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9년 이전부터 수련을 시작한 대법제자입니다. 25년의 정법 수련의 여정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일어서기도 하면서 많은 경험과 교훈을 얻었고,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체득했습니다. 이번 제21차 명혜망 중국법회를 맞이해, 박해 초기에 제가 직장에서 법을 실증하고 박해에 저항했던 일부 경험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1. 대법 수련을 견지하다 산간 지대로 좌천되어 교편을 잡다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저는 수련을 계속했기에 한동안 불법 구금을 당했고, 도시의 중점 학교에서 집에서 20km나 떨어진 산간 지역으로 좌천되어 교편을 잡게 되었습니다. 알려진 바로는, 국(局)의 지도부가 회의에서 “그녀를 수련하게 놔두자. 집에도 못 가는데 어떻게 수련하나 두고 보자!”라며 결정했다고 합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자녀를 집에 두고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짐을 싣고 길을 물어가며 갔습니다. 마음속으로 《홍음(洪吟)》의 ‘마음고생(苦其心志)’을 계속 되뇌며 현지 교육청에 도착해 전근 신고를 했습니다. 제가 교육청 책임자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때 마침 한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책임자는 “잘됐네요. 이분이 바로 선생님이 가실 학교 주임선생님이십니다. 그분 일 마치시면 같이 가시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길을 모르는 것을 아시고 특별히 사람을 보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한 번도 그렇게 멀리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었지만, 사부님의 가지(加持)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학교에 도착했습니다.
허름한 학교 건물과 낯선 얼굴들을 보니 서글픈 감정이 절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즉시 자신을 다잡았습니다. ‘안 돼. 반드시 감정을 억제하고 대법 수련자다운 자세로 세상 사람들을 대해야 해.’
저의 징계 처분과 좌천 소식은 이미 이곳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알려져 있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학생들은 교무실 창가에 매달려 저를 구경했습니다. 저는 적극적으로 선생님들께 인사를 건넸지만 그분들은 어색하게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TV에서 파룬궁에 대한 비방과 모욕이 계속 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깊이 세뇌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제가 얼마나 비상식적이고 고집스러운 사람일까 생각했다고 합니다(이는 이후에 그들이 저에게 직접 말해준 것입니다). 그들은 경계심 어린 차별적인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환경에 직면해 저는 제가 바르게 처신해야만 당시의 상황을 바꾸고 사람들의 대법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2. 선한 마음과 사랑으로 사제 관계를 맺다
진실은 그 어떤 웅변보다 강력합니다. 저는 제 언행으로 대법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중공의 거짓말을 타파하려 했습니다.
1) 마을 주민들 “선생님은 우리 마을 역대 최고의 교사이십니다”
보통 사람들은 타격을 받으면 주저앉거나, 소극적으로 태업하거나, 보복하려 들지만, 저는 대법제자이므로 선한 마음으로 직무에 임해야 했습니다. 이곳은 교사의 수준이 낮고 학업 성적이 현저히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교과 과정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제대로 배우지 못한 기초 과정까지 보충해서 가르쳐야 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보여준 온화하고 친절한 태도, 세련되고 정확한 교수법, 명쾌하고 틀림없는 설명은 빠르게 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대다수 학생들이 짧은 기간 내에 큰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이 변화를 지켜보았고 학생들은 마음속으로 기뻐했습니다.
당시에는 통근 버스가 없어서 매일 저녁 집에 갈 수 없었기에,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두 학생을 특별 지도했고, 그 결과 현급 대회에서 1등과 3등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두 학생과 그 학부모들은 무척 기뻐하며 저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는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해 동안 이 학교는 현급 대회 참가 자격조차 얻지 못했었고,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기 일쑤였으니 수상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졸업반 수업과 담임을 연이어 맡았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학교는 졸업반 시험에서 해마다 성적이 향상되어 낙오생이라는 오명을 벗고 여러 학교를 앞서게 되었습니다. 마을의 교사들, 교장 선생님, 교육청 간부들도 저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고, 이는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사람들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제가 진상을 알리는 데 좋은 여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대법에서 터득한 법리로 학생들을 지도했습니다. “사람이 선행을 하고 고생을 감내하면 하얀 물질인 덕(德)이 생기는데, 덕은 사람에게 복을 가져다주고, 악행을 하면 검은 물질인 업력이 생긴단다. 업력은 사람에게 고통과 질병, 재앙을 초래하므로,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정직하고 선량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농담 한마디로 다툼이 일어나 한 명이 목숨을 잃고 두 명이 감옥에 가게 된 이웃 마을의 실제 사례를 들어 관용과 인내의 중요성, 타인과 화목하게 지내는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겨울철에 먼 거리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집에 가지 않고 생라면을 먹을 때면 뜨거운 물을 부어주거나 끓여주곤 했습니다.
