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여러 해 동안 중공 당국에 납치되고 또 납치되다 보니 납치되는 것이 그다지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한번은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감방장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왔어요?” 제가 “파룬궁수련생이에요”라고 답하자 그녀가 “몇 번째예요?”라고 물었고, 저는 “여러 번이요”라고 했더니 그녀가 즉시 “언니에게 자리를 만들어 드려요”라고 했습니다. 피곤하거나 졸릴 때면 이불을 바닥에 던지고 누워서 잤지만 제가 할 일은 했습니다.
이 몇 년간 구치소, 노동수용소, 파출소, 감옥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막 들어온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일을 더 많이 했는데, 구타로 손이 망가져 빨래를 못 하는 사람들의 속옷까지 제가 빨아주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밤에 교대 근무하기 싫어해서 제가 자주 대신해주었습니다. 어디서든 자비로운 마음으로 중생을 대했습니다.
저는 1997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오래된 대법제자입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질병을 앓고 있었는데, 간질환, 신장병, 위궤양, 류머티즘, 생리병 등이었습니다. 이런 병들이 모두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일 불편했고 일 년 내내 편한 날이 거의 없었으며, 허약해서 어떤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모두 성격이 좋지 않아 참을 줄을 몰랐습니다. 가난하고 병이 있고 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우리는 늘 싸웠고, 이웃까지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삶이 너무 뜻대로 되지 않아 정말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고 느꼈지만, 아이도 있어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한번은 싸움이 끝난 후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에 신이 계신가요? 계시다면 저를 구해주세요!’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혼하려고 할 때 기차에서 《전법륜》을 보게 되어 법을 얻었습니다. 그때의 그 감격스러운 마음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공법 교육 비디오를 볼 때 저는 울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제도하러 오셨습니다. 저는 대법이 얼마나 귀중한지 알았고 수련하고 싶었습니다. 그날 밤 바로 파룬(法輪)을 보았습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건강이 회복됐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제가 겪은 일들이 모두 업력(業力)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인생의 진정한 목적을 깨달았으며, 저는 변화했습니다. 예전에는 성격이 좋지 않아서 제가 남을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누가 저를 화나게 하면 주먹이 나갔고 싸움이 나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을 배우면서 제 건강이 좋아졌고 가정이 화목해졌습니다. 저는 선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고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면서 점차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시드니법회 설법) 경지에 이르게 됐습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제가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악당 집단이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여 불법을 비방하고 중생들을 모두 세뇌했습니다. 저는 대법 신앙을 고수하다가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8년 넘게 박해를 받으며 많은 고문을 당했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는 가죽벨트로 맞고, 수갑으로 매달리고, 전기봉으로 전기 고문을 당했습니다. 경찰이 마약 중독자 두 명에게 전선으로 저를 때리게 하고 손으로 꼬집게 했는데, 제 몸이 넓은 면적에 걸쳐 시퍼렇게 멍들었습니다. 저는 그 둘에게 “파룬궁수련생을 때리는 건 좋지 않아요”라고 말했더니 그들은 “알아요. 하지만 우리 둘 다 감형받고 집에 가려면 대장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 둘 다 죽었는데, 둘 다 나이가 많지 않았습니다.
보름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고 벌로 서있게 했는데, 나중에는 서서도 잠이 들 수 있게 됐습니다. 보름 만에 40여 킬로그램이나 빠졌습니다. 2000년대 초반 노동수용소는 사악한 기운으로 가득 차서 일반인들도 공포를 느꼈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이 들어가서 ‘전향(수련 포기)’하지 않으면 그 창고에서 나오지 못하게 했고, 창문에는 수갑이 걸려 있어서 정말 공포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한 큰 홀에 각지의 610 직원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내가 대법제자인데 매달리면 어때? 하고 싶은 대로 하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대법은 사람들에게 선하게 되라고 가르치며, 질병을 제거하고 건강하게 해주며, 사람들이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잘못된 게 아니며, 대법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바쳐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알아들었습니다. 돌아간 후에도 노동수용소는 저를 박해하지 않았는데, 당시에는 ‘왜 나를 매달지 않았을까?’ 하고 의아했습니다.
