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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세 가지 마귀’를 경계하자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지금 전자제품이 인류의 시간을 대량으로 점유하면서 조용히 인류의 생활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모르는 사이에 조종당하고 통제당하고 있다. 오락이 성행하고, 색정이 만연하며, 마음은 공허하고, 신앙은 상실됐으며, 전 국민이 해이해졌다. 심지어 어떤 젊은이들은 밖에 나가 미친 듯이 게임을 하느라 집에 있는 어린 자녀를 방치해 굶어 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이는 오랫동안 휴대폰을 보다가 실명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에서 방탕하게 지내며 본업은 하지 않고 정신이 피폐해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수련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폰은 이 시대의 세 가지 마귀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 마귀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수련을 방해하며 정념을 파괴하고 정법을 파괴하는 것일까? 우리는 또 이러한 전자마귀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1. 쉽사리 사람을 망치다

한 노(老)수련생이 인터넷소설을 보다가 중독됐는데 거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발정념할 때는 졸았고 법공부할 때는 꾸벅꾸벅 졸았다. 나중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택시와 추돌했다. 몸이 좀 회복되자 그는 또 몰래 소설을 봤는데, 가족들이 뭐라고 할까봐 때로는 손전등을 켜고 이불 속에서 봤다. 나중에 그는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에 납치됐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한 노수련생은 깨달음이 매우 좋았고 수련 후 간질환이 나았다. 나중에 70여 세의 그는 전자게임에 빠져들었고 2년 후에 간 복수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딸도 심성이 좋았는데 텔레비전 보기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누워서 텔레비전을 봤고 법공부는 적게 했다. 어느 날 나는 꿈에서 그녀가 장애아를 낳은 것을 보았다. 깨어나서 나는 이해했는데, 아마도 그녀의 세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것 같았다. 근기가 아주 좋고 부모도 모두 수련했는데도 텔레비전을 보느라 자신의 세계를 낭비했으니 너무나 안타깝다.

한 어린 수련생은 그의 엄마가 사부님 설법 녹음을 끄고 전념하여 휴대폰을 보는 것을 보았다. 이 어린 수련생은 말했다. “그러자 불상(佛像)이 사라졌고 이때 한 마귀가 엄마 곁으로 달려와서 불상 흉내 내며 섬뜩하게 웃었어요. 제가 엄마에게 본 광경을 이야기하자 엄마는 즉시 휴대폰을 끄고 설법 녹음을 틀어놓고서는 또 전념하여 법을 들으셨어요. 순간 그 불상이 다시 광명을 나타내며 엄마 곁에 서 계셨어요. 마귀들이 모두 도망쳤고 불상을 흉내 내던 마귀는 즉시 썩은 진흙 한 덩어리가 되어 사라져버렸어요.”

한 사람이 휴대폰을 갖고 노는 것은 자신을 망치는 짓이다. 만약 수련단체에서 모든 사람이 다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하고, 휴대폰을 갖고 논다면 이런 교란은 전반적인 교란이 된다. 이런 시간을 법공부, 발정념, 중생제도에 쓴다면 전반적으로 매우 큰 승화가 있을 것이지만, 만약 전자오락에 쓴다면 최소한 시간낭비이고 집착을 키우는 것이다.

2. 전자마귀의 해독성을 인식하다

첫째,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드라마 한 편이 40분이고 게임 한 판이 몇 시간이며 휴대폰은 한번 보면 놓을 수 없다. 우리의 대뇌와 눈이 이렇게 끌려가고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가 이렇게 도둑맞았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외계인의 기술인데 마(魔)가 그것을 이용하고 있고 당신을 유혹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빠져들게 한다. 당신의 생명을 낭비하고 있는데도 당신은 아직도 내려놓기 아쉬워한다! 사람의 각도에서 봐도 당신은 문제가 있는데, 하물며 수련임에랴.”(2016년 뉴욕법회 설법) 전자오락으로 인해 법공부 시간이 줄어드는 일, 발정념 때 졸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둘째, 마성(魔性)을 증가시킨다. 전자제품은 외계인의 기술이며 또한 구세력이 사람을 방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켜기만 하면 마귀를 풀어놓는 것이고 뱀을 꾀어내는 것이다. 재미있게 보는 것은 마귀를 기뻐하며 마음속으로 들이는 것이고 기꺼이 휴대폰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마성은 수련하기 어렵지만 확대되는 것은 쉽다. 마성이 너무 커지면 망할 수도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든지 상관없다고 하며,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 당신이 보았다면 들어갔다. 왜냐하면 어떠한 것도 다른 공간에서 그것은 모두 분체(分體)할 수 있기 때문이며, 본 시간이 길수록 들어간 것이 더욱 많다.”(각지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또한 박해를 당하기 쉽다. 수련 시간이 줄어들었고 수련인의 마음이 해이해졌으며 정념이 적어지고 마성이 많아져 속인화됐으니 사부님과도 점점 멀어지고 바른길에서도 점점 멀어진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므로 사악이 곧 당신을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또 잘 수련하지 못한다면 바로 사악이 박해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2004년 뉴욕국제법회 설법)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을 제도하기란 아주 어려운데, 당신의 사상을 개변하기가 아주 어려우며, 당신의 신체를 조정(調整)하기도 아주 어렵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제도하기는 아주 어렵지만, 한 사람을 망치기는 극히 쉽다. 당신 자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곧 끝장이다.”(전법륜)

