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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다

―26번째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글/ 미국 대법제자

[명혜망] 반년 전인 2024년 6월 5일, 사부님께서 ‘법난’을 발표해 말씀하셨다. “중국에서 1999년에 법난(法難)이 나타나서부터 줄곧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든 전 세계에서든 여태껏 끝난 적이 없다.”

제 개인적인 이해로는, 법난은 정사대전(正邪大戰)으로서 우주의 정법자(正法者)와 우주 속 구세력 간의 전쟁이며, 창세주의 인류 구원과 마귀의 인류 훼멸 사이의 최종 대결전이다. 사부님께서 명시하신 것처럼 25년간 어디에 있든지 법난은 ‘여태껏 끝난 적이 없다’. 지난 반년 동안 우리는 얼마나 깨달았고 얼마나 노력했는가?

지금의 인류에게는 이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었다. 매 전쟁마다 발생에서 종결까지, 사람들의 심리상태와 생활양상은 평화시기와는 크게 달랐다. 전쟁에서 전선의 장병들이 지닌 사명감, 군수물자, 생명의 안전, 생사고락과 후방 민중의 생존압박, 정신적 상처, 그 지속되는 치열한 전투와 긴장, 상처는 멈추지 않았다. 전쟁으로 인류는 대규모로 업력을 소멸했고, 전쟁과 함께 세상의 배치는 신의 뜻에 따라 변화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인 우리는 사명을 띠고 창세주를 따라 세상에 내려와 각각의 거대한 천체에서 온 수많은 중생을 구해야 한다. 이 정사대전에서 또한 필연적으로 업력을 소멸해야 하고, 전장에서 포화의 시련을 견디며 창세주께 올린 신성한 서약을 실천해야 한다. 이 25년 동안의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2억 년간 인간세상 윤회의 최종장으로 남을 것이다. 이 장이 끝나고 이 책이 닫히면, 곧 대심판의 날이 올 것이며 창세주 앞으로 돌아가 군령을 반납하고 공과(功過)에 따라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우리가 해야 했으나 하지 못한 것들을 사부님께서 하고 계신다. 우리가 깨달았어야 하나 오래도록 깨닫지 못한 것들을 사부님께서는 계속해서 경문을 발표하시며 일깨워주셨고, 더 이상 말씀하실 수 없을 때까지 말씀하셨다. 정사대전에서 사부님께서는 중생을 위해 업력을 제거하시고, 또 대법제자를 위해서도 업력을 제거하셨으나, 우리는 오히려 사부님의 끊임없는 포용과 기다림을 바랐다. 많은 이들이 박해가 끝나지 않고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가 더디게 오는 것을 불평하며, 이로 인해 속인과 다름없이 행동한다. 사부님께서 부르셨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자기 방식대로만 하고 있다.

정법이 끝날 때 사존 앞에서 공과를 정산받게 될 것을 생각해보고, 대법이 세상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에 인간세상이 무거운 업력으로 인해 겪어야 할 고난을 생각해보며, 이 정사대전의 최후에서 다시 한번 사부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업력을 제거하셔야 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인간 세상의 명리정(名利情-명예·이익·정)과 권력, 재물이 과연 그토록 즐거운 것인가?

당시 법을 위해 왔던 많은 어린 대법제자들이 지금은 이미 성인이 됐으나 수련하지 않고 있는데, 부모인 대법제자들은 자신의 수련 상태가 자녀들에게 미친 부정적 영향에 대해 깊이 반성해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즉시 자신부터 시작하여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修內而安外)’(정진요지-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를 해낼 것인가? 법을 위해 당신을 부모로 선택한 상계의 생명들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많은 대법제자들은 사람을 구하는 데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여전히 속인의 생활과 명리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데, 대법제자로서 하늘이 부여한 자신의 능력이 마땅히 사람을 구하는 데 쓰이고 신께 보답해야 함을 인식해본 적이 있는가? 지금 당장 깨어나 기꺼이 사부님 앞에서 겸손히 참회하고 지금부터 분발하여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는 수련이 “속인 중의 어떤 일보다도 더 어렵다”(전법륜)고 하셨는데, 계속해서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려 하는가, 아니면 매번 어려움을 알면서도 전진하려 하는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는 매일 계속되는 이 정사대전을 인식하고 있는가? 자신을 전선의 장병으로 여기고 있는가, 아니면 후방의 주민으로 여기고 있는가? 세상의 매 갈등은 모두 심성 시험이며 모두 선택이다. 사람마다 자신을 놓고 매번 선택해야 한다. 많은 일들은 당장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많은 일들은 당장은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많은 일들은 당장은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수련에서의 제고와 대법제자의 사람을 구하는 천직은 사람의 정과 사람의 이치로 상상하거나 그저 그러려니 넘길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후회막급이 될 것이다.

또 한 번의 성탄절이 다가온다. 당시 예수님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 평생 동안 온갖 시련을 견뎌내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구원받는 이들이 각종 층차에서 진 업력의 빚을 깨끗이 갚으셔야 했다. 이는 구원받는 자들이 해탈할 수 없는 매듭을 해결하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땅히 구해야 할 이들은 더욱 높은 각 층차 상계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중생들인데, 25년간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을 얼마나 실천했는가? 얼마를 지불했는가?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사다리를 만들어 사람들이 올라갈 수 있게 했는가? 나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또한 처음에 나와 마찬가지로 사부님을 따라 세상에 내려온 수련생들에게도 묻는다.

“만고의 간난신고 오직 이 한차례 위해서라”(홍음3-오직 이 한차례를 위해). 우리로 인하여 정법에 너무나 많은 유감을 남기지 말도록 하자.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 대한 인식일 뿐이며, 선의적인 교류를 통해 함께 향상하려는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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