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우리집 자료점이 10년의 세월을 걸어오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배운 지 1년도 안 됐을 때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법공부가 부족했고 실제적인 수련도 할 줄 몰라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가 악질 경찰에 납치돼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고 그 검은 소굴에서 대법제자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마음이 무거웠고 법공부에도 많은 교란이 있었습니다. 《전법륜(轉法輪)》을 9번이나 베꼈지만, 진상자료를 배포할 때도 떳떳하게 하지 못했고 매우 괴로웠으며 자책감도 컸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한번은 법공부를 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매우 위험하겠구나.’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했지만 잘하고 싶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시고는 A수련생 집에서 법공부와 교류를 하도록 안배해주셨습니다. A의 집은 자료점이었는데 그녀는 혼자 살았고 자녀들은 타지에서 일했습니다. 평소에 수련생들이 오가는 것 외에는 그녀 혼자서 매일 많은 자료를 만들어 매우 고생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녀를 도와 자료를 제본하고 CD를 복사하는 등의 일을 배웠습니다. 때로는 수련생들이 자료를 가지러 왔을 때 수량이 부족해서 인쇄를 기다려야 했고, 인쇄가 너무 느리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자료를 인쇄할 수 있다면 좋겠다. 자료가 수련생을 기다리게 하자. 그럼 수련생들이 언제 와도 자료가 있고, 무엇을 원하든 있고, 얼마를 원하든 그만큼 줄 수 있을 것이다.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하고 싶다.’

제가 자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위해 컴퓨터와 프린터, CD타워를 사왔습니다. A수련생은 인터넷 접속, 다운로드, 인쇄, CD 복사를 인내심 있게 가르쳐주었고, 딸이 저를 위해 노트를 만들어줘서 저는 보면서 조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컴퓨터 등 이런 것들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고 6년밖에 학교를 다니지 않았지만,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빨리 배울 수 있었고, 우리집의 이 ‘작은 꽃’이 피어났습니다.

