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장쑤성 대법제자
[명혜망] 2009년, 20대 초반인 저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어머니가 1998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신 이후, 비록 책은 읽어보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대법이 무엇인지, 제가 왜 여기에 왔는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정식으로 수련을 시작하기도 전에 중국공산당(중공)의 대법 박해가 시작되어 저와 수련은 스쳐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법이 저에게 어떤 의미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꿈을 꾸었는데, 어떤 사람이 나에게 무슨 공법을 권유하자 저는 무시하며 “저는 파룬궁만 믿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10년은 제가 고등교육을 받고 직업을 찾는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비록 매우 힘들었지만 저는 아직 수련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아직 인생을 즐기지 못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2009년 어느 날, 저는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제가 반년 동안 상하이에서 방황하다가 찾은 일자리에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일하다 해고됐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어머니로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 갔을 때, 한 생명이 눈 깜짝할 사이에 흙 속에 묻히는 것을 보며 생명의 하찮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사회와 사랑을 경험했고, 대법에 들어가지 못한 10년의 인생은 곳곳이 실패였습니다. ‘내가 수련을 해야 할까?’ 저는 마음속으로 계속 저울질하면서 대법이 좋은 줄 알고, 이 법을 위해 왔다는 것도 알고, 인생이 이렇게 고달프다는 것도 알면서도 왜 마음을 정하지 못했을까요? 수련의 문 앞에서 망설이고 방황하다가 마침내 대법 수련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매우 즐거웠습니다. 갑자기 일자리를 찾았고 모두가 저에게 매우 친절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정해주신 모든 심성 시험을 단번에 통과했습니다. 매주 한 단계씩 돌파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고, 마치 무언가를 주워 올리는 것처럼 쉬웠습니다. ‘수련이 이렇게 쉽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진작 시작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1년의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1년 후 상하이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진정한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1.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시련
질병 치료와 건강을 목적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와 그 효과를 경험한 많은 파룬궁수련생들과는 달리, 저는 2009년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끔 감기와 가벼운 빈혈 외에는 건강했습니다. 긴 머리카락은 굵고 까맣고, 피부는 희고 깨끗했습니다. 하지만 2009년에 수련을 시작한 직후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이 많아서 좀 빠져도 눈에 띄지 않을 것 같아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빈혈은 줄곧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증상은 경미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저는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출산할 때마다 빈혈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둘째를 낳을 때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48~51(정상인은 120 정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산전 검진을 도와준 의사는 결국 무기력하게 말했습니다. “희귀한 의학적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저는 매일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법을 필사했으며, 안으로 찾고, 만삭의 몸으로 혼자 시골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출산이 임박할 때까지도 계속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발정념도 아주 잘했는데, 때로는 몇 시간씩 했습니다. 다른 수련생들에 대해서는 때때로 공능(功能, 초능력)으로 들어가 그들이 받는 시련의 원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정말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많은 심성 시험을 겪었고, 난관이 한꺼번에 여러 배로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 남편과 시부모님의 변화는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수련을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층차를 돌파하고 있다는 느낌이 여전히 뚜렷했지만, 속도가 느려지고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심한 빈혈에 희귀 혈액형이어서 병원에서는 출산용 혈액 주사를 맞지 않으면 출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끔 저는 자신에게 오랫동안 발정념을 하면 동그란 부침개처럼 생긴 적혈구가 많이 보였지만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게 심한 빈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헤모글로빈 수치가 이렇게 낮으면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는데, 저는 혼자서 산전 검진을 받으러 갈 수 있었습니다. 어지럽고 속이 불편했지만 산전 검진을 받으러 수십 킬로미터를 혼자 운전하곤 했습니다.
