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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에 걸렸을 때 대법 수련으로 새 희망을 얻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91세입니다. 어릴 때부터 병이 많아 사람들은 저를 ‘약봉투’라고 불렀습니다. 58세에는 뇌혈관 경화로 조기 퇴직을 했습니다. 60세 되던 해에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출가해 도를 닦았고, 많은 재가 ‘도우(道友)’들을 알게 됐습니다.

1996년, 이전 ‘도우’ 한 분의 집에서 저는 기쁘게 대법(파룬궁)을 얻었고, 그때부터 온몸의 병이 씻은 듯이 사라져 지금까지 약을 전혀 먹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환속하여 집에서 대법을 수련하기로 했습니다. 절의 스님이 저를 만류하며 자신의 법맥을 이어주길 바랐지만 저는 “도를 닦아서는 제 병을 해결할 수 없으니 파룬궁으로 바꿔 수련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이 대법 박해를 시작하자, 저는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리러 베이징에 갔다가 불법 구금됐고, 이후 탄압을 피해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한번은 설날이 다가올 무렵, 다른 지역에서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생(이전의 ‘도우’)에게 자료를 전해주러 갔는데, 그들 가족은 모두 이미 대법을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들의 집에 도착했을 때 분위기가 이상했고 아내와 딸은 집에 없었습니다. 때가 이미 늦어 그의 집에서 묵게 됐습니다. 한밤중에 밖에서 큰 울음소리가 들려 옷을 걸치고 나가보니, 남자 수련생이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고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그제서야 상황을 털어놓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의 딸이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암에 걸려 시내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의 집안에서는 돈이 없다며 발을 빼버렸고, 그와 아내가 병원에서 딸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면 3만 위안이 필요한데, 그는 딸의 수술비를 빌리러 마을을 거의 다 돌았지만 9천 위안밖에 못 빌렸다고 했습니다. 수술하지 않으면 딸이 곧 목숨을 잃을 텐데 어쩌면 좋을지, 할 수 없이 이렇게 사부님 앞에 무릎 꿇고 도움을 청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딸은 부부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보물이었습니다. “처음 법을 얻기 전, 아내와 갈등이 있어 이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딸이 강하게 반대해 가정이 유지됐습니다. 이제 딸이 암에 걸렸는데 치료할 돈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떠돌아다니느라 그들을 도울만한 경제적 능력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현 소재지에 가서 택시를 타고 다른 지역에 있는 아들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설날이 다가오는 때라 사방이 얼음과 눈으로 뒤덮여 장거리 버스도 운행을 멈춘 상태였습니다. 문득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가 이곳에 머물며 그들을 돕게 하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련생 집으로 다시 돌아와 딸의 입원 주소를 물어본 뒤 난양으로 택시를 타고 갔습니다.

그들 모녀를 만나 구체적인 상황을 물어보니, 딸은 여전히 매일 통증 때문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며 아버지가 돈을 빌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돈을 빌리는 상황을 더 자세히 파악한 후, 아내 수련생에게 “우리는 병원의 길을 가서는 안 되고 대법 수련의 길을 가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녀도 정념이 생겨 저에게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 제가 딸과 상의해보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상의 끝에 딸은 즉시 퇴원하고 대법 수련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딸이 이런 정념을 내자마자 그녀는 배가 고프다고 했고 몸의 통증도 많이 감소됐습니다. 다음 날 퇴원 수속을 밟기로 했고, 그날 밤 딸은 오랜만에 편안한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남편 수련생도 도착해 함께 퇴원 수속을 밟았습니다. 하지만 주치의가 동의하지 않아 많은 우여곡절 끝에 원장의 서명을 받고서야 퇴원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조용히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마을 밖에 임시로 집을 한 채 빌렸습니다. 모녀는 매일 함께 사부님께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리며, 법공부와 연공을 했고, 저와 남편 수련생은 주변에서 도우며 수시로 살폈습니다. 딸의 안색은 빠르게 좋아졌고 12일 만에 완전히 나았습니다.

남편 수련생은 집집마다 찾아가 빌린 돈을 갚았습니다. 이 기적은 온 마을에 큰 충격을 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그들 세 식구가 특별히 저를 찾아와 감사를 표하며 제가 그들의 딸 목숨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어찌 내 공로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당신들 온 가족을 구하신 것입니다. 제 목숨도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수련생의 딸은 아들딸을 낳아 모두 장성했고, 부부는 상하이에서 일하며 자리를 잡았고 현 소재지에서 집을 샀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2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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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2/7/48574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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