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길을 잘못 들어도 바로잡으니 사부님께서 날 버리지 않으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로 여든 살이 되었습니다. 2023년 9월 1일,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신경문 ‘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가 발표되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저는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반드시 외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후 매번 외울 때마다 감사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련생들과 함께 지난 20여 년간의 수련 길을 되돌아보면서,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시고 모든 고비를 넘게 해주신 일들을 회상할 때마다 항상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이 이를 글로 써보라고 격려해주었지만, 지금까지 계속 미루다가 이제야 결심하고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고, 수련을 처음처럼 하며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자 합니다. 동시에 뒤처진 수련생들이 이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기고 정법 노정을 따라 원만을 이뤄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기를 격려합니다.

1. ‘대법 수련은 엄숙하다’를 외우고 사부님께 감사드리다

저는 사부님의 신경문 ‘대법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를 외울 때마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몇 년 전의 한 꿈이 자주 떠오릅니다. 어느 날 밤, 침대 머리맡에 앉아있다가 희미한 가운데 지옥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커다란 공터에는 죽은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모두 긴 검은 옷을 입고 머리를 감싸 얼굴이 보이지 않은 채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저는 줄을 뚫고 이름을 부르는 방 앞까지 가서 그곳 관리자에게 제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 관리는 제게 “여기에는 네 이름이 없다. 너는 여기서 제외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저보고 떠나라고 손짓했습니다.

저는 수련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대법제자로서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일과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에 죄송하고, 심지어는 수련의 자신감마저 잃었습니다. 하지만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수련의 길에서 하나하나의 고비를 넘도록 늘 보호해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합니다.

2. 길을 잘못 들다

저는 타고난 성격이 걱정이 많고 소심했으며, 결혼 생활의 불행과 ‘문화대혁명’ 시기의 정치적 박해로 인해 50세가 되기 전에 이미 여러 가지 병을 앓았습니다. 위하수, 복통, 좌골신경통, 천장관절통으로 평평하게 눕지도 못했고, 48세에는 경미한 뇌혈관 폐색까지 겪게 됐습니다. 매일 약을 먹는 것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했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 저는 다행히 대법을 얻게 됐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모든 지병이 사라졌고, 말 그대로 병 하나 없는 가벼운 몸이 됐습니다. 이는 위대한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신 것입니다. 그 건강함과 기쁨, 그리고 행복은 오직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의 장쩌민 악당 집단은 시기심에서 비롯된 이유로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대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2000년 4월, 저는 수련생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을 실증하고 파룬따파의 정당함을 호소하며 사부님의 명예를 회복해드리기를 요구했습니다. 천안문 광장에서 현수막을 펼치는 순간, 저는 베이징 첸먼(前門) 파출소의 공안에게 납치됐습니다. 이후 고향 공안에 의해 불법적으로 구금되어 두 달 넘게 구치소에 갇혀 있다가 본성(本省)의 여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받았습니다.

법을 배운 기간이 짧아 대법에 대한 이성적 인식이 부족했고, 일을 마주할 때 법에 따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마음이 너무 많고 무거워 대법과 수련의 소중한 기회를 제대로 소중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당시 노동수용소에 와서 이른바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하던 몇몇 사오(邪悟, 삿되게 깨달은)한 자들은 창춘 출신으로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법을 배우지 않고 그들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여겨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사오한 자들에게 통제됐고, 마귀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며 대법을 파괴했습니다. 대법 수련의 엄숙함을 모르고 대법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생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악행에 동조하며 악을 도왔고, 자신이 큰 죄를 범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깊은 후회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치욕을 스스로 초래했습니다.

3. 시련 중에서 사부님의 구원을 받다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후, 저는 이익심이 있어 사악이 틈을 타 또다시 사오한 자에게 끌려가 다단계 판매에 참여했습니다. 저는 곳곳에서 다단계 강의를 듣고 제품을 팔았습니다. 2003년 4월 10일, 비가 조금 내리던 날, 사오한 자가 저를 다단계 강의를 들으러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세게 넘어져서 왼쪽 대퇴골 두 부분이 심하게 골절됐습니다.

가족들이 저를 집으로 데려온 후 저는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심하게 넘어졌을까?’ 저는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반복해서 스스로에게 왜 그런지 물었습니다. 그때 저는 소중히 간직한 보서(寶書) ‘전법륜(轉法輪)’을 들었고, 사부님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제가 ‘전향’된 것은 잘못된 일이고, 또 다른 사람들을 ‘전향’시키고 다단계 판매로 돈을 벌려 한 것도 잘못된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실수를 반복했으며, 구세력의 사악한 생명체들이 저를 완전히 파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품었습니다. ‘나는 무한한 능력과 자비를 가진 은혜로운 사부님이 계신다. 너희 사악한 구세력은 절대로 나를 이길 수 없다. 나는 다시는 전법륜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확고하게 수련할 것이다.’

