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펜을 들어보니 마음이 무겁다. 이 주제는 여러 해 동안 쓰고 싶었지만 감히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중국에서 박해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혹독한 박해를 받은 사람이 ‘영웅’일까?
여러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런 예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정사(正邪)의 대전에서 양군이 대치하고 있을 때, 어떤 이들은 늘 사악한 쪽에 포로로 잡혀 고문당하고 갇혔다가 풀려나고 다시 잡히기를 반복한다. 이것이 비록 업력(業力)으로 인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업력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 아군 중 이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군대의 자랑이고 장병들이 숭배하는 영웅일까? 하물며 정법 수련에는 “구세력을 부정하라”는 법리가 있는데, 구세력을 부정하지 못하니 이렇게 되는 것이다.
매일 명혜망을 열어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중국 각지 대법제자들이 박해받는 소식이다. 많은 대법제자들이 이 세월 동안 반복해서 박해를 받았고, 20여 년 법난(法難) 동안 어떤 수련생은 불법 구금된 시간을 모두 합치면 거의 20년이나 된다. 우선, 우리는 구세력이 강요한 이 박해를 단호히 인정하지 않는다. 이 박해는 출발점에서부터 수단과 최종 결과까지 모두 사악한 것이며, 사부님의 정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를 망가뜨리며, 대법제자의 중생구도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 박해가 이토록 오래 지속되고 범위가 이토록 광범위하며 심지어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해외에서 이렇게 많은 혼란상[亂象]을 일으킨 것은, 모든 대법제자가 자신을 깊이 반성해보아야 할 일이다. 자신의 수련이 따라가지 못해 법난이 26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고 오히려 파도가 다시 일어나게 된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
명혜망 보도를 보면, 어떤 수련생은 색욕심을 버리지 못해 구세력에게 꼬투리를 잡혀 잔혹한 박해를 반복해서 당했는데도 그 마음을 버리지 못했고, 어떤 이는 연설로 법을 혼란시켜(사실은 명예를 추구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것임) 생긴 업력으로 인해 박해를 당했으며, 어떤 이는 수련생 간의 갈등을 법에서 인식하지 못해 구세력에게 꼬투리를 잡혔고, 어떤 이는 가족에 대한 원망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 구세력이 박해의 구실을 찾았으며, 어떤 이는 가족정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해 구세력에게 틈을 타게 됐는데, 이러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초래한 박해는 자신에게 난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흔히 수련생들에게도 화가 미쳐 전체 지역의 법 실증과 구도 형세에 교란을 조성한다.
어떤 수련생들은 박해받은 후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를 통해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바로잡아 헛되이 난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박해받은 수련생들, 특히 속인의 생활에 젖어 있거나 수련인 집단을 통해 명성과 인맥,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 자아(사심)와 과시심이 특별히 강한 사람들은 박해를 받은 후 교훈을 얻고 이후에 잘 수련하고 잘하기는커녕, 오히려 ‘내외의 구분’(내부: 법에 비추어 박해를 초래한 자신의 원인을 찾고 그런 좋지 않은 것들을 없앤다. 외부: 사회를 향해 박해를 폭로하고 중공을 폭로한다)을 완전히 혼동해버려 사상과 언행에서 사명이 있는 대법제자라고는 볼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많은 박해당한 어떤 수련생들이 수련이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박해받은 것을 밑천으로 삼아 나중에 수련생들 사이에서 자신을 ‘영웅’이라고 자랑하며 선전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해외에 와서는 국내에서 습관이 됐던 추앙을 받지 못해 실망한다. 수련 중에는 영웅이 없으며, 박해받은 것은 수련 중에 큰 누락이 있어서이니 자랑할 것이 없다.
물론 세 가지 일을 비교적 잘하는 어떤 수련생들도 가끔 바르지 않은 상태가 나타나 틈을 주어 신고당하고 납치되기도 하지만, 일이 생긴 후 바로 안으로 찾고 자신의 좋지 않은 마음을 없애면 곧 무죄 석방됐다. 어떤 이는 처음에는 사람마음이 매우 강해서 반(反)박해를 속인의 투쟁으로 이해했지만 나중에 문제를 인식하고 제고해 올라왔으며, 게다가 사부님 법신의 구해주심이 더해져 박해도 해체됐다. 이런 수련생들은 박해받은 것이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고 밑천도 아니며, 수련 중에 넘어진 것이므로 박해가 일어난 후에는 앞으로 남은 길을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다.
나오지 않고 무기력하게 누워있으며 수련에 마음을 쓰지 않는 수련생들 중에도 박해받지 않은 이가 적지 않은데, 그것 역시 자랑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은 자신이 이미 수련을 제대로 하지 않아 연마가 없고 위덕이 없어서 생긴 ‘박해할 필요가 없는 상태’이다. 박해 속에서 자신이 이미 자발적으로 처져서 속인이 됐기 때문이다.
