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올해 61세이며 1996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10여 가지나 되던 질병이 모두 나았고 28년 동안 약 한 알도 먹지 않았다. 수련 과정을 돌이켜보면, 사부님을 도와 세인을 구하고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에서 많은 난을 겪었지만 사부님께서는 하나하나 모두 해결해주셨다. 지면 관계상 여기서는 제가 일에 부딪혔을 때 안으로 찾고 착실히 수련하여 법에서 제고한 체험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한다.
1. 안으로 찾아 질투심을 제거하다
2015년 어느 날 저녁, 퇴근 후 나는 A 수련생의 어머니 댁에서 법공부를 했다. 마침 일부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다 납치된 수련생을 위해 발정념을 하고 있었는데, C 수련생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마치 미세한 입자들이 날 짓누르는 듯했고, 머리가 아프고 멍했으며 등골이 오싹했다. 그 고통스러운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발정념을 하자 증상이 조금 완화됐지만 그 후로는 그런 느낌이 점점 더 심해져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계속해서 사부님께 일깨워주시기를 청했다.
다음날, 다른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다. 발정념을 할 때 눈앞에 ‘질투심’이란 세 글자가 나타나서 그 수련생에게 말했다. “혹시 동수님께 질투심이 있으신 건 아닌가요? 방금 발정념할 때 ‘질투심’이란 세 글자가 보였어요.” 나는 내게 질투심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몸이 너무 괴로워서 안으로 찾아보았지만 핵심을 찾지 못해, 한 아주머니 수련생을 찾아가 교류했다. “제가 C 수련생을 볼 때는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어떻게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에 교란을 받을 수 있나요?” 그분은 “어떤 마음이 있었나요?”라고 묻자 나는 이렇게 답했다. “어떤 수련생이 제가 그녀(C)를 질투한다고 하는데, 제가 그녀를 질투할 만한 게 뭐가 있나요. 전 그녀를 수련인으로도 여긴 적이 없고 그냥 무시했을 뿐인데요.” 그러자 그분이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질투심의 일종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무시하는 것도 질투심이라고요?”라고 묻자 그분은 “그렇습니다”라고 하셨다.
아,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질투심이란 걸 왜 전혀 몰랐던 걸까? 정말 깨달음이 너무 부족했다. 질투심을 발견하고 법리를 깨달은 뒤 C에 대한 질투심을 없애자 사부님께서는 내 몸을 괴롭히던 사악한 요소들을 제거해주셨다.
2. 안으로 찾아 원망심을 닦아내다
2018년 5월 12일 밤, 이웃 도시의 수련생 4명이 밤에 나가 진상 표어와 진상 게시판을 붙이다가 납치됐다. 5월 13일 저녁, 퇴근 후 나는 A의 집에 가서 이웃 도시에서 박해당한 수련생들을 돕기 위해 수련생들에게 발정념을 알리라고 했다. A는 내게 시간이 되면 B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하라고 했다. 다음 날 나는 B의 집에 법공부하러 갔는데, C도 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보았을 때 내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나흘째 되는 날 오전, A가 우리 집에 와서 말했다. “B 수련생이 앞으로 당신은 그녀 집에서 법공부를 하지 말라고 하네요. 그러니 앞으로는 우리집에서 법공부를 해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나 한 사람이 늘었다고 너무 인원이 많다는 건가? 오지 말라고 하니 잘됐네.’
나는 A에게 말했다. “B가 저를 그녀의 집에 법공부하러 못 오게 한 것은 틀림없이 C가 부추긴 걸 거예요(10여 년간 B는 C의 명령에 복종했다).” A는 나에게 C에게 원망이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단순히 서운할 뿐이지 원망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서운한 마음이 있으면 원망도 있기 마련인데, 당시에는 그걸 인정하기 싫어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더러운 마음을 감추고 싶었던 것이다. 수련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다른 사람을 원망한다니 창피해서 서운한 감정만 있다고 하고 원망은 없다고 한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승부욕이 강하고 허영심이 많았으며 고집이 세고 독선적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나를 강하고 개성 있고 도도하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마음에 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늘 모든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고 여겼으며, 항상 한 번 한 말은 절대 바꾸지 않았다. 10여 년간 사부님께서는 여러 사람을 통해 나를 ‘수정’하셨지만, 나는 늘 타인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했지 결코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A에게 “이 일은 사실 B나 C와는 아무 관계없는 개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에야 나는 진심으로 안으로 찾아보게 됐고, 비로소 이런 소위 ‘장점’들이야말로 내가 수련하는 길에서 진정한 마(魔)의 장벽이며,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 안으로 찾게 되자 몸의 불편한 증상이 사라졌고 에너지장도 점점 더 강해졌다. A는 “당신 안색이 좋아졌어요”라고 말했다.