아들을 낳고 나서는 다시는 혈액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빈혈에 신경 쓰지 않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언젠가는 반드시 돌파해야 할 큰 누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3개월이 됐을 때 머리카락이 더 심하게 빠지기 시작해서 더는 긴 머리를 유지할 수 없게 됐고, 나중에는 짧은 머리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두피가 뚜렷하게 보이고 뒷머리에 넓은 빈 부분이 드러났으며, 머리카락은 건조하고 누렇게 변색됐고 쉽게 끊어졌습니다. 손으로 두피를 긁으면 긴 것, 짧은 것 할 것 없이 수십 개의 머리카락이 빠졌고, 방금 자란 아주 짧은 머리카락도 빠졌습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좀 크자, 저는 당문화(공산당 문화)가 심하고 매우 바쁜 직장에서 2년간 일했고, 게다가 아이들까지 돌봐야 해서 부담이 컸습니다. 법공부와 연공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제 몸은 한계에 다다랐고 머리카락은 더욱 심하게 빠졌으며, 치아도 몇 개 빠지고 갑자기 체중이 5kg 늘었습니다. 최악일 때는 머리숱이 적고, 안색이 누렇고, 입술이 하얗고, 얼굴이 초췌해 보였으며, 영양실조에 매우 허약한 모습이었고 2층만 올라가도 숨이 찼습니다. 그래서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 모습이 너무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 베개에 떨어진 작은 머리카락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곤 했습니다. 10여 년의 수련 기간 동안 저는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습니다. 비록 집착이 많았지만 계속 열심히 수련하고 안으로 찾았는데 왜 좋아지지 않는 걸까요? 수련생들은 자주 제게 발정념을 도와달라고 했지만, 저는 이 문제에 대해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일까요? 모든 사람이 수련 후에 건강해졌는데, 저는 아직도 사부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걸까요? 하지만 거듭된 층차 돌파를 통해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인도하시며 늘 제 곁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제가 마지막으로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때로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낮잠을 아주 달게 자고 있을 때(저는 줄곧 안일심이 비교적 강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네가 소화상(작은 스님)처럼 될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너를 막을 수 없을 텐데”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꿈에서 사부님을 뵀는데, 사부님께서는 자애로운 아버지처럼 결가부좌를 하고 앉아 제 머리를 어루만지고 계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진실했습니다. 제가 어찌 사부님의 제자가 아닐 수 있겠습니까?
여러 번 문득 크게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처음 대법에 들어왔을 때는 근본적인 집착이 있었습니다. 본래의 운명에서 벗어나려 했고, 대법을 이용하려 했으며, 세상을 피하려 했고, 이해득실을 따졌습니다. 법을 얻은 초기에는 속인의 관념이 많았습니다. 대법을 수련하면 질병이 없어질 수 있지만 빈혈은 영양부족이라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알 수 있는 모든 마음을 다 찾아봤습니다. 법을 얻은 초기부터 심한 빈혈, 그리고 점점 심해지는 탈모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가 품은 모든 생각을 세세히 분석했습니다.
몇 번이나 이번에는 제대로 찾았다고,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머리카락은 여전히 매일 낙엽처럼 떨어졌습니다. 여러 번 우울하게 ‘이것이 내 길인가 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제가 언젠가 계속되는 병업(病業)의 원인을 찾게 된다면 꼭 적어서 수련생들과 공유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 진수(眞修)와 실수(實修)
작년 3월, 사부님께서는 제게 법공부를 많이 하고 진지하게 하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법공부를 시작했고, 이는 제 이전 상태를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그 전에는 오랫동안 좋지 않은 상태를 돌파하지 못해서 ‘어차피 정법은 성공할 테니 인내심을 갖고 끝나기만을 기다리자’라는 매우 소극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진지하게 법을 많이 공부한 후에는 그렇게 혼란스럽고 수동적이지 않게 됐고, 자신의 근본적인 명리심(名利心-명예와 이익에 대한 마음)과 질투심을 제거하지 못한 것 등 착실한 수련[實修]에서 여러 문제도 발견했습니다. 또한 추구하는 마음이 너무 강해서 늘 탈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들을 발견하고 제거하려 노력한 후에도 여전히 머리카락이 빠졌고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힘들 때면 ‘법공부나 하자. 다른 생각하지 말자. 오직 법만이 나를 도울 수 있어. 오직 법, 오직 법뿐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두 달 전, 저는 1년 남짓 만에 일곱 번째로 ‘전법륜’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마음을 담아 필사했고, 필사하면서 마주친 모든 문제에서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저의 상응하는 집착을 찾아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진수제자’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이렇게 확고하고, 10여 년 수련하면서 몸이 점점 나빠져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는데도 진수제자가 될 수 없는 걸까요? 저는 수련생들이 ‘진수(眞修), 실수(實修)’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수련이 되는 걸까요?
