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헤이룽장 대법제자 항심(恆心)
[명혜망] 저는 올해 35살입니다. 대법제자들의 교류 플랫폼을 통해 수련생들과 제 수련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0년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대법의 문턱을 세 번이나 들락날락했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이미 대법을 수련하고 계셨습니다. 저녁에 아버지가 연공하시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 그 동작을 따라 하곤 했습니다. 집에서 사부님 설법 녹음을 틀어놓으면 가끔 듣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수련하시는 파룬궁이 좋다는 것만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어렸던 저는 단순히 호기심에서 가족을 따라 듣고 흉내 내다가, 신선함이 사라지자 더는 듣지도 배우지도 않고 수련을 포기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이 흘러 저는 더 이상 순수하고 해맑은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다투고 질투할 줄 아는 중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10년 동안 아버지의 수련 상태도 크게 변했습니다. 자신을 닦는 것뿐만 아니라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외출하며 가족을 포함해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데 힘쓰셨습니다.
그 무렵 아버지는 다시 한번 저에게 수련에 관해 정식으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비록 오랫동안 수련하지 않았지만, 저는 여전히 파룬따파와 진선이 좋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아버지는 내면과 외면, 성격과 신체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수련을 권유하셨을 때 저는 빠르게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동의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예전과는 전혀 다른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의 도덕성이 날이 갈수록 타락하고 있었고, 각종 문화예술 작품들은 온통 나쁜 것들로 가득했으며 그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습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저는 이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왕성한 호기심과 탐구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겉으로는 ‘대법제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한쪽 손으로는 신의 길을, 다른 한쪽 손으로는 속인의 길을 동시에 붙잡고 있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확고한 마음이 부족했기에 결국 끝까지 나아갈 수 없었고, 그렇게 3년도 채 되지 않아 또다시 수련의 길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또 10년의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저는 결혼을 하고 자녀도 두게 되었습니다. 제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배웠고 노래방에 가는 것을 즐기게 되었으며, 점점 더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방탕하고 질투심 많은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인간 세상의 좋지 않은 습관과 단점들을 거의 모두 가지게 되었습니다. ‘전법륜’을 읽고 수련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추한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음에도, 속세의 미혹 속에 빠진 저는 오히려 이런 것들이 실속 있게 느껴졌습니다.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들이었고, 그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 마음이 즐거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동안 가끔은 이렇게 살다가는 결국 막다른 길로 가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렇게 사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수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간혹 ‘전법륜’을 펼쳐보기도 했지만, 그때의 저는 이미 현실이라는 미혹에 빠져 정신이 혼미한 상태였습니다. 매번 한 달도 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기를 반복했고, 그러다 보니 대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갔습니다. 마치 지옥의 문턱에서 방황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아직도 나름대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던 그때, 운명은 예고 없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허약체질에 병치레가 잦았고,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적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27일, 일하던 중 갑자기 허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오래 쪼그려 앉아 있어서 피로가 쌓인 것이라 생각했고, 집에 가서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휴가를 내고 일찍 귀가해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하루의 휴식이 몇 달로 이어졌고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집에서도 앉아 있기가 괴로웠고, 걸을 때는 반드시 허리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으며, 잠을 잘 때도 반드시 옆으로 누워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리가 너무 아파서 다리 신경까지 저려왔습니다. 옆으로 누워 있다가 힘들어서 바로 누우려고 할 때도 허리 밑에 두 손가락 두께의 받침대를 받쳐야만 했고, 그러지 않으면 통증 때문에 잠들 수 없었습니다. 머리를 감을 때조차 한 손으로는 세면대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감아야 했습니다. 이런 상태로 한 달이 지나도록 전혀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내의 끊임없는 권유로 “이제 그만 집에서 버티지 말고 병원에 가보자”는 말을 듣고 MRI 검사를 받게 됐습니다.
검사 결과를 보고 저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꼬리뼈와 허리뼈, 흉추 모두가 각각 다르게 돌출되어 있었고, 게다가 허리 근육까지 손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이시여! 이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런 상태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현실은 저를 냉혹하게 직시하도록 몰아붙였습니다. 저는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치료받기 시작했고, 어디에서 치료가 가능하다는 소문만 들으면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사 치료, 침 치료, 전기 치료, 추나요법, 마사지, 한약, 양약, 파스, 약술 바르기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수술만 빼고는 가능한 모든 치료법을 다 써본 셈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병을 고치기 위해 미친 듯이 방법을 찾아 헤맸지만, 결과적으로는 돈만 허비하고 병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록 상태가 여전히 심각해서 양말 하나 빨 때도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해야만 했습니다.
