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어머니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에 들어오셨습니다.
어릴 때는 세상이 매우 작아 보여서 작은 일도 하늘만큼 큰일로 여겼습니다. 어릴 때 저는 자주 차멀미를 했는데, 힘들 때면 어지럽고 구토감이 나서 오랫동안 괴로웠습니다. 외출하기 전에는 항상 큰 결심을 해야만 했죠. 그때마다 ‘만약 내가 언젠가 차멀미를 하지 않게 된다면, 그때가 가장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에 힘들 때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워보렴.” 당시 저는 제대로 듣지 않은 듯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한번은 차를 타고 가는데, 교통 체증으로 가까운 거리임에도 자주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익숙한 불쾌감이 금방 치밀어 올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참으면서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완화 방법을 생각하다가 문득 어머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파룬따파하오’를 계속해서 되뇌었고, 이렇게 한 길 내내 읊조리니 구역질나고 토하고 싶은 느낌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처음으로 차멀미를 하지 않는 것이 이런 느낌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저는 너무 흥분돼서 소파 위에서 뛰면서 어머니께 말했습니다. “정말이에요, 진짜예요!” 이렇게 해서 저는 대법에 들어섰습니다.
첫 번째로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을 봤을 때, 저는 침실 바닥에 앉아 오후를 내내 보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이 정말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어린 제 인식도 조금 넓어졌습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제게 남에게 친절하고, 겸손하며 남과 다투지 말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대법을 통해 저는 그 근본 원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됐습니다. 덕(德)이 물질이어서 남을 때리고 욕하고 괴롭히면 덕을 잃게 된다는 것을요. 그 후 학교에서 저는 동급생과 의견이 다를 때도 더 이상 논쟁하거나 강조하지 않았고, 장난꾸러기 남학생들이 밀치더라도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할 때마다 하교길의 기분이 상쾌했고 무엇을 얻은 것보다 더 기뻤습니다.
성장하고 진학하면서 수업과 학업도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보습학원이 성행하고, 각종 시험이 다가오면 선생님들은 자주 날짜를 반복해서 강조하며 문제를 풀고 복습하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정해진 시간을 내어 저와 함께 법공부를 했고 점심시간도 활용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학습 구호의 열기에 휩쓸려 학업에만 빠져들지 않았고, 학교에서 공부할 때나 선생님,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항상 대법의 ‘진선인(眞·善·忍)’으로 가늠하며, 선생님을 존경하고 뒤에서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 모든 동급생들과 우호적으로 지내며, 성적이 좋지 않은 동급생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오히려 제 학업은 뒤처지지 않았고 숙제도 빨리 끝냈습니다.
학창 시절에 정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필수 과목이었고 시험에도 항상 일종의 ‘표준 정답’이 있었습니다. 교과서는 근대사 위주로 많은 지면을 할애했고, 자주 한 단락씩 암기해야 했습니다. 그때 어른들이 그들 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교환 조건으로 저도 제 교과서를 꺼내 우리 책은 이렇게 쓰여 있다고 말하면서 많은 차이점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은 그때 이미 발표됐는데, 어린 저에게는 많은 역사가 아직 생소했고, 대충 일부 내용만 들어서 중국공산당(중공)에 대해 피상적인 인식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법은 제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었고 거짓말을 하면서 성적을 위해 책을 외워 시험 문제를 푸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과서에서 꾸며내고 사실이 아닌 많은 부분들을 접어서 잘라내고 표시해두었으며, 암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도 매번 역사 시험에서도 순조롭게 합격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진실을 수련하고 진실을 말하는 힘이 아니겠습니까!