한번은 중대장이 파룬궁수련생들과 회의를 하면서 수련생들에게 자신의 장점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찾았나요?”라고 물었고 저는 “못 찾았어요! 전에는 제가 늘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매달린 걸 견디지 못한 이후로는 더 이상 제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장점이 있어요”라고 했고 제가 “대장님, 제가 무슨 장점이 있나요?”라고 묻자 그녀는 “당신은 진실을 말할 줄 알고, 중생을 구할 용기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때 ‘그들이 내가 중생을 구도한다는 걸 알고 있네, 그들도 다 알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노동수용소에서 일곱 번이나 매달렸는데, 매달리고 또 매달리다 보니 두렵지 않게 됐고, 마지막에는 제가 힘들어하기도 전에 풀어줬습니다. 노동수용소가 저와 한 수련생을 박해했는데, 우리를 어떻게 해도 그대로여서 변화가 없자 더 이상 매달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저를 매달 때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풀어줬을 때 저는 울었는데, 제가 수련이 부족해서 틈을 보였고 잘 수련하지 못해서 중생들이 저를 위해 죄를 짓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저는 마음속에서 강대하고 확고한 일념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는 제 수련 과정에서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법 안에서 바로잡을 것이며, 구세력이 중생을 이용해 저를 박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중생과 구원자와 구원 대상의 관계이지 절대로 박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 후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않았고 경찰들도 저에게 모두 잘해줬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는 노동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여자 간수가 개인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면 저는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고, 일하면서 진상도 알렸습니다.
제가 나갈 때가 되자 한 젊은 여자 간수가 “집에 가시게 됐으니 이제 저희도 삼퇴(중공 탈퇴)를 시켜주셔야죠?”라고 했고 저는 “그래요, 이제 해야죠”라고 했습니다. 떠나는 날, 한 여자 대장이 집에서 만두를 가져와서 “차에 오를 때는 만두, 내릴 때는 국수”라고 했습니다. 나이 많은 여자 대장은 저와 악수를 했습니다. 한 젊은 여자가 한밤중에 울었는데, 제가 “집이 그리워요?”라고 묻자 “언니가 가시는 게 아쉬워서요”라고 했습니다.
파룬궁수련생을 가장 심하게 박해했던 한 여자 간수는 수술을 받고 나서도 저에게 진상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몇 년 전에 파룬궁을 가장 적극적으로 박해했던 한 간수도 병이 났는데, 그녀는 “파룬궁을 이렇게 많은 해 동안 박해했지만, 아무것도 얻은 게 없고 악질 간수라는 이름만 얻었네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보면서 그녀가 매우 불쌍하다고 느꼈습니다. 무지한 가운데 명예와 돈을 위해 그렇게 많은 업을 쌓았으니까요. 저는 쟁투심과 두려움이 없어졌고, 그들에게도 선한 면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어 간수들을 모두 형제자매처럼 대했습니다. 진상 자료를 쓸 때마다 간수로 환생하게 되는 신들은 내려오기를 꺼린다는 내용을 쓸 때면 늘 눈물을 머금고 썼습니다.
한번은 노동수용소에서 한 수련생을 박해하자 수련생들이 모두 단식으로 항의했습니다. 그러자 우리를 점심에 쉬지 못하게 하고 매일 작은 의자(고문 도구)에 앉아있게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저는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까?’라고 생각하고는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담당 대장을 찾아가 선과 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하늘의 이치를 알려주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면 복을 받을 것이며, 대법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편지를 다 읽고는 그날로 우리를 쉬게 해줬습니다. 나중에 한번은 ‘사상보고서’를 쓸 때 수련생들이 모두 대법 진상을 썼습니다. 담당 대장이 한 수련생을 ‘처리하고’(박해하고) 싶었지만, 제가 쓴 편지가 생각나서 그녀를 박해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한 일 때문에 저는 감옥에서 한동안 박해를 받았습니다. 감옥은 몇 명을 불러다 계속해서 수련생들을 ‘전향’시켰고, ‘전향’ 작업으로 돈을 벌면서 살았으며, 새로 들어온 수련생에게 ‘전향’ 작업을 했고, 한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저는 마지막까지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이 박해받을까 봐 담당 경찰에게 선행을 권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저도 약간의 압박감이 있었지만, 제가 그녀에게 편지를 줬을 때 그녀는 기분 좋게 받았습니다. 어떤 일들은 옳게 했을 때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모두 안배해주셨으며, 우리는 단지 입을 움직이고 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됐습니다.