어느 날 교감 선생님이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민들의 눈은 참으로 밝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이야기할 때마다 선생님 얘기가 나옵니다. 선생님은 수업도 잘 하시고 인품도 훌륭하신데, 파룬궁수련자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우리 학교로 오셨겠습니까? 주민들은 선생님이 우리 마을 역대 최고의 교사라고 칭찬합니다.” 그때 저는 이미 명예와 이익에 대한 집착이 담담해져 있었기에, 마을 사람들의 칭찬에 들뜨지 않았습니다. 제 실제 행동으로 중공의 거짓된 비방을 깨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기뻤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대법제자가 좋은 사람이며 대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저에게는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2) 기꺼이 자원봉사 취사원이 되다
우리 학교는 여러 마을이 합쳐진 초등학교여서 교사들도 여러 마을에서 오셨습니다. 외곽 마을에서 오시는 선생님들은 모두 울퉁불퉁한 황토길을 다니셨는데, 비나 눈이 오는 날이면 길이 더욱 질척거려서 점심때 집에 가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낮에는 평소처럼 수업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자원봉사 취사원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이 남자 선생님들이라 요리를 잘 못하셨고, 식재료와 채소도 대부분 제가 집에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들려주신 작은스님(소화상) 이야기를 떠올리며, 어떤 불평한 마음도 없이 언제나 즐겁게 밥을 지어 대접했습니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면 먼저 나서서 귀가하시려는 다른 선생님들을 만류했습니다.
제 선행은 교장 선생님과 모든 교사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원래는 저를 감시하는 임무를 맡으셨던 분들이 오히려 제 진정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교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대법의 진상과 중공 악당의 박해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때로는 그분들이 제기하는 의문에 근거해 대법 서적의 내용을 골라 읽어드렸는데, 그분들은 듣자마자 “TV에서 거짓말을 하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정의로운 교사가 내게 서랍 열쇠를 맡기다
가끔 밖에서 박해의 기세가 거세질 때면 선생님들은 제게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한번은 교육청에서 우리 학교의 위험 건물을 조사하러 왔을 때였습니다. 제가 수업 중일 때 교장 선생님이 다른 교사를 보내 기숙사 열쇠를 달라고 하셨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선생님들은 제 기숙사를 수색하는 줄 알고 계셨습니다. 제 기숙사에 대법 서적이 있다는 것을 아시던 터라, 또다시 제가 세뇌반으로 끌려가 불법 감금과 박해를 당할까 봐 놀라서 한 시간 동안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저를 걱정하셨습니다. 교육청 간부가 떠난 후에야 그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습니다.
그날 점심때 한 선생님이 제게 열쇠 하나를 건네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제 책상 서랍 열쇠입니다. 앞으로 선생님께서 대법 서적을 다 읽으시고 나면 이 서랍에 보관하세요. 누구도 감히 제 서랍을 뒤지지 못할 겁니다!” 이 선생님은 대법 진상을 여러 차례 들으셨기에 매우 정의로우셨고 저를 계속 잘 해나가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마음과 사랑으로 사람을 대하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대법의 제도를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깊이 체득했습니다.
3. 세상 사람들의 이해와 존중
제 수련 경지가 향상됨에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이 좋은 방향으로 변화했습니다.
