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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몇 개와 세제 한 봉지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저는 중국공산당(중공)에 의해 부당하게 4년형을 선고받고 성(省) 여자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몇 년 동안, 저는 대법제자다운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죄수를 대했고, 저를 박해했던 죄수들과 감옥경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동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작은 이야기 두 가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군고구마 몇 개

북방의 겨울 날씨는 매우 추웠고, 제가 불법 구금된 도시는 영하 20도 이상이었습니다. 2010년 1월 어느 토요일 아침, 당직 감옥경찰이 출근하자마자 죄수 반장이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며 반장(수감자들은 감옥경찰을 반장이라고 불렀음)이 저를 찾는다고 했습니다. 제가 속한 작업반의 반장은 장(張) 씨로, 경찰학교를 갓 졸업한 20대 초반의 여성이었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재봉틀들 사이를 지나 감옥경찰 사무실 문 앞에 와서 노크를 하고 들어갔습니다. 사무실에는 장 반장 혼자뿐이었습니다.

장 반장은 곧바로 가방에서 아직 따뜻한 군고구마 7, 8개를 꺼내며 “빨리 드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설명했습니다. “어젯밤에 고구마 사는 걸 깜빡했어요. 10시가 넘어서야 생각이 나서 내려가서 샀죠. 제가 방을 세 내어 살고 있는데, 계단이 어두컴컴해서 좀 무서웠어요. 다행히 고구마 파는 사람이 아직 안 갔더라고요. 사서 이불 속에 넣어뒀어요, 식을까 봐요.” 저는 감사하다고 하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수감된 이후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음식이었습니다.

감옥경찰이 수감자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위반 행위였지만, 장 반장은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게 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 수감된 후 저는 계속해서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당했고, 각종 고문이 번갈아 가며 이어졌습니다. 수갑으로 매달기, 전기봉, 뺨 때리기, 집단 구타, 화장실 가는 것과 세수도 못하게 하는 등이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죄수들과 경찰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이 아무리 저지하려 해도 계속 알렸습니다.

제가 수갑으로 매달려 고문당하던 어느 날 밤, 수갑이 제 왼쪽 손목 깊숙이 파고들었고, 이미 수십 시간 동안 계속 매달려 있었습니다. 왼쪽 반신에 감각이 없어졌음을 느꼈습니다. 아마도 왼팔이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옆에는 살인범 두 명이 저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살인범이 다른 살인범에게 말했습니다. “수갑이 너무 꽉 조였어. 장 반장한테 가서 좀 풀어준다고 말하고 다시 채우자.” 그래서 그녀가 반장을 찾으러 갔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돌아와서 제게 말했습니다. “장 반장이 자고 있어. 방금 잠들었대. 다 네가 ‘전향’을 안 해서 그래. 장 반장은 매일 당직서느라 잠도 못 자.”

이 말을 듣자 마음이 갑자기 아팠습니다. 이 장 반장이 제 딸과 비슷한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만약 제 딸이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불면증을 앓았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낮에는 기운이 없었는데,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반장이 편히 잘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는 일분일초를 견뎌냈습니다. 속담에 ‘하루가 한 해 같다’고 하지만, 당시 저는 ‘일 초가 한 해 같았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의 자비는 천지신불(天地神佛)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새벽 2시가 넘어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 왼손의 수갑이 ‘딸깍’ 소리를 내며 저절로 풀렸고, 왼손이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순간 온몸이 매우 편안해졌고, 왼쪽 반신의 피가 다시 통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왼쪽 수갑이 풀렸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일 수 있었고, 순간 오른쪽 몸도 매우 편안해져서 피가 통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 10분 후, 저를 감시하던 죄수가 수갑이 풀린 것을 발견하고 매우 놀랐습니다. 그 후 저는 다시 매달렸지만, 이 잠시 동안의 완화로 인해 제 양팔은 불구가 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죄수들이 제 말을 장 반장에게 전했고, 장 반장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습니다. 그녀는 죄수들에게 말했습니다. “○○가 하루하루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보냈는지 봐요. 빨리 끝냅시다.” 특히 제가 끊임없이 진상을 알리면서 장 반장은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몰래 “저는 당신을 가장 존경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그 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제가 속한 작업반 반장이었습니다. 그녀가 저에게 군고구마를 사주기 전날은 금요일이었는데, 퇴근할 때 그녀가 제 곁으로 와서 목소리를 낮추어 살짝 물었습니다. “뭐 먹고 싶으세요?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예요?” 저는 그때 당황했습니다. 여기서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즉흥적으로 말했습니다. “군고구마가 먹고 싶어요.” 그 결과 다음날 아침에 앞서 말씀드린 장면이 벌어졌습니다.

