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박해 초기에 겪었던 한 가지 경험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 경험을 통해 저는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 바로 정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마을 파출소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국가에서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규정했으니 수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제가 연공으로 목숨을 건졌는데, 연공하지 말라는 게 말이 됩니까?”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국가에서 금지했으니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향정부 간부들이 또 집에 와서 괴롭혔고, 저는 그들에게 “간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무엇이 정(正)이고 무엇이 사(邪)입니까? 좋은 사람이 되고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하는 게 사악하다면, 도대체 무엇이 바른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런 거 상관 안 합니다. 국가에서 수련하지 말라고 했고 당신들이 사악하다고 했으니 사악한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들은 이치가 없군요. 그렇게 말하면 되나요? 언제나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수련하는 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을에 가서 알아보세요. 우리는 수련하면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어요. 우리는 좋은 사람입니다. 맞아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을 들어도 대꾸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장사하면서 사람을 속인 적이 있었는데, 수련한 후부터는 나쁜 일을 하지 않았고 마음이 선해졌는데, 이게 좋은 일 아닙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그런 거 상관 안 합니다. 국가에서 당신들이 사악하다고 하면 사악한 것이고, 수련하지 말라고 했으면 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보고, 중공 악당 인원들은 위에서 아래까지 모두 이치를 따지지 않으니, 그들과 논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설이 지나고 2000년 1월 15일, 저는 남편과 의논했습니다. 대법이 박해받고 사부님께서 억울함을 당하시는데, 대법제자로서 나서서 법을 수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일가족 셋은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습니다. 천안문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경찰과 마주쳤습니다. 경찰이 무슨 일이냐고 물어서 청원하러 왔다고 했더니 무슨 청원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예전에 병이 있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았어요. 공정한 말 한마디 하고 싶어서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럼 우리를 따라오세요”라고 했고, 경찰은 우리를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기록을 작성한 후 우리는 베이징 주재 현지 사무소로 보내졌고, 6~7일 후에 향파출소 경찰이 우리를 데리러 왔습니다. 경찰은 데리러 오면서 “수련하지 않겠다고만 하면 바로 집으로 보내드립니다”라고 했습니다. 현지에 도착해서 경찰이 계속 수련할 것이냐고 물었고 우리는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청원을 계속할 것이냐고 물었고 “하겠습니다! 법이 바로 잡히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저와 남편을 구치소에 가뒀고, 한 달여 만에 저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한 끝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와서 저와 남편은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베이징 방문 때는 제대로 하지 못했고 현수막도 펼치지 못했으니 다시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저와 남편은 다시 베이징으로 갔고, 이번에는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현수막을 허리에 감았고 저는 이번에는 아주 단정하게 차려입었습니다. 가는 길에 저에게 묻는 사람이 없었고, 천안문에 도착해서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우리 둘이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이 현수막이 매우 길었는데, 막 펼치자마자 경찰들이 달려왔습니다. 남편을 바닥에 눕히고 마구 때리고 들었다 놨다 하면서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저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서 경찰에게 달려가 현수막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밀고 당기다 경찰이 제 앞까지 왔고, 그들이 계속 남편을 때리는 것을 보고 크게 외쳤습니다. “사람을 때리지 마세요!” 경찰들은 놀라서 연달아 “빨리 꺼져, 빨리 꺼져!”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둘을 경찰차에 태워 근처 파출소로 데려갔습니다. 오면서 저는 남편과 상의했고 이번에는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법이 명예를 회복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파출소에 들어가니 전국 각지에서 온 많은 수련생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창춘에서 온 한 여성수련생은 맞아서 머리가 온통 피투성이였습니다. 남편이 이 수련생을 돌보다가 나중에 경찰이 남편을 데려가면서 우리 둘은 헤어졌습니다. 저는 또 가서 이 다친 여성수련생을 돌봤고, 이때 한 무리 한 무리 청원하러 온 수련생들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 후 저는 또 경찰이 호송하는 버스에 실려 낯선 곳으로 가서 철창에 갇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경찰이 우리를 밖으로 내보내며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은 번호를 매겨 불렀습니다. 또다시 차에 실려 다른 낯선 곳으로 가서 한 명씩 심문을 받았습니다. 이름을 말하지 않으면 옷이나 신발, 가방을 뒤지고 때리고 욕을 했습니다. 창춘에서 온 여성수련생은 이름을 말하지 않아 얼굴이 붓도록 맞았고, 또 어떤 이는 벽을 보고 서 있게 했습니다.