사회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휴대폰, 미디어가 점차 사람들의 생활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그에 따른 정보 공유의 편리성은 도덕성이 타락하는 가운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인 정보의 전파를 더욱 가속화했고 사람들의 일상을 채웠습니다. 오락화, 여론화, 금전만능주의 등 각종 욕망 추구로 인해 흔히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길거리, 엘리베이터, 지하철에서도 ‘고개 숙인 족'(역주: 휴대폰을 보느라 고개를 숙인 사람들을 의미)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대법을 수련했기에 저는 좋지 않은 정보를 듣고 보면 그것이 일종의 사상 물질이 되어 머릿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이 방면에서 저는 줄곧 엄격하게 통제했습니다. 하지만 호기심에 이끌려 참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뒷소문이나 노래, 영화를 듣고 나서 무의식중에 검색해보면 인터넷에서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매번 이렇게 한 후에는 책을 볼 때 갑자기 어떤 이미지와 잡다한 생각들이 튀어나와 제 주의력을 방해했습니다. 사부님의 이 설법을 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는 정확한 사상을 지도로 삼지 못해서 그렇게 끊어버리려 해도 그리 쉽지 않다.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오늘 그것을 집착심으로 간주하여 제거해 보라. 당신이 끊을 수 있는지 없는지 보라.”(전법륜) 저는 ‘맞아, 나는 수련인이니까 사람의 기준으로 자신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이 집착심을 반드시 제거해야 해’라고 깨달았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을 일깨웠고, 점차 보고 싶은 욕망도 사라졌습니다. 가끔 각종 미디어의 그림과 글을 보면 오히려 불편하고 깨끗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졸업 후 저는 많은 이력서를 냈고 결국 현재 회사에 채용됐습니다. 입사 초기에 회사는 국내에서 규모가 매우 작은 외자 대표처였고, 많은 업무가 처음부터 구축해야 했기에 일이 꽤 잡다했습니다. 팀이 작아서 자주 여러 가지 직능을 겸해야 했는데, 그때는 평상심을 유지하며 배우는 가운데 처음으로 혼자 맡게 된 일들이 많았고, 그래서 점차 회사 업무 지식과 기능을 익혔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 후 몇 개월 만에 우리가 한 대기업에 인수되어 플랫폼과 자원을 공유하게 됐고, 국내에도 더 많은 인력이 생겼으며, 저도 각 부서 간의 중심축이 됐다는 것입니다.
합병 초기에 저는 늘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를 유지하면서 일을 할 때도 자신의 부분에만 과도하게 집착하지 않고, 더 전체적인 과정에서 제가 어떻게 잘 조율하고 후속 절차의 각 단계 운영을 편리하게 할 수 있을지를 보았고, 이로 인해 직능 외의 지식 기능과 부서 간 협력 경험도 쌓았습니다. 이 직위에 오래 있다 보니 상사가 자주 경력 개발을 이야기하면서 제가 더 전문적이고 높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잡다한 일은 점차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수련인은 고생을 즐거움으로 여기니 순리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안배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연말에 다른 부서에 자리가 하나 비었는데, 당시 부서 매니저와 인사 동료가 먼저 이 정보를 공유하면서 제가 고려해보기를 바랐습니다. 이는 제 향후 전문 방향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고, 동시에 현재의 업무와 여가의 균형을 깨뜨릴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합리적으로 법공부 시간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진로 전환’이라는 작은 행복감을 더 많이 느끼고 있었고, 동시에 자격이 부족해 체면을 잃을까 봐 은근히 걱정되는 모순된 명리(名利,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순리대로’라는 핑계로, 저는 처음 졸업할 때 구직했던 열정을 갖고 주말에 많은 시간을 들여 이력서와 면접, 필기시험을 준비했습니다. 한 차례 면접을 통과한 후 부서 동료들은 이미 저를 ‘자기 사람’으로 여겼고, 이로 인해 명리를 얻은 기쁨과 동시에 현재 업무에 대한 짜증과 벗어나고 싶은 잠재적 해방감이 생겼습니다. 필기시험 당일, 문제를 받자마자 저는 갑자기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제들은 기초적으로 보였지만 대부분 제가 복습하지 않은 부분이었고, 많은 곳을 비워둔 채 시험지를 제출했습니다. 시험이 끝난 후 전체 과정을 되돌아보니 많은 사람의 마음이 겉보기에 합리적이고 평범해보이는 행동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셔서 자유로운 시간에 법공부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조율하는 일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여 집착심을 제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과 진상을 전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게 수련의 좋은 환경이 아닙니까! 어찌 명리를 쟁탈하고 추구하는 데 빠져 자신의 사명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깨달은 후 저는 점차 이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제가 완전히 내려놓았는지 시험하듯이, 인사 동료가 이후에 사적으로 현재 외부 후보가 한 명뿐이니 다시 한번 더 노력해볼 수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호의에 감사를 표하고 거절했으며 그 후 자신의 상태를 다시 조정해 현재 직위에 집중하며 모든 일을 잘하려 했습니다.
