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그동안 저는 당문화(공산당 문화)의 영향이 심하지 않고 질투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일부 수련생들과의 갈등이 점점 두드러지게 나타나 계속해서 안으로 찾아보니, 이 모든 것이 당문화가 일으킨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려서부터 학업과 직장, 가정이라는 세 가지 테두리 안에서만 생활하며 사회와는 거의 접촉이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주입된 것은 당문화였고 주변 환경도 당문화였습니다.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배우지 못했고 전통문화도 몰랐기에, 사고방식도 당연히 당문화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행동도 자연스럽게 당문화의 표현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당문화를 닦아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사상 속의 당문화적 요소들이 때때로 튀어나와 표출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삼퇴를 많이 시키면, 돌아와서는 늘 수련생들과 기쁨을 나누며 “오늘은 몇십 명, 어제도 몇십 명이나 탈퇴했어요”라고 말했는데, 때로는 수련생들이 듣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저는 ‘많이 탈퇴하는 게 좋은 일 아닌가? 왜 듣기 싫어하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들은 제게 과시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마치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외국 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좋은 일이 있으면 그냥 말하는 것뿐이고, 얼마나 탈퇴시켰든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 이루어진 것인데 내가 무엇을 과시할 게 있나 생각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일의 표면적인 옳고 그름만 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수련생들이 세 가지 일을 자주 하지 않는 상태에서 간혹 몇 명만 탈퇴시키고 있는데, 제가 늘 자신이 얼마나 많이 탈퇴시켰다고 말하니 무형중에 수련생들에게 압박을 주었던 것이며, 이것이 바로 당문화의 오만방자하고 잘난 체 하는 표현이었습니다. 이미 사부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면서도 왜 자신을 강조했을까요? 이는 바로 자아를 실증하고 과시하는 마음에 기쁨이 더해진 표현이 아니겠습니까? 단지 이런 것들이 이미 자연스러워져서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동시에 수구(修口) 문제도 존재했습니다. 이 한 가지 일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마음과 집착이 드러났는지요!
처음에 수련생들이 제게 과시심이 있다고 했을 때는 인정하지 않았는데, 나중에야 사부님께서 수련생들을 통해 제게 보여주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한 수련생이 제게 휴대폰으로 가장 작은 글자도 볼 수 있다며, PDF 파일로 대법 책을 볼 때 글자를 확대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글자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듣기 싫었고 그가 과시한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저도 다른 수련생들에게 같은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것들은 모두 과시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삼퇴 인원수나 법 암기 진도 등을 말한 것도 마찬가지인데, 이는 다른 수련생들이 도달할 수 없는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들을 하는 출발점과 목적이 다른 수련생을 위한 것이었을까요? 진상을 알릴 때도 상대방의 수용 정도에 맞춰 해야 하는데, 수련생들에게는 왜 그들의 느낌을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이 또한 사심의 한 가지 표현으로, 자신의 기쁨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다른 수련생 입장에서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에는, 수련자를 타인으로 여기지 않고 무슨 말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속인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분별심 문제도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속인뿐만 아니라 수련생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구가 포함하는 범위는 단순히 말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더욱이 심성 문제에 해당됩니다.
수련 전에는 늘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줄곧 다른 사람들의 질투 속에서 자랐다는 것입니다. 저도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인터넷에서 한 수련생이 쓴 글을 보니 ‘대지약우(大智若愚-크게 지혜로운 사람은 어리석게 보인다)’의 반대말이 ‘봉망필로(鋒芒畢露: 예리한 기질[재능]을 모두 드러냄), 노재양기(露才揚己: 재능을 드러내어 자신을 과시함)’이라고 했는데, 바로 제 진실한 모습이었습니다. 전통문화를 몰라서 안으로 거두고 밖으로 절제하는 것을 몰랐기에, 모든 것을 얼굴에 드러냈고 여기에 자신의 각 방면의 우세가 더해져 일종의 자만심 가득한 우월감이 생겼습니다.
수련 중에도 이것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나왔는데, 비록 정념은 있었지만 때로는 일부 수련생들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사악한 박해도 저를 쓰러뜨리지 못했지만 수련생들 간의 갈등은 정말 뼈에 새길 만큼 아픈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는 바로 저 자신의 당문화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이쪽에서 뭔가를 드러내면 수련생들은 저쪽에서 보기 싫어하며 제게 집착이 있다고 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수련생들이 질투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제 공간장이 깨끗하지 않아서 갈등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제야 저는 마침내 그것이 당문화의 근원이라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가슴을 찌르는 듯한 갈등 속에서, 저는 점차 자신의 집착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늘 순탄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고 좋은 말만 많이 들어왔으며, 수련 후에도 마찬가지여서 심지어 검은 소굴(감옥이나 수용소 등)에서도 정념으로 자유로웠고 늘 수련생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수련생들에게 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좋은 말을 듣기 좋아하는 마음,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 억울함과 원통함을 당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일의 표면에서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수련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은 심성의 제고인데, 저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가정에 갈등이 없고 사회에 모순이 없다면 어떻게 제고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수련생들 사이에서 서로 심성을 제고하고 업력을 감소시키는 것만이 진정 좋은 일입니다. 사실 마주치는 매 한 가지 일이 모두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이며 사부님의 고심한 안배인데, 제가 마음에 내려놓지 못한 것은 바로 사부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문득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순간 눈이 밝아졌습니다. 수련생들이 저를 도와준 것에 매우 감사드리며, 제 마음가짐도 더욱 평온해졌습니다.
당문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증오, 즉 아무 이유 없는 증오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착했고 평생 다른 사람과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습니다. 수련 후에는 더욱 환골탈태할 만큼 변화했지만, 공산 악령의 증오는 이미 모든 사람의 사상 속에 심어져 있었습니다.
약 10여 년 전, 근처의 한 수련생이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재혼을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이런 면의 일을 매우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감히 저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이후에 그녀의 재혼 얘기가 나올 때마다 저는 화가 치밀어 올랐고, 그녀가 너무 자존심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50대의 나이에 재혼을 하다니, 그야말로 무쇠를 두들겨도 강철이 되지 못하는 것 같은 심정(역주: 기대에 못 미쳐 안타깝다는 의미)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왜 말할 때마다 증오심이 가득했을까요? 제 마음가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최대한 억제하려 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당문화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뒤 그녀를 만났을 때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습니다. 그녀의 신체는 노화 현상이 나타났고 세 가지 일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여서 저는 정말 그녀가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또한 점차 깨달았습니다. 공산 악령의 증오적 요소가 저로 하여금 자비롭게 수련생과 소통하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 그것은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고, 이후로는 제 사상 속에 증오의 물질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문화는 또한 날카롭게 지적하기, 오만방자함, 겸손함을 모름, 일을 할 때 고조된 태도, 극단적으로 말하기 등으로 표현됩니다. 제 몸에 이러한 것들의 그림자가 있다면, 저는 대법으로 자신의 일사일념을 바로잡고 몸에 있는 모든 당문화의 독소를 제거하고자 합니다. 또한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도 감사드립니다.
현재 저의 얕은 층차의 인식이므로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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