우리집은 재혼으로 이룬 가정이었습니다. 제가 딸과 함께 집이 있었고, 남편 집은 농촌이었는데, 결혼할 때 시댁에서는 돈이나 물건을 전혀 주지 않았고, 오히려 저희가 2만 위안이 넘는 돈을 들여 시부모님 집을 수리해드렸으며, 7천여 위안의 빚도 갚아드리고, 용돈도 드려야 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미 몇 년 전에 실직했지만 아직 퇴직하지 않아서 매달 500여 위안의 생활비만 받았습니다. 제가 납치돼 소굴에 갔을 때 강탈당한 벌금도 다른 사람에게 빌린 돈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빚을 갚기 시작했는데, 아이 학비를 댈 돈이 없어서 딸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중단했고 15살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딸이 벌어오는 돈이 우리집의 주요 수입원이 됐습니다. 우리집에 저축은 없지만 저는 일찍이 생각했습니다. ‘자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와 소모품 비용은 모두 내가 부담하고 수련생들의 돈을 쓰지 않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법 자원이고 많은 구원 항목에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자료를 만들기 시작할 때부터 저는 사부님께서 하신 법을 늘 명심했습니다. “어떤 하나의 항목, 어떤 하나의 일을 하든지 간에, 하지 않으려면 당신은 하지 말고, 하려면 반드시 잘해야 하며, 시작이 있고 끝이 있어야 한다.”(각지 설법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저는 매번 먼저 법공부를 하고 나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는 교란이 매우 심했고, 프린트헤드가 막히고 색이 부족했습니다. 저는 먼저 안으로 찾아보고 다시 사부님께 청했으며, 계속해서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아 교란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세 대의 프린터는 모두 고속형이라 속도가 빠르고 인쇄량이 많았으며,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제가 쓰는 프린터들은 큰 문제가 없었고, 대부분 연속 작업으로 인해 인쇄헤드가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작은 문제였습니다. 저와 협력하는 C수련생이 집으로 가져가서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사용해도 정상적으로 인쇄가 되고 색도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한 대의 프린터로는 이미 100만 장이 넘는 자료를 인쇄했는데, C가 집으로 가져가서 쉬게 한 뒤 다시 사용했더니 30만 장을 더 인쇄했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때로는 프린터가 기분이 좋으면 흥겹게 노래를 불렀는데, 리듬이 있어서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프린터에 고장이 나면 저는 자신을 찾아보았고 제대로 찾으면 프린터가 곧바로 좋아졌습니다. 계속되는 법공부 속에서 저는 문제가 생긴 뒤에야 자신을 찾아보는 것은 매우 수동적인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평소에도 법으로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고, 항상 자신을 대조해보고, 능동적으로 자신을 착실히 수련하면 문제가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진상책자를 인쇄하고, 달력을 만들고, 전단을 만들고, CD를 복사하는 일을 상자 단위로 했고 매일 매우 바빴습니다. 그해 연말에 수련생들이 요구하는 자료가 매우 많아서 자료를 제본하느라 열 손가락 지문이 빨갛게 되고 거의 피가 날 정도로 아팠습니다. 딸이 보고는 말했습니다. “곧 설날인데 손이 이래서 어떡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괜찮아, 사부님께서 관리하시니까 내일이면 좋아질 거야.” 다음 날 정말로 아프지 않았고, 설날 음식 준비와 청소하는 데도 지장이 없었습니다. 또 몇 번은 종이에 손이 베였지만 자료 만드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저는 매일 자료를 만드느라 바빠서 법공부와 연공을 보장하는 것 외에는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생활은 매우 단순했고, 1년 중 설날에만 만두를 한번 빚었으며 복잡한 요리는 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는 야채를 한 솥 삶아서 냉장고에 넣고 일주일 동안 먹었고, 겨울에는 더 오래 먹었습니다. 때로는 며칠 동안 푸른 채소를 먹지 못하고 짠지를 먹었는데, 가족들은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 가족들에게는 반찬을 사다 주었습니다. 저는 평소에 쇼핑도 안 하고, 이웃집에도 가지 않고, 휴대폰도 보지 않았으며,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는 텔레비전도 없었는데 처음에는 돈이 없어서 못 샀고, 나중에는 텔레비전이 있으면 보는 시간이 많아져서 법공부와 연공, 자료 만드는 데 영향을 줄까 봐 그랬습니다.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나니 남편과 딸도 익숙해졌습니다.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료를 만들어 사람을 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책임이며, 자신의 서약을 이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매우 충실하고 행복했습니다. 이 10년을 저는 이렇게 걸어왔습니다.

최근 몇 년간 남편이 병으로 입원해 있어서 평소에도 그를 돌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컴퓨터만 켜고 프린터가 자료를 만들기 시작하면 제 마음속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잡념도 없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안배해주신 이 모든 것을 매우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다해 잘하려 했고, 그 과정이 매우 신성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높은 표준을 지키며 깨끗하고 정돈된, 색상이 선명하고 밝은 자료를 만들었으며, 표지 인쇄에도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인쇄한 것을 먼저 남편에게 보여주면 그가 말했습니다. “왼손에 있는 것은 색이 연하고 오른손에 있는 것은 색이 진하네.” 저는 말했습니다. “진하고 연한 것을 말하지 말고 어느 것이 보기 좋은지 말해봐요.” 그가 말했습니다. “오른손에 있는 게 좋아 보기가 좋아.” 그가 좋다고 한 것이 바로 제가 선택하려던 것이어서 이렇게 해서 인쇄할 것을 정했습니다. C는 제가 만든 자료가 마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하고 정돈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줄곧 자료를 만들기 전에 했던 그 소원을 지켜왔습니다. 자료가 수련생을 기다리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10년 동안 수련생들이 언제 자료를 가지러 오든 수량과 종류 면에서 모두 수련생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제가 사용한 모든 장비와 소모품은 거의 다 C가 구매해 왔고, 제가 만든 모든 자료도 모두 그녀가 운반해서 수련생들의 손에 전달했습니다. 그녀는 저와 진정으로 단선연락을 실현했고 그래서 이곳도 줄곧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C는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대법 일을 해서 매우 고생했습니다. 우리집은 산 아래 단층집이고 독채라서 비교적 넓었습니다. 그녀가 언제 올지 약속하면 저는 큰 문 안쪽에서 기다리다가 그녀가 오면 바로 문을 열어주어서 문을 두드릴 필요가 없어 시간도 절약되고 이웃들에게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프린터 소리가 커서 우리집 대문은 낮에는 항상 닫아놓았는데, 불청객이 집에 들어와 직접 방해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름에 수련생이 오면 저는 항상 미리 긴 바지와 반소매 상의로 갈아입고, 양말과 천 신발을 신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을 생각하며 바른 수련의 길을 걸으며, 수련생을 존중하고, 악한 것들이 이런 면에서 틈을 타지 못하게 했습니다.

