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안후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미국에서 사악이 ‘여론전’, ‘소송전’을 벌여 사부님과 대법을 직접 박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여기에 대한 미국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도 보았는데, 12월 20일 명혜망에 올라온 ‘정사대전(正邪大戰)과 또 한 차례의 큰 시험’이란 글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 글의 부제목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최대 사명은 대법 수호’이다.
나는 이 수련생의 이성적이고 시의적절한 인식에 공감하는 동시에, 글에서 지적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중국 대법제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 인식을 보충하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우선 미국에서 이번 법난이 발생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그 수련생은 교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수련생이 곤혹스러워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데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왜 사부님께서 법난의 발생을 허용하셨는가? 왜 나쁜 사람이 대법 수련생 중에서 악행을 하도록 허용하셨는가? 어찌하여 아직도 수련생 중에 숨어서 파괴 작용을 하는 특무를 폭로하시지 않는가? 왜 정법이 곧 법정인간 시기로 진입하는 시점에 법난이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사부님마저 고소당하는 하늘을 거스르는 악행이 나타났는가? 어찌하여 상당수의 해외 수련생이 다년간 이토록 마비되어 심지어 지금도 대법을 수호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가?’
솔직히 말해 미국 수련생들이 아직 이런 문제로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수련생인데 누구에게 묻고 있는가? 아직도 밖으로 찾고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소수가 아닐 것으로, 아니면 법난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대법을 수련한 지 수십 년이 되었고, 그동안 사부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설법을 하셨는가? 사부님께서는 현실 사회에서 우리의 수련에 영향 줄 수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일일이 말씀해주셨는데, 혼란을 겪는 수련생들은 법공부를 얼마나 했는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당신은 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당신은 정말 신입니까?”라고 물을 수 있겠는가?
한 명혜망 교류 글이 생각나는데, 대략적인 내용은 구우주의 한 신이 수련생들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법제자들은 정말 대단하다. 전지전능한 당신들 사부조차도 당신들에게 가로막혔다.”
사부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사부님께는 하늘을 되돌릴 힘이 있지만, 전제는 제자들이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정념이 넘쳐야 한다는 것이다. 중생제도는 대법제자들이 스스로 한 서약이며 대법제자들의 일인데,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이 서약을 이행하고 원만 성취하게 하기 위해 직접 제자들을 이끌고 션윈예술단을 만드시어 광범위하게 중생을 구하셨다. 그런데 우리 대법제자들은 이 소중한 기연(機緣)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 참여하여 수련 제고해 왔는가? 아니면 단순히 일하기 바빠 일과 수련을 분리하고, 일을 많이 하는 것을 제고하는 것으로 여겼는가?(매체와 1인미디어 수련생 포함)
개인적인 이해로는, 많은 대법제자가 아직도 다른 사람의 지적을 듣지 못하고, 아직도 안으로 찾지 못하며, 갈등이 생기면 밖으로 ‘연구’하기 때문에 수련에서 많은 허점이 있고 제고가 늦고, 심성의 끊임없는 제고 속에서 없어져야 할 각 층차의 업력이 쌓여 왔다. 사악은 이런 수련생들을 기어이 도태시키려 하기 때문에 정법의 최후에 반드시 손을 쓴다. 모두들 사부님의 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와 ‘각성하라’를 많이 읽어보기를 바란다.
정법의 최후에 사악의 힘은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만약 우리 대부분 수련생이 모두 진수(眞修), 실수(實修)했다면, 법리가 명확하고 진정한 좋고 나쁨과 선악을 제대로 구분할 수 있었다면, 법에서 이성적으로 갈등을 대하고 바르게 행동했다면(사람의 정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속인의 입장에 이끌리고 심지어 속인 중의 사람과 일을 평가하지 않았다면,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할 수 있었다면, 사악이 어찌 감히 박해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특무와 나쁜 사람들이 어찌 감히 우리의 정념의 장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자신의 마음을 잘 살펴봐야 한다.
