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성(淸醒)
[명혜망] 법에서의 교류를 중심으로, 여기서 더 직접적인 질문을 하나 제기하고자 한다.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해야 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격차를 볼 수 있는가?
1. 오늘의 상황은 다르므로, 최종적인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해야 한다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할 것인가’에 대해, 대법제자들이 법을 스승으로 삼고 당연히 대법을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함으로써 자신의 격차를 보는 것이 전체적인 통일된 해답이다. 이 문제에는 구체적인 통일된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부동(不同)한 층차(層次)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기”(전법륜) 때문이다. 대법제자들은 부동한 층차, 부동한 상태 중에서 수련하며, 대법은 대법제자들에게 부동한 내포와 부동한 방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통일된 답이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다르다. 정법 수련이 이미 최후의 단계에 거의 다다랐으므로, 최종 기준으로 우리 수련자를 가늠해봐야 한다. 여기서 나는 모든 대법제자가 사부님께서 2007년 1월 1일에 발표하신 ‘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를’ 경문으로 자신을 평가해볼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심으로 나의 대법제자들이 다 원만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진심으로 세인들이 다 진상을 명백히 알고, 역사가 인류에게 정해준 가장 큰 악마, 사악한 당(邪黨)의 중국인과 전 세계에 대한 독해,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를 똑똑히 알고, 이 역사상 중생들의 가장 큰 ‘겁(劫)’을 걸어 나오며, 진심으로 중생들이 모두 구원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정진요지3-중생들의 문안에 감사를)
사부님께서 경문에서 말씀하신 희망이 바로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 자신에게 요구해야 할 기준이다. 과거에 대법제자들은 본래 이것을 기준으로 자신의 수련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정법 수련의 최후에 대법제자들은 주동적으로 이를 기준으로 자신의 수련을 평가해야 한다.
2. 최종의 기준으로 가늠한다면 우리의 격차는 전체적으로 아직 매우 크다
이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한다면 우리의 수련에서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드러날 것이다.
우선, 많은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고 발정념을 할 때 여전히 ‘중공의 몰락과 박해의 종식’을 무의식적인 목표로 삼고, ‘자신과 수련생이 박해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의식적인 목표로 삼고 있으며, ‘세인들이 모두 진상을 알고, 중공의 최종 본질을 인식하고, 악당이 중국인과 전 세계에 끼치는 독해를 똑똑히 알며, 중생이 모두 구도되는 것’을 수련이 지향하는 목표로 삼지 않고 있다.
둘째로, 많은 대법제자들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할 때, 주로 ‘자신이 더 잘 수련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을 하며, ‘대법제자들이 모두 원만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이 노력하고 원융(圓容)해야 할 하나의 원칙으로 삼지 않고 있다.
만약 우리가 이 최종적이고 더 높은 기준으로 우리의 수련을 가늠한다면, 우리는 더욱 빠르게 자신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로써 자신을 대법에 더욱 잘 동화시킬 수 있고, 우리의 정체(整體)가 더 큰 위덕을 갖추어 이 중대한 역사적 사명과 우주의 중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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