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진청(金成)
[명혜망] 지난 수년간 수련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가족들이 대법에서 받은 혜택을 수련생들과 나누고 사부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1. 어머니와 함께 대법을 얻다
어머니께서는 1997년에 대법을 얻으셨는데, 그 이전에는 온갖 만성병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어릴 적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늘 한약을 다리시거나 민간요법을 시도하시고 파스를 붙이시곤 했습니다. 특히 편두통이 심해 발작이 올 때면 관자놀이에 파스를 붙이시고, 때로는 목과 등에 부항을 뜨기도 하셨지요.
대법을 얻으신 지 불과 몇 달 만에 사부님께서 어머니의 몸을 정화해 주셨고, 어머니는 온갖 병에서 벗어나 건강한 몸을 되찾으셨습니다. 성격도 점차 온화해지셨는데 이 모든 변화를 저는 직접 목격했습니다.
1997년 여름 무렵, 어머니께서 집에서 동공(動功)을 연마하실 때마다 저는 방 안에서 연공 음악을 들으면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스꺼웠습니다. 하지만 방을 나가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금세 괜찮아졌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편두통을 유전으로 물려받은 저는, 발작이 올 때면 한쪽 머리가 심하게 욱신거리며 아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네가 파룬궁과 인연이 있구나. 사부님께서 네 몸을 정화해주고 계신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가끔 수련서 ‘전법륜(轉法輪)’을 읽어보았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법을 얻게 됐습니다. 법을 얻고 나서는 편두통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법공부를 하면서 제 마음속의 이기심을 비롯한 좋지 않은 생각들이 하나둘 바뀌어갔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의 세계관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999년 7월 이전까지는 거의 매일 저녁 어머니와 함께 법학습 장소에 가서 법공부도 하고 연공도 했습니다. 당시 열여덟, 열아홉 살이었던 저는 매일 대법의 불광(佛光) 속에서 지냈습니다.
2. 미혹에서 깨어나 수련의 길로 돌아오다
1999년,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저는 두려움과 여러 가지 집착심으로 인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만 수련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의심은 단 한 번도 품지 않았습니다.
2001년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처음에는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와 말다툼을 하게 됐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투었습니다.
장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는 모두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딸이 화가 났다거나 우리 부부가 다투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곧바로 제 부모님께 전화해 오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부모님 앞에서 저를 나무라고, 부모님도 저를 꾸짖어야만 일이 마무리됐습니다. 딸이 잘못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장인 장모님은 단 한 번도 딸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저는 장인 장모님에 대한 원망이 매우 컸습니다. 아내는 아이를 장인 장모님께 맡겨두고 자주 외식을 하거나 노래방에 가고 야외에서 음식을 먹었으며, 한밤중에 술에 취해 들어오곤 했습니다. 우리 가정의 갈등은 나날이 심각해져갔습니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는 형국이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은 하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법의 법리로 자신을 단속하지 못했습니다. 2005년 하반기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한계에 다다라 수련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매일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놀았고, 술로 자신을 마비시켜가며 불행한 결혼생활을 회피하려 했습니다.
2009년 어느 날 저녁, 아내와 말다툼을 한 후 아내는 친구들과 식사하러 나갔습니다. 밤늦게 술에 취해 돌아온 아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저를 욕하기 시작했고, 저 역시 술에 취해 있던 터라 자제력을 잃고 아내를 때리고 말았습니다. 외동딸로 자라 억울함을 참지 못하는 성격의 아내는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했고, 결국 우리는 이혼하게 됐습니다.
이혼 후 8개월이 지나 제가 새로운 여자를 만났을 때쯤, 전 아내가 여러 차례 찾아왔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며,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가 아직 어린 나이(당시 5살)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재결합하자고 요청했습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온전한 가정을 주고 싶었기에 재결합을 결심했습니다.
재결합 후에는 부부간에 갈등이 있어도 장인 장모님은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다툼의 시작은 대개 아내 쪽에서였고, 다투고 나면 아내도 후회하는 기색을 보였습니다.
아내는 성격이 급하고 쉽게 화를 내는 편이었습니다. 장모님은 그런 딸이 안쓰러워 늘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자네는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자네가 좀 양보해야지.”
속인조차 대법 수련인은 높은 경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깨닫고 저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수련을 중단했던 몇 년 사이 제 건강은 크게 악화됐습니다. 허리 디스크와 두드러기가 생겼고, 디스크가 오른쪽 다리 신경을 압박해 다리가 항상 저리고 자주 경련이 일었습니다. 특히 2009년에는 거의 매달 한두 번씩 허리 디스크가 재발해 심할 때는 출근조차 못할 지경이었습니다.