1) 수업 시간에 진상을 알린 후의 학부모 반응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데, 하물며 저와 깊은 인연을 맺은 학생들은 어떻겠습니까. 저는 그들에게 잘해주고 잘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 진실을 전하고 진정하게 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미 몇 차례 불법 구금을 당했고, 이로 인해 집안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크나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또한 우리 현의 몇몇 교사 수련생들도 불법 징역 판결과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많이 갈등했습니다. 진상을 알리지 않자니 학생들에게 미안하고, 알리자니 또 어떤 학부모가 신고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이 법을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 그것이 빈틈을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각지 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저는 마침내 용기를 내 이성적으로 수업 시간에 몇 차례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수련하기 전에는 학생들의 문제를 다룰 때 항상 고압적이고 훈계 일변도였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에는 사부님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할 때는 언제나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바로 학생들에게 ‘안으로 찾기’를 가르쳤습니다. 먼저 마음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찾은 다음, 자신이 그 일에서 어떤 잘못을 했는지 찾아보게 하고, 마지막으로는 서로 사과하고 악수하며 화해하도록 했습니다. 이런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었고 학생들도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두 학생이 서로 다투어서 수업 시간에 제가 원인을 물었더니 두 학생이 계속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저는 말리지 않고 참을성 있게 들었습니다. 제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자 학생들은 ‘선생님은 왜 아직도 아무 말씀이 없으실까?’ 하고 의아해했습니다. 때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말리지 않은 것은 너희가 서로의 입장에서 옳고 그름을 따져보길 바랐기 때문이야. 나는 너희 중 누구도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 나도 바로 파룬궁 수련과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로 누명을 쓰고 박해를 당해 이곳에 오게 된 거란다. 너희들도 드라마에서 봤겠지만, 역사상에는 혼군(昏君)과 명군(明君)이 있었는데, 혼군은 얼마나 많은 억울한 사건을 일으켰니?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으로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단다. 병도 치료하고 건강에도 아주 좋아. 하지만 장쩌민은 파룬궁 수련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대법 사부님을 질투해서 파룬궁을 모욕하고 탄압하라고 명령했어. 너희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출세하여 좋은 관리가 되어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억울한 일이나 거짓된 사건을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여기까지 말하자 두 학생은 스스로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한번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고 우리의 사제 인연을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은 날 좋은 선생님이라고 칭찬하지. 우리 학교 선생님들 중에서 내가 학력이 제일 높지만, 월급은 가장 적단다. 왜 그런지 아니?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여러 차례 직급 조정 때 승진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야. 비록 내가 억울하지만 나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너희를 가르친단다. 내가 억울하다고, 내가 타격을 받았다고 해서 너희에게 화풀이를 하고 너희의 앞길을 망칠 순 없잖니. 그런데 말이야, 내가 여기서 너희를 가르치면서 내 자식처럼 대하지만, 정작 내 아이는 돌볼 사람이 없단다. 걔도 너희들과 같은 또래인데…” 저는 목이 메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됐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감정이 북받쳐 올랐습니다. 학생들은 조용히 듣고 있었고, 어떤 아이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제 처지를 안타까워했습니다.
다음 날 몇몇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한 학생은 “선생님, 어제 선생님 말씀을 집에 가서 했더니 우리 어머니께서 선생님이 집에 못 가시면 저녁에 우리집에 오셔서 지내시라고 하셨어요”라고 했고, 또 다른 학생은 “우리 집 마당에 채소가 많은데 어머니께서 가져다 드리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이 싫어하실까 봐 먼저 여쭤봅니다”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생명들인지요! 제가 진상을 알리지 않았다면 어떻게 대법제자에 대한 이해와 동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어찌 대법의 제도를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한 학생의 할머니께서 저를 꼭 만나 뵙고 마음속 말씀을 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녀가 원래는 일기를 전혀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생님께 배운 뒤로는 매일 일기를 쓰더군요.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치시고 어떻게 하셨는지 기록해요. 공부는 우리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말씀도 잘 듣고요. 선생님은 아이를 어떻게 교육하셨나요?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실 저는 단지 대법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진선인(眞·善·忍)을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아이들에게 잘하며 성실하게 책임을 다했을 뿐입니다. 학생들이 저를 좋아하고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면 성적은 자연히 오르게 되고 학부모님들도 그 혜택을 보시게 되는 것이지요.”