골절된 후 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찍었고, 의사와 가족들은 내가 입원하여 수술을 받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술을 거부하고 대퇴골 두 부분을 교체하지 않겠다고 고집했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는 죄업이 깊고 부족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을 때, 한 수련생이 ‘2001년 캐나다 법회 설법’과 ‘명혜주간’ 한 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것을 읽고 저는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었고, 수치심과 자책이 가득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수고와 자비로운 제도에 죄를 지은 것이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시간을 아껴 법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골절은 빠르게 회복됐고, 50일이 지나자 저는 땅에 내려가 동공(動功)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70일이 지나자 가부좌를 하고 정공(靜功)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모두 사부님께서 저의 죄업을 대신 짊어지시고, 제가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 덕분에 저는 다시 정법 수련의 길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4. 다시 수련을 시작하여 가정 난을 극복하다

제가 다시 법을 배우고 수련을 시작할 때 가정 내 난관이 미친 듯이 찾아왔습니다. 겉으로 보면 남편은 가정 배경 때문에 박해를 받았고, ‘문화대혁명’ 당시에도 불공정한 대우와 고난을 겪었으며, 시아버지는 중공의 박해로 감옥에서 사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적인 장애가 있었고 특히 성격이 폭력적이었습니다.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하자 그는 큰 압박감을 느꼈고, 특히 제가 노동수용소에서 돌아온 뒤 다시 수련을 시작하자 그는 이를 심하게 반대했습니다. 제가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것을 보고 그는 미친 듯이 저를 때리고 욕했습니다. 저는 두 번이나 박해받아 감옥에 갇혔고, 또 지역 파출소에서 저를 감시하고 집에 찾아와 괴롭혔기에, 그는 자주 “이런 두려운 나날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공산당이 두려워. 나는 먹고 살아야 해. 차라리 죽더라도 다시는 이런 불안에 떨며 사는 일상은 견딜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난은 장쩌민이라는 악마가 미친 듯이 박해한 결과입니다.

저는 매일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동안 계속 숨을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전법륜’ 제7강을 이불 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외우면서 공부했습니다. 한번은 그가 저를 가장 심하게 때릴 때 큰딸이 보고 말했습니다. “아빠, 이렇게 때리지 마세요. 엄마가 이렇게 나이가 많으신데 만약 엄마가 죽으면 누가 아빠의 생활을 돌볼 거예요? 아빠는 성격이 그렇게 나쁜데 돈을 써도 가정부 하나 구하지 못할 거예요.” 딸이 이렇게 말하자 저는 바로 방으로 가서 제가 가진 유일한 보물인 ‘전법륜’을 가방에 넣고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더 이상 때리지 마세요. 이렇게 매일 때리고 욕하면 결국 당신 몸에 해가 될 거예요. 저는 떠날 거예요. 당신이 화가 풀리면 다시 돌아오겠어요. 집안의 물건은 다 두고 가지만 이 ‘전법륜’만은 제가 갖고 갈 거예요.” 저는 제 월급카드를 딸에게 맡기며 “내 월급으로 아빠에게 가정부를 고용해줘”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밖에서 일을 하며 밥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법을 배우고 수련할 수 없는 이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집을 떠나 친척 집에 갔지만 반나절도 되지 않아 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아빠가 설득을 받아들여 태도가 변했다며 저에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하며, 남편에 대한 원망과 체면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이 법을 배우고 수련하는 걸 막지 않을게.” 저는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가정의 난을 해결해주신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더 이상 매일 밤에 손전등을 켜고 이불 속에서 법을 배우고 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보살핌 속에서 저는 빠르게 단체 법공부에 참여했고, 당당하게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이전에 미뤄졌던 시간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사부님께서는 항상 저를 지켜봐주셨습니다.

2009년 9월 9일, 저는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배포하던 중 진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 남자에게 신고당해 공안국 경찰서로 끌려갔습니다. 몇 명의 경찰이 금방 제 앞에 나타나 가방을 수색했고, 가방 안의 진상 자료는 모두 압수됐습니다. 저는 경찰차에 강제로 실려 공안국으로 가게 됐습니다. 오후 3시부터 저는 불법 심문을 받았고, 그 심문은 7시간 이상 지속됐습니다. 그동안 저는 계속 발정념을 보내며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요청했습니다.