두드러기가 발작할 때면 온몸에 붉은 반점이 돋아났고, 가려움이 너무 심해 신발 솔로 긁을 정도였습니다. 온갖 방법을 써봐도 낫지 않았습니다. 거의 모든 소염제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병이 발작하면 그저 참고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마을 의사는 이런 식으로 병이 계속 재발하면 내부 장기들이 점차 쇠약해질 것이라며, 성급(省級) 대형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마음이 평온할 때면 저는 늘 대법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대법의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알고 있었고, 사부님께서 중생을 구하러 오셨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늘 이런 생각이 솟아났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법 수련으로 돌아가리라.’
우리 동네 슈퍼마켓에는 파룬궁수련생인 직원이 몇 분 계셨는데, 어느 날 제가 물건을 사러 갔을 때 그분들이 저에게 진상을 알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수련생들과 다시 연락이 닿았고, 대법과의 성스러운 인연이 이어졌습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저는 대법으로 돌아왔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세 가지 일에 대해서도 알게 됐습니다.
그때 저는 작은 천막이 달린 삼륜 오토바이[현지에서는 ‘샤오량콰이(小凉快)’라고 부름]를 구입했습니다. 매일 아이 등하교를 시키는 것 외에도, 쉬는 날이면 승객을 태우면서 일대일로 진상을 알렸습니다. 모든 승객을 사부님께서 진상을 들을 수 있도록 안배하신 중생으로 여겼습니다. 저녁에는 승객을 태우는 것을 핑계 삼아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3~4개월이 지나자 어느새 두드러기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다시 수련을 시작한 후 어느 날, 허리 디스크의 병업 가상이 무척 심하게 나타났습니다. 하루 밤낮으로 통증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화장실도 기어서 가야 했습니다. 기어가는 데만 몇 분이 걸렸고, 오가는 동안 온몸이 땀으로 젖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있은 후로 다리 저림과 경련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허리 디스크의 병업 가상이 올 때마다 저는 결코 그것을 병으로 여기지 않았고, 마사지나 침술, 파스 같은 치료법을 찾지도 않았습니다. 앉을 수 있을 때는 정공(靜功)을 했고 설 수 있을 때는 동공(動功)을 했습니다. 동공을 하다가 갑자기 통증이 심해져 무릎을 꿇고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너무 괴로울 때면 법을 외웠습니다. 처음에는 매달 두세 번씩 있던 발작이 점차 반년에 두세 번, 1년에 두세 번으로 줄어들더니, 최근 4~5년간은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대법을 다시 수련하게 되면서 더욱 관용적이고 인내심 있게 아내를 대하게 됐고, 제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아내 역시 대법을 인정하게 됐습니다. 다만 진(眞) 정부에서 일하는 아내는 중공이 대법 수련생을 박해하는 수단을 잘 알고 있었기에, 제가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어느 날 밤, 제가 매일 수련생 집에 가서 법공부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내는 크게 화를 내며 저지했습니다. 저는 이 문제로 수련생과 교류했고, 수련생은 “이 한 걸음만 굳건히 내딛으면 더는 방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그 시기에는 제가 저녁에 나가기만 하면 아내와 다퉜습니다. 한번은 장모님이 오셨을 때 제가 법공부하러 가려 하자 장모님과 아내가 함께 저를 말리며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4층에 살았는데, 그날 아내는 창가에 앉아서 “당신이 나간다면 이 자리에서 뛰어내리겠어요!”라며 큰소리로 위협했습니다. 저는 장모님이 계시니 아내가 실제로 그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은 뒤 문을 쾅 닫고 법공부하러 갔습니다.
저는 장모님이 집에 계시니 아내가 실제로 뛰어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문을 닫고 법공부하러 갔습니다.
법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또 다투게 될까 걱정되어 발걸음이 무거웠고 평소보다 길이 더 멀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 문을 열자 아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이 대했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린 듯했고, 모든 것이 환히 트이고 밝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고비를 넘을 수 있었습니다.
3. 가족들의 변화와 은혜, 그리고 감사
1) 아버지가 ‘파룬따파하오’를 염하시다
올해 77세이신 아버지는 퇴직 노동자이십니다. 어머니와 제가 대법 수련으로 심신이 변화하는 것을 보시고 대법이 좋다는 것은 아셨지만, 대법의 초범성과 신기함은 완전히 믿지 않으셨습니다. 글을 모르시는 아버지는 2022년경에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몇 번 들으셨으나, 대법 수련에는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2023년 가을 어느 날 밤 12시경, 아버지께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며 저에게 전화를 하셨습니다. 저는 서둘러 아버지를 업고 차에 태워 60여 킬로미터 떨어진 시내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차 안에서 저는 아버지와 함께 큰 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웠습니다. 통증이 심할 때는 속으로 외우시다가 통증이 조금 나아지면 소리 내어 외우셨습니다.