직접적으로 박해를 초래한 흔한 ‘원인’으로 돌아가 보자.
고집스레 연설로 난법해 대규모 박해를 초래한 예는 명혜망에 많이 있다.
또 명혜망에서 본 적이 있는데, 한 베이징 수련생이 반박해 구도에서 매우 잘했지만 속인인 아내와의 갈등을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해 큰 감옥에 갇히게 됐다.
오늘도 명혜망의 한 교류문장을 보았는데 수련생은 이렇게 썼다. “여러 해 전에 나와 다른 한 수련생이 중생구도 방법에서 어떤 수련생들과 이견이 생겨 현지 수련생들이 두 파로 갈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에서 대규모 납치가 발생했고, 수련이 올라오지 못한 수련생들이 중형을 선고받아 현지의 중생구도 환경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했다. 지금도 수련생이 억울한 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있는데, 이는 모두 피의 교훈이다.”
구세력의 박해는 전방위적이다. 중국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박해 형식이 감옥과 고문인데, 구세력은 악독한 방식으로 수련생의 집착을 제거하려고 한다.
다른 공간의 사악이 대량으로 소멸되고 전반적인 박해 형세가 약화되면서 이 몇 년간 중국 수련생들이 납치되는 일은 줄었지만, 병업 난을 당하거나 심지어 그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일이 갈수록 많아졌는데, 그 본질은 여전히 사람마음을 버리지 않아 박해를 초래한 것이다.
어떤 이는 여러 해 동안 주요한 면에서 매우 잘했고 대법도 그의 수명을 연장해주었지만, 마지막 관문에서 해이해져서 수련에 마음을 쓰지 않고 갈등 앞에서 속인이 되어버려 결국 병업 형식의 박해로 세상을 떠났다.
해외에서는 항목에서 수련생들 간의 협력 중의 갈등, 병업이 난의 주요 방식이 됐다.
대법제자들은 서로 다른 천체대궁에서 왔고, 생명의 근원과 선천적 특징이 매우 크게 다르며, 거기에다 생생세세 인간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맡았고 현생의 인생 경험도 매우 다르다. 이런 생명들이 한데 모여 공동으로 협력해 대법의 항목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혔을 때의 반응과 처리 방식이 필연코 다르니, 그 속의 관념 충돌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대법은 우리에게 갈등에 부딪히면 자신을 수련하라고 가르친다. 갈등이 발생한 것은 바로 자신의 집착심이 드러나는 좋은 기회이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자신을 잘 수련하는 것이 근본이다. 항목 협력 중의 갈등이나 심지어 온갖 불공평, 억울함과 원통함은 본질적으로 모두 자신이 생생세세의 업력과 집착심으로 인해 생긴 것이니, 표면적인 원인은 중요하지 않으며, 어쩌면 그 원통함이 바로 사부님께서 장계취계(將計就計)해 자신을 제고시키시는 것일 수도 있다.
밀레르빠의 사부는 제자에게 업을 없애주기 위해 ‘악인’ 역할을 맡기를 주저하지 않고 약속도 지키지 않았는데, 제자를 시험하는 동시에 제자의 심성도 제고시켰다. 대법제자들 간의 갈등은 비록 많은 것이 구세력이 꼬투리를 잡아 틈을 탄 것이라 나쁜 일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대법제자들이 심성을 제고하는 좋은 일로 삼을 수도 있고, 사부님께서도 상대방의 사람마음과 부족함을 이용해 당사자인 제자와 방관하는 제자를 시험하고 성취시키실 수 있다. 구세력의 출발점과 목적이 무엇이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데, 이것은 아주 좋은 기회이자 묘한 방법 아닌가? 게다가 한 가지 배치로 관련된 모든 수련생을 다 수련시켰다.
사람은 미혹 속에 있어서 수련 중에 신선이 와서 우리에게 “오늘은 시험이니 여러분 모두 준비하세요. 이것이 답이니 외워서 그대로 베끼면 됩니다”라고 알려주지 않는다. 수련 중에는 시시각각 시험이 있고 곳곳에 함정이 있어서, 시시각각 법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지, 곳곳에서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할 수 있는지가 수련의 기초이자 오성이다. 해외의 그토록 많은 고학력, ‘엘리트’ 대법제자들은 수련 중의 오성도 마땅히 높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천지는 정법(正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네”(홍음3-번거로움)라고 지적해주셨다.
사람을 벗어나 더 높은 층차에서 문제를 보아야 수련 중에서 성숙해질 수 있다.
법을 잘 배우고 정념을 잘 발하여 그런 좋지 않은 사상과 부패된 물질을 제거하고, 자신과 더 많은 수련생이 이성적인 상태로 돌아오게 하면 사악은 자멸하고 적어도 인위적으로 자신과 여러분, 사부님께 번거로움을 만들어내지는 않을 것이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2/9/49052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2/9/4905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