구치소에서 저는 진술서를 여러 부 써서 경찰, 의사, 주재 검찰관에게 보여줬습니다. 그것은 진상이었고, 제 수련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건이 불법으로 판결이 난 후, 저는 항소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을 알았습니다. 공안·검찰·법원의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저는 항소할 기회를 이용해 항소장을 진상자료로 만들어 매우 상세하게 썼습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말했고, 《전법륜(권2)》을 많이 배웠기 때문에 다른 공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한 중급 검찰원의 공증인이 “언니, 일찍 파룬궁을 연마했다면 여자 장원(시험의 최고 합격자)이 됐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 저는 공부를 꽤 잘했지만 이렇게 큰 지혜는 없었는데,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께서 제자를 가지(加持)해주시고 지혜를 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이후 저는 어디를 가든 진상을 알렸고, 수련생이 말했듯이 “입을 쉬지 않았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말했고 아무리 높은 관리라도 말했으며, 그들은 잘 알아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두려운 마음이 있든 없든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했습니다. 전기봉이 제 앞에 있어도 수련생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납치됐을 때 저는 “진상 외에는 묻지 마세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진상 외에는 다른 것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때 납치됐을 때 경찰차에 타자마자 저는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는 그들을 찾을 수 없어서 저는 그 시간을 이용해 전력을 다해 최대한의 자비와 지혜로 진지하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우리 지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제가 진상을 알려 여러 명이 떠났습니다. 그들은 진상을 알고 구원을 받아 전근을 갔습니다. 한 국보 대장이 저를 노동수용소에 데려갈 때 저는 가는 내내 진상을 알렸고, 그는 “아무개씨, 이번 길에서 저는 정말 많이 배웠어요”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국보 대장이 저를 납치했을 때도 저는 가는 내내 진상을 알렸고, 그는 “아주머니, 당신 말을 들으니…”라며 저를 납치하기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그는 “아주머니, 건강검진은 당신에게 달렸어요”라고 했고 저는 “제가 이미 제 사명을 완수했으니 이제 말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건강검진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그날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 몇 년간 저는 국보나 610 직원에게 진상을 알리려고 하면 납치됐다가 진상을 다 알리고 나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사는 곳에서 꽤 먼 작은 도시가 있는데, 그곳은 이전에도 꽤 사악했고 진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예전에는 수련생들이 가서 진상을 알렸지만 이후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곳의 중생들을 구하고 싶었고, 가기 전에는 약간의 압박감도 있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후 그곳의 중생들이 모두 꽤 선량하다고 느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저를 보면 웃어주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명백한 그 면이 제가 그들을 구하러 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나 봅니다. 그들은 모두 제 물건을 사고 싶어 했고, 제가 무엇을 팔든 샀습니다.
어느 날, 외지 사람이 그곳에 공사하러 와서 장을 보기 편하게 삼륜차를 사려고 제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저는 그가 90도로 허리를 구부린 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왜 그러세요?”라고 물었고 그는 “허리 디스크가 도졌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했고 그는 “알겠어요, 다섯 번 외울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또 그에게 삼퇴를 시켜줬습니다. 잠시 후 그는 나아서 허리를 펴고 “아주머니, 저 나았어요, 안 아파요”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내가 장을 보고 돌아오자 그는 웃으며 “여보, 나 나았어!”라고 외쳤습니다. 그의 아내가 “어떻게 나았어요?”라고 묻자 그는 “‘파룬따파하오’를 외워서 나았어”라고 했고 그의 아내는 “계속 외우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자주 수련생들이 쓴 교류문에서 ‘파룬따파하오’를 외워서 병이 나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고 깊이 믿었지만, 제 눈앞에서 외우자마자 나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저도 마음이 꽤 격동되어 마음속으로 ‘사부님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대법은 정말 신기하고 전능하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수련을 잘 하지 못해서 납치되면 어떤 방면을 강제로 수련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보니 이 몇 년간 납치된 것은 색심, 정이 무겁고, 성격이 좋지 않았으며, 사람의 지혜에 집착하고, 외모에 집착하여 거울 보기를 좋아하고 머리 손질하기를 좋아했으며, 성격이 강하고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법을 얻었을 때의 그 정진하는 기세는 정말 용맹했지만 지금은 느슨해졌고 안일한 마음도 꽤 있습니다.
이 몇 년간 제가 이렇게 넘어지면서도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지도, 격려를 떠날 수 없습니다. 정말 천만 마디 말로도 사부님의 큰 은혜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자신을 잘 수련해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법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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