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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건설업계 파룬궁수련자의 이야기

글/ 중국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올해 대만의 진도 7.3 지진으로 10명이 사망했고, 건물은 기울어졌으나 쓰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진앙에서 멀리 떨어진 푸저우시에서는 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건물들이 대거 붕괴됐다. 비슷한 7점대의 진도였던 대륙의 탕산 지진과 원촨 지진에서는 수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중공이 건설 공사에서 일관되게 허위와 기만을 저지르고 공정과 재료를 줄인 악행의 결과다. 건설업계의 대법제자로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여러분이 대법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가지시길 바란다.

중국의 건축물 품질이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예를 들어 철근의 경우, 공급업체들은 모두 배경과 인맥이 있어서 현장 반입 시 길이와 개수로 이론적 중량을 계산한다. 실제로 무게를 달아보면 반입명세서보다 10% 이상 가볍다. 콘크리트 강도는 시험체를 채취해 실험해야 하는데, 이는 발주처나 감리가 입회해야 한다. 시공사는 콘크리트 타설 현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시험체를 만든 후 실험실로 보내 강도를 검사받아야 하지만, 대개는 시공사가 일찍이 감리나 발주처 대표를 매수해서 아예 입회조차 하지 않는다. 불합격하면 다른 것으로 대체해 ‘합격’할 때까지 바꾼다. 솔직히 말해서 검사 데이터 조작이 관행이 됐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일을 성실히 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중공의 부패를 알면서도 그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상상도 못한다.

한 관리가 부인과 함께 입찰할 때면 먼저 세 개의 업체를 선정하는데, 1등 업체는 그날 저녁 낙찰가의 10분의 1을 그에게 상납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관리는 다음날 2등 업체로 바꾼다. 낙찰 업체는 또 각 관리부서에 선물을 해야 했고, 온갖 잡다한 비용이 공사비에 포함돼 처리됐다. 낙찰 업체는 도급업자에게 층층이 하도급을 주고, 자재 공급업체와 도급업자들은 각자 뒷배가 있어 또다시 층층이 하도급을 준다. 어떤 경우는 4~5차 하도급까지 가서 실제 시공에 쓸 수 있는 비용은 매우 적어진다.

중공 관리들은 부패를 위해 대규모 인프라 공사를 벌이지만 자주 자금이 부족해 공사대금을 체불하거나 아예 지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허세는 좋아해서 정상적인 공사 기간을 마음대로 단축하니 공사업체의 부실공사와 조잡한 시공이 보편적 현상이 됐고 이미 노련해졌다. 그러나 중공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하지 않고 책임만 아래로 떠넘기며 책임제를 실시한다. 쉽게 말해 문제가 발견되면 앞장서는 사람이 망하니 다들 멀리 피해 모르는 척한다.

내가 다니는 회사도 이렇다. 공사를 따내도 공사대금을 주지 않고, 입찰할 때도 뇌물을 줘야 하며, 사장은 ‘모기 다리에서도 기름을 짜내려’ 하듯이 자신이 일부를 착복하고 또 이곳저곳 선물도 해야 한다. 돈이 부족하면 그는 방법이 있는데, 기술 없는 사람을 고용하고 불량 자재를 섞는다. 10밀리미터 철판을 재보면 9밀리미터밖에 안 되고, 철광석으로 만든 철판은 비싸서 재활용 고철로 만든 철판을 사는데 불순물은 많지만 싸다. 방청페인트는 얇을수록 좋고, 다음번엔 일반 페인트로 바꾼다. 감리 쪽은 그가 방법이 있어서 노골적으로 뇌물을 주는데, 그는 이것이 자신의 사회 적응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설업계 규정상 특수작업자는 조작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예를 들어 비계공이나 승강기 조작원 같은 경우 모두 형식적으로 처리된다. 대부분 관리직원이 대신 시험을 보고 실제 작업은 농민공들이 하는데 그들은 정식 직원이 아니다. 자격증도 마찬가지로 관리직원이 대신 시험을 본다. 예를 들어 용접공 같은 기술직종은 관리직원이 이론시험을 보고 강사를 속여 실기시험은 대리시험을 치른다. 나중에는 우리 공장의 농민공들도 대부분 그런 기술이 없어서 돈을 들여 외부 인력을 고용해 용접하니 어떤 규범이나 규정도 유명무실해졌다.