불행은 혼자 오지 않는다더니, 정신적 스트레스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슴 두근거림, 손 저림, 손 떨림 같은 새로운 증상들까지 나타났습니다. 다시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의사들에게 낯익은 단골 환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약을 좀 처방해드리죠. 걱정 마세요. 심장에 혈액 공급이 좀 부족한 상태입니다. 약만 잘 드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 그날 밤, 저는 한숨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끊임없이 맴돌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지은 업보의 결과가 아닐까? 이제 겨우 서른다섯인데, 위로는 늙어가는 부모님이 계시고 아래로는 어린 자식이 있는데, 이대로 계속 가면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정신적으로 거의 붕괴 직전이었던 그날 밤, 아내가 잠든 뒤 저는 홀로 술을 마시며 시름을 달래려 했습니다. 희미한 달빛이 비치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던 그때, 처음으로 죽지도 못하고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 그런 고통스러운 심정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반년이나 수입이 끊긴 채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했고, 병마와 우울한 심정으로 안색이 좋을 리 없었기에 가족들은 금세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허리 증상은 치료하기가 정말 어려운 병이란다. 우리 주변에도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너도 잘 알잖니? 그중에 완치된 사람이 있었니? 더군다나 네 상태는 이렇게 심각한데 말이다.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이 시간을 활용해 집에서 법공부를 하면서 제대로 수련하는 게 어떻겠니? 그게 그 무엇보다도 좋을 거야!”
아버지의 이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와 누워서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허리를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 심지어 정도를 벗어난 방법까지 다 써봤지만 나아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오직 사부님만이 날 도와주실 수 있지 않을까? 예전에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를 당해 발목이 완전히 으스러졌을 때도 수련을 통해 완쾌되셨는데, 그에 비하면 내 허리디스크가 무엇이란 말인가!’
2023년 9월 20일, 이 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날, 저는 비록 순수하지 못한 마음이었지만 다시 한번 대법 수련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는 제가 단지 병을 고치려는 마음으로 수련을 시작했음에도 저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불과 3일 만에 앉거나 서 있을 때의 통증이 사라졌고, 일주일이 지나자 어느 정도 무게가 있는 물건도 들고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으며, 보름이 지났을 때는 정상인처럼 모든 일상생활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마치 비 갠 뒤의 찬란한 무지개처럼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습니다! 아내는 이 모든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단순한 심리적 효과일 거라고 생각하며 “너무 들뜨지 말고 조심하는 게 좋겠어!”라고 걱정스레 말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제가 아내에게 “이제 허리 통증 파스며 보호대, 전기치료기 같은 것들 전부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될 것 같아”라고 말하자, 아내는 놀라며 물었습니다. “정말이야? 진짜로 아무 문제없는 거야?”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 저는 며칠 동안 일부러라도, 때로는 무의식적으로라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물건들을 먼저 나르곤 했고, 아이와 놀 때면 자주 아이를 들어 올려 어깨에 태우고 집 안을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제 병세가 얼마나 심각했었는지 잘 알고 계시던 장모님을 비롯한 다른 가족들이 제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저 역시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병이 나은 것은 물론이고, 대법의 기적과 수련의 신기함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아내와 장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설명해드렸더니 그들도 모두 진심으로 공감하고 인정해주었습니다.
요즘 저는 자주 아들에게 ‘홍음(洪吟)’을 읽어주곤 합니다.
이처럼 몇 달간의 쓰디쓴 고통과 달콤한 기쁨을 겪으면서, 그리고 법공부를 더욱 깊이 하면서 저는 이전에는 결코 가져보지 못했던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예전처럼 마음이 흔들리거나 갈팡질팡하지 않게 되었고, 법공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또한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단순히 개인 수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도 분명히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번에 막 수련의 길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다른 수련생들을 따라가기 힘들지만 저는 늘 스스로에게 일깨워줍니다. “사부님께서는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구해주셨어. 절대로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려서는 안 되며, 반드시 대법을 굳건히 수련하면서 대법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잘 완수해 나가야만 해.”
이 자리를 빌려 저와 비슷한 수련 상태에 있는 대법제자분들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고작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데, 저는 그중 20년이나 되는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냈습니다! 그 세월 동안 저는 속세의 미혹 속에 빠져 내 진정한 집이 어디인지조차 잊어버렸고, 인간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것들을 오히려 보물처럼 여기며 살았습니다. 결국 대법의 법선(法船)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거의 놓칠 뻔했습니다.
지난 20년을 돌이켜보면, 그 소위 말하는 행복이 과연 저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었을까요?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었던 그 즐거움이 정말로 가치가 있었을까요? 그것이 진정 우리를 만족시켜 주었을까요?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 신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는 이 선택은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결정이며, 이러한 선택의 기회는 실로 값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입니다.
어릴 적에 대법을 얻었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계신 수련생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부디 제가 겪은 쓰라린 교훈을 거울삼아 이 만고의 인연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빨리 대법 수련의 길로 돌아오십시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을 따라 우리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이것이야말로 당신과 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수천만 년 동안 고대해 온 간절한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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