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근본 집착’은 특정한 함의가 있다

글/ 중국 쓰촨성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생들의 교류문장을 보면 자신이 내려놓기 어려운 ‘집착’을 흔히 ‘근본 집착’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정진요지2》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를 자세히 읽어보면,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근본 집착’은 특정한 함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세 번째 단락에서 아주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과학 관념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람 되는 도리에 부합한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불만에 부합한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부패한 인류의 도덕을 구원할 수 있다고 여기며,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이 자신의 병을 낫게 할 수 있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대법(大法)과 사부님이 바르다고 여기는 등등이다. 사람이 세상에서 이러한 마음을 갖고 아름다운 추구와 소원을 동경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안 된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상의 작용 하에서 대법(大法)의 문에 들어올 수는 있지만,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이후에 책을 보고 법을 배우며 정진하는 중에서 자신이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大法)에 들어왔는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동안 수련을 했지만, 아직도 당초 생각인지, 사람의 이 마음이 자신을 여기에 남아 있게 한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나의 제자로 여길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근본적인 집착심을 제거하지 않은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입문할 때 어떤 생각으로 대법(大法)에 들어왔는지” – 이 입문할 때의 생각이 바로 근본 집착이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입문할 때는 모두 수련과 법에 동화되어 인간을 초월하여 최종적으로 원만에 도달하고 새로운 우주로 돌아간다는 목적이 아닌, 사람의 생각에 기초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입문할 때의 그러한 속인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 붙들고 있다면(집착), 이 근본 집착이라는 기점 위에서 수련하게 된다. 한번 생각해보라, 기초가 맞지 않는다면 그 위에 지은 집이 견고하고 순정(純正)하며, 순조롭게 완성될 수 있을까?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2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2/3/49028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2/3/490289.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