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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본 것: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명혜망에서 특별원고 《우리의 사부님》을 발표했다. 이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단번에 두 번을 읽었으며, 매번 읽을 때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거대한 감당하심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우주와 우주의 만사만물은 모두 사부님께서 창조하고 개창하신 것이며, 모든 중생의 복 또한 사부님께서 베풀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오히려 우리를 제도하시는 과정에서 한동안 매우 어려운 생활을 하셨고, 이 길을 걸어오시면서 헤아릴 수 없는 고초를 겪으셨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제자들의 업력 때문에 힘드셨던 것이다. 사부님의 소박한 말씀 속에는 제자와 중생들을 무한히 아끼시는 마음과 중생들이 제도받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기대가 담겨있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한 이래, 대법과 대법제자들이 직면한 이 법난은 지금까지 지속되며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사부님께서는 경문 《법난(法難)》에서 명시하셨다. “사실 나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있는 동시에, 아직도 15%의 업력을 없애지 못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중생구도 20여 년간 남겨진 것으로, 이는 매우 거대한데, 나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직면해야 할 거대한 압력과 감당해야 할 것들이 하나하나 다가올 것이다.”

2024년 6월에 처음으로 사부님의 경문 《법난(法難)》을 삼가 읽었을 때 마음이 극도로 무거웠으며,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물었다. ‘확고한 믿음과 견정함을 제외하고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압력 속에서 내가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순간 북받치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이 터져나왔다. 대량으로 《법난(法難)》과 《각성하라(驚醒)》 등 새로운 경문을 삼가 읽은 후, 나는 수련 중에 있어서는 안 될, 이전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제거하지 못했던 사람마음과 관념, 집착을 제거하려 노력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 아래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수련 초기와 같은 마음가짐과 상태를 되찾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의 두 차례 생생한 꿈을 통해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거대한 감당을 더욱 깊이 체득할 수 있었다.

첫 번째 꿈: 사부님께서 제자의 죄업 해소(消解)를 감당하시다

이 꿈은 2024년 12월 29일 새벽에 꾼 것이다. 12월 28일 토요일, 나는 가족 수련생과 함께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29일 새벽 꿈속에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에 바쁘게 움직이며 약간의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사부님께서 내 왼쪽 앞으로 다가오시더니 자애로운 모습으로 내 왼팔 소매를 걷어 올리셨다. 그때 나는 자신의 팔에서 다섯 개 정도의 불룩 솟은 종기를 발견했다. 보기에 속인들의 수두 같기도 하고 농창 같기도 했다. 이어서 사부님께서 손으로 내 왼팔을 부드럽게 어루만지시자 순간 팔과 온몸에서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 검은 기운에서는 코를 찌르는 악취가 났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조금도 불쾌해하지 않으시고 미소를 지으며 곁에서 자애롭게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그러자 팔의 종기가 사라졌다… 꿈속에서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 생명의 깊은 층차에 있는 업력을 밀어내주셨음을 깊이 알 수 있었고, 또한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죄업 해소를 감당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제자가 받은 은혜는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다.

이번 꿈에서 본 것을 통해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와 제자들을 위한 감당을 더욱 깊이 체득할 수 있었다. 또한 사부님께서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하신 “사부는 당신을 구하는 동시에 또 당신을 대신해 죄업을 감당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온갖 방법을 대어 당신의 죄업을 상쇄해 주고 있는바”라는 말씀의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었다.

두 번째 꿈: 사부님의 법난 중 거대한 감당

2025년 1월 1일 밤, 나는 법공부를 마치고 진상을 똑똑히 알리며 사악을 해체하는 항목에 참여하느라 밤을 새웠다. 다음 날(1월 2일)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 2일 오전 꿈에서 다시 한번 사부님을 뵐 수 있었다.