중국에서 우리는 사악이 대법과 대법제자를 박해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모두 함께 발정념을 하여 정체의 힘으로 사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한다. 그렇게 일정 기간 견지하면 박해의 배치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개인 수련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국 수련생들은 사악이 자신을 박해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거나 느낌이 들면 모두 장시간 발정념으로 사악을 제거하는데, 여러 날 견지하면 나쁜 배치가 흐지부지되어 없어진다. 나도 여러 차례 직접 이런 일을 겪었다.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눈을 늘 사람의 표면에 두지 말라. 그런 배후의 요소를 해결해야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형세를 변하게 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에게 변화가 생기게 할 수 있다.”(각지 설법11-20년 설법)
“대법제자라면 정념이 좀 충족해야 하는데, 무엇이든 모두 대법제자에 의해 개변되며 사악도 청리될 수 있는데, 그 나쁜 사람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몇 나쁜 사람은 사악이 조종하여서 한 것이 아닌가? 사악이 청리되어 제거될 때, 당신이 그 사람 앞에 서 있으면 그는 감히 당신에게 ‘좋지 않다(不好)’는 ‘불(不)’ 자조차 말할 수 있겠는가? 신(神)에 대해 그는 감히 하지 못한다.”(2005년 샌프란시스코 설법)
또 지난 6월 5일에는 경문 ‘법난’을 발표하셨는데, 이는 직접 제자들에게 경종을 울려주시고, 다시 한번 잘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무감각하여 적극적으로 단체 발정념을 하여 사악을 제거하지 않았다. 이후 사악은 8월부터 ‘뉴욕타임스’를 조종해 대법과 션윈을 공격하는 문장을 발표하기 시작하여, 12월까지 총 8편의 박해 기사를 잇따라 실었는데, 앞으로 계속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더욱 악랄한 것은 사악이 11월에 대만의 장(張)○○(전 페이톈 대학 학생)를 조종해 미국에서 파룬궁과 소송전을 벌이고, 심지어 사존을 직접 고소했다는 사실이다. 특무와 나쁜 사람들이 소셜미디어, 1인 미디어에서 쏟아낸 비방과 모함은 더욱 많다. 이번 법난은 이처럼 사악이 대법제자들의 저지를 거의 받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안전 문제 때문에 어떤 일을 조율하여 함께 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가 전혀 없는 미국에서 정체 협력을 중시하지 않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우리는 정말 자신의 문제를 잘 찾아야 하고, 더 이상 밖을 보지 말아야 한다.
박해가 이미 발생했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뼈 아픈 교훈으로 삼고, 지금이라도 잘하면 늦지 않았다. 미국 수련생이 교류 글에서 지적했듯이 사부님을 수호하고 대법을 수호하는 것은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가장 큰 사명이다. 나는 이것이 조사정법(助師正法), 중생을 구하는 데 있어서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사정법과 중생 구하기를 말할 수 없다.
정사 대전의 주전장(主戰場)인 중국에서 사악은 박해를 늦춘 적이 없다. 12월 20일, 명혜망에는 ‘청두시 가오신 서구 주민센터 및 두 지역사회가 공동으로 대형 전시판을 네 곳에 설치해 파룬궁 창시자를 공격했다’는 보도가 올라왔는데, 우리 중국 대법제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사부님과 대법을 수호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임을 잊지 말고, 미국을 향해 발정념을 하는 동시에 우리 각자 지역에서도 발정념을 시작해 박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선악의 최후의 대결인지는 모르지만, 선악의 대결인 것은 분명하며, 대법제자들에 대한 큰 시험이기도 하다. 우리는 소극적이거나 해이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모든 사람의 마음[人心], 사람의 정[人情], 사람의 생각[人念]을 내려놓아 사악에게 박해할 구실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조사정법하고 중생을 구하는 목적에 도달할 수 있으며, 우리의 서약을 완성하여 원만 귀위할 수 있다.
2024년 12월, 정견망에는 ‘꿈에서 본 것-과위(果位)’라는 글이 올라왔는데, 이 수련생은 꿈에서 해당 지역 수련생 중에 과위가 있는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아직 과위가 없다는 것을 보았다. 또 과위를 얻을 기회가 아직 있지만, 시간이 매우 적어 열심히 따라잡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생각해 보니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수련생들이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를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잘 이용해 각자의 과위를 얻도록 하자.
이상은 개인의 현재 층차에서의 인식일 뿐이므로 편협할 수 있다. 대법은 더 깊은 함의가 있으니 많은 지적을 바란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향상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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