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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하는 마음을 버린 경험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은 오래된 대법제자지만, 수련이 정말 잘되지 않았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자주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수련의 길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질병 때문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는 병으로 인해 침대에 누워 있었고 일상생활도 스스로 할 수 없었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후 서서히 일어설 수 있게 되었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약간의 일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전제품 수리 기술을 배워 도시에서 가게를 열어 생계를 해결했습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아이도 생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야 할 일이 많아졌고, 매우 바빠져서 법공부 시간이 줄어들었으며, 법을 배워도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법을 배워도 마음에 새겨지지 않았고 연공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수련은 점점 속인 상태가 되어갔고, 심성과 사상 상태, 머릿속은 온통 세속적인 일들로 가득 찼습니다. 강한 집착심, 원망심, 쟁투심, 과시심, 금전욕, 허영심, 이기심, 강압적인 태도, 남을 무시하는 마음, 조심스러움, 득실에 대한 걱정 등 수많은 사람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원망하는 마음에 대해,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제거했는지 그 경험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도움이 되고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족은 세 식구입니다. 아내는 가게 일을 못할 뿐만 아니라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서 안팎의 모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초기에는 아내가 아이를 돌봤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된 후에도 여전히 집에만 있으면서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어 가정의 모든 지출을 제가 혼자 감당해야 했습니다.

제 성격은 비교적 검소한 편인데, 당시 제가 보기에 아내는 돈을 펑펑 쓰는 것 같아서 마음속에 원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늘 ‘돈을 벌지도 않으면서 쓸 때는 좀 아껴 써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사흘이 멀다 하고 반찬거리를 사러 간다며 돈을 달라고 했고, 저는 늘 내키지 않았습니다. 가끔 요구하는 금액이 많으면 “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돈이 필요해?”라고 한마디 했고, 이런 일로 자주 갈등이 생겼으며 때로는 말다툼으로 번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쟁투심, 강압적인 태도 등의 집착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 전혀 몰랐고, 안으로 자신을 찾을 줄도 몰랐으며, 그저 참아야 한다는 것만 알아서 기계적으로 억지로 참았습니다.

아내는 제가 수련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자주 대법 서적을 훼손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원망을 넘어 악한 생각까지 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는 제가 대법의 요구대로 가정 관계를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수련의 허점을 구세력이 틈타 2010년에 저는 납치돼 박해를 받았습니다.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이를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1년 반의 억울한 감옥생활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가족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고, 제 수련 환경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아내는 저를 계속 감시하며 명혜망에 접속하거나 법공부하러 나가는 것을 막았고, 이런 일들로 인해 때로는 폭력까지 행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저는 참고 아내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는 ‘아내가 내 수련을 막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악질 경찰들이 생사로 위협하며 수련생을 팔아넘기고 이른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을 때도, 저는 생사를 내려놓겠다는 일념으로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결코 사악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결국 저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가정환경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잦은 다툼으로 인해 저는 점점 말수가 줄었고, 무슨 일이 있어도 아내와 상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가게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 와서 법을 배우며, 때로는 하루 종일 집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냉담함으로 마음속의 원망과 아내에 대한 불만을 대항하려 했고, 그렇게 하면 심리적으로 좀 낫다고 느꼈습니다. 때로는 집에 돌아와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온 집안이 원망의 기운에 휩싸여 있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이 환경을 벗어나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살며 수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늘 이 환경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수련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도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지만 벗어날 수가 없었고,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마치 원망에 갇혀버린 것 같았고,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가 2015년쯤 제 몸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아랫배 오른쪽이 자주 아팠고, 밥을 먹을 수 없었으며, 통증이 심할 때는 구토까지 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소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때로는 밤새도록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다음 날에도 여전히 일하러 갔습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고,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법공부 시간도 더 내지 않았으며, 그저 굳은 믿음만으로 버텼습니다.

2020년 11월경에는 몸 상태가 매우 심각해졌습니다. 구토가 멈추지 않았고, 더 이상 밖에 나가 일을 할 수 없어서 집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른쪽 아랫배의 통증이 너무 심해 온몸이 마비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통증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습니다. 토하고 싶어도 토해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상태가 반복되었고, 이런 증상이 하루 종일 지속되다가 마지막에 다 토해내고 나서야 조금 나아졌습니다. 구토물은 검붉은 액체였고, 한 번에 1.5리터 정도씩 나왔습니다. 이는 분명 다른 공간에 쌓여있던 원망의 물질이 스며 나온 것이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겨우 유동식만 조금 먹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을 토해낼 수 있었을까요?