이번에는 사부님의 뒤를 바짝 따랐다. 사부님께서 앞으로 걸어가시면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었는데, 걸음걸음마다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초조한 기다림이 깊이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사악의 대법에 대한 박해가 절정에 달했음을 느꼈는데,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제자들과 중생의 너무나도 무겁고 거대한 죄업을 등에 짊어지고 계셨다. 이제 정법이 곧 종결될 시기가 되어 사악이 소멸되어야 할 때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부님께서 아직도 깊은 잠에 빠져있는 제자들이 어서 깨어나 따라오기를, 그리고 아직 제도받지 못한 중생들을 위해 초조히 기다리고 계셨다…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초조한 기다림이 깊이 느껴져 꿈속에서 내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고 눈시울에는 눈물이 고였다.

바로 그때 갑자기 한 줄기 포화가 빛을 내뿜으며 사부님을 향해 덮쳐왔다. 순식간에 사부님의 앞가슴에서 등까지의 피부가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몸을 돌려 제자를 향하실 때는 그 엄청난 고통을 참으시며 얼굴은 태연자약하셨고, 사부님의 거대한 감당과 고통을 제자가 전혀 알아채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우리의 사부님》이라는 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인터뷰 내내 미소를 띠시고 온화하고 평안한 모습이셨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이번 법난에서 감당하신 것은 제자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와 중생을 구하시고자 무수한 고난을 감당하셨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구하시고자 고초를 겪고 죄업을 기꺼이 감당하셨으니, 이는 사부님의 우리에 대한 홍대한 사랑과 신성한 은혜이다.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정진요지》〈진수〉에서 하신 말씀과 같았다. “나는 무수한 괴로움을 겪었어도 고통스럽다고 느낀 적이 없다”

맺음말

최근의 두 꿈을 통해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하신 모든 것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함을 깨달았고, 이는 또한 앞으로의 조사정법(助師正法) 과정에서 더욱 잘할 수 있도록 하는 격려가 되었다. 특히 명혜망 특별원고 《우리의 사부님》을 읽은 후, 사부님의 대각자(大覺者)로서의 언행을 통해 제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원망 없음과 증오 없음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사심 없이 타인을 위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침을 받았다.

명혜망 기자가 사부님께 ‘션윈을 떠난 후 중공과 결탁하여 파룬궁과 션윈을 비방하는 자들’에 대해 여쭈었을 때, 사부님의 답변은 단번에 나의 용량을 넓혀주었다.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을 ‘아이들’이라 부르셨는데, 이를 통해 사부님의 제자들과 중생에 대한 홍대한 자비와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었고, 순식간에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사부님을 기만한 그들에 대해 품어왔던 강렬한 ‘증오’의 마음이 해체되었다.

사부님의 제자와 중생에 대한 사랑과 소중히 여기심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다만 그들이 은혜를 너무나 모를 뿐이요, 천지개벽 이래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없을 만고의 기연(機緣)을 소중히 여길 줄을 너무나 모를 뿐이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사부님의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경문이 떠올랐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설법을 통해 오늘날 일어날 모든 일을 우리에게 깨우쳐 주셨다. 개인적인 깨달음으로는, 법을 얻고도 길을 잃은 생명이 만약 아직도 한 가닥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만약 초래한 손실을 만회할 기회가 아직 있다면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부님과 대법의 자비는 무한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대법의 위엄 또한 공존한다. 대법제자로서 나는 절대로 은혜를 저버리고 철저히 마(魔)로 변한 그들이 무법천지로 사부님과 대법을 먹칠하고 공격하며 박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그리하여 발정념을 할 때 내 마음가짐은 더욱 순정해졌고, 동시에 사악을 제거하겠다는 결심과 의지가 더욱 확고해졌으며, 철저히 악을 제거할 것이다.

수련생 여러분,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신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기며 세 가지 일을 정성을 다해 잘하자. 대법을 확고히 수호하고 함께 사부님의 정법 발걸음을 바짝 따라 최후의 이 단락의 길을 잘 걸어가자.

이상은 개인적인 깨달음으로, 층차의 한계로 인해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4882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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