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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법회] 놓쳤던 길을 사부님께서 다시 열어주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헤망]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현실에서 사람들은 한번 놓친 길은 다시 갈 기회가 없다고들 하지만, 제가 중공 악당(중국공산당)의 박해로 놓쳤던 그 길을 사부님께서는 다시 잘 걸을 기회를 안배해 주셨습니다. 이 생각을 할 때마다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1997년 18살 나이에 저는 행운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고, 27년이 지나 이제는 중년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걸어온 발걸음마다 사존님의 큰 헌신과 자비로운 보살핌으로 가득했습니다.

중공의 비이성적인 박해로 인해 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직장에서 강제로 해고되어 좋은 직장을 잃었고, 중공 경찰의 장기 고문과 학대, 정신적 세뇌를 당한 후 중형을 선고받아 중공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이로 인해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진출하는 단계에서 제 정상적인 삶의 궤도는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수련의 관점에서 저는 제게 심성의 누락과 업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떤 일을 겪더라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제가 고통받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중생 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큰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 있든 저는 최선을 다해 밝은 마음가짐을 보여주고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려 했습니다. 중공 감옥의 어두운 구덩이에서도 저는 늘 고개를 높이 들고 당당하게 모든 사람을 대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늘 ‘어떻게 하면 박해로 인한 손실을 최선을 다해 보충할 수 있을까’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감옥이라는 어두운 구덩이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이미 중년이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보기에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과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본래 이런 것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며 더 이상 이것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수련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며, 최대한 평범한 사람의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만 더 잘 대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할 수 있으며 바른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제 이런 생각이 남을 위한 것임을 아시고 제가 다시 걸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제 제가 억울한 옥살이를 끝내고 다시 자신을 바로잡아 바른길을 걷게 된 체득을 사존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 다시 사회에 녹아들어 올바른 수련의 길을 열다

신체의 자유를 되찾은 후, 생활 문제를 해결하고 가족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저는 빨리 한 가게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저는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갓 돌아온 저로서는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이틀 동안 쉬지도 못한 채 일했는데도 사장은 외상이 많다며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겨우 몇백 위안만 줬습니다. 저는 사장이 어려운 처지에 있으니 더는 강요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서는 돈도 벌지 못하고 법학습과 연공도 제대로 하지 못해 더는 일할 수 없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제 대학 전공과 관련된 직장을 소개해줬는데, 주 1일 반 휴일이 있고 공휴일도 정상적으로 쉬며, 기본적으로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는 자유로웠습니다. 근무환경도 쾌적하고 좋았으며 직장에서 점심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제가 일하면서도 법공부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임을 알았고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저는 매일 성실하게 일하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며 모든 환자를 친절하게 대했습니다. 상사의 불합리한 괴롭힘이나 동료들의 의도적인 따돌림, 또는 환자들의 막무가내식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저는 이것이 제 심성을 제고할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에는 매일 심성 제고할 일이 생기고 매일 법 속에서 제고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오전, 일을 마치고 작업실 환기를 하던 중 바닥에서 반짝이는 금빛 둥근 물체를 발견했습니다. 주워서 보니 자두만한 크기의 금목걸이 펜던트였는데, 무게감이 있었고 안의 꽃잎 하나하나가 알차게 꽉 차 있어 보기에도 값이 나가 보였습니다(나중에 들으니 거의 1만 위안이나 된다고 합니다). 저는 환자가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잃어버려 매우 걱정할 것 같아서 즉시 상사에게 알렸습니다. 마침 그때 그 환자와 가족들이 상사 사무실에서 이 일로 매우 걱정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오전 시간대라 찾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며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발견해서 자진해서 돌려준다는 말을 들은 환자와 가족들은 매우 감동했고 감사 깃발까지 가져와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2. 졸업 20년 만에 자격증 재도전