약 15분이 지나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정말 신기하구나! 너무나 신기해. 이제 전혀 아프지 않다. 집으로 돌아가자. 내일 동네 병원에 가서 검사만 받으면 될 것 같구나.”
하지만 저는 아버지의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자고 권했습니다.
시립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담낭염과 담석, 담관결석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담관이 완전히 막혀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의사는 담관이 얼마나 막혔는지 확인하고 수술에 참고하기 위해 고해상도 MRI 검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은 MRI 예약에 하루나 이틀이 걸리고, 결과를 받는 데도 2~3일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동안 금식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식사하러 가면서 MRI 예약을 해보라고 하셨고, 그동안 계속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마음속으로 외우셨습니다.
제가 예약 창구에 갔을 때, 마침 예약했다가 잘못 접수된 건이 취소되어 있었고, 접수 직원이 “환자분이 금식 중이시라면 지금 바로 검사받으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는 매우 운 좋게 즉시 검사를 받으실 수 있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상실에서 결과를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이미 결과가 나와 있었습니다. 오후에 주치의에게 결과를 보여드리자 “담관에서 결석이 발견되지 않네요. 소염제를 이틀만 맞으시고 내일 퇴원하시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검사와 결과가 이렇게 빨리 나온 것이 신기했던 의사는 “병원에 아는 분이라도 계신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부님께서 계실 뿐입니다. 사부님께서 보살펴주신 거지요.’
아버지도 “우리가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워서 대법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거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매일 밤 주무시기 전에 반드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여러 번 외우셨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버지는 대법의 초범성과 신비로움을 진심으로 믿게 되셨습니다.
2) 장인 장모님의 감동
장인 장모님도 퇴직하신 분들이었는데, 외동딸인 제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고 응석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래서 저와 아내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저를 원망하셨죠. 장인어른은 고집이 세고 말씀이 많지 않으신 분이었는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누가 반박하면 화를 내시고 상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장모님은 모든 일에서 장인의 의견을 따르셨습니다. 제가 대법을 수련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으셨고, 저와 대화도 거의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위로서 저를 그다지 만족스러워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아내의 이모부께서는 간암 진단을 받고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사위는 병문안을 몇 번 온 것 외에는 하루도 간병하지 않았습니다. 매년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장인 어르신은 늘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늙어서 너희에게 기대지 않을 거다. 병이 나면 요양원에 가고, 필요하다면 간병인을 쓰면 되지.” 장인 어르신은 저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2014년과 2015년에 장인 어르신께서는 잇따라 경미한 뇌출혈과 뇌혈전으로 두 차례 입원하셨는데, 입원 기간 대부분을 제가 직장에 휴가를 내고 병간호를 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고 조금씩 마음을 여셨습니다.
2020년에는 장인 어르신께서 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수술부터 돌아가시기까지 4개월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저는 온 정성을 다해 간호했습니다. 가족들은 병명을 알리지 않았고, 수술 당일부터 중환자실에서 나오실 때까지 저는 이틀 밤낮을 한숨도 자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제가 보여준 이러한 정성은 장인 장모님과 아내, 그리고 문병 오신 모든 친지분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닙니다. 저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고, 이렇게 행동하도록 가르치신 분은 사부님이시며 대법의 법리입니다. 제 친부모님께 효도하는 것과 같이 장인 장모님께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장인 어르신께서는 때로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습니다. 그 몇 달 동안 우리는 무슨 이야기든 다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 노년기에 이르기까지의 삶과 가정사, 직장 생활, 사회 경험까지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했습니다. 즐거운 이야기가 나올 때면 큰 소리로 웃으셨는데, 아내는 아버지가 그렇게 행복해하시는 모습은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원래 고집이 세던 장인 어르신께서는 마치 친자식처럼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셨고, 대법을 수련하는 사위를 진심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장인 어르신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예전에 가입했던 공청단과 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셨습니다.
저는 한 생명이 구원받게 된 것에 큰 기쁨을 느꼈습니다.
친척들 대부분이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고, 아직 탈퇴하지 않은 분들도 저를 매우 존경한다고 하시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주셨습니다. 아내도 큰 변화를 보였고, 점점 더 온화하고 현명한 아내가 되어갔습니다.
이 대가족 속에서 저는 제 행동으로 대법의 위대함, 사부님의 위대함을 실증했습니다.
