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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굳게 믿는 것은 수련자의 근본

글/ 중국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20년 넘게 수련한 대법제자입니다. 대법 수련으로 몸과 마음에 이로움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속에서의 생활도 점점 더 좋아졌고, 제멋대로 날뛰던 성격에서 선량하고 양보할 줄 아는 수련인으로 환골탈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대법에서 비롯된 것이며, 시시각각 보살펴 주시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아래에 제 수련 과정의 일부를 적어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병에 시달리다 대법을 만나다

제 남편은 성격이 유난히 나쁜 사람이었고, 시어머니는 시동생을 편애하셔서 저는 화를 풀 데가 없어 성격이 더욱 독하고 나빠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누구와든 싸웠고, 집에서는 시어머니와 다투다가 길거리에 나가서 시어머니를 욕했습니다. 한번은 남편과 싸우다가 남편이 저를 때리자, 저는 바로 남편 손바닥의 살점을 물어뜯어 바닥에 뱉었습니다. 또 한번은 남편의 팔꿈치 살점을 물어뜯고 “당신 머리를 잘라서 벽에 걸어놓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남편도 저를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늘 소란을 피웠고, 시동생이 결혼할 때 산 고기를 몰래 먹어버려서 그 요리는 식탁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우리 회사는 국영기업이었고, 저는 회사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싸움으로 해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회사에서 공산당에 입당하라고 하면 저는 그들과 반대로 행동하며 입당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반장을 때려서 그가 1천 위안의 의료비를 청구했지만 저는 주지 않았고, 결국 파출소에서 왔는데도 배상하지 않았습니다. 임신했을 때는 출근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았는데도, 상사는 예전처럼 급여를 주어야 했고 상여금도 지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은 여전히 궁핍한 생활이 계속되어 12년간 월세 집에서 살았습니다. 남편은 대형 트럭 운전사였는데, 사고로 사람을 치어 숨지게 하는 일이 생겨 많은 돈을 배상해야 했습니다. 1만 위안 소득 가구도 드물던 그 시대에 우리는 5만 위안의 빚을 지게 됐습니다. 게다가 제 몸도 갈수록 나빠져 겨우 마흔이 넘었는데도 온몸에 병이 생겼습니다. 심한 근시, 비염, 고혈압, 고혈당, 허리디스크, 좌골신경통, 과민성 피부염, 결장염, 하혈이 있어서 앉을 수도 없고 전화도 누워서 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는 법을 얻으셔서 40년 넘게 피우시던 담배를 끊으셨고, 병원도 자주 가지 않게 되셨습니다. 어머니의 변화를 보고 저도 법을 얻어 단체 연공에 참가했는데, 2일 만에 하혈이 나았고 지속되었던 질병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저에게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도덕이 승화하고 가족이 복을 받다

법을 얻은 후 신체가 건강해져 저는 스스로 작은 장사를 해서 남편을 도와 생계를 꾸려나가기로 결심했으나 가족들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아마도 제 과거의 행동 때문에 가족들은 저를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빠는 이 업종이 어렵다며 현지에서 정말 알아주는 남자도 잘 해내지 못하는데 하물며 여자인 제가 어떻게 하겠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수련인이기에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사를 하면서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히 가늠하여 속이지 않았고, 고객을 위해 생각했으며, 신용을 지키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켰습니다. 한번은 손님이 저에게 1,500위안을 더 주었는데, 제가 이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10여 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저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더 받았다고 알려주었는데, 손님은 이를 전혀 몰랐습니다. 저는 제 돈은 제가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며, 요즘 사람들은 돈을 더 벌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어떻게 벌든 상관하지 않고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손님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고, 그는 매우 감동했습니다.