저를 심문할 때 경찰이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저는 “중국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심문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려드리죠. 살아서 왔지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안 했습니다. 저는 연공으로 이로움을 보았고 목숨을 건졌습니다. 무서울 게 뭐가 있습니까? 이 법이 없었다면 오늘의 제가 있었겠습니까? 당신들이 연공하지 말라고 하고 좋은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연공하지 않아서 병이 재발하면 어떻게 합니까? 누가 저를 책임지나요? 죽든 살든 이런 상황이 되었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연공하지 말라고 하니 저는 살아서 돌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상관없습니다. 살아서 왔어도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간단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심문하던 사람은 화가 나서 “됐어, 됐어.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우리처럼 이름을 말하지 않은 사람들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져 심문을 받았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빨리 말하세요. 이름과 주소만 말하면 우리도 임무를 완수한 것이고, 집에 가서 수련하고 싶으면 하세요. 협조 좀 해주세요.” 저는 “좋아요, 잘 기억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심문하는 사람이 신이 났습니다. 저는 “중국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라고 했고, 저는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합니까?”라고 했습니다. 그가 “어느 지역인지 말하세요”라고 했고, 저는 “저는 중국인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살아서 왔지만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요. 목숨은 대법이 주셨기에 연공하지 않으면 목숨이 없습니다. 저는 연공해야만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심문하는 사람은 “돌아가,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렇게 이름을 말하지 않은 사람들은 또다시 베이징시 충원구 구치소로 보내졌습니다. 심문하는 사람은 남자 경찰이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국가 형세를 말씀드릴게요. 집에 가서 수련하세요. 집에서 수련하면 안전합니다. 여기는 베이징이고 수도인데 공산당과 적을 지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좋다고 하면 집에 가서 수련하세요. 이곳은 안전하지 않으니 집에 가서 수련하면 안전합니다.” 저는 “저한테 그런 식으로 말씀하지 마세요.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 거짓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를 욕하는 거야? 다시 말해봐”라고 했고, 저는 또 “당신들은 위에서 아래까지 전부 거짓말쟁이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손으로 제 뺨을 때렸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봐!” 저는 또 한 번 말했고 그는 또다시 제 뺨을 때렸습니다. 이렇게 여러 번 반복되었고 몇 대나 맞았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얼굴이 후끈거렸지만 아프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의 손이 저를 때리느라 부어올랐습니다. 방에는 여경도 한 명 있었는데, 그는 그 여경에게 “전기봉 가져와. 저 얼굴이 내 손보다 더 단단한지 한번 보자고”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전기봉을 탁탁 누르며 위협했고, 저는 그게 전기봉인지도 몰랐고 본 적도 없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불꽃이 튀었습니다. 그는 “오늘은 반드시 네가 말하게 만들 거야. 왜 날 욕하는 거지?”라고 했고, 저는 “저는 욕한 적 없어요. 당신은 사람 때리는 몽둥이에 불과해요. 법률은 당신이 정했나요? 당신이 결정하나요? 이 법을 좌지우지할 권리가 당신에게 있나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화가 나서 전기봉을 누르자 저는 “그 장난감으로 저를 놀라게 하지 마세요. 오늘 제 손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이 방에서 죽어버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자 그는 놀라서 감히 저를 건드리지 못하고 펄쩍 뛰었습니다. 독기를 품고 “돌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을 불러 저를 감방으로 보냈고, 감방에 들어서자 재소자들이 제 빨개진 볼을 보고 “맞으셨죠? 아무개가 심문했나요? 그 사람은 잘 때려요. 구치소에서 가장 사악한 경찰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불법적으로 한 달여 동안 구금되었습니다. 전에는 정념이 무엇인지 몰랐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 바로 정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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