저를 심문한 사람은 ‘610사무실’(장쩌민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의 책임자였습니다. 저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는 몹시 화가 나서 제 가방에서 압수한 진상 자료를 책상에 놓고 사진을 찍으려 했습니다. 저는 발정념(發正念)을 해 그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저는 그가 대법에 대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아무것도 찍지 못했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그 진상 자료를 저를 지키고 있던 젊은 경찰에게 넘기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나는 그 젊은 경찰에게 진상을 설명하면서 그가 막 군대에서 전역하고 공안국에 배치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매우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상 자료를 읽고 나서 나에게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이 자료에 나오는 내용들이 정말 맞는 거예요?” 저는 그것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말하며 ‘천안문 분신자살’ 날조극의 진상과 파룬따파가 세계적으로 전파된 상황, 그리고 장쩌민 악마가 대법제자들을 박해한 죄악 등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이해했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도 했습니다. 이는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세밀하게 마련하신 배치로 경찰을 구할 수 있었고, 또한 저에게 박해의 시련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날 밤 10시쯤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015년 6월 어느 날, 저는 장쩌민을 고발하는 고소장을 우체국에 보내러 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한 대형 트럭에 치여 3m 이상 날아갔습니다. 저는 즉시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습니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과 차량들은 모두 제가 다쳤을까 봐 가까이 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심각하게 다쳤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친 운전자는 50대 남성으로, 너무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지고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정말 놀랐어요.” 저는 그에게 “괜찮아요. 저는 파룬궁수련생이에요. 제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셨어요. 저를 일으켜 주세요. 저는 한 푼도 받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저는 필요 없다고 말하며 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가 다쳤을까 봐 걱정하며 떠나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안 가면 제가 갈게요”라고 말하고 고통을 참으며 사고 현장을 떠났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저는 머리 왼쪽에 큰 피멍이 생겼고, 오른쪽 갈비뼈에는 큰 자주색 멍이 생겼으며, 왼쪽 다리의 정강이는 큰 구멍이 났지만 뼈는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자전거는 큰 핸들 부분이 부서져 있었습니다. 만약 사부님께서 제자의 죄업을 대신 감당해주지 않으셨다면, 사부님의 보호가 없었다면, 저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습니까?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또 한 번 저를 구해주셨습니다.

맺음말

저는 올해 80세가 됐고, 20년 넘게 수련을 해왔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께서 저에게 새 생명을 주셨고, 사부님께서는 저를 천신만고 끝에 자비로 구해주시며 대법으로 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사부님의 뜻을 돕는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고, 무한히 아름다운 미래를 주셨습니다.

사부님의 성은은 사람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갚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제자에게 한 푼의 돈도 원하지 않으시고, 오직 제자가 선한 마음과 자비심으로 거짓말에 세뇌된 사람들을 많이 구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따라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습니다. 매일 기쁜 마음으로 곳곳을 누비며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전하고 삼퇴를 권유하고 있습니다.

제가 권유해서 삼퇴한 사람은 셀 수 없이 많고, 그중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어떤 학생은 저의 짙은 흰색 단발 머리와 붉은 빛이 도는 하얀 피부, 곧은 자세, 단정한 복장, 그리고 유창한 언어를 보고 이렇게 묻습니다. “할머니, 선생님이세요? 어떻게 그렇게 많은 걸 아세요? 교수님이시죠?” 매번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그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과 대법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저는 선생님도 교수님도 아니에요. 직업과는 관계가 없어요. 저는 은퇴 전에는 의사였지만, 그때는 온갖 병에 시달리고 말도 적었어요.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대법 사부님께서 제게 건강하고 유쾌한 몸과 마음, 그리고 평화롭고 조용한 가정환경을 주셨어요. 저의 후손들도 사부님께 매우 감사하고 대법과 사부님을 존경하며, 그들의 일, 공부, 가정생활이 모두 순조롭고 월급도 매우 높아요.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 가족에게 주신 축복이에요. 여러분이 ‘삼퇴’를 하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면, 여러분도 같은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거예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진상을 전하고, 삼퇴를 권유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두 사부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정월대보름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전 세계, 모든 세상 사람은 다 나의 친인(親人)이었다.” 사부님의 가족은 우리 모두의 가족입니다. 이 최후의 중요한 순간에 세인이 구원받을 수 있다면, 저는 기꺼이 매일 발을 움직이고 입을 열어 인연 있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며 진상을 전할 것입니다. 법이 인간 세상을 바로잡을 때까지,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로 구원해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사명을 저버리지 않으며, 서약을 이행하고,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体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4/48789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4/487896.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