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사부님의 신경문 ‘법난(法難)’이 나온 지 벌써 반년이 넘었다. 이 기간 새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나는 매우 보편적인 한 가지 현상을 보았다. 바로 수련생들이 마음속으로 모두 ‘사부님께서 지켜보고 계시니,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부님께서 나오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부님께서 나오시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큰 문제없다고 여기면서 관망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나의 견해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 이는 수련에 대한 큰 시험이므로, 사부님께서는 미혹을 풀어주지 않으실 것이다
작년 9월, 사부님께서 신경문 ‘인류사회는 왜 미혹(迷)의 사회인가’를 발표하셨다. 당시 몇 번 읽었지만 경문 내용과 현재 상황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점차 알게 됐다. 많은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답을 주시기를 기다리고, 현재 상황을 설명해주시기를 바라고 있는데, 사부님께서는 이 경문을 통해 우리에게 미혹은 타파할 수 없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미혹(迷)’은 중생을 구하고 천체와 뭇 우주를 구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미혹’에는 이렇게 중대한 원인이 있기에 결코 사람마음에 따라 미혹이 타파되지 않는다.”[인류사회는 왜 미혹(迷)의 사회인가]
그래서 나의 개인적인 이해로는, 이 기간 대법제자들은 사부님께서 답을 주시기만 바라지 말고, 정법 수련이 끝나기 전에 성숙해지도록 노력해야 하며, 사부님께서 답을 주시지 않는 상황에서 법을 스승으로 삼아 법을 수호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한다.
둘째, 이는 안일심, 의존심이다
다시 자세히 생각해보면, 왜 모두들 사부님께서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기다리고 있는가? 고생을 두려워하고, 사심(私心)과 사념(私念)이 있어서다. 그래서 사고하려 하지 않고, 자신은 그 속에 있지 않은 척하며, 원래 하던 대법 항목에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되고, 다른 일은 다른 사람들이 책임지면 되며, 사부님께서 지켜보시니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일반적인 난관은 이렇게 처리하면 되지만, 현재는 법난 중의 관건적인 단계이며, 이 난의 출현과 상태는 모든 수련생과 관련이 있다. 이 난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당신은 무엇을 했는가? 난이 나타났는데, 사부님께서 구체적인 답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모두 ‘내가 책임진 항목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고, 단체 법공부와 연공 환경도 그대로 있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수련 중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사부님께서 답을 주시기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사부님께서 수련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수련하는 것인가? 자신을 수련하지 않으면 어떻게 위덕을 세울 수 있겠는가? 마음고생을 하지 않으면 심성이 어떻게 제고될 수 있겠는가?
나는 1999년 4·25를 기억한다. 당시 중국 수련생들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두세 명씩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여 약 1만에서 3만 명이 모였다. 왜인가? 옳지 않은 일, 사람들을 망치는 일을 보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법을 수호했기 때문이다. 26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오히려 법으로 자신의 수련을 지도할 줄 모르게 된 것이 아닌가?
셋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적지 않은 수련생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나는 이 문제를 사고하는 과정에서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머리에 떠올랐다. “우리 많은 사람이 깊이(縱深) 생각해 보지 않는데,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다만 이상함을 느낄 뿐 아주 풀이 죽어서 공을 연마(煉)하지 못한다. 한 가지 ‘이상함’에 가로막혔는데, 이것은 바로 마(魔)가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시켜 당신을 교란하는 것이다.”(전법륜)
나의 이해로는, 수련하면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법에 따라 사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 적극적으로 문제를 분석해 보고 대법을 기점으로 삼아 본질을 꿰뚫어 봐야 하는 것이다.
또 일부 수련생은 ‘안일심’과 ‘정’ 때문에 분석하지 않고 사고하지 않으면서 이런 구실을 댄다.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많이 해서, 다들 심성이 표준에 도달하면 일이 지나갈 것이다.” 만약 우리가 20년 전부터, 사부님께서 말씀해주시기 전에 모두 이렇게 했다면, 오늘날 세계 국면은 달랐을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 그동안 우리는 정말 자신의 사람마음, 사람의 정, 사심, 사념, 자아를 제거하고, 정말 항목과 대법에 대해 책임졌는가?
나의 이해로는, 우리는 사부님께서 그동안 가르치신 방식에 따라 해야 한다.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보장하는 외, 대법제자들의 교류 또한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남겨주신 형식이다. 나는 우리가 현재 상황에 대해 정체(整體)적인 교류를 하여, 정체적으로 인식을 공유하며, 사람마다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경문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는 이 관건적인 때에 모든 대법제자들에게 보낸 엄중한 경고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수련생들은 모두 법을 수호해야 하지만, 반드시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자신을 단속해야 한다. 특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각에는 자신의 언행 중에 ‘사심과 사념’이 있는지 여부를 더 엄격하게 살펴봐야 한다. 어떤 사심과 사념이든 너무 강하면 모두 사악에게 틈을 타게 하고, 특무에게 선동당해 난법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나중에는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다.
사부님께서는 ‘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에서 지적하셨다. “여러분은 이것이 말후(末後)에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들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후에 세상 사람을 구하면서, 동시에 대법 내부도 청리(清理)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여기서 지적한 세 가지 사람, 수련하지 않는 자, 가짜로 수련하는 자, 성심껏 수련하지 않는 자는 아마 대법제자 중에 오랫동안 존재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뛰어난 인재고, 경력이 많고, 인맥이 많으며, 누구보다 능력 있고 식견이 있다고 생각하며, 나는 영웅이고 모든 대법제자가 나만 못하고, 나보다 똑똑하고 유능하지 않다는 등의 생각을 한다. 수련 중에 잘못은 피할 수 없지만, 매번 구실을 대어 회피한다면 그 한 고비를 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비마다 쌓이게 된다. 결국 어떤 이들은 사람들을 끌어모아 채팅방(4~5백 명 규모의 채팅방이었는데, 많은 수련생은 들어가 보고는 바로 탈퇴했다)을 만들거나, 각종 기존 채팅방(지역 채팅방 같은 곳)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과 투쟁 관념을 내세우고, 수련생들이 자신을 따르게 하려고 시도하는데 이르렀다.
사실 속인 중에서도 오만한 사람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 식견이 낮은 사람들은 잠시 잘나간다 해도 결국 모두 넘어지거나 심지어 일생을 완전히 망친다. 수련은 반드시 착실히 해야 한다. 고생하고, 안으로 찾고, 세상에 올 때의 서약을 실천하고, 끊임없이 법 속에서 자신을 깨끗이 씻어내야만 최종 원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모두 법 속에 있다. 속인 사회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교, 석사, 박사, 박사후 과정이 있다. 당신은 어느 단계에 머물고 싶다고 하지만, 학교가 몇 번이나 유급을 허락하겠는가? 당신이 초등학교가 편하다고 해서 영원히 초등학교에 다니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이성적이어야 한다. 갈등은 수련 제고의 기회이지 속인식 투쟁 수단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며, 속인 중에서 시비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방관자가 되어 혼잣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으로 법을 스승으로 삼고 관을 넘는 것이야말로 수련이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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