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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과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나날이 성숙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 집단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고, 대법제자는 개인 수련에서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구도(救度衆生)의 정법 수련으로 들어섰습니다. 수련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인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1. 진지하게 법공부하여 두려운 마음을 돌파하다

저는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베이징에 청원하러 간 이유로 중공 악당으로부터 2년간의 강제노동을 처분받았습니다.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한 저는 불법적으로 형기가 2개월 연장됐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저는 경찰과 죄수들의 구타, 쪼그려 앉히기, 서있기, 수면 박탈, 매달기, 강제 음식물 주입, 독방 감금 등 각종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후 두려운 마음이 매우 심했습니다.

2년이 넘는 강제노동 박해를 받은 데다 법공부가 따라가지 못해 심성 제고가 더뎠고, 쟁투심과 원망, 두려움이 심했습니다. 저는 다른 일은 잠시 접어두고 서두르지 않은 채 마음을 가라앉히고 법공부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3시 45분경에 새벽 연공을 시작했고, 다섯 가지 공법을 단번에 했습니다.

아침 식사와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저는 소파에 바로 앉아 진지하게 법공부에 집중했습니다. 때로는 배우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때로는 온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벅차올랐습니다. 온몸과 마음이 사부님의 크신 자비에 휩싸였습니다. 매일 법을 공부할 때마다 대법의 무한한 힘에 푹 빠져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두 달 내내 저는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법을 공부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제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나가서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사람을 구하러 나가려 하니 두려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어느 날 오후, 저는 가족 수련생과 함께 진상 자료를 9부만 가지고 나와서 인연 있는 사람에게 직접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양쪽에 밭이 있는 큰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주변에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멀리까지 걸었으나 자료를 한 부도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는데 마침내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제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가 제 옆을 지나갈 때까지 저는 그에게 자료를 줄 용기가 없었습니다. 저는 매우 우울했고 제가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는데 가족이 “보세요, 뒤에서 누가 오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정말로 누군가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재빨리 진상 자료를 바닥에 놓고 ‘그가 그것을 집어서 읽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자료를 내려놓은 후, 재빨리 가족과 함께 멀리 걸어갔습니다. 가족이 몰래 뒤돌아보니 그 남자가 정말 몸을 굽혀 자료를 줍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작은 마을에 도착한 후 우리는 많은 힘을 들여 두 부를 배포했습니다. 과정에서 마을 주민의 질문을 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가 있었기에 우리는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진상 자료를 세 부만 나눠줄 수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심신이 지쳤으나 이 과정에서 많은 두려움이 없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고 걸어 나온 것입니다. 그 이후로 진상 자료를 배포하는 것이 제가 진상을 알리는 주요 방법이 됐습니다.

2. 사악과 박해를 폭로하여 사악이 두려움에 떨다

사부님의 정법 노정이 끊임없이 추진되면서 세인이 진상을 알아가는 것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가 점점 줄어들었고, 우리 지역 수련생들도 점차 나서서 현지의 법을 실증하는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어느 날 오전, 두 명의 수련생이 시장에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나눠주다가 현지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5~6시간 동안 불법적으로 억류됐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이 소식을 전해주자마자 우리는 곧바로 사악을 해체하고 수련생을 구출하기 위한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두 수련생의 정념도 매우 강했고, 사부님의 보호와 수련생들의 정념 가지(加持)로 그날 오후에 가족들이 그들을 무사히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겨냥해 우리는 신속하게 박해를 폭로하는 짧은 기사를 작성하여 수련생들에게 배포하게 했습니다. 기관 가족 아파트 단지와 공안국 인근에도 일부를 배포했는데, 비록 수량은 적었지만 사악을 억제하는 데 상당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우리 지역 공안국의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은 작은 두목 격이었는데 매우 오만방자했습니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로 그는 사악한 박해 정책에 적극 협조했고 현지 수련생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는 자주 사람들을 이끌고 잠복 감시와 납치에 가담했으며, 소란을 피우고 가택수색을 했고, 수련생들을 갈취하며 현지의 수련 환경을 어지럽히고 파괴했습니다. 수련생들이 그에게 진상을 알리려 했지만 그는 전혀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악물고 말했습니다. “나는 업보 따위는 두렵지 않아. 파룬궁이 누명을 벗게 되면 내가 감옥에 가지.”