2) 중학교 교사와 촌간부들의 반응
우리 학교는 원래 교과 성적이 저조하고 학생들의 기초가 부실해서 중학교 교사들은 모두 우리 학교 출신 학생들의 교육 수준이 형편없다고 불평했습니다. 제가 부임한 후 졸업반을 1년간 맡아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 결과, 학생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어 중학교 교사들 모두가 저를 존경하고 칭찬하게 되었습니다.
한 중학교 여교사는 먼저 제게 인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중학생들이 작문을 쓸 때 보통은 현재 담임 선생님이나 부모님을 소재로 삼는데, 최근 몇 년간 선생님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선생님을 주제로 씁니다. 선생님은 그 아이들에게 정말 깊은 인상을 남기셨어요!”
한번은 촌 서기가 학교에 와서 교장 선생님과 저를 찾았습니다. “현에 어떤 선생님(저를 가리킴)에 대한 칭찬 편지를 쓰고 싶은데, 첫째는 제 수준이 낮아 잘 쓰지 못할까 봐 걱정이고, 둘째는 지금의 (파룬궁) 정세에 악영향을 끼칠까 봐 감히 쓰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 마음을 가져주신 것만으로도 저는 매우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아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4. 온갖 시련을 뚫고 마침내 도시로 돌아오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곳에도 현 소재지로 가는 셔틀버스가 다니게 되어 저는 매일 집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점차 좋아졌습니다. 이치로 보면 근무 환경이 매우 좋아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 선생님들과 일부 마을 주민들은 계속해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여기서 가르치시는 건 우리의 복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집에서 너무 멀어 가정을 돌보기 어려우시니, 인맥을 동원하고 선물을 보내서라도 돌아가세요!”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사부님의 일깨움일 수도 있으니 박해에 맞서 도시로 돌아가야겠다. 그곳에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저는 말씀드렸습니다. “돌아가긴 해야 하지만 절대 선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연공하고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오랫동안 박해를 당했는데 제가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다니요?” 그분들은 모두 선물 없이는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해 여름 방학에 저는 교육청에 가서 전근을 신청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이 종종 올라왔습니다. ‘그들이 아직도 수련하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지? 혹시라도 (수련 포기) 각서를 쓰라고 하면 어떡하지?’ 이전에 여러 차례 교육청에서 저를 세뇌반으로 보내 박해했기 때문에 교육청에 간다는 생각만 해도 몸이 떨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길이라도 가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하면서 구세력의 저에 대한 교란과 박해를 철저히 부정했습니다. 오직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만 걸을 것이며, 그들이 제게 연공에 대해 묻지 못하게 하고 오직 전근 문제만 논의하게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며칠 동안 발정념을 한 후, 저는 온 우주가 맑고 투명해진 느낌이 들어 교육청으로 향했습니다.
아직 위층에도 올라가기 전에 서기를 만났는데, 서기는 의외로 저를 정중하게 대했습니다. 원래 그녀는 우리 대법제자들을 증오하고 멸시하며 질책과 조롱을 일삼았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불법으로 세뇌반에 갇혀있을 때 그녀가 저를 ‘전향(수련 포기)’시키러 왔었습니다. 그녀가 제 앞에서 아무리 고함을 쳐도 저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웃기만 했습니다. 그녀가 소리 지르기를 멈추자 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서기님, 저를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서기님을 이해합니다. 제가 전향하지 않는 것은 서기님과 대립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파룬궁이 정말로 너무나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여러 가지 병에 시달렸었습니다. 그런데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든 병이 사라졌습니다. 게다가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진선인의 원칙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옛말에 한 번 스승이라도 평생 아버지로 모신다고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데, 어찌 은혜를 원수로 갚고 어려움에 처한 이를 더욱 괴롭히며 파룬궁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제게 불가능합니다. 우리 교육계에는 수만 명이 있고, 지금 서기님은 높은 지위에 계시지만, 아무리 좋으셔도 뒤에서 험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서기님이 저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제가 남들을 따라 험담한다면 그게 옳은 일일까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때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더 이상 저와 다투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 저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저는 제 의도를 설명했습니다. “저는 몇 년간 아래(농촌 학교)에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아래에서 정말 잘하셨습니다. 지도자들과 대중이 모두 선생님을 높이 평가하고 있으니 우리가 검토해보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더니 서기는 더 이상 오지 말고 전근 명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하여 출근하면서 전근 명령을 기다렸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희망이 사라졌습니다. 저는 속은 것을 알았습니다.