그러므로 반드시 전자오락의 무서움을 인식해야 한다. 마귀는 바로 당신 곁에 있고 바로 당신 손바닥에 있으며 바로 당신 눈앞에 있고 바로 당신 가방 속에 있다. 마귀는 뛰쳐나와 당신과 싸우거나 칼로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당신을 유혹하고 당신을 소모시키며 당신을 갉아먹고 당신을 놀게 해서 죽일 것이다. 바로 당신이 전자제품을 만지작거리고 눈과 귀의 즐거움을 누릴 때 그렇게 한다. 그러므로 절대로 전자마귀의 해독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3. 전자제품을 신중히 사용하다

불교는 ‘계(戒)·정(定)·혜(慧)’를 말한다. 그런 좋지 않은 욕망을 버려야만 비로소 입정(入靜)하여 지혜가 생길 수 있다. 고인은 눈을 비뚤어지게 보지 말고, 귀로 망령되이 듣지 말며,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만 비로소 좋은 후대를 기를 수 있다고 했다. 우리 대법 수련은 법공부를 마음 깊이 해야 하고 발정념과 연공할 때 고요해야 한다. 오직 색(色)·욕(慾) 등 바르지 않은 정보의 근원을 차단해야만 비로소 오염과 교란을 덜 받을 수 있다.

첫째, 전자제품을 끄고 마음을 조용히 하여 법공부를 해야 한다. “다른 공간에서는 어떤 물질이든 모두 생명으로 체현될 수 있기”(전법륜) 때문이다. 전자제품도 생명이고 그 속의 마귀는 빽빽하게 가득하다. 우리가 이런 전자제품을 끄면 바로 사악한 마귀의 근원통로를 차단하는 것이고 사악한 마귀도 우리의 공간장에 들어올 수 없다. 구세력이 전자제품 속의 사악한 마귀를 조종해 변화무쌍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미혹시키며 망치고 있다. 한번 보기만 해도 끌려갈 수 있어 마귀와 함께 춤추다가 마귀에게 다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철저히 망칠 수 있다.

둘째, 매일 대량의 전자오락 습관을 버린다. 사실 이런 것들 속의 마귀는 담배·술·색(色) 속의 마귀보다 더 흉악하나 단지 더 은폐돼 있고 더 교활하며 더 매혹적이고 더 사악할 뿐이다. 담배·술·색을 끊듯이 전자오락의 악습을 끊는 것을 중시해야 한다. 처음에는 아마 매우 괴로워서 귀를 긁적이고 머리를 긁적이며 그만두려 해도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오직 엄숙한 태도와 엄격한 자제를 유지하고, 확고하게 결심하면서 생각하지도 않고 상관하지도 않으며 건드리지도 않고 미련을 두지도 않으며 철저히 내려놓기만 하면, 사악한 마귀가 파고들 틈이 없어져서 더는 교란하지 않을 것이며 도망칠 것이다.

또한 휴대폰 사용시간을 제한해야 한다. 현재 중국에서는 어떤 사립고등학교에서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학생들에게 휴대폰을 제출하게 하고 단지 주말 하루 동안만 학생들에게 돌려준다. 엄격한 관리 때문에 학생들의 성적이 비교적 좋고 학교의 신입생 수도 갈수록 많아졌는데 엄격한 관리가 이 학교의 특색과 간판이 됐다. 우리는 자율을 강화하고 전자오락 시간을 통제하며 세 가지 일 시간을 늘려야 하는데, 실제 수련[實修] 시간이 많으면 상태가 좋아질 것이다. 자신에게 컴퓨터를 보고 휴대폰을 하는 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루에 20분을 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구속을 주어야 하는데 제멋대로 방종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사회는 이미 난잡해졌고, 그 사이트는 이미 무슨 좋지 못한 것들이 다 거기에 뒤섞여서 그야말로 마귀처럼 돌아가고 있으며, 어떤 것이든 들어가면 모두 그 안에 뒤섞이고 그 안에서 혼합되어 사회, 인심, 도덕, 전통을 교란하고 사람의 생활 상태를 개변하고 있다. 물고기와 용이 뒤섞여 있다.”(2016년 뉴욕법회 설법)