이런 상태가 두 달 넘게 지속되었고 점점 더 심각해졌습니다. 마치 육신이 거대한 산에 짓눌린 것처럼 천근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구토물은 가슴 부근에 막혀 내려가지도 않고 토해내지도 못하는 상태였고, 복부의 통증은 계속해서 심하게 몰아쳤습니다. 토해내지 못해 답답한 나머지 스스로 억지로 토해내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완전히 탈진하여 온몸에 힘이 빠졌고 침대에서 신음소리만 냈습니다. 몸은 완전히 망가졌고, 극도로 여위어서 보는 사람마다 놀랄 정도였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해서 피처럼 보이는 것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며(그들은 그것이 피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피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장례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때 저도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죽는 걸까? 병원에 가야 하나? 너무 고통스럽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죽으면 죽는 거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익에 대한 집착, 원망,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여전히 잘 수련하고 싶습니다.” 저는 시간을 1초 1초 보내며 이 1초 동안 살아있다면 이 1초를 잘 수련하고, 다음 1초에 죽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고 운명을 사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이 기간에 한 수련생이 자주 저를 찾아와 함께 발정념을 하고, 일도 못하는데 생활은 어떻게 하냐며 돈을 주려고 했지만 저는 수련생의 호의를 사양했습니다. 그는 다른 수련생들을 데리고 와서 저와 함께 법을 배우기도 했지만, 저는 힘이 없어서 침대에 누운 채로 법 몇 구절을 읽는 것조차 숨이 차서 힘들었고, 수련생들도 제 상태를 보고 매우 심각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사업상의 빚을 모두 갚았고, 아내에게 제 재정 상황을 알려주며 언제든 이 모든 것을 마주할 준비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때로는 마음이 흔들리고 자신감이 없어질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제 생각은 여전히 법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변기에 앉자마자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져서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제 정말 죽는 건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서서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의식마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곧바로 의식이 돌아왔고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나날 동안 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괴로울 때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며 사부님을 불렀고, 상태가 약간 나아지면 설법을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모든 집착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생사마저도 내려놓아서 마음은 편안했으며 단지 육신만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어느 곳에 도착했는데, 길 오른쪽에서 황소 한 마리가 송아지를 낳는 것을 보았고, 조금 더 앞으로 가자 길 왼쪽에서 한 무리 사람들이 오고 있었는데 맨 앞에 서 있던 제 친척이 자기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꿈이 매우 선명했습니다. 깨어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신 것이며, 이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제 생명이 새롭게 시작되어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저는 소띠라서 이 꿈은 제게 큰 격려가 되었고 이 고난을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크게 북돋아 주었습니다.

이듬해 4월, 저는 마침내 이 고난을 완전히 극복했습니다. 더 이상 통증과 구토가 없었고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가게에 나가 일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련생이 찾아왔을 때 저는 이제 밥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고, 수련생은 제 상태를 보고 기쁜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순수하고 이기심 없는 웃음이었습니다. 저는 이 고난 속에서 저를 도와준 수련생들에게 깊이 감사했습니다.

6개월 넘게 가게에 나가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매출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외부 주문이어서 동업자들에게 일을 맡기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이익을 얻어 가게와 가정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많은 외부 주문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 이는 분명 사부님께서 저를 돌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수련의 요소가 작용한 것입니다. 저는 수련인이기에 그토록 큰 고난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고, 만약 속인이었다면 열 목숨이라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이는 속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제가 당시 정념을 잃고 속인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했거나 고비를 넘기지 않으려 했다면, 구세력은 분명 제 육신을 가져갔을 것입니다. 제 수련이 부족하고 허점이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계셨기에 구세력도 감히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것과 같은 이런 고난을 겪고 나서 제 마음은 매우 평온해졌고 더 이상 원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그런 원망의 물질을 제거해 주셨기에 이런 느낌이 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내와 대화를 시도하고 일상생활의 일들을 상의하기 시작했으며, 더 이상 아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어쩌면 전생에 제가 아내에게 빚을 진 것이고 이번 생에 갚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달 생활비를 줄 때도 담담하게 휴대폰으로 송금했는데, 마치 어떤 기능을 실행하듯 감정 없이 할 수 있었습니다. 생활 속 갈등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이전처럼 기계적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로, 원망이나 부정적인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는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졌음을 발견했고, 다른 많은 집착심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수련이 단순해진 것 같았습니다.

뒤돌아보니 제 수련은 참 많이도 헤맸습니다. 그토록 강렬했던 원망이 어떻게 생길 수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며, 이는 속인만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구세력이 이런 원망심을 증폭시킨 것도 한 가지 원인이었습니다. 또한 제 수련이 미숙했고 실질적인 수련[實修]을 하지 않았으며, 법공부를 적게 했고 법공부의 효과도 좋지 않았으며 사상 업력의 방해가 컸습니다. 오랜 시간 이렇게 나쁜 물질이 쌓이다 보니 악순환이 생겼고, 원망할수록 더욱 그 속에 갇혀 스스로 빠져나올 수 없었으니 정말 위험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결국 제가 잘하지 못해 제 처지가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워진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사실 제 수련을 도와주고 있었으니 감사해야 마땅했고, 이 수련 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했습니다. 아마도 제 업력이 커서 이런 방식으로 갚아야 했던 것 같습니다.

명혜망에도 많은 수련생들이 원망심이 수련에 가져오는 해로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대량의 법공부만이 길이라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전제는 법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많은 방해가 있어서 정말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너무 어려워서 ‘전법륜(轉法輪)’ 한 줄의 법을 한 글자씩 천천히 머릿속에 새기듯 읽어 머릿속에서 명확해졌다고 느낄 때 다음 줄로 넘어갔고, 반드시 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큰 고비도 넘어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 대법의 요구에 크게 못 미치지만, 반드시 진정으로 착실히 수련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19/4855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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