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찾기에 관해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법난(法難)의 최후 시기에 인간세상의 백태와 시사정치도 모두 수련인들의 백태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도대체 이 세상의 큰 무대는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자신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이미 일이 발생했으니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고, 시기를 잘 포착해 수련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오랫동안 가졌던 관념을 돌파하며, 오래도록 내려놓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정법 수련의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갈등에 직면해서는 더 이상 밖으로 미루면 안 된다. 우리는 셜록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듯이 첫 생각이 밖을 관찰하고 외부의 실마리를 찾아서는 안 된다. 만약 당신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생각이 여전히 밖을 향한다면 – ‘사부님께서 소규모로 설법하셨나? 사부님께서 어느 소규모에서 이 문제를 말씀하셨지? 누가 어떻고 어떻고…’ – 이는 모두 밖을 향한 것으로, 당신이 아직 수련인의 습관을 갖추지 못했고, 지금까지 갈등을 만날 때마다 늘 속인처럼 대하는 것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성숙한 오랜 수련자는 이렇게 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학자나 연구원처럼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공식을 대입하고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추리하여 법에서 벗어난 결론을 내리고, 그로 인해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혼란스럽고 흔들리게 되어서는 안 된다.
안으로 찾는 것은 법보(法寶)다. 대법 수련은 사람의 마음을 직접 가리킨다. 이런 귀에 익은 말들을 우리는 법공부할 때만 인정하고, 책을 내려놓고 어떤 갈등에 부딪히면 속인의 이론, 속인의 방식, 속인의 습관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법난이 왜 발생했고, 왜 다시 파도가 일어났을까? 바로 여러분의 수련 상태가 계속 따라가지 못하고, 각종 구실과 당연시하는 태도로, 지금까지도 자신의 어떤 선택이 속인의 것이고 어떤 마음가짐이 수련인이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인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많은 수련자가 사부님의 소규모 설법을 듣기 좋아하고 사부님 곁에 머물기를 좋아하는데, 정말로 법과 사부님에 대한 경앙에서 나온 것일까? 아니면 많은 속인의 마음이 섞여 있는 것일까? 출발점과 목적은 필연적으로 언행에서 드러난다. 사실 직접 사부님의 설법을 듣는 것도 대가가 있다. 자신이 수련하고 자신이 깨닫는 과정을 생략하고 지름길을 걸었는데, 수련이 당신에게 지름길을 걷게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쪽에서 난이도를 낮추면 저쪽에서는 난이도를 높여야 하며, 해내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난이도가 증가한다. 하지만 수련이 착실하지 못하면 난관에 부딪혔을 때 마음이 더욱 속인 상태로 돌아가고, 결국 하나의 고비를 넘지 못하면 다음번에는 더 어려워지며, 넘지 못할수록 사람마음이 더욱 많아진다. 수련하고 수련하다 보니 ‘꾀쟁이’가 됐는데, 그것은 정법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사부님께서는 “천지는 정법(正法)의 길을 막지 못하는데 다만 제자들의 사람 마음이 가로막고 있네”(홍음3-번거로움)라고 하셨다. 좋은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 하고 좋지 않은 것은 모두 남의 것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어찌 선념이며 어찌 수련인이겠는가?
모든 갈등은 하나의 시험이다. 최근 어떤 항목이 고소당한 일도 하나의 갈등이다. 이 갈등 앞에서 어떤 수련자는 첫째, 둘째, 셋째 생각이 모두 외부적인 원인이었고, 계속 마음을 평온히 하여 자신이 어디를 잘못했는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항목에서 일부 사람들의 오만, 권모술수, 도리를 따지기 싫어하는 태도는 다른 수련자들에게는 심성을 연마하는 좋은 계단이 될 수 있지만, 회사는 사회를 향하고 있는데, 당신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자신을 대하듯 늘 백번 양보하고 전혀 개의치 않기를 강요할 수 있겠는가? 왜 좋은 방법, 좋은 항목도 부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가? 방법이나 항목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마음가짐이 바르지 않고 덕이 직위에 맞지 않으며, 심지어 속인 중의 좋은 사람처럼 겸손하고 성실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위해 생각할 줄도 모른다.
사실 매번 갈등에 부딪힐 때마다 안으로 찾지만 어떤 문제도 찾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문제다. 매일 법공부를 하지만 문제에 부딪혔을 때 법으로 자신을 지도할 줄 모르고 심성을 제고하지 못한다는 것 자체가 바로 문제다. 문제를 잘 활용하면 모두 층차를 제고하는 계단이 되지만, 잘 활용하지 못하면 모두 수련의 길에서 화강암이 되고 걸림돌이 되어 정법과 중생제도에 손실을 초래하고, 주변의 본래 구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밀어내게 되는데, 그것이 선행인가? 아직도 누구를 탓하고 있는가? 어떤 이들은 사상업(思想業)이 그토록 활발한데도 주념(主念)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는가? 빨리 자신을 찾고 자신을 바로잡으며 잃은 양을 보충하라.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우리에게 “정념은 세상 사람을 구하는도다”(홍음2-법정건곤)이라고 하셨다. 우리도 구세력의 배치에 너무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즉시 깨어나서 각자의 수련에서 긍정적인 노력을 통해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꾸자.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향상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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