이듬해 여름 방학에 저는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을 많이 외워 정념이 매우 강해지고 근심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아,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결심으로 다시 찾아갔습니다. 서기실에 들어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작년에 약속하신 것을 이행하지 않으셔서 오늘 다시 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승낙하지 않으면 매일 찾아갔습니다. 인사국장을 만나게 해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름 방학 중에는 전근을 요구하는 교사가 너무 많아 국장이 아예 자신의 사무실에서 일을 보지 않아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어느 날 저는 서기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인사국장을 만나지 못하면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선생님 방의 의자에 잠시 앉아있겠습니다. 하지만 업무에 방해가 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오시면 잠시 나가있겠습니다.” 저는 의자에 앉아 쉬지 않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잠시 후 서기가 인사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오셔서 아무개(저를 지칭)를 만나보세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인사국장이 나와서 저를 만났습니다.
인사국장이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아래에서의 업무 성과를 우리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매우 잘하셨습니다. 전근 건은 우리가 상의한 후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갔지만 여전히 결과가 없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더 지나갔습니다. 한번은 또 교육국에 갔는데 서기가 인사국장이 회의하러 갔다고 했습니다. 어디 갔느냐고 물었더니 어느 학교에서 큰 회의를 주재한다며 먼저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서기는 이제 제가 집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저는 자전거를 타고 그 학교 회의장 밖으로 가서 국장을 기다렸습니다. 휴식 시간에 국장을 찾아갔더니 그는 매우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어요?” 저는 인사국장에게 제 요구와 결심을 다시 한번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국장이 마침내 말했습니다. “다음 주에 국에 오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일주일 후, 그들은 제게 도시에서 5km 정도 떨어진 농촌 학교로 전근시켜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때 저는 비교적 만족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수련생을 만났는데, 그녀가 무엇을 하러 갔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교육청에 가서 전근을 요구했다고 했더니 조정이 됐느냐고 물어 도시에서 5km 떨어진 농촌 학교로 가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박해를 철저히 반대하지 않았네요!”라고 말하고는 자전거를 타고 가버렸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수련생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 이것은 사부님께서 수련생의 입을 빌려 날 일깨워주시는 것이구나.’ 그래서 다음 날 다시 교육국을 찾아갔습니다. 서기가 왜 또 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안 됩니다. 저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데, 몇 년 후에 또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지금 한 번에 시내 학교로 가야 합니다.” 서기가 말했습니다. “도시로 가고 싶으시면 시내 전입 시험을 보세요.” 저는 단호하게 시험을 보지 않겠다고 했고 서기가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교습 능력이 부족해서 내려간 게 아닙니다. 제가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선생님들이 저를 돌아오게 하고 싶지 않아서 제 점수를 낮추면 저는 돌아올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제가 농촌에 있든 도시에 있든 모두 선생님들의 관할 아래 있는데, 이게 선생님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며칠 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인사국장을 만났는데, 이는 정말 사부님의 절묘한 안배였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제 요구를 되풀이했습니다. “반드시 도시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사부님의 끊임없는 가지(加持)와 보호 아래 두 달간의 노력 끝에, 선물 하나 없이, 시험도 보지 않고, 마침내 시내의 한 학교로 돌아와 교편을 잡게 되어 저를 향한 사악의 박해를 부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법 실증 항목에 참여하며,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대법이 끊임없이 저를 일깨우고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잘 수련해야만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일깨우고 주변 환경을 바꾸어 더 많은 중생을 구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불법(佛法)이 저를 속이 좁고 겁 많은 사람에서 활달하고 명랑하며 일에 부딪혀도 놀라지 않고 마음이 평온한 대법제자로 단련시켜주었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11/7/48440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11/7/48440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