저는 막 일을 시작했을 때 중공 악당에 의해 강제로 해고되어서 전공 자격증을 따지 못했고, 지금은 관련 업무를 하더라도 아주 낮은 수준의 보조 업무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직장에서 1년간 일한 후 저는 빠르게 이 직위의 기술 자격증을 땄는데, 당시 제가 그런 상황에서 그렇게 빨리 자격증을 따내자 많은 사람들이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제 대학 본과 학력으로 보면 더 높은 수준의 자격증을 따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학력이 있으니 자격증을 따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대법을 더 잘 실증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 지인들에게 이 생각을 말하자 친한 친구들은 “20여 년간 이 전공 일을 하지 않았는데다 나이도 많은데, 이 자격증이 얼마나 따기 어려운지 알아? 그런 고생은 하지 마”라고 말했습니다. 또 어떤 친구는 “지금 나이가 몇 살인지 몰라? 이 시험에 응시하는 대부분이 20대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거나 재학 중인 대학원생들인데 그들을 이길 수 있겠어?”라고 했고, 어떤 친구는 “시험 보고 싶으면 한번 도전해봐. 다만 합격 가능성은 크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스스로 상황을 가늠해보니 나이도 많고 20여 년간 이 전공을 하지 않았으며 긴 옥살이도 막 끝났지만, 자격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정신이 맑고 몸 상태도 좋아서 실제 나이보다 10살은 어려 보였습니다. 저는 기점을 바로잡아 개인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법을 더 잘 실증하고 가족과 친지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는 또다시 모든 것을 안배해주셔서 접수와 시험 준비 과정에서 늘 여러 사람들이 나타나 어려움을 해결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전혀 모르는 한 여학생을 만났는데, 그녀는 작년에 시험을 봤기 때문에 전체 과정을 잘 알고 있어서 시험 접수 방법과 복습 방법을 매우 열성적으로 알려주었고, 매 단계마다 좋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제게 적합한 학습 장소도 찾아주었습니다.

특히 시험 한 달 전에는 우연한 기회로 인터넷에서 400위안짜리 시험 직전 특강반을 알게 되어 수업 일정에 맞춰 한 달 동안 많은 공을 들였지만, 아무리 바빠도 매일 법공부와 연공은 꼭 했습니다.

지금 시험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특히 마지막 한 달 동안 함께 시험 준비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려 매일 수면제를 먹어야만 겨우 잠을 잘 수 있었고, 어떤 이들은 매일 항우울제를 먹어야 할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시험 이틀은 정말 더웠는데, 그중 하루는 세 과목을 연속으로 봐야 했고 마지막 날은 오후 1시가 좀 넘어 시험장에 들어가서 저녁 6시 반이 돼서야 나올 수 있었습니다. 강도가 매우 높아서 체력과 정신력이 한계를 넘어설 지경이었습니다. 많은 수험생들이 시험 전에 각성제를 먹고 산소를 흡입해야 했고, 시험장에서는 레드불(카페인 음료)을 마시고 초콜릿을 먹어야만 겨우 시험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한 수험생이 세 번째 과목 시험 전에 쇼크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시험 준비 과정에서 저는 수련인의 마음가짐으로 문제를 바라보면서 피곤하고 졸릴 때는 연공을 하고, 마음이 불안할 때는 발정념(發正念)을 했습니다. 그 이틀 동안 더위 외에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고 이틀간의 시험을 매우 순조롭게 마쳤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서는 순간, 주변의 20대 학생들을 보며 저는 이미 승리했다고 느꼈고 시험에 합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습니다. 관례상 매년 성적 발표까지는 최소 30일이 걸리는데,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즉시 조정하면서 스스로에게 사부님과 법을 믿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하며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본 지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사부님께 과일을 올리고 어머니 수련생과 아직 완전히 수련하지 않은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사부님께 절을 올렸는데, 시험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80세가 넘으신 아버지는 무릎 꿇고 사부님께 세 번 큰절을 올리셨는데,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사부님 법상 앞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리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과일을 드시지요. 이건 제 자식이 산 것입니다. 리 사부님, 아이가 시험에 잘 합격해서 자격증을 따고 적절한 직장을 구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리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실 줄 몰라 감동했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너무 ‘집착’하시는 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경지에서 그것은 진심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날 저녁에 성적이 발표된 것입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시험 후 20여 일 만에 성적이 발표되었는데, 저는 합격했을 뿐 아니라 합격선보다 40점 이상을 더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성적을 본 그 순간, 저는 흥분이나 기쁨보다는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더욱 굳건한 믿음과 감사함만이 있었습니다. 또한 저를 걱정해주고, 도와주고, 정념으로 가지해준 수련생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렸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을 정진의 동력으로 삼아 세 가지 일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모님께 성적을 알려드렸고, 우리 세 사람은 다시 무릎 꿇고 사부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친척들과 친구들도 이 소식을 듣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하신 것임을 깊이 알고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가 다시 잘 걸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셔서 일반인들이 보기에 불가능했던 일들이 제게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생에 사존의 제도와 대법의 홍전(洪傳)을 만난 것은 행운 중의 행운입니다. 다시 한번 사존과 대법께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오직 정진하여 착실히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여 더 많은 중생을 구함으로써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4년 11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18/4846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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