점차 제 장사는 잘되어 빚을 모두 갚았을 뿐만 아니라 가게도 사고 아파트 2채와 주차구역 4개를 살 수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에 대한 태도도 180도 바뀌어, 자주 시어머니에게 옷을 사드리고, 요리를 해드리며 편찮으시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시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성심껏 외우셔서 복을 받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병원에서 두 가지 암을 진단받으셨는데, 시동생이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돌란틴(마약성분 진통제) 50개를 준비해 두었지만,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매우 평온하셨습니다. 방금 평온하게 말을 다 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돌란틴은 전혀 사용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제가 법을 얻은 후 남편은 뇌출혈이 와서 거동이 불편했습니다. 저는 인내심을 가지고 남편을 돌보며,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일상상활을 세심히 챙겼습니다. 남편은 저에 대한 태도가 감동에서 존경으로 변하더니, 결국에는 대법을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에게 라오진(老金)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금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남편은 몇 번이나 울면서 저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자기를 원망하는지 물었습니다. 이번 생에 자신에게 잘 해주었으니 다음 생에 보답할 것이고, 다음에도 또 부부로 살자고 했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수련을 잘해야 하고 다음 생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55세 되던 해에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시동생과 우리가 같이 15만 위안을 들여 시어머니께 사드린 아파트를 시동생이 혼자 팔아서 돈을 저에게 주지도 않았지만, 저는 따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제가 외손녀와 이야기를 나눌 때 며느리가 트집을 잡으면서 탁자를 두드리며 화를 냈습니다. 저는 화를 내지 않았는데, 아들이 오히려 화가 나서 나가버리더니 계속 집에 들어오지 않자 며느리는 아들을 찾으러 나갔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 화 안 나세요? 아내가 어머니께 사과하지 않으면 저는 이혼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며느리가 왔을 때 저는 숨었습니다. 며느리가 저에게 사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몹시 감동해서 저를 데리고 드라이브를 시켜주었고, 며느리도 감동을 받아 이후로 저를 매우 공손하게 대해주었고, 집에 가면 저에게 채소 손질도 못하게 하며 아이의 음식까지 저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정념이 기적을 나타내고 자신을 닦아 중생을 구하다

한번은 발이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신발끈으로 발을 묶고서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게 “바로 잡혀야 한다!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플수록 연공을 더 했고, 가부좌를 먼저 10분에서 20분 더 하고 다시 더 연장했더니 이후에는 발이 아프지 않았고 다 나았습니다.

목에도 큰 혹이 생겼었고 만두처럼 커졌습니다. 제 여동생의 친척도 혹이 생겨서 4천여 위안을 들여 수술을 했습니다. 저는 대법에 먹칠할 수 없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정념으로 대처하여 지금은 혹이 사라졌습니다.

한번은 얼굴과 몸에 피부가 벗겨지고 변색되어 너무 눈에 띄었습니다. 가족들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었고, 아들은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저는 아들에게 내가 살려면 병원에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며, 아무 일 없을 것이며 이는 소업(消業)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진짜로 나았습니다.

한번은 위아래로 토하고 설사를 하며 밤새 11번이나 설사를 했는데도, 저는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연공을 견지했고 아침에 어떤 일도 지체하지 않았더니 살구와 오이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몸 앞뒤로 작은 물집들이 생겼는데, 사람들은 대상포진이라고 했으나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몹시 아팠는데 저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여기며 아플수록 소업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나중에 수련생이 대황(한약재)을 발라보라고 하여 몸에 발랐더니 바르면 바를수록 더 심해지고 아파서, 바르지 않고 연공하고 법공부하여 2일 만에 나았습니다.

한번은 치통으로 치과에 가서 발치를 했고, 의사는 약을 먹어야 하고 두 달이 지나야 다시 자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요청드리고 약을 먹지 않았는데, 한 달 반 만에 다 나았고 또 온전한 작은 치아도 생겼습니다.

또 제 머리카락은 매우 숱이 적어 저는 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머리숱이 빽빽하게 많아져 대머리가 되지 않았고 또 흰머리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가 뇌졸중과 같은 가상이 나타나 저에게 전화를 하여 집에 가보니, 어머니가 제대로 걷지 못하실 정도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도와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멸하고는 어머니에게 “이 정상이 아닌 것이 어머니인가요? 아니죠! 이것은 구세력이 한 짓이에요! 그것을 해체해야 해요”라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도 깨달으셨습니다. 40분 후에 우리 온 가족은 훠궈를 먹으러 갔고, 아무 일도 없었으며, 어머니는 정상이셨습니다. 온 가족이 이 순간을 목격했고 가족 모두 대법을 믿었습니다.

또 한번은 어머니가 이가 아프다고 하셔서, 저는 어머니를 도와 원인을 찾아보았는데, 어머니는 수구(修口)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말하기를 좋아하셔서 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구세력이니 그것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후 어머니는 이가 아프지 않게 되셨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워 몸과 마음에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대법이 억울함을 당하고 중생이 진상을 모를 때, 저는 중생을 구하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비록 저는 담이 매우 작지만 공안국, 법원 등 지역에 밤마다 가서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을 배포했습니다. 한밤중이었고 가는 길에 교란도 있었습니다. 배가 아프고 다리도 불편했고, 또 차량 한 대가 저를 따라오는 듯하며 헤드라이트로 저를 비추었습니다. 저는 두려워할 새도 없이 차를 멎게 하는 일념을 내보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진상자료를 배포한 후 재빨리 집으로 갔습니다.