A가 떠난 뒤 정오에 발정념을 하는데 에너지장이 매우 강했고, 순간 입정하여 다른 공간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다. 자신의 원영(元嬰)이 연화좌(蓮花坐)에 앉아 천천히 상승하는 것을 보았고, 공(功)이 몸 밖에서 나선형으로 자라나는 것을 보았는데 매우 신성했다.
3. 안으로 찾아 쟁투심을 없애다
2004년 봄, 당시 A는 아직 대법을 수련하지 않고 있었다. 어느 날 A의 어머니가 우리집에 와서 둘째 딸(A) 이야기를 했다. A의 어머니는 유방암에 걸렸었는데 2년 반 전에 톈진(天津)에서 절제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병이 재발하여 목 뒤에 혹이 2개 더 생겨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온몸에 기운이 없었고 혹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해 하루 종일 침대에 엎드려 있을 뿐 내려오지도 못했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한사코 거부하며 말했다. “그 고생은 못 하겠어. 죽으면 죽고 살면 사는 거지.” 그녀는 수술 후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로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으면 토하고 혈변을 보았으며 기력이 없어서 화장실 갈 때도 언니와 여동생이 부축해야만 했다.
나는 A의 어머니와 함께 예전의 아주머니 수련생 집에 가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가져와 A의 집으로 갔다. A의 어머니의 안색은 내가 법을 얻기 전처럼 누렇게 떠 있었다. 나는 말했다. “제가 법을 얻기 전에는 열 몇 가지 병이 있었고, 가장 심각했던 것은 B형 만성 간염이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만성 암이었죠. 지금 아주머니 상태보다 더 심각했어요. 하지만 대법을 수련한 후에는 병이 없어지고 온몸이 가벼워졌어요.” 나는 그녀에게 먼저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고 점차 기운이 나면 그때 연공하라고 했다. 그녀는 “좋아요”라고 했다.
보름 후 그녀를 보러 갔더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는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본 지 3일 만에 땅에 내려설 수 있게 됐고, 목 뒤의 혹 두 개도 없어졌어요.” 사부님께서 그녀의 몸을 정화해주신 덕분에 완전히 나은 것이었다. 나도 그녀를 위해 기뻐했고 사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이 순식간에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피부가 하얗게 변한 것이었다. 사부님의 크나큰 은혜와 대법의 신기함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여기까지 쓰니 저절로 눈물이 난다. 사부님의 은혜는 갚기 어렵다!
A는 법을 얻은 그해 여름에 우리와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고, 발정념하며 함께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했다. 그녀는 진상을 알릴 때 2번이나 납치됐지만, 모두 사부님의 보호 아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2020년 4월, 나와 A는 거리에서 세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온 호신부(護身符)를 모두 배포한 뒤 그녀에게 몇 개를 더 달라고 해서 진상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져 있었다. 내가 그녀를 찾고 있을 때 길가에 경찰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보였고, 곧이어 거리의 모든 자동차들이 일제히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날이 마침 청명절이었는데, 자동차들의 경적소리는 우한의 코로나 희생자들을 위한 묵념이었다. 그때 나는 A가 걱정되어 그녀가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따라 찾아보았다. 두 블록을 지나서야 그녀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조급한 마음에 앞으로는 진상을 알릴 때 절대로 내 시야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 후로 우리는 진상을 알릴 때면 그림자처럼 함께 다녔다. 그녀가 진상을 알릴 때는 내가 곁에서 발정념을 하고, 내가 진상을 알릴 때는 그녀가 발정념을 하는 식으로 서로 잘 맞춰나갔다. 이전에는 각자 따로 진상을 알렸어도 조화롭게 잘 진행됐는데, 이렇게 붙어다니다 보니 오히려 그녀가 진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개념이 불명확하고 사부님의 법을 잘못 이해하는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어느 날 공원에서 그녀는 한 남성에게 진상을 전하면서 대법 진상 소책자를 건넸다. 그런데 상대방이 “파룬궁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녀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분명히 대법 진상 소책자인데 어째서 아니라고 하는 걸까?’