4. 수련의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하다

우리에게 있어 정법수련의 기연(機緣, 기회와 인연)은 아마도 단 한 번뿐이고 또한 몇십 년의 시간뿐이다. 잘 잡으면 돌아갈 기회가 있고 잘 잡지 못하면 아마도 영원히 여기서 망칠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스스로 미혹 중에 떨어져 왔기 때문에 마땅히 훼멸되어야 하지만, 당신에게 한 차례 이 미혹 중에서 되돌아갈 기회를 주었다. 되돌아갈 수 있으면 되돌아가고, 되돌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바로 계속되는 윤회와 훼멸이다.”(전법륜)

이 단 한 번뿐인 기연 속에서 사부님께서는 천방백계(千方百計)로 우리가 기연을 소중히 하여 수련 성취하게 하시고, 구세력은 처심적려(處心積慮,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함)하여 우리가 기연을 놓쳐 떨어지게 한다. 만약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정진하지 않으면 바로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걷는 것이고 바로 자신을 해치는 것이며 자신을 망치는 것이고 중생을 망치는 것이며 세계를 망치는 것이다.

어떤 수련생은 큰 풍랑 속에서 정념이 충족하지만 휴대폰 앞에서는 오히려 빠져나오지 못하는데, 이것도 따뜻한 물로 개구리를 삶는 것과 같은 박해다. 놀기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망가진 수련생이 박해로 죽은 수련생보다 아마도 훨씬 더 많을 것이나 단지 더 은폐돼 있고 더 발견하기 어려울 뿐이다. 전자제품, 이 보이지 않는 살인자는 또한 수련의 길에서 길을 막는 호랑이이고 더욱이 사람의 정념을 어지럽히는 주범이다.

열 손가락으로 물을 담으면 각 손가락 틈으로 모두 새어나가 들어올리면 두 손이 텅 빈다. 시간을 들여 수련하는데 매 분마다 모두 낭비한다면 시간은 빨리 흘러가버리고 마지막에는 아마도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돌아가서 시간을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기를 희망한다.”(전법륜) 이것은 《전법륜》의 마지막 한 마디 말씀이며 또한 사부님의 고심이다. 구세력이 전자제품을 통제하여 미친 듯이 전 세계를 휩쓰는 의도는 무엇인가? 사실 바로 마귀가 인간을 어지럽혀 우리가 놀면서 자아를 잃게 하고 우리가 시간을 다그치지 못하게 하여 그런 다음 수련인을 망치고 사부님의 정법을 파괴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휴대폰을 들고 놀려고 할 때, 우리가 텔레비전과 컴퓨터 앞에서 긴장을 풀려고 할 때, 여러분이 사부님의 법을 외워보기 바란다. “기회와 인연은 오직 한 번뿐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 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정진요지-퇴직하여 다시 연마) “만약 그 생각(念)을 고수하지 아니하면 일생 얻음이 없을 것이다. 언제 다시 기연(機緣)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으니, 어렵도다!”(정진요지-견정) 기연이 얻기 어렵다는 것을 많이 생각하면 휴대폰에 대한 미련이 줄어들 것이다.

옛말에 ‘학업은 부지런하면 정밀해지고 놀기만 하면 황폐해진다, 독서는 농사와 같아서 부지런히 경작해야 풍요로워진다’라고 했다. 수련은 깊이 있는 불학(佛學) 기초가 있어야 하므로 많은 시간을 들여 법을 투철하게 학습해야만 깨달을 수 있다. 진정으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람을 구해야만 비로소 사부님의 정법을 도와드리는 것이다. 만약 매 시각 정진하여 수련하는 것을 포기하고 전자오락에 빠져 층차 경지와 제도 원만을 공허하게 담론만 한다면, 그것은 종이 위의 이론이고 안목은 높으나 실천이 낮은 것이며, 공중누각이고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시간을 수련에 써서 매 한 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매 한 번의 제고 기회를 소중히 해야만 비로소 기연을 소중히 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5. 맺음말

고대에는 달기(妲己)가 조정을 어지럽혔고, 근대에는 가짜 기공이 전국을 어지럽혔으며, 지금은 휴대폰이 전 세계를 바꾸고 있는데, 어느 것이 더 대단하고 더 창궐하며 더 치명적인지는 사실 한눈에 보아 알 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수련이란 극히 간고(艱苦)하고 매우 엄숙한 것으로서, 당신이 조금이라도 주의하지 않으면 떨어질 수 있으며 하루아침에 망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이 반드시 똑발라야 한다.”(전법륜)

수행이 만마(萬魔)의 시대에 처해 어떤 수련생은 중공의 박해에 직면해서는 매우 청성하지만 컴퓨터 앞에서는 도리어 손을 들어 항복하고 자신을 주재하지 못하며, 천지가 어두워질 정도로 놀면서도 바로 마귀에게 통제당한 것을 전혀 모른다. 수련은 만인이 가로막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투항하는 것을 두려워할 뿐이다. 마음이 바르지 않으면 극히 위험하다.