한번은 수련생들이 함께 교류하면서 박해가 시작된 이후 많은 수련생들이 현지 공안국과 ‘610’으로부터 여러 가지 명목으로 돈을 갈취당하고 벌금을 강요당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일들은 수련생들에게 심각한 경제적 박해를 초래했고, 일부 수련생들은 ‘삼서’(3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도록 강요당했습니다. 이때 외지 수련생이 악인들의 사악한 행위를 폭로하여 그들이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것 또한 그들을 구하는 한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통계 자료를 누가 수집해야 할까요? 수련생들은 모두 침묵했습니다. 그 당시는 외부의 압박이 매우 심했고 수련생들도 겨우 걸어 나온 상태였으며, 일부 수련생들은 이미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박해를 당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이 책임이 제게 있다고 느껴 자원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저와 동행하겠다고 나서서 매우 기뻤습니다. 우리는 시간을 다투어 하루 반나절 만에 경제적 박해를 당한 수련생들을 거의 다 방문했고, 납치, 강제노동, 구류, 가택수색을 당한 수련생들의 인원 통계도 마쳤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사존의 가호를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적적으로 수련생의 집을 찾을 수 있었고, 마치 우리의 방문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모두가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외지 수련생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현지의 사악한 행위들을 폭로하는 진상 소책자를 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여건이 제한적이어서 책자가 다소 조촐했지만, 사악을 억제하는 데는 매우 큰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악한 세력들은 상당히 조심스러워졌고, 우리 지역 수련생들이 앞으로 나서서 법을 실증하는 데 큰 격려가 됐습니다.

3. 사람을 구하는 길에는 사부님의 보호가 있다

법을 실증하는 길에서 저는 무지했던 데서 점차 알게 되었고, 서툴렀던 데서 차츰 안정감을 찾아갔습니다. 저의 수련과 법 실증의 길은 사존의 도움으로 날로 성숙해졌습니다. 우리는 현지와 외지를 막론하고 여러 차례 자료를 배포했는데, 위대하신 사존의 보호 아래 매번 순조롭게 배포를 마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진상 자료를 현지에 한번 전체적으로 배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구역을 나누어 2인 1조로 각 구역을 맡았는데, 우리 지역은 시골이라 대부분 단층집이고 개를 키우는 집이 많았습니다. 저와 수련생이 절반쯤 배포했을 때 어느 구역에서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밤이라 사람들이 일찍 잠자리에 든 터라 주변이 매우 조용해서 그 소리가 비교적 또렷이 들렸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 짐작하고 발걸음을 재촉해 최대한 빨리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자 했습니다.

배포하다 길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우리와 30미터 떨어진 곳에서 탐조등과 같은 강한 빛줄기가 비쳐왔습니다. 속으로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며 수련생과 함께 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두 사람이 서 있었고, 그중 한 명이 어깨에 매우 큰 손전등을 메고 있었습니다. 평생 처음 보는 크기의 손전등이었고, 그 강한 빛이 바로 여기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 듯했고, 우리는 그들이 경찰일 것이라 짐작했습니다. 이때 저와 수련생은 각자 10여 부의 자료를 들고 있었는데, 우리는 서둘러 각자 맡은 배포를 마쳤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덕분에 우리 모두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상을 모르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신고하여 공안국과 파출소 경찰이 모두 출동한 상황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다행히 위험한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가족과 함께 자료를 배포하러 나갔는데, 가족이 너무나 신중하게 문틈으로 자료를 넣느라 속도가 매우 더뎠습니다. 저는 빠르게 배포하고는 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날은 집에 도착해서 외투도 벗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610’ 사무실 주임이 전화를 걸어와 제가 집에 있는지 물었고, 제가 직접 전화를 받자 몇 마디 얼버무리더니 별일 없다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가 제 소재를 확인하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위험한 상황을 해결해 주신 사부님의 지혜로운 안배에 감사드립니다. 이후 자아반성을 통해 제게 조급함, 타인을 업신여기는 마음, 두려움 등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외딴 농촌 지역에 여러 차례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당시에는 차량이 없어서 모든 곳을 도보로 다녀야 했고, 마을 간 거리가 멀었으며 어떤 마을은 너무 작아서 가져간 자료를 한 마을에서 다 배포할 수 없어 여러 마을을 돌아다녀야 했기에 매번 먼 거리를 걸어야 했습니다. 빠르게 다녀와도 거의 밤을 새워야 했고, 때로는 밤새 걸어 집에 도착하면 동이 틀 무렵이었습니다. 매우 고된 일이었지만, 중생들이 구원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처음 외딴 시골에 자료를 배포하러 간 것은 겨울이었습니다. 길 양옆으로는 들판이 있었고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끔 차가 지나갈 때면 헤드라이트 불빛이 눈부시게 비췄습니다. 우리가 눈 덮인 길을 걸을 때, 신기하게도 우리의 발밑은 밝게 비춰졌고 마치 ‘풍화륜(風火輪, 봉신연의에서 나타가 사용한 둥글고 불이 나는 바퀴 모양 무기)’을 밟고 가는 것처럼 발밑 땅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우리는 무척 기뻐하며 제자들을 격려해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풍화륜’은 우리를 목적지까지 순조롭게 인도했고, 우리는 각자 배포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몇 부를 배포하던 중 커다란 개가 달려나와 저는 깜짝 놀라 심장이 빨리 뛰고 다리에 힘이 빠졌습니다. 제가 급히 앞으로 걸어갔는데도 개는 짖지 않고 계속 따라왔습니다. 개의 순한 모습을 보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저는 개에게 말했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고 어서 돌아가렴, 나를 따라오지 말아라.” 개는 마치 알아들은 듯 꼬리를 흔들며 되돌아갔습니다. 저는 두 손을 모아 제자를 보호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우리는 신속히 자료를 배포하고, 사부님께서 주신 ‘풍화륜’을 밟고 무사히 귀가했습니다.