2015년 ‘장쩌민 고소’ 붐이 일어났을 때, 저는 신속히 고소장을 써서 ‘양고(兩高,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에 보냈습니다. 그때 저는 자료를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명으로 고소하면 사악이 찾아올까 봐 걱정됐습니다. 세 대의 프린터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들을 어디에 숨겨야 하나?’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숨길 곳이 없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법이 제 머릿속으로 들어왔고, 저는 정념이 생겼으며, 프린터를 숨기면 수련생들이 사람을 구하는 데 지장이 될 것 같아서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따라야 하고, 정념정행해야 합니다. 자료 인쇄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일부 수련생들은 고소장을 쓸 줄 몰라서, 저는 제 고소장을 가지고 가서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부부 수련생이 있었는데, 아내가 고소장을 쓴 후 저는 그녀와 함께 우체국에 갔고, 저는 문 밖에서 발정념을 하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가 우편 발송 수속을 밟았는데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며칠 후 그녀가 남편과 함께 고소장을 부치러 갔을 때는 그녀가 문 밖에서 발정념을 하고 남편이 들어가서 부쳤는데, 역시 매우 순조로웠습니다.

장쩌민 고소로 인해 많은 수련생이 각종 정도의 교란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저는 한편으로는 발정념하는 힘을 키우고, 한편으로는 사부님께 가호와 보호를 구했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저를 도와 악한 것들을 제거하셨는데, 그 악한 생명들과 요소들을 한데 모아 우리집 겨울 난방용 석탄난로에 놓으시고 신뢰(神雷)로 폭파하셨는데, 한 번 한 번 매우 크게 울렸습니다. 그때 남편이 마당에 있다가 폭음 소리를 듣고 말했습니다. “누구 집에서 이렇게 큰 폭죽을 터뜨리지?” 저는 말했습니다. “빨리 와서 봐요, 우리 집 철난로에서 나는 소리에요.” 저는 난로 뚜껑을 열어서 보려고 했는데, 조금만 틈을 벌리자 난로 안에서 폭발한 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와서 저는 급히 난로 뚜껑을 덮었습니다. 폭발이 끝나고 소리가 나지 않자 난로 뚜껑을 열어보니 난로 안벽에 발라놓은 황토가 가루가 됐습니다. 다음날 남편이 다시 난로에 황토를 발랐는데,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겨울 난방용 난로가 특별히 잘 타서 온도가 빨리 올라갔고, 지금까지도 계속 그렇습니다.

장쩌민 고소가 끝난 후 저도 아무 일 없이 평안했습니다. 때로는 파출소와 촌위원회 사람들이 와서 문을 두드렸지만 저는 절대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그들은 잠시 두드리다가 두어 번 소리친 후 그냥 갔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사부님의 자비이며 시시각각 제자들의 위험을 해소하고 난관을 제거해주시며, 제자들을 격려하고 또한 제자들을 성취시켜주시는 것임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이번 생에 대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살피심 속에서 저희 가정 자료점은 안정적으로 10년의 세월을 걸어왔습니다. 그 과정의 매 걸음마다 모두 사부님의 가지와 보살피심을 떠날 수 없었고, 수련생들의 노고와 헌신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최후의 최후에 시일이 많지 않으니, 저는 더욱 엄격히 자신을 요구하고, 진정으로 법을 잘 배우며, 항상 안으로 찾고, 한층 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강화해서, 우리집의 이 ‘작은 꽃’이 더욱 찬란하게 피어나 수련생들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20/48513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20/485137.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