그즈음 우리 집에 매우 나쁜 일이 생겼고, 어머니와 저의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아 약간의 자극에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저녁, 딸이 제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습니다. 딸아이가 평소에도 말을 잘 듣지 않고 어른들에게 말대꾸하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너무 괴로워서 딸아이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고, 딸이 어머니께 말대꾸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께서 딸에게 “네가 내가 떠나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떠날게. 누군가 네 편을 들어준다고 내가 널 두려워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이 말씀이 제 아픈 곳을 찔렀습니다. 저는 평소 어머니가 그런 비꼬는 말투로 말씀하시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달려가서 어머니와 논쟁했겠지만, 그날은 제가 일단 나가서 어머니와 논쟁하면 이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강한 우려 속에서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서 그 말씀을 계속 반복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매우 화가 났지만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자 매우 아름답고 평온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게 ‘인(忍)’의 경지를 보여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어머니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웃으시며 제게 뭘 먹을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저는 정말 ‘진수’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늘 공정하고, 이치를 따지며, 엄격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했습니다. 자녀와 가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직장에서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항상 면면이 완벽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남자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여자 친구가 생기거나 결혼하면 불필요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 즉시 연락을 끊고 말 한마디 더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시절, 기숙사 룸메이트 두 명이 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보다가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얼른 돌려놓았습니다. 제가 너무 정직해서 제 앞에서는 나쁜 짓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제가 사람들 중에서 매우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 속했고, 처음 법을 얻었을 때의 그런 자신감 때문에 저는 자신의 인식에 너무 집착했고 자신의 판단을 너무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저는 대법에 진정으로 동화되지 못했습니다.
‘인’을 예로 들면, 저는 늘 형편없이 했습니다. 알고는 있었지만 깊이 인식하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화를 낸다는 것은 알았지만 제가 화를 내는 것이 다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어머니께서는 제가 산후조리를 할 때 고기를 숨기시고 한 달 내내 저에게 감자만 주셨습니다. 남편은 어머니 편을 들면서 산후조리 때는 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을 내려놓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저는 제가 참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시어머니와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았고 이 일을 계속 들추지도 않았는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지금 어떤 젊은이가 이렇게 할 수 있겠어? 더군다나 난 부모님이 모두 공무원인 가정에서 자랐고, 외동딸인데 어떻게 이런 일을 견딜 수 있겠어?’ 저는 마음속으로 그들을 경멸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경멸당할 만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예를 들면 딸아이가 늘 말대꾸를 좋아해서 제가 한마디 하면 반드시 저를 제압하려고 한마디 더했습니다. ‘이런 데 내가 어떻게 때리지 않을 수 있겠어? 아이들을 이렇게 내버려둘 수 있나? 아이들은 잘 교육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 대해 무책임한 거야.’ 저는 딸아이의 문제와 관련해 자신의 쟁투심과 당문화 같은 것도 찾아보았고, 제가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화를 내고 흥분했지만 옳은 일이었고 화를 낸 후에도 안으로 찾았으니까요.
어머니가 가끔 비꼬는 말투로 말씀하시면 저는 반드시 이치로 따졌습니다. 대법제자가 어떻게 그렇게 말투를 할 수 있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반드시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해. 이것는 참는 문제와 달라. 사부님께서도 문제를 발견하고도 지적하지 않으면 무책임한 것이라고 하시지 않았나?’ 저는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줄곧 제가 생각하는 ‘인’을 실천하고 있었고, 사부님 말씀으로 제가 인식한 ‘인’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완전히 반대로 했던 것입니다!
다시 ‘선(善)’을 생각해보면, 역시 제가 생각하는 ‘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제 아이를 심하게 괴롭힐 때면 저는 그 아이의 부모를 찾아갔습니다. ‘내 아이가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할 수는 없잖아? 상대방도 덕을 잃는 것이니 그냥 두면 그에게도 좋지 않아.’ 우리 친척 한 명이 우리집의 돈을 속여 빼앗아 갔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그를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미워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돈은 대법 자원이야!’
‘진(眞)’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그렇게 정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예전의 그런 모습들이 매우 위선적이었습니다. 제 마음속의 그런 우회적인 생각들과 음모들 어디에 ‘진’이 있었겠습니까?
