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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를 치르다’에 대한 깨달음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어릴 때부터 손해를 보면 보통 남들과 따지지 않고 잘 참는 편이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겉으로 말하진 않지만, 마음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없지 않았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후에야 수련인은 정념을 유지하고 ‘진선인(眞·善·忍)’의 우주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각종 집착심을 버리는 과정에서 원망심을 완전히 없애지 못하고 늘 미적거리며 반복됐습니다.

평소 쇼핑몰에 가서 긴 줄을 만나면 불평했고, 일할 때 컴퓨터 속도가 느려지면 불평했으며, 버스를 오래 기다려도 불평했습니다. 작은 일에도 불평하니 큰일에는 원망이 더 깊어졌습니다. 10여 년 전, 집주인에게 보증금 수천 위안과 선납한 집세를 돌려받으러 갔을 때 집주인이 거절하고 오히려 제가 냉장고를 망가뜨렸다고 해서 한동안 무척 분개했습니다. 몇 년 전에는 아는 사람이 10만여 위안(약 2천만 원)을 빌려 가서 계속 핑계만 대며 갚지 않아 무척 괴로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일들은 기억 속에서 점점 흐려졌지만, 사실 저는 여전히 원망심을 진정으로 수련하지 못했습니다. 제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고 늘 원망과 고통으로 괴롭혔던 일 중 하나는 바로 몇 년 전 회사에서 ‘억울하게’ 해고당한 일이었습니다.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저는 한 대기업의 중요 부서에서 여러 해 동안 일했습니다. 부서 업무가 많아 자주 야근을 해야 했고, 늘 회사에서 가장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직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직속 상사가 저를 중용해 저는 회사의 많은 중대 프로젝트를 주도하거나 참여했고, 거의 매년 우수 직원으로 선정됐습니다. 어떤 중대 프로젝트를 실시할 때는 회사 고위층이 작성한 실시 방안을 자세히 연구한 후 최적화 방안을 제시해 회사 비용을 1억여 위안이나 절감했습니다. 회사가 중대한 위기를 맞았을 때 일부 고위층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책임을 회피하며 저를 위험한 위치로 몰아갔습니다. 저는 책임을 져야 할 위험을 무릅쓰고도 회사와 고위층에게 불리한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에 다른 직원들이 근무 시간에 애완동물을 데리고 놀아서 회사가 직원을 감원하게 됐는데, 뜻밖에도 이 일과 전혀 관계없던 저도 감원 대상자 명단에 올랐고, 애완동물을 데리고 놀던 사람들 중에서는 단 한 명만 해고됐습니다. 애완동물을 데리고 놀던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저만 연루돼 ‘책임을 뒤집어쓰게’ 됐습니다. 회사를 위해 온 마음을 다해 헌신했던 걸 생각하니 그때는 정말 ‘부당하다’고 느껴져서 밥도 먹기 싫고 잠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 회사를 떠난 후 새 직장을 구하는 일도 순조롭지 않아 원망심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습니다. 예전 동료들이 저와 근로계약 해지를 논의할 때 했던 신랄한 말들, 일부 동료가 저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장면들이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자주 떠올랐습니다. 때로는 예전 회사의 부정적인 소식을 접하면 마음속으로 약간의 고소함도 느꼈습니다. 이를 보면 당시 제 원망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을 읽으며 저는 계속해서 법을 배우고 발정념을 많이 했습니다. 발정념을 할 때마다 마음이 한결 밝아져서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고 더는 과거를 따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을 마주치면 원망심이 다시 떠올라 늘 철저하게 버리지 못하고 깨끗이 없애지 못했습니다.

저는 법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과거의 나쁜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 정법과 우주 중생을 제도함의 수요이며, 사존의 무량한 자비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 사존의 설법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비할 수 없는 행운입니다. 수련의 길에서 저는 얼마나 많이 법에서 벗어났고, 사부님께 얼마나 많은 폐를 끼쳤으며, 사부님께서는 제가 진 업력을 얼마나 많이 감당해주셨습니까. 그런데도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저를 제자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런데 저는 왜 아직도 남들이 저에게 ‘불공평’했던 일을 따지고 있을까요?! 왜 아직도 대법의 요구와 어긋나게 행동하고 있을까요?! 하물며 전생에 제가 그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지는 않았을까요?

얼마 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 머릿속에 갑자기 ‘대가를 치르다[付出]’라는 글자가 떠올랐습니다. 이것이 저에게 무엇을 깨달으라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문득 수련인으로서 전생에 진 빚을 갚고, 형형색색의 집착심을 버리고, 생생세세 쌓아온 업력을 없애려면 우리가 모두 치러야 하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며,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심지어 생사의 시련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수련 과정에서 중생을 위해 기꺼이 치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명리정(명예, 이익, 정)을 내려놓을 수 있고 빨리 내려놓을 수 있으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고 미움도 없으며, 길이 험난해도 원망도 후회도 없어야 각종 집착심을 쉽게 수련해 없앨 수 있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타인을 위하는 정각(正覺)으로 수련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원망이 맴도는 것은 바로 제 선한 마음이 부족하고 중생을 위해 치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치르다(付出)’라는 두 글자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줄 ‘부(付)’ 자를 풀어보면 ‘사람(人)’과 ‘촌(寸)’이고, ‘출(出)’ 자는 위아래로 두 개의 산입니다. 이를 통해 저는 사람의 마음이란 조금씩 조금씩, 한 치(寸) 한 치 쌓이다 보면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되고 돌이 쌓여 산이 되어 집착으로 가득 차게 되며, 각종 집착심을 수련해서 없애는 것도 한 치 한 치, 한 층 한 층 세월을 두고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도(小道)에서 수련한다면 이 과정이 몇 생 몇 세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다행히도 사존과 같은 시대에 있게 됐고 우주 대법을 얻어 한 생에 수련 성취할 수 있게 됐지만, 그래도 단련하는 과정은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불법(佛法) 수련에서 왜 용맹정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저는 여러 해 동안의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이상은 제가 원망심을 버리면서 얻은 약간의 깨달음입니다. 이 심득체험을 쓰는 과정에서 교란도 매우 컸고 컴퓨터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28/4851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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