한번은 직경 1.2미터 상수도관 공사에서 ‘문명도시 평가’를 맞아 며칠 안에 완공해야 했는데, 도급업자가 포기하자 지도부가 우리보고 가서 돕자고 했다. 이럴수록 품질은 더욱 보장할 수 없었다. 마지막 날 밤, 양쪽 관을 연결하려는데 몇 센티미터가 어긋났다. 마지막 관은 비스듬히 끼워 맞출 수밖에 없었고, 조립하는 사람이 시간을 아끼려고 짧게 자르니 용접부 사이에 2~3센티미터 간격이 생겼다. 도랑 벽도 붕괴 위험이 있어 그날 밤 완공은 거의 불가능했고 품질도 보장하기 어려웠다. 현장 책임자가 와서 보고는 책임이 두려워 핑계를 대고 도망갔다. 우리만 남았는데 용접기와 용접봉 외에는 보조 도구도 없고 등도 살 수 없었다. 그곳은 박물관 근처라 지반이 모두 모래였다. 용접이 잘못되어 누수가 되거나, 빨리 끝내려고 규정을 어기고 용접부에 철근을 넣거나 용접이 제대로 녹아들지 않으면 용접부가 쉽게 갈라질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실제로 다른 곳에서 발생했는데, 누수된 물이 서서히 지반을 파서 관 위의 보도가 인터넷 동영상처럼 갑자기 깊은 구멍이 생겨 사람이 빠졌다.

나는 인원을 배치해 붕괴 상황을 감시하게 했다. 이런 간격이 큰 용접은 밑층이 가장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나는 특수한 방법으로 빠르게 용접부 바닥을 채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중간층을 용접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직접 표면층을 용접해 물이 새지 않게 했고, 이렇게 하룻밤 만에 정해진 시간에 완성했다.

또 한번은 길이가 수십 미터에 무게가 100톤이 넘는 구조물을 설치할 때, 가장 중요하고 하중을 가장 많이 받는 두 주보의 날개판 용접 단면이 원래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을 발견했다. 책임자는 또다시 같은 수법으로 나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내가 어떻게 처리할지 물으니 처리하지 않겠다며 도망갔다.

진정한 대법제자에게 그런 무책임한 행동은 절대 선택지가 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갑자기 중요하지 않은 곳에 맨홀을 내면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렇게 하면 나머지 절반을 용접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용접부가 완전히 녹아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그라인딩 장비조차 가져오지 않았고, 홈 안쪽은 페인트로 가득했으며, 무딘 모서리의 페인트는 안쪽으로 밀려들어가 제거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 용접하면 용접부에 기공이 생기고 수소 취성 파괴가 일어나기 쉬우며, 또 융합 불량이 발생할 수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해서 매우 합격한 용접부를 만들었다.

내가 일하는 공장에서 작업장 책임자는 부사장의 처남이었다. 패거리를 만들어 생산성이 낮았지만 상부에서 감히 그를 해임하지 못하고 그의 작업 인원수를 제한하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완료할 생산 과제만 주었다. 한번은 그가 견습생에게 매우 중요한 용접을 시키는 것을 봤는데, 전체 구조물 70여 톤의 하중이 그 용접부에 걸리는 것이었다. 내 소관은 아니었지만 이래서는 안 된다고 했더니 그는 발끈하며 공장장이 오늘 완료하라고 했다며, 사람이 없어서 그가 할 수밖에 없고 문제가 생겨도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식이었다. 사실은 그가 편하자고 다른 사람을 뽑기 싫었던 것이다. 내가 계속 고집하자 마침내 실력 있는 용접공으로 바꿨다.

또 두세 번, 매우 중요한 보가 자재가 불량하고 용접 순서가 잘못되어 응력이 집중되어 균열이 생겼는데, 균열이 확대되면서 전체 구조물이 붕괴될 수 있어 결과가 매우 심각했다. 관련자들은 모두 모르는 척했는데, 누가 수리를 지시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그 사람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모든 관련자에게 보에 균열이 생겼다고 말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결국 내가 사람을 시켜 그곳을 파내고 균열 부위를 완전히 제거한 후 용접하고 응력을 제거했다. 이렇게 해서 끝이 났다.

몇 년 전 중공은 군함을 만두 빚듯이 만든다고 허풍을 떨었다. 미국은 항공모함 한 척 건조에 11년이 걸리는데 중공은 2~3년이면 한 척을 만든다. 내 생각에 그들은 아마도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몇 개의 큰 블록으로 나눠 따로 제작한 후 전체 조립을 하는데, 이런 방식으로 하면서 전압과 전류, 용접 순서, 각종 온도 등의 공정을 엄격히 지키지 않으면 외력을 받지 않거나 아주 작은 외력만 받아도 철판 내부의 거대한 내부 응력 때문에 저절로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또 한번은 수십 미터 길이의 축이 있었는데 설치 작업자들이 설치 구멍을 모두 크게 뚫었다. 나중에 사용할 때 수십 톤의 힘이 가해지면 0.몇 밀리미터의 오차가 2~3센티미터의 휨으로 변할 수 있었다. 상대방이 방법이 없는지 물어봐서 나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처리해주니 매우 기뻐했다. 같은 동료인데 나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고 기술이 있는데 저 설치 작업자들은 노는 것만 알아서 차이가 너무 컸다.

어떤 유명 용접기 제조사의 관리자가 내게 한 사건을 이야기했다. 어떤 고층 건물을 지을 때 용접공들이 고강도 철근 용접을 공정대로 하지 않아 용접 후 철근에 균열이 생기자 도급업자가 뭔가를 위에 걸어 감리가 보지 못하게 가렸다고 한다.