이 문제를 발견했을 때 저는 정말 두려웠습니다! 저는 줄곧 제가 생각하는 ‘진선인’을 실증하려 했을 뿐, 무조건 ‘진선인’ 대법에 동화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대담했습니다! 제가 계속 좋아지지 않은 것도, 몸이 점점 더 나빠진 것도 당연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정말로 ‘진수’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3. 법에 녹아들어 자신의 길을 걷다
저는 최근 몇 년간 수련생들이 가장 많이 토론한 것이 ‘자아’를 없애고 ‘진수와 실수’를 하는 문제라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자아’란 무엇일까요? ‘진수’와 ‘실수’란 무엇일까요? 제 주변 수련생들은 대부분 연세 드신 분들인데, 많은 분이 오랫동안 자녀에 대한 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어떤 분들은 원망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분들에게 말씀드려도 전혀 깨닫지 못하셨습니다. 이렇게 분명한데도 왜 돌파하지 못하시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저는 자신이 진정으로 법 속에서 깨닫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자아’를 수련할 때는 늘 수련생들이 어떻게 말했는지만 생각하고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법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문제였습니다. 수련생들의 교류문에서 ‘자아’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지만, 저는 이것 때문에 자아를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수련생이 자신의 귀중한 수련 과정을 기록하는 것은 정말 대단하지만, 그것은 그 수련생 자신이 법에서 깨달은 것일 뿐이며 참고하고 격려하는 데만 사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수련의 길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오직 사부님의 대법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오직 사부님의 법만이 우리를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제가 법에 깊이 빠져 법공부를 할 때 주변의 사람과 일들을 보면, 사부님께서 제 집착을 제 눈앞에 딱 보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법공부를 표면적으로 할 때는 보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쉽사리 문제가 나타난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예전에는 이 구절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이해가 됐습니다. 저는 깨달았는 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제가 생각하는 ‘진선인’을 실천할 때는 법의 관점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인식 속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인식을 완전히 내려놓고 무조건 대법에 따라 깨닫고 행하는 것이 바로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서 돌아보니, 저는 정말 10년이 넘는 시간을 ‘자아’라는 틀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아직도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의 인식 속에서 본래 가진 강점을 발휘하는 것일 뿐이며, 전혀 ‘진수’가 아닙니다. 법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면 ‘실수’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자아’는 제가 법에 녹아드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제 삶을 매우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안색이 누렇다 보니 오랫동안 마스크를 썼는데, 마스크 아래의 제 표정이 매우 불안하다는 것을 종종 발견했습니다. 제 완벽한 ‘자아’가 모든 것이 제 노력으로, 자신의 생각대로 질서 있게 진행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려니 매우 피곤하고 불안했습니다. ‘자아’ 때문에 사부님과 법을 완전히 믿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더 믿게 됐습니다. ‘자아’는 제가 법에서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취하게 했고 법에 녹아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밖에도 많지만 일일이 나열하지 않겠습니다.
4. 새로운 경지가 열리다
지난주에 딸이 “엄마, 머리에 있던 그 큰 틈이 없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며칠 동안 예전처럼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고 얼른 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불과 2주 만에 넓었던 머리 사이의 틈이 사라졌고, 머리카락이 굵어지고 까매졌으며 윤기도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머리카락 때문에 고민했던 터라 좋아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생리를 하면서 피가 매우 선홍색인 것을 발견했고, 그제야 약 10여 일 전부터 갑자기 힘이 생겨서 집안일도 빠르고 가볍게 할 수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주말에 아이들과 등산을 가도 예전처럼 어지럽거나 숨이 가쁘지 않았습니다. 아래 눈꺼풀을 보니 약간 핏기가 돌았는데, 이전에는 아래 눈꺼풀이 너무 창백해서 의사가 보면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그제야 제 빈혈이 나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탈모도 빈혈 때문이었는데, 빈혈이 없는 게 어떤 느낌인지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려서 빈혈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던 겁니다.
신기하게도 딸아이도 갑자기 착해져서 ‘인(忍)’을 배우고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행복이 너무 갑자기 찾아와서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저는 앞으로의 제 수련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문발표: 2025년 1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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