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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배우고 이해와 관용을 터득하다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40대이고 두 아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가슴이 답답하고 심장이 두근거렸으며, 때로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손발이 차가웠습니다. 어머니는 이것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심장병이며 여러 세대에 걸쳐 이러했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치료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결혼 후에는 사람이 많아지니 화도 많아져 증상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남편은 의사였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심신이 고통스러웠던 10년 전

10년 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반년이 지났지만 우리 세 자매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서둘러 자신보다 젊은 반려자를 찾았습니다. 새어머니가 오신 후 우리 가족에게는 불쾌한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모든 일에서 새어머니 편을 들고 그녀에게 많은 돈을 쓰면서도 우리에게는 매우 냉담했습니다.

어머니가 계실 때 아버지는 매일 마작을 하러 갔습니다. 어머니가 여러 번 적게 놀고 늦게까지 하지 말라고 몸을 상할 수 있다고 권했지만, 아버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나가셨고 집안일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기쁘게 하려고 더는 마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어머니 곁에서 차와 물을 대접하고,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하는 등 세심하게 돌보았습니다. 저는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특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어머니에게 이렇게 잘해주신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아버지가 그저 무심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생겼고, 평소에는 가급적 집에 가지 않았고 전화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새어머니에게도 두 딸이 있었는데 둘 다 결혼해서 자녀가 있었습니다. 새어머니의 조카가 병이 나면 아버지가 차로 데리고 외지에 진료받으러 갔고, 그녀의 자녀들이 자주 아프면 매번 아버지가 차로 데리고 갔습니다. 제 아이가 아파서 아버지께 전화드리면 아버지는 새어머니의 손자도 아프고 매우 심각해서 가봐야 한다고 하시며 친손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으셨습니다.

제 마음은 매우 허탈했고 친어머니가 생각나 울고 싶었습니다. 참을 수 없을 때는 ‘이런 아버지는 필요 없어, 늙으시면 돌보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설날에 어떤 일을 상의하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저와 둘째 언니는 아버지와 크게 다퉜는데, 새어머니는 계속 옆에서 냉담하게 보기만 하고 말리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새어머니가 뒤에서 이간질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갈등을 줄이기 위해 명절 외에는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시부모님과 함께 사과에 봉지를 씌우다가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팠습니다. 하지만 시부모님이 그렇게 힘드신데도 계속 일하시는 것을 보고 저는 해가 저물 때까지 참고 일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소파에 기어올랐을 때는 통증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저녁을 차려주고 허리도 주물러 주었지만 주무를수록 더 아팠습니다. 저는 푹 쉬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밤중에 통증으로 잠에서 깼는데 허리와 다리가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가 없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아파서 식은땀이 났습니다. 남편이 낮에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저는 억지로 참으며 깨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할 수 없이 남편을 깨웠습니다. 남편은 거의 저를 안다시피 해서 화장실까지 데려다주었는데, 저는 앉지도 서지도 못했고 아파서 잠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남편이 즉시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저는 전동스쿠터도 탈 수 없고 이렇게 늦은 시간에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통증을 참으며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할 수 없이 진통제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진통제가 전혀 효과가 없어서 저는 아파서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버티다가 병원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외삼촌이 병원장인데, 제 사진을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허리 디스크, 척추관 협착증이라고 했습니다. 이 병은 근본적으로 치료할 방법이 없고 보존적 치료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는 무거운 일이나 힘든 일을 할 수 없고, 재발하면 심각한 경우 하반신 마비가 될 수도 있으며 수술을 해도 완전히 회복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침대에서 쉬어야 하고 절대 내려와서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침대에서 꼬박 사흘을 누워있었고 통증 때문에 몸도 뒤척일 수 없었으며, 진통제 용량을 늘려야 잠시나마 완화됐고 대소변을 볼 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낮에는 언니들이 휴가를 내고 번갈아가며 저를 돌보면서 제 두 아이까지 돌봐야 했습니다. 그들도 가정과 자녀가 있는 사람들인데다 남편은 밤에 저를 돌보고도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저는 이대로 계속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폐인이 되어 모두에게 짐이 되자 저는 무력감과 자책감을 느꼈습니다.

‘파룬따파하오’를 염송하고 허리 디스크가 낫다

문득 어렸을 때 어른을 따라 파룬궁을 몇 번 연마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병이 있던 많은 사람들이 나았었습니다. 저는 즉시 대법을 배우는 숙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는데, 참지 못하고 울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숙모는 전화를 받자마자 외지에서 서둘러 우리집으로 오셨습니다.

