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정법이 끝나기도 전에 후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사부님’을 다시 읽고

글/ 광둥성 대법제자 여초(如初)

[명혜망] 며칠 전 ‘우리의 사부님’이라는 글을 보고 울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고, 수련을 잘하지 못해 사부님께 누를 끼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수련생이 쓴 감상문을 보고 ‘우리의 사부님’을 다시 읽었는데, 서두만 보고도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읽을 수 없었습니다. 부끄럽고, 자책스럽고, 후회스럽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서실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인간 세상에서 직접 사람들의 공격을 받으시는 상황이 되어서는 안 됐습니다. 이것은 대법제자들의 치욕입니다.

1999년 6월 미국 중부법회에서 제자가 사부님께 여쭈었습니다. “제자: 사부님께 여쭙고 싶은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을 때 그의 제자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청컨대 사부님께서는 세상 사람과 천상(天上)에 전해 주십시오. 우리 대법제자들은 절대로 이런 일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요.

사부: (열렬한 박수) 여러분 감사하다! 수련인은 속인의 사상에 이끌리지 않아야 한다. 여러분은 수련자이다. 나는 여러분의 대법에 대한, 사부에 대한 이 마음을 모두 알고 있다.”(미국중부법회 설법)

26년이 지났습니다. ‘유다’가 나타났고,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대신하여 세상 앞에 나서서 감당하고 계십니다. 저는 하늘에서든 땅에서든 이 일에 대해 대법제자들이 설명할 길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전체적으로 따라갈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부님,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5년이 됐고, 저는 49살입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7년이 됐고, 중국에서의 박해 속에서도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27년을 보냈습니다. 박해가 제게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저 다른 생활방식일 뿐입니다! 박해와 수련은 필연적인 관계가 없으며,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은 제 의지가 확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상생활 속의 사부님에 대해 잘 모릅니다. 1998년 가을에 법을 얻었을 때는 수련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법공부 팀이 작은 팀으로 나뉘었는데, 우리 팀은 모두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보도원은 20대였고 법을 얻은 지 1년이었으며, 나머지는 모두 학생이었습니다. 학생들 중에는 몇 년 동안 수련한 사람도 있었지만 사부님을 뵌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부님에 대한 소식을 직접 들은 것은 단 한 번, 아마도 1999년 ‘7·20’ 그날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체육관에서 버스를 타고 각 학교로 끌려가 텔레비전을 보게 됐습니다. 저는 지금도 텔레비전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단 한 번 보았는데, 마침 아름다운 큰 소파가 있는 방을 보여주면서 사부님의 호화로운 저택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젊었고 세상 물정을 잘 몰랐기에, 중공의 사악함이 밑도 끝도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는 그것을 믿었고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때 저는 매우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아, 사부님께서 이렇게 좋은 생활을 하시는구나. 그럼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심정을 돌이켜보면, 마음속에서 가장 걱정하고 내려놓지 못했던 것은 사부님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4분의 1세기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어리벙벙하고 비틀거리며 걸어오면서, 저는 줄곧 사부님께서 아주 좋은 생활을 하시리라 생각했고, 적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라 여겼습니다. 해외 대법제자들이 비교적 부유할 거라 생각했고, ‘용천사(龍泉寺)’는 중국의 어느 절 같은데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대법제자들은 다르다고 생각했고, 사부님께서 ‘말씀으로 전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몸소 가르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꽤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나는 또 학부모들에게 말했어요.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자녀로 만들어 주겠다고요, 이것이 내가 전념하는 일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보고 저는 더욱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대법제자의 자녀들을 사부님께서 맡아 그렇게 잘 보살펴주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사부님의 가족(親人)들을 대법제자들에게 맡겨 제도하게 하셨는데, 저는 아무것도 잘하지 못했습니다.

몇 년 사이에 수억 명이 고통 속에서 생명을 잃었고, 주변의 수많은 대법제자들이 무기력하게 세상을 떠났으며, 매일 구급차가 수시로 지나갔고, 사회의 불안한 정서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공간의 손실은 볼 수 없지만, 이 공간에서만 봐도 어떻게 사부님께 설명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제 사악이 감히 공공연하게 사부님을 공격하고 있으니, 대법제자들의 수련이 따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법이 끝나기도 전에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제고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9/488125.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9/488125.html

ⓒ 2025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