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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이 나에게 아이를 교육하는 법을 가르쳐주다

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4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대법의 지도 아래 제 심성은 점차 향상됐고, 대법은 또한 제 지혜를 열어주어 어려서부터 응석받이로 자라 교육을 잘 모르던 제가 어떻게 아이를 교육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1. 선한 마음을 딸의 마음에 깊이 새기다

중국의 교육을 말하자면 누구나 머리를 아파하는 일입니다. 특히 중국공산당(중공)이 선전하는 투쟁철학과 무신론 사상은 중화문명과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인류의 도덕을 급격히 타락시켰습니다. 선생님과 학부모조차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못하니 어떻게 다음 세대를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중공 악당이 실시한 계획생육 정책으로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 아이만 낳을 수 있어서 아이는 응석을 부리게 됩니다. 젊은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손해 보거나 고생할까 봐 보배처럼 떠받들어 키웁니다. 어떤 아이들은 응석받이로 자라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해 하나같이 마성이 매우 커졌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어릴 때부터,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딸은 어렸을 때 비교적 활동적이었고 걸음마를 시작한 후에는 특히 장난이 심했습니다. 한번은 거실에서 놀다가 머리를 TV 캐비닛에 부딪쳐 아파서 울었습니다. 할머니는 TV 캐비닛을 두드리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녀를 아프게 하다니, 때려죽여버릴 거야!“ 딸도 작은 손을 들어 캐비닛을 두드리며 매우 통쾌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손녀를 아끼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렇게 가르치면 어릴 때부터 남을 비난하고 원망하며 복수하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이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닙니다. 노인이 이렇게 하면 아이를 잘못 교육하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노인을 책망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니 지혜롭게 처신하려 했습니다.

또 한번은 딸이 머리를 책상에 부딪쳤는데, 지난번에 할머니가 가르쳐준 것을 기억하고는 곧바로 손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꾸짖었습니다. 저는 상황을 보고 다가가서 말했습니다. “아가야, 책상은 여기 가만히 있었어. 네가 머리를 책상에 부딪힌 거야. 네가 부딪혔으니 책상도 아프지 않을까? 책상도 슬퍼서 울고 있지 않을까?” 딸은 제 말을 진지하게 듣고 생각하더니 “네”하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계속 말했습니다. “그럼 책상을 달래주고 미안하다고 말해주렴. 그러면 책상도 괜찮아지고 너를 탓하지 않을 거야. 그러면 너도 아프지 않을 거야.” 딸은 앳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책상을 향해 “미안해”라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머리가 아프냐고 물었더니 아프지 않다고 하며 마당으로 뛰어나가 놀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대법이 준 지혜로 딸을 인도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때의 그 훈훈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백지와 같아서 무엇을 담으면 그대로 됩니다. 저는 선한 생각을 딸의 마음에 깊이 새겨두었습니다. 커서 일을 만나면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고려할 것이고, 정직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려움과 갈등을 만나면 문제를 적절히 해결할 것입니다.

2. 사람의 관념을 바꾸다: ‘고생하는 것은 좋은 일’

아이를 잘 이끌고 교육하려면 자신과 아이가 고생을 두려워하는 관념을 바꿔야 합니다. 저는 정성껏 딸을 돌보는 동시에 의식적으로 딸에게 고생을 견디는 능력을 단련시켰습니다. 처음 딸이 넘어진 것을 봤을 때부터 일부러 일으켜주지 않고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아이는 제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스스로 일어섰습니다. 한번은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고 피가 났으며 상처에 모래가 묻었습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이는 아픔을 참으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웃으며 일어나 아이들과 계속 놀았습니다. 저는 아이 아빠와 할아버지, 할머니께 미리 말씀드려서 아이 교육에 협조를 부탁드렸습니다. 딸이 넘어진 것을 보면 아무도 일으켜주지 말아야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립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이를 단련시키기 위해 저는 딸이 할 수 있는 간단한 집안일을 시켰습니다. 밥을 먹고 그릇과 수저 치우기, 설거지, 빨래 등을 시켰습니다. 때로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설거지해요, 설거지해요…”라고 노래를 부르곤 했습니다. 딸의 즐거운 노랫소리를 들으니 매우 기뻤습니다. 딸이 중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방학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는 학교가 집에서 멀어서 많은 학부모들이 아침저녁으로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왔지만, 우리 딸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비바람과 혹한, 혹서를 가리지 않고 혼자서 스쿠터를 타고 등교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생활 속의 작은 일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며, 수련 중에 끊임없이 저와 아이를 바로잡았습니다. 딸은 점차 용감하게 맞서고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양보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3. 대법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고, 나는 딸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오빠, 언니에게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제멋대로이고 독단적이며 횡포를 부리고, 안하무인에다 남을 용서하지 않고 질투심이 극도로 강한 성격이 됐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제가 얼마나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람인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현대인의 시비 기준이 모두 왜곡됐기에 수련하기 전까지 저는 계속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대법을 배운 후에야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眞·善·忍)으로 자신을 가늠해보고 나서야 제 도덕이 위험한 경계선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대법 수련을 하면서 저는 점차 공인된 좋은 사람이 됐습니다.