숙모가 들어오시는 소리를 듣고 저는 힘겹게 몸을 돌려 인사를 하려 했지만,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고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숙모는 저를 위로하며 “걱정하지 마, 대법이 너를 구해줄 수 있으니 빨리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해봐. 너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희망 없이 두 번 염했는데 통증이 정말로 감소됐습니다.

숙모가 일어나 앉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 돼요. 몸도 뒤집지 못하는데 어떻게 앉을 수 있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숙모는 저에게 1993년 ‘동방건강박람회’에서의 신기한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여러 해 동안 마비됐던 환자를 친척들이 행사장에 들것에 실어 왔는데 사부님께서 직접 그 환자를 구해주셔서 잠시 후 그녀가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숙모는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를 염하고 우리 함께 사부님께 도움을 청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염하면서 천천히 일어나 앉았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서둘러 몇 번 더 염했고 훨씬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숙모가 일어나서 걸어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의사가 침대에서 내리지 말라고 했고, 게다가 저는 일어설 수도 없어요. 잠시 앉아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많이 편해졌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숙모는 “그냥 침대에 앉아만 있으면 되겠니? 자, 내가 부축할 테니 걸어보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번 해보자. 안 되면 다시 눕지 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내려와 서서 조심스레 두 발자국을 내디뎠습니다.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저는 기쁘게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왔다 갔다 두 바퀴를 돌았습니다. 정말 나았습니다!

저는 가볍게 화장실도 다녀오고 걸레를 보자 바닥을 닦고 싶어졌습니다. 마침 그때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놀라며 “왜 서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기쁘게 “나았어요. 이제 당신이 밤새워 저를 돌볼 필요도 없고, 빨래하고 밥하는 것도 안 해도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웃으며 앞으로 일할 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대법을 배우고 이해와 관용을 배우다

이 시련을 겪고 나서 저는 대법의 신기함과 귀중함을 깊이 깨달았고, 그때부터 숙모를 따라 연공장에 가서 법공부와 연공을 배웠습니다. 한동안 수련하니 심각했던 가슴 답답함과 숨가쁨 등 모든 증상이 사라졌고 안색도 좋아졌으며, 정말 병 없이 몸이 가벼워졌습니다. 지금은 20일 연속으로 사과에 봉지를 씌우는 일을 해도 허리가 불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외삼촌 집 여러 친척들은 허리 디스크로 한의원, 양의원을 다니고 민간요법도 써보고 향을 피워 기원도 해봤지만 아무도 낫지 못했고 자주 재발해서 적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대법 수련을 통해 저는 많은 법리도 깨달았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모두 인연관계가 있고, 인연이 있어야 한 가족이 될 수 있으며, 갈등 속에서 상대방을 포용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대할 때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잘 해나가야겠습니다. 숙모 수련생도 자주 제게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언행이 있으면 일깨워주십니다. 저는 안으로 찾는 것을 배웠고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새어머니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막내딸을 병으로 잇따라 잃었고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녀가 우리집에 왔으니 우리는 그녀가 가족의 관심과 가정의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하며, 꼭 기회를 찾아 그녀와 소통하고 화해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작은아들이 일주일 동안 아팠는데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그제야 문병을 왔습니다. 저는 새어머니 곁에 앉아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전에는 철이 없어서 일이 생기면 자신이 얼마나 억울한지만 생각했지, 어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어머니의 감정은 더더욱 헤아리지 못했어요. 앞으로 우리 사이에 억울하다고 느끼시는 일이 있으면 꼭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전에 어머니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고 호칭조차 없었는데, 어머니가 좋으시다면 아주머니라고 해도 좋고 어머니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어머니가 제 곁에 오셨으니 저의 가족이십니다.” 새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괜찮아, 다 지난 일이야. 나는 너희들과 따지지 않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우리 사이가 화목해졌고 저는 집에 자주 가게 됐습니다. 갈 때마다 새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사다드리고 집안일도 자발적으로 도왔습니다. 새어머니가 수술을 받고 두 번 입원하셨을 때 저는 계속 곁에서 간호해 드렸습니다. 같은 병실 사람들이 모두 “이 딸이 정말 잘하네요. 새어머니가 정말 복이 있으시네요”라고 했습니다. 새어머니는 기쁘게 “내 다섯 딸이 다 이렇게 잘해줘서 저는 정말 복이 많아요”라고 하셨습니다.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저희 가정은 일찍이 갈등으로 가득 찼을 것이고, 저는 여전히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법은 제게 즐거운 마음과 건강한 신체를 주었고, 관용과 양보를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저를 고통에서 구해주시고 광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무리 큰 어려움을 만나도 사부님의 법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됩니다. 저는 앞으로 반드시 대법의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며, 항상 남을 위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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