3) 아들의 간질병이 치유되다
현재 대학교 1학년인 아들은 어릴 때부터 외조부모님 댁에서 자랐습니다. 장인 장모님은 손자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전혀 허락하지 않으셨는데, 혹시라도 손해를 볼까 봐 늘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교육 방식에 반대했고 이 문제로 아내와도 자주 다퉜지만, 장인 장모님의 강한 성격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아들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내성적이고 괴팍하며 극단적인 면을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께 지적을 받거나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면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극단적인 행동을 해서 저희는 자주 학교에 불려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는 장인 장모님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지셔서 아이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매일 저녁 식사 후 저는 아들을 데리고 아파트 아래로 나가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게 했고, 대법의 법리로 가르치려 했지만 아이의 마음 깊숙이 와닿지는 못했습니다.
여름방학 어느 날 낮, 제가 발정념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이 곁으로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빠, 뭘 하고 계세요? 저도 배우고 싶어요.” 그날 아들은 저와 함께 ‘전법륜’ 한 강을 배웠고, 그날 밤 꿈에서 파룬과 사부님을 뵈었습니다.
그 여름방학 내내 아내가 집에 없을 때면 아들은 매일 저와 함께 ‘전법륜’ 한 강씩 배웠고, 이렇게 해서 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5~6학년 무렵 어느 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고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어요. 너무 괴로워서 교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사실 예전에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런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이 말을 들은 저는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분명 사부님께서 아이를 보호하시고 그 극단적인 생각을 제거해주신 것입니다. 그 후로 아이는 방학 때마다 저와 함께 법공부를 했고, 가끔은 연공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품성이 점점 좋은 방향으로 변해갔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후에는 방과 시간이 늦어지고 공부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심리적 압박감도 커졌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자주 다투었고 선생님께서 여러 차례 학부모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제가 대법의 이치를 설명해주어도 듣지 않았고, 법공부하라고 해도 하지 않았으며, 집에서도 자주 짜증을 냈습니다.
고1 2학기 어느 날 밤, 1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려는데 갑자기 아이가 큰소리를 지르더니 두 눈을 꽉 감고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저와 아내는 너무 놀라 얼어붙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응급실에 전화했습니다. 저는 20분 동안 아이 곁에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큰 소리로 외쳤고, 아이는 점차 정신을 차렸습니다.
현, 시, 성의 여러 병원을 다니며 검사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를 모시는 친척에게 데려가 봤고, 그 친척은 반드시 고쳐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달 후 아이는 다시 발작을 일으켰고, 시립병원에서 재검사를 받은 결과 간질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부님께서 해외 설법에서 간질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있어서, 저는 아내와 아들에게 “진심으로 대법을 수련해야만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저를 통해 대법의 기적을 직접 목격했기에 아들이 대법을 배우는 것에 동의했고, 아들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들은 비록 병을 고치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지만 다시 대법의 길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학교가 아무리 늦게 끝나도 매일 20분씩 법공부를 하기로 약속했고,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반나절 동안 동공을 연마하고 ‘전법륜’과 사부님의 해외 설법을 번갈아가며 공부했습니다.
저는 매일 아들에게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전법륜’을 공부하면서 저는 병을 제거하고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은 오직 진정한 수련자에게만 해줄 수 있는 것이지 일반인을 위해서는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셋째 달에 아들이 다시 발작을 일으켰을 때 저의 마음도 흔들렸습니다. 그때 저는 ‘사부님의 은혜를 회상하며’와 명혜망 교류문을 내려받아 읽었는데, 그 안에는 간질 환자들이 대법을 얻고 완치된 사례가 여러 건 있었습니다. 이 글들은 제 신념을 더욱 굳건하게 해주었고 저는 여러 차례 아이와 대화하면서 병을 고치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었습니다.
넷째 달에는 발작이 없었고, 다섯째와 여섯째 달에도 발작이 없었습니다. 일곱째 달에 다시 발작이 왔지만 이전보다 훨씬 증상이 가벼웠습니다. 아내가 “왜 아직도 안 나았나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교류문에서 발작이 한 번씩 가벼워지고 간격도 점점 길어진다고 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후로는 약 반년에 한 번꼴로 발작이 있었고, 마지막 발작은 거의 1년이 지나서야 일어났습니다. 마지막 발작이 있던 날 밤, 사부님께서 노인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셔서 “아이는 나았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아들의 병은 완전히 나았습니다.
나중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수련생은 “당신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의 병이 더 오래 걸린 것입니다. 일찍 내려놓았다면 더 빨리 나았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많은 일이 자신의 집착을 놓지 못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와 대법의 인도 아래 아이의 심성은 빠르게 제고되었고 놀라운 변화를 보였습니다. 이제는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밝고 활발하며 건강한 청년으로 성장했고, 대학 입시에서도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맺음말
인간 세상의 어떤 화려한 언어로도 사부님께 대한 감사를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시종일관 저를 보호해주셨고, 이렇게 부족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법정인간의 시기가 임박한 지금,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따라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9/47868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9/4786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