어떤 대형 콘크리트 타설에서는 거푸집이 부풀어 올라 콘크리트가 쏟아져 나왔는데, 도급업자가 방수포로 덮어 감리가 보지 못하게 한 뒤 나중에 다시 채웠다. 사실 감리는 알고도 모르는 척했다.

파룬따파는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개변하는 것이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결국은 사람에게 달려있다.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행동만으로는 안 되며, 보이지 않을 때는 여전히 예전대로 할 것이다. 아무리 검사를 해도 숨길 방법이 있다. 특히 용접과 같은 것은 검사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입열량과 패스간 온도, 또는 응력 등을 제어하지 않으면 용접부 표면은 매우 좋아 보일 수 있지만 하중을 받는 순간 부러지거나 심지어 저절로 갈라질 수 있다. 나는 많은 제자를 가르쳤지만 그들에게서 선물 한 번 받은 적이 없다. 항상 먼저 그들을 관찰해서 책임감 있는 사람을 찾은 다음 내 조건은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든, 누가 알든 모르든 품질을 항상 첫 자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동의하면 가르치기 시작한다.

나는 기계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원리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왜 위에서 아래로 용접하면 안 되는지, 내가 위에서 아래로 몇 개의 모서리를 용접한 다음 프레스로 눌러서 보여주면 누르자마자 부러지고 안은 전부 융합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용접한 것은 부러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추운 날 옷을 더 입어야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그렇게 하지 않게 된다. 검사-교정, 재검사-재교정하는 순환이 전혀 필요 없다. 때로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들은 흥미진진하게 듣고 그 속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기억한다. 나는 기술을 가르치는 선생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직장 멘토이기도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고 그들끼리도 매우 화목하여 관리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품질도 따로 볼 필요 없이 모두 아주 좋다.

천지 만물에는 모두 그만의 규율이 있고 용접도 마찬가지다. 해당하는 용접 공정을 따르고 예를 들어 입열량과 패스간 온도를 제어하고 합리적인 순서를 채택하는 등을 해야 한다. 하늘과 맞서 싸우기를 좋아하고 계속 실패하는 중공은 허세 부리고 빨리 크게 하기를 좋아할 때 자연의 규율을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다. 용접계와 건설계 상하가 모두 이것을 알지만 관련 지도부는 대개 행정직 출신이라 문외한이 전문가를 지도하고, 뇌물을 주고받으며, 체면을 위한 것이라 양심 있는 사람은 발을 붙이기 어렵다. 그래서 모두가 알면서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어떤 부사장이 세 번이나 나를 품질관리자로 추천했는데 다른 부사장의 처남이 내가 품질이 좋으면 작업이 분명 느릴 거라고 해서 부사장도 더 말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공정을 개선해서 많은 생산 기록을 세웠고 지금도 깨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어떤 작업은 작업자들의 기술이 너무 부족하고 관리도 안 좋아서 매번 앞 공정에서 문제가 너무 많이 쌓여 뒷 공정 작업자들이 욕하고, 검사할 때는 하나도 쓸 만한 게 없어서 규격보다 오차가 거의 10배나 커서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내가 맡은 후 계속 개선해서 효율이 몇 배나 높아졌고 품질도 우수했으며, 앞에서 쌓인 문제들을 깨끗이 해결했을 뿐 아니라 뒷 공정의 작업량도 크게 줄였다.

내 상사는 작업자들이 ‘겁쟁이’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계략이 많고 시비를 뒤집는 데 능숙했다. 계속 나를 배척하고 곳곳에서 괴롭히고 트집을 잡았다. 공장장들은 속으로 다 알고 있다가 나중에 내게 “내가 누구누구(그 상사)를 혼내줬다”고 말했다. 이 상사가 퇴직할 때 공장장이 특별히 그를 내 밑에서 일하게 했는데, 이는 그가 지난 10여 년간 나를 괴롭혔던 것에 대해 복수할 기회를 준 것이었지만, 나는 ‘그를 난처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한 달 동안 작업장에서 전기용접을 하다가 퇴직하는 날 조용히 가방을 들고 떠났다. 그 후로 나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사리사욕 때문에 나를 배척했던 사람들도 업무에 어려움이 생기면 내게 조언을 구하거나 다른 일로 부탁을 해오면 나는 똑같이 도와준다. 부사장의 처남이 나를 가장 심하게 배척했고 몇몇 사람은 나를 보면 거북해했지만 나는 그들을 모두 똑같이 대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매우 존경하는데, 나는 결코 먹고 마시는 것에 탐닉하지 않는다. 모두가 세태가 날로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다. 동료 중에는 마약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매춘으로 구류된 사람도 있는데도 여전히 우수당원이 될 수 있었고, 접대하고 선물하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나에 대한 그들의 결론은 사람마다 다른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대법제자이므로 미래 사람들에게 올바른 생활방식을 남기고 세인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원문발표: 2024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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