한번은 낮에 나가서 진상자료를 붙이는데 두 장만 남아서 붙이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제 팔을 잡았습니다. 알고 보니 도시관리원이었습니다. 그가 “뭐 하는 겁니까?”라고 물어 저는 중생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뭐라는 거요? 저걸 붙힌 게 맞나요? 붙이고 나면 다른 사람이 또 떼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경찰에 전화를 걸겠다고 했고, 저는 마음속으로 ‘그는 전화를 걸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사람이 가방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가방을 뒤져보아도 그 마지막 2장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그만 붙이라고 말하면서 더 붙이면 체포할 것이니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가면서 ‘당신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래는 그들을 피해서 모퉁이를 돌려고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저들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왔던 길을 다시 걸어갔고, 그들을 마주 보며 걸어가며 붙일 두 곳을 찾았으며, 발정념을 하여 그들이 업을 짓지 않고 사람들이 전단지를 찢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두 장의 전단지는 줄곧 5~6년 동안 뜯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희 집은 시장에서 왕복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고, 저는 매일 걸어서 시장에 갔습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예순이 넘은 저는 날듯이 걸어 다니며, 많게는 2, 3일에 A4용지 한 장에 탈당 명단을 가득 채웠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코로나)때 저는 집에 있지 않았습니다. 동네를 다니려면 통행증이 필요했는데, 저는 발정념하여 그들이 저를 보지 못하게 했고 순조롭게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가상도 있었는데 솜옷을 입자 숨이 차는 증상이 생겼고, 2미터도 못 가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6일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일어설 수도 서 있을 수도 없었는데, 온종일 피를 토하며 피를 뱉은 휴지가 비닐봉지에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가부좌를 견지했습니다. 처음에는 10여 분을 견지했고, 다시 시간을 연장했는데 이렇게 30분 동안 견지했습니다.

포륜(抱輪)을 몇 분간만 할 수 있었고, 견지하기 힘들면 벽에 기대어서 하며 마음속으로 ‘대법에 먹칠할 수 없고, 별일 없을 것이며, 누구도 나를 움직이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7일째 되는 날 저는 연공을 전부 다 할 수 있었고 다 나았습니다.

이 2년 동안 중공 바이러스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나가서 사람을 구했는데, 다른 수련생의 집안 식구들은 그녀에게 제가 전염시킬까 봐 두려워 왕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1차 백신 접종을 맞고 온 몸에 포도알만한 뾰루지가 났고, 간지럽고 답답해서 저녁에 잠을 잘 수 없었으며, 계단을 오르는 것조차 힘들었으나 세 가지 일을 지체하지 않고 견지하여 며칠 만에 다 나았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 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수련생은 코로나 증상이 오랜 시간이 나타났습니다.

대법을 굳게 믿는 것은 수련자의 근본

사부님의 제자로서 중생을 구도하는 법도(法徒)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신사신법(信師信法)입니다.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법의 표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속인 사회에서 수련하다 보니 우리는 매우 쉽게 첫 일념(一念)을 사람의 관념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수련에서는 작은 일이란 없습니다. 이 일념의 차이는 대법을 확고히 믿고 동요하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구세력에게 어떠한 틈이나 구실도 주지 않는 것이 수련인의 정념입니다. 어떤 수련생은 넘어져서 여러 차례 팔이 부러졌는데, 이는 그녀가 마작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즉시 사부님께 잘못을 뉘우치며 다시는 마작을 하지 않겠다고 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팔이 부러지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입이 부어오르고 치통이 있어서 자신을 돌아보니 입을 단속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법과 무관한 말을 하던 자신의 잘못을 찾아내자 치통도 사라지고 입도 붓지 않게 됐습니다. 또 다른 수련생은 누군가 대도시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으라는 소개를 받아들여 검사를 받았는데, 병업가상(病業假相)이 나타나자 그것을 믿고 약까지 먹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자신이라고 인정해서는 안 되며 수련인에게는 병이 없다고 일깨워주었지만, 그녀는 “그게 내가 아니면 누구겠어요?”라며 정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또 어떤 수련생은 속인이 제공하는 경제적 지원을 받아들였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구세력은 형식을 바꿔가며 명예와 이익으로 수련자를 유혹하고 위협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진실하고 대법을 확고히 믿기만 한다면 넘지 못할 고비는 없습니다.

모든 수련생들이 정념을 더욱 굳건히 하고 더욱 정진하여, 원만을 이루어 사부님을 따라 돌아가기를 희망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2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18/48502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2/18/485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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