딸이 자라나면서 접하는 사람과 사물도 많아졌습니다. 물욕이 넘쳐나고 음란물, 도박, 마약이 범람하며 가짜 상품이 도처에 널려있고 연예인 추종, 동성애, 조기 연애, 기이한 옷차림, 게임 중독, 거짓말이 난무하는 사회의 큰 오염 속에서 몇 사람이나 전통을 지키며 물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저는 딸이 중공의 사악한 정치로 인한 사회 혼란에 오염될까 봐 두려워 스트레스가 컸습니다. 어떻게 계속 인도해야 아이가 올바른 인생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저는 혼란스럽기도 하고 소극적이기도 했으며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중학생이 된 아이를 지금 방치하면 커서는 더욱 바로잡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오직 대법만이 제 지혜를 열어줄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끊임없이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과정에서 저는 아이 교육 면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 더욱 이성적이고 성숙해졌습니다. 이에 따라 딸에게도 더 많고 더 높은 요구를 하게 됐습니다.

1) 마음 속에 대법을 담고 안으로 찾는 법을 배우다

저는 임신했을 때부터 이미 대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한 달이 되자 저는 딸을 데리고 법공부 팀에 갔습니다. 어른들이 법을 읽는 동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잤고, 깨어나서도 조용히 듣기만 했지 울거나 보채지 않았습니다. 딸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 저는 사부님의 ‘홍음’을 외우게 하고 사부님의 설법 저작을 읽게 했습니다. 우주의 특성인 진선인이 딸의 마음속에 똑같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비록 딸이 진정한 수련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여러 차례 그녀를 보호해주셨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딸은 크고 작은 몇 번의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하교 길에 스쿠터를 타고 가다가 급하게 코너를 도는 승용차에 부딪혀 사람이 통째로 날아갔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대법 사부님의 보호 아래 아이는 위험했지만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딸이 어디가 불편하거나 두통이 있거나 열이 나면 저는 먼저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묵념하게 하거나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듣게 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을지 의견을 물었는데, 흔히 제가 약을 사오기도 전에 증상이 호전되거나 사라졌습니다. 대법의 보호를 받아 딸은 어릴 때부터 자랄 때까지 거의 병원에 가지 않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이미 딸의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저는 딸이 사부님 말씀대로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도록 인도했습니다. 한번은 딸의 친구가 하교할 때 발을 삐어서 절뚝거리며 걸었습니다. 딸이 친구를 부축해 집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아래층에 도착해서 친구가 어떻게 올라갈지 걱정하자 딸이 말했습니다. “내가 업어줄게.” 친구는 좀 통통했는데 딸이 등에 업을 때 가슴이 아팠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친구를 집에 데려다주고 헤어질 때 친구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딸이 돌아와서 이 일을 말했을 때 저는 딸을 칭찬했습니다. 남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고 선을 행하고 덕을 쌓는 것이니 감사 인사를 하든 안 하든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다음 날 점심때 딸이 하교 후 집에 와서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친구를 집에 데려다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고 또 말했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저는 밥하느라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하자 딸이 가슴이 점점 더 아프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함께 안으로 찾아보자. 친구를 원망하는 마음, 일을 하고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 것은 아닐까?” 딸이 생각해보더니 말했습니다. “맞아요, 엄마. 바로 그거예요. 제가 그 친구를 부축해서 집으로 데려다주고 그렇게 힘들게 2층까지 업어다줬는데 고맙다는 말도 안 했어요. 저는 그 친구가 꽤 원망스러웠어요. 음, 마음속에는 정말로 좋은 일을 하고 보답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네요!” 말이 끝나자마자 딸이 놀라며 소리쳤습니다. “엄마, 제 가슴이 안 아파요. 나았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자. 네가 올바르게 했으니 사부님께서 너를 도와 업력을 없애주신 거야!”