오직 탐욕·집착·놀이의 생각이 막 나타날 때 즉시 발견하여 잡아서 없애야만 비로소 세 가지 마귀에게 끌리지 않고 미혹되지 않을 수 있으며, 비로소 청성하고 이성적으로 통제당하지 않을 수 있고 비로소 바른길을 걸을 수 있다. 알아야 하는데, 아쉬워하고 내려놓지 못하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 마귀가 환화(幻化)한 교란이지 결코 진아(眞我)의 정념이 아니다. 우리가 주의식(主意識)이 매우 강하여 결심하고 그것을 포기하고 그것을 원하지 않고 그것을 던져버릴 때 비로소 체득할 수 있다. 전자기기 사용을 줄인 생활이야말로 자유자재하며 자연스러운 것이고 스스로 가벼우며 청정하고 이성적이 될 수 있다. 사악한 마귀에게 통제당하지 않는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자신이며 비로소 법리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고 비로소 본성을 찾을 수 있으며, 비로소 정념으로 중생을 구할 수 있다.

생각해보라. 신불(神佛)께서 텔레비전 보기, 게임하기, 휴대폰 하기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수 있겠는가? 신불께서는 중생을 보위하고 세계를 수호하는 것이지 마귀에게 통제당해 정념과 이성과 책임을 상실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수행인 중 어떤 이는 자신의 귀를 멀게 만들었고, 어떤 이는 자신의 눈을 멀게 만들었는데 바로 교란을 받지 않고 조용히 수련하기 위해서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복잡한 환경은, 내가 생각하기에 오히려 좋은 일로서, 복잡할수록 고인(高人)이 나올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래야만 가장 착실하게 닦는 것이다.” 현재의 환경과 고대의 환경, 어느 것이 더 복잡하고 어느 것이 더 마변(魔變)됐으며 어느 것이 더 변이됐는가? 사실 한눈에 보아 알 수 있다. 만마가 횡행하는 시대에 높은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가장 얻기 어렵고, 가장 착실하며, 가장 소중하게 수련하는 것이니 자연히 여기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반대로 전자오락에 열중하고 휴대폰에 빠져든다면 어떻게 두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으며, 법은 일체 거짓말을 타파해 버릴 수 있고, 법은 정념(正念)을 확고히 할 수 있다.”(정진요지2-교란을 배제하자) 평소에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많이 외우며 정진할수록 욕망 또한 없어진다. 최근에 나는 세수할 때, 걸을 때, 자료를 입력할 때 모두 경문을 외운다. 층층의 법리가 끊임없이 나타난다. 불법(佛法)은 우주의 성경이고 휴대폰은 쓰레기 장난감이며, 하나는 천당이고 하나는 지옥이니 그릇된 길에 들어서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

지금 나는 이해하는데, 법공부는 단지 엄숙하게 앉아서 책을 들어야만 법공부가 아니다. 법공부는 속인생활의 매 구체적인 부분에 용해될 수 있다. 차를 타고 가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모두 법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조금씩 외울 수 있는데, 머릿속에 담은 법이 많을수록 사람의 변화가 더욱 빠르고 또한 더욱 정신을 모으고 기운을 고요히 하며(凝神靜氣), 마음이 고인 물처럼 잔잔하고(心如止水),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텅 비어있는(蕩蕩虛無) 경지에 이르게 된다.

생명이 천백 번을 윤회해야만 비로소 사람으로 환생할 수 있고 억년을 기다려야만 정법시기를 만난다. 우리가 인간세상에 와서 한 번 지나가는데, 만약 쓰레기 장난감에 빠져들어 만고의 기연을 망치고 장엄한 서약을 잊어버린다면 만년의 기다림을 저버리고,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며, 헛되이 인간의 몸[人身]이 되고, 슬프고 우스운 일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가 휴대폰을 들고 그만두려 해도 그만두지 못할 때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하기 바란다. “기회와 인연은 오직 한 번뿐이며, 내려놓지 못하는 몽환(夢幻)이 지나가 버리면 비로소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정진요지-퇴직하여 다시 연마)

 

원문발표: 2018년 5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18/5/18/36665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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