이 장 반장은 감옥에 갇힌 파룬궁수련생들이 모두 매우 선량한 것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아, 농촌에 사는 매우 어려운 한 수련생의 가정에 천 위안을 부쳐주기도 했습니다. 이 20대의 젊은 경찰은 우리 파룬궁수련생들을 잘 대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을 받아 다른 감방의 과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세제 한 봉지

2011년 여름, 저는 감옥 내 수련생들과의 대화가 막히자 단식과 단수로 박해에 항의했고, 5일 후 감옥 병원으로 끌려가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습니다. 사기범 천(陳) 씨가 감옥경찰의 지시로 저에게 음식을 주입하도록 지정됐고, 저는 단호히 저항하며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지시 하에 이 천 씨는 병원에 입원해 있던 다른 죄수와 함께 제 사지를 철제 침대 네 모서리에 밧줄로 묶었습니다. 천 씨는 매우 악랄했고, 그녀는 먼저 제 사지를 힘껏 잡아당긴 다음 밧줄로 세게 조여 한 달 동안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음식 주입 중에 천 씨는 여러 차례 저를 때리고 욕설을 퍼부었으며, 병 치료차 입원해 있던 또 다른 악랄한 죄수와 함께 제 침구를 버려 저를 딱딱한 나무판자 위에 똑바로 눕게 했습니다. 천 씨는 또한 대놓고 제 계좌의 돈으로 물건을 사서 200여 위안을 썼습니다.

이번 강제 음식물 주입으로 제 몸에 심각한 손상이 생겨 오랫동안 양팔의 기능을 잃었고, 누우면 일어날 수 없고 쭈그리고 앉으면 일어설 수 없어서 일상생활도 문제가 됐습니다. 나중에야 서서히 일부 기능이 회복됐습니다.

어느 날, 저는 천 씨의 가족이 반년 동안 면회를 오지 않았고 그녀의 계좌에도 돈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죄수들은 뒤에서 이런저런 말들을 했습니다. “그녀는 재범이라 가족들이 돌보지 않고, 면회도 오지 않고, 돈도 보내주지 않지” 등등이었습니다. 일부 죄수들은 심지어 천 씨를 조롱하고 비웃으며 구경거리로 삼았습니다. 때마침 여름이라 그녀는 아마도 세제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낮에 감옥 작업장에서 일하면 모두가 땀을 비 오듯 흘리니 매일 빨래를 해야 했습니다.

저는 순간 그녀의 악행을 모두 잊었고, 당시 저도 미개봉 세제 한 봉지밖에 없었지만 망설임 없이 천 씨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날 점심때 천 씨가 제 옆을 지나갈 때, 저는 바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제게 세제 한 봉지가 남았는데 가져가세요.” 천 씨는 즉시 얼굴이 붉어지며 서둘러 말했습니다. “됐어요, 됐어요.”

‘바오자’(包夾,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고 ‘전향’에 참여하는 죄수)의 제지로 이 세제는 결국 천 씨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천 씨는 제가 진심으로 그녀에게 주려 했다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그녀는 저를 만날 때마다 먼저 인사를 건넸고, 자주 다른 죄수들에게 제 안부를 물으며 매우 관심을 보였습니다.

2011년 겨울, 제가 다시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을 했을 때, 감옥경찰이 천 씨를 찾아가 다시 저에게 음식을 주입하라며 감형을 약속했지만, 천 씨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감옥에서 어떤 죄수들은 감형을 위해 다른 사람을 억압했고, 어떤 죄수들은 마음이 괴롭고 비관적이고 우울해했습니다. 저는 대법에서 이해한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로 그들을 이해시켰고, 전통문화와 인과응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들은 제 말을 듣기를 매우 좋아했고 저와 가까이 지내기를 매우 원했습니다. 감옥에서 어떤 죄수들은 매우 어려워서 계좌에 돈이 거의 없었는데, 매번 제 가족들이 사다준 식품이나 명절 때 감옥에서 주문을 허락한 식품을 그들과 나누었고, 많은 경우 저는 모두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생활용품도 주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마음속 이야기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제가 부당한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가던 날, 제가 있던 작업반의 죄수들은 모두 아쉬워했고, 많은 이들의 눈에 눈물이 고였으며, 어떤 이들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 언니, 당신이 가면 제 속마음을 누구에게 말하나요?”라고 했고, 어떤 이는 “○○ 아주머니, 저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출소하면 찾아뵙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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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4/48342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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