딸의 가슴 통증은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재발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은 이렇게 신기합니다! 딸은 대법의 비범함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안으로 자신을 찾는 법도 배웠습니다.

2) 남녀 간 거리두기

요즘 아이들은 모두 조숙해서 저는 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남녀가 물건을 직접 주고받지 않는다는 도리를 가르쳐주고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한번은 딸의 중학교 남자 짝꿍이 딸에게 음란한 말을 했습니다. 딸이 집에 와서 말하자 저는 이 일이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딸에게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계속 이렇게 가다가는 그 남학생도 망가질 수도 있었습니다(많은 남학생이 음란물을 본 후 범죄에 가담하거나 자신의 몸에 큰 해를 입히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이 소년에 대한 책임감으로 저는 담임 선생님께 전화해서 딸의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했고, 딸의 짝꿍이 음란물을 보고 있다고 완곡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마침 이 소년의 학부모를 알고 계셨고, 그들이 함께 노력하여 그가 계속 음란물을 보는 것을 막았습니다. 소년은 그때부터 올바른 길을 가기 시작했고 학업 성적도 향상됐습니다. 처음에 그 남학생은 제가 뒤에서 고자질했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제 선의를 이해하고 감사해했으며 제 딸과도 좋은 친구가 됐습니다.

올바른 지도 아래 딸은 남학생과 거리를 두는 법을 알게 됐고, 학교 다닐 때는 조기 연애를 하지 않았으며 직장에 다닌 후에야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습니다.

3)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자중하며, 좋은 소통을 하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살생하지 말라고 타이르셨고, 또한 “자살은 죄가 있는 것이다”(시드니법회 설법)라는 법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자주 딸에게 살생하지 말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자중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동물과 생명이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함부로 꽃을 꺾지 말며, 거짓말을 하지 말고 욕을 하지 말며 게임을 하지 말고, 노인과 선생님을 공경하며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또 딸에게 어떤 일이든 반드시 아빠 엄마와 상의하고 혼자서 마음에 담아두고 견디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가정은 서로 소통을 잘하고 격려하고 지지하는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딸도 극단적이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의견과 충고를 기꺼이 듣고, 사람들과 접할 때 어른을 공경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모든 것에 대해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 됐습니다.

파룬불법(法輪佛法)의 지도 아래 딸은 흔히 말하는 청소년기와 반항기를 평온하게 보냈습니다.

4. 명리를 담담히 여기고 즐겁고 밝게 홀가분하게 나아가다

중공 악당의 독재 통치와 고압 통제 아래 사회 각 방면이 매우 혼란스러워졌고 교육 영역은 더욱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사가 여학생을 추행하고, 고위 관리들이 어린이와 여아를 농락하고, 여대생들이 스폰을 받고, 고액의 과외비를 받고, 도덕적으로 협박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진선인을 증오하게 만들고, 학생들을 세뇌시키고 투쟁철학을 주입하고, 가짜 학력과 가짜 졸업장, 표절, 부정행위 등 문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명리(명예와 이익)를 위해 학생의 성적과 석차만 중시하고,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장차 좋은 직장을 구하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합니다. 교사는 학생을 압박하고 부모는 자녀를 압박하며 학생들끼리는 서로 비교하는데, 이런 고압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우울증에 걸렸는지 모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자살하는 학생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교육이 실패한 것입니다.

