 한 글을 읽었는데 거기서 오만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보았다. 갑자기 당시 그 변호사가 분명히 내 숨겨진 오만함, 당문화 속에서 나오는 그 거만한 표현을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또한 2년 전의 한 일을 떠올렸다. 2년 전 사악이 소위 ‘제로화’ 괴롭힘을 할 때, 직장 상사도 사악의 지시를 받아 나에게 압력을 가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정념을 굳게 지켰다. 과정 중에 직장 상사도 항상 나에게 공손했다. 내가 그에게 진상을 알릴 때, 그도 항상 조용히 들었고, 모든 대화가 매우 순조롭게 진행된 것 같았으며, 최종 결과도 좋았다. 그러나 한번은 그가 갑자기 “당신 혼자만 맞고 다른 사람은 다 틀려!”라고 말했다. 나중에 나는 매우 의아했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번에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당시 직장 상사와 대화할 때, 표면적으로는 평화롭고 친절한 모습을 보였지만, 내면에는 여전히 자아를 실증하고 반박을 용납하지 않는 태도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념을 발하여 자신의 당문화 요소를 제거하고, 반복해서 사부님의 법 “겸허(謙虛)해야 하며 그래야만 일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정진요지-어떻게 보도할 것인가)를 외우며 항상 자신을 낮추도록 상기시켰다.

나는 깊이 체험했다. 내 조그마한 진보 하나하나가 모두 사부님의 무수한 심혈이 녹아 있고, 조금이라도 제고할 때마다 모두 사부님의 매우 세심한 안배와 일깨움을 거쳤다. 그것들은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고, 글로 쓸 수 있는 것은 실제 과정의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제자의 끝없는 감사함은 단 한 마디로 바뀐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2/25/48555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2/25/485551.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