2019년 말, 우한폐렴 대유행이 시작되고 전국이 모두 그 해를 입었습니다. 상하이 동서 양측이 봉쇄됐고 약속된 봉쇄 해제 기한도 계속 연장됐습니다. 제가 사는 단지는 인구가 비교적 적은 오래된 단지로, 대부분 가정이 주를 이루고 노인이 많았습니다. 봉쇄 중기에는 좀 더 큰 단지에 비해 우리는 단체로 채소를 사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단지 주민들은 코로나 검사 줄을 서는 기회를 빌려 점차 이 길에서 채소 단체 구매 채팅방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건물에서는 자주 젊은이들이 노인을 도와 채소를 사고, 남자들이 여자들의 물자 운반과 분배를 도왔으며, 노인들도 주방 도구가 없는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밥을 나눠주었습니다. 선의의 힘으로 우리 건물은 여러 차례의 감염 물결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 동료들의 단지 상황은 제각각 달랐는데, 주간 회의에서 어떤 동료들은 식재료와 생활용품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저는 물자 구매 방안 모색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인원이 적고 분산돼 있어서 공급업체로부터 거절당하기 일쑤였고, 저도 한때 초조해져서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법공부할 시간이 많았고, 법공부 과정에서 자신이 많은 상황에서 혼자 떠맡아 영웅 행세를 하는 것에 익숙하고, 일을 잘하고 싶어 하다가 하지 못하면 낙담하고, 때로는 극단적으로 가서 아예 포기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이것도 일종의 사적인 명리심입니다. ‘어떻게 돌파하고 내려놓을 수 있을까?’ 저는 모든 사람의 인맥 경로와 본 정보를 공유하도록 수집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많은 전화 시도와 모두의 공동 노력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소량의 분산된 주소로도 배송할 의향이 있는 공급업체를 찾았습니다. 기본적인 생활 수요를 만족시킨 상황에서, 그 후 우리는 또 상호 도움 소그룹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교류하고 온라인 단체 활동도 몇 차례 하며 봉쇄 기간을 보냈습니다.
그 후 한동안 회사는 전체적으로 조직 구조를 조정했습니다. 갑자기 제 직속 상사가 직위가 높은 A에서, 회사에서 오래 근무했고 저와 동급인 B로 바뀌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번 개편은 내부 경쟁 선발이었고 저는 소식을 받지 못했습니다. 같은 직위에서 줄곧 조정 관리 능력이 뛰어난 C도 참여했지만 낙선했습니다. 즉시 괴리감이 밀려왔고 저는 아직 자세히 분별하지도 못한 채 동료 C를 위해 안타까워하며, 순간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이치에 빠져 다른 사람과 토론했습니다. 그 몇 주 동안 저는 늘 마음이 불편했고 겉보기에는 C를 위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자세히 파고들어 보니 사실 저도 질투심과 명리심이 있었고, 더구나 눈에 보이는 능력을 실제로 여겨 신의 안배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새 상사에게 보고할 때도 ‘나는 다 알고 있고 이미 다 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앞서나가려 했는데, 이는 질투심에서 파생된 쟁투심으로, 수련인의 선을 이루지 못했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지 않았으며, B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 저는 계속해서 이 마음을 내려놓았고 그래서 상사 B가 갑자기 임무를 받아 많은 정보를 전환하고 파악해야 하며, 동시에 다른 부하들과의 소통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을 마음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발적으로 많은 자료를 정리했고, 보고할 때도 인내심을 갖고 그녀의 질문에 답했으며, 점차 그녀가 사실 매우 많은 좋은 품성과 능력이 있고 조언을 기꺼이 경청하며 끊임없이 조정하고 개선한다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우리의 협력도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이것이 어찌 대법을 배운 후의 한 단락의 선연(善緣)이 아니겠습니까!
이 과정을 적으면서, 걸어온 길에서 모든 것이 사부님의 보살핌을 받았다는 것을 더욱 체득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많은 부족함도 보았기에 여기서 자신을 일깨웁니다. 처음처럼 법을 배우고, 시시각각 일마다 진선인(眞·善·忍)으로 가늠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로잡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는 사명을 저버리지 않으며, 한 걸음 한 걸음을 잘 걸어가겠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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