다음날 운동장에서 그녀가 또 한 남성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을 때였다. 상대방이 같은 질문을 하자 이번에는 “파룬궁 것은 아니지만, 제가 파룬궁 수련생입니다”라고 답했다. 그 자리를 떠나면서 나는 그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오후가 되어 그녀는 우리집으로 찾아와 자신이 좋지 않은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사과했다. 나는 그녀에게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릴 때는 반드시 파룬궁의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이해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강변 광장에서 그녀가 한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던 중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여전히 “아니요”라고 답했다. 일요일 오전, 나는 이 문제를 상의하고자 한 부부 수련생을 찾아갔다. 그분들은 내게 A와 함께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학습하라고 조언해주었다. 곧바로 나는 A의 집으로 향했다. 집에 그녀가 없어서 어머니 댁으로 찾아가 A에게 사부님의 관련 설법을 함께 공부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는 격분하여 어머니의 궤짝에서 대법 진상 소책자들을 한아름 꺼내 침대 위에 거칠게 내던지고는 손가락으로 소책자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여기 어디에 ‘파룬궁’이란 세 글자가 적혀 있다는 거예요?” 그러고는 곧바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모 수련생을 찾아가서 교류해보라는 말만 남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할수록 웃음이 났다. ‘50이 넘은 나이에 아직도 세 살배기처럼 구는 모습이라니.’
이후에 그녀는 정말로 그 수련생을 찾아갔고, 교류를 마친 뒤에 다시 우리 집에 와서 또다시 사과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완전히 이해했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그녀를 위해 기뻐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뒤 그녀가 우리집에 와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여전히 파룬궁의 것이 아니라고 고집을 부리더니 말을 마치자마자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 분명 파룬궁의 진상자료인데 왜 굳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일까? 이 일 때문에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괴로운 것은 분명 어떤 마음이 있기 때문일 텐데, 도대체 무슨 마음일까? 이렇게 하는 것이 쇠뿔 끝을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왜 그녀와 이렇게 시비를 가리려 하는 걸까? 나는 왜 늘 그녀의 잘못이라고만 생각하고 단 한 번도 안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법에서 제고하려 하지 않았을까? 정말 너무나 잘난 척했구나.’
쇠뿔을 파고드는 마음과 독선적인 마음을 발견한 후 가부좌를 하고 있을 때, 나는 자신이 우물 안에서 위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사다리는 쇠파이프를 우물벽에 박아놓은,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종류였다. 그때 나는 ‘이렇게 기어오르면 얼마나 힘들까, 날아올라야지’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순식간에 높은 산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 산꼭대기에는 다른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한 사람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다리 위를 걷다가 보니 아래는 깊이를 가늠할 수도 없는 심연이었고, 다리 양쪽에는 그물망처럼 생긴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천히 다리를 건너 반대편 산꼭대기에 도달했을 때, 갑자기 다리 중간 부분이 끊어져 버렸다. 나는 의념으로 다리를 이어보려 했지만 이어지자마자 또다시 끊어졌다. 여러 차례 의념으로 다리를 잇고자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사부님께서는 이를 통해 수련의 길이 얼마나 좁은지, 조금이라도 빗나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것이었다. 법 안에서 수련하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 오직 법 안에서 착실하게 자신을 수련할 때만이 빗나가지 않고 가장 안전한 것이다.
사부님의 법과 대조해보니 내가 얼마나 형편없이 수련했는지 깨달았다. ‘그렇다, 내가 그녀와 무엇을 다투겠는가? 설령 그녀가 틀리고 내가 옳다 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네 번째로 그녀가 우리집을 방문했을 때, 나는 평온한 마음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더 이상 그 문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하여 법 안에서 제고했을 때, 그 다리는 온전한 모습이었고 가드레일은 3미터나 되는 높이에 철골 구조여서 무척이나 견고했다.
그 이후 사부님께서는 두 차례나 A를 통해 나의 심성을 향상시키고 많은 법리를 깨닫게 해주셨으며, 강한 자아를 없애고 더는 타인의 집착에 연연하지 않게 하셨다. 또한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 완수하여 역사적 서약을 지키고 사명을 더럽히지 않도록 도와주셨다.
지금 나는 A와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녀는 내 집에 ‘작은 꽃’(자료점)을 피워주었다. 나와 B, C 수련생 사이의 벽도 허물어졌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생들 간의 갈등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성취하고 함께 정진하며, 모두가 향상하고 성공해 원만에 이르러 사부님을 따라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다.
이상의 교류 내용 중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들께서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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