또 한번은 설날 전날이었는데, 평소보다 더 먼 곳으로 가서 자료도 많이 가져가 각자 큰 가방을 하나씩 메고 갔습니다. 해가 지자마자 출발했는데, 특별한 목적지도 없었고 길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손전등으로 길을 비췄지만 광활한 들판에서는 그 빛이 매우 희미했습니다. 우리는 들판의 작은 길을 따라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길이 고르지 않아 우리는 터벅터벅 힘겹게 걸었습니다.

때로는 길이 끊긴 곳도 있어서 들판을 가로질러 가야 했습니다. 가장 걷기 힘든 곳은 옥수수밭이었습니다. 옥수수를 수확한 뒤에도 뿌리가 땅에 남아있어 옥수수 그루터기가 두둑 위로 높이 솟아있어 자주 발이 걸렸고, 고랑에 쌓인 눈을 밟으면 푹푹 빠져 걷기가 무척 힘들었습니다. 가끔 얼음과 눈이 있는 곳에서는 매우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질 뻔했고, 흙으로 만든 둑을 만나면 기어서 넘어야 했습니다.

마침내 한 마을에 도착해서 각자 자료를 배포하러 갔습니다. 사부님의 보호 아래 수련생들은 많은 경험을 쌓았고 심성도 제고되어 그때 우리는 아주 잘 협력했습니다. 한 마을에서 신속히 배포를 마치고 곧바로 다음 마을로 이동해 거기서도 빠르게 배포를 완료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밤새도록 다섯 개 마을을 돌았습니다. 우리가 배포한 진상 자료는 모두 영롱한 빛을 발했고, 천으로 된 가방을 통해서도 그 빛이 비쳐 보였습니다.

처음 수련생의 가방에서 나오는 밝은 빛을 봤을 때, 저는 그에게 손전등이 켜져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아닙니다! 이것은 진상 자료에서 나오는 빛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여러 가지 색채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빛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제 가방 속의 진상 자료도 빛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수련생들 모두 이 신기한 광경을 목격하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격려하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아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진상 자료까지 모두 배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동이 틀 무렵이었고,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얼마나 걸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모자와 목도리, 옷깃이 모두 서리로 하얗게 덮여 우리는 마치 흰 수염을 기른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무척 피곤했지만, 온돌방에 누워 쉬면서 중생들이 설날을 앞두고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게 되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30분간 휴식을 취한 후 새벽 연공을 시작했습니다. 다섯 가지 공법을 모두 연마한 후에는 온몸이 가뿐해졌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부님의 요구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도 끊임없이 정진하여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어긋나지 않도록 사람의 마음(人心)과 사람의 생각(人念), 사람의 정(人情)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고 착실히 수련하는 진정한 대법제자가 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20/4880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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