제 딸은 학교에서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부정행위를 하거나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지 않았습니다. 딸의 공부를 지도하는 면에서 저는 심성을 잘 파악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습니다. 딸은 어렸을 때 특정 과목이 약했는데 특히 수학을 잘 못해서 시계의 시간도 읽지 못했고 응용문제는 더욱 엉망이었습니다. 딸이 수학 성적표를 가져올 때마다 그 가련한 점수를 보고 저는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야단을 쳤습니다. 저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간단한 문제를 풀지 못하는 걸까?’ 시간을 내서 수학 문제를 가르쳐주다가 설명하다 보면 화가 나서 아이가 멍청하다고 원망했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어렸을 때는 두루 잘하고 성적도 꽤 좋았는데 너는 왜 나를 닮지 않았니!’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짜증을 낼수록 딸은 더 못 따라왔고, 제가 화를 내면 딸은 울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이니 딸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되고 이성적이어야 했습니다. 저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학생으로서 네 임무는 공부를 잘하는 거야. 배워도 모르는 건 네 탓을 하지 않을 거야. 그건 네가 이 방면의 총명함과 재능이 부족한 거니까. 하지만 너는 반드시 진지하게 대하고 노력해야 해. 이것도 학생으로서 좋은 사람이 되는 기준이야.” 저는 경험 많은 수학 선생님을 찾아 일대일로 지도하게 했고 수학 성적이 조금 나아졌지만 며칠 가지 못했습니다.

딸은 점점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약간의 열등감이 생겨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게 됐습니다. 딸이 이런 모습을 보니 제가 어디서 잘못한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딸의 성적이 좋지 않아 마음이 불편한 것은 제가 속인처럼 석차를 중시하는 건 아닐까요? 저는 마침내 마음속에 숨겨진 바람을 발견했습니다. 딸이 장차 명문대학에 합격해서 자신을 빛내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바로 명리심이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까?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고 내려놓았습니다.

사람마다 운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제 생각에는 온 인간 세상이 모두 신이 안배한 것 같았습니다. 똑같이 학교에 다녀도 모두가 칭화대나 베이징대에 합격할 수는 없고, 모두가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는 없으며, 모두가 엔지니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집을 짓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거리를 쓸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며, 가정부와 경비원도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옷과 채소를 파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사회의 각 업종에 모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늘은 공평해서 한 문을 닫으면 창문을 하나 열어줍니다. 딸이 미래에 대학에 합격할 수 있을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저는 알 수 없고 좌우할 수도 없으니 그냥 자연스럽게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명리심을 담담히 여기고 집착을 내려놓은 뒤 더 이상 딸에게 압박을 주지 않았고, 그녀는 홀가분해지고 더욱 밝아졌으며 마음가짐도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후 그녀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고등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분명히 수학, 물리, 화학을 잘 못하는데도 상식을 깨고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딸이 집에 와서 저와 상의할 때 저는 그녀의 선택을 지지했습니다. 마음속에 법이 있었기에 저는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고,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서광이 비칠 것이라 믿었습니다. 고등학교는 비교적 힘든 3년이었고 저는 계속 그녀를 격려했습니다. 딸은 고등학교 일반 이과반에서 석차가 꼴찌였지만 그래도 용감하게 맞서며 홀가분하게 전진했고 마침내 한 직할시에서 대학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현재 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딸의 학업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혼란한 세상, 도덕적 기준이 뒤틀린 시대에 진흙 속에서도 물들지 않았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사실 아이를 교육하는 것은 예술이자 거대한 프로젝트로, 부모는 확실히 많은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비록 고생스럽고 힘들지만, 저는 자녀를 응석받이로 키우고 지나치게 사랑하고 방임하는 부모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이 번거롭지 않고 마음 편하려고 휴대폰으로 아이를 달래지 마시고, 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마시며, 그들이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게 하지 마시고, 이익만 중시하게 하지 마시며, 향락을 탐하게 하지 마시고, 고생을 두려워하게 하지 마세요… 그들이 마음속에 선한 생각을 품고 사회와 타인에게 유익하며 좋고 나쁨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미래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일생의 목적이자 기대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모든 학부모님들께 ‘전법륜’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대법이 주시는 것은 여러분의 일생에 유익할 것입니다!

이상이 바로 제가 대법의 지도 아래에서 어떻게 딸을 교육해야 하는지를 배운 체득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6/4717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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