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제자는 모두 정진하려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집착을 인식하지 못하면 정진하기가 어렵습니다.
몇 년 전 늦가을 어느 날 밤, 발정념 전 5분간 자신을 청리(淸理)하는 중에 갑자기 사부님의 우렁차고도 자비로우면서 엄숙한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습니다. 마치 연공 음악 속 사부님의 입체적인 목소리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공이 자라기를 추구하면서, 다만 어떻게 연마(練)하는지를 중시할 뿐 어떻게 닦는지는 중시하지 않는데, 사실 공은 완전히 心性(씬씽)을 닦아서 수련해 내는 것이다”(전법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동안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사부님의 이번 일깨움으로 ‘독선적인’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를 계기로 매우 감명 깊은 마음 닦기를 체험했습니다.
자책과 불안
처음 사부님의 일깨움을 들었을 때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운 좋게도 처음으로 직접 들을 수 있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쁨과 동시에 비관과 자책, 불안감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너무나 ‘이기적’이고 정진하지 못해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법 수련이 얼마나 귀중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법을 얻은 지 20여 년이 됐습니다. 수련의 길에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진정으로 자신을 닦지는 못했습니다. 이렇게 큰 허점을 어떻게 메워야 할까요? 지름길은 없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법 암기 시간을 늘렸고, 열심히 법공부하며 꼼꼼히 돌이켜보고 수련 과정을 정리하면서 많은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명예와 금전에 대한 집착, 남의 지적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 원망, 질투, 남을 얕보는 마음, 불결함,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마음, 대충대충 하는 마음, 논쟁하려는 마음 등 수많은 사람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로 가정환경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아내는 취미가 다양해서 고양이, 개, 물고기, 새, 거북이, 화초, 나무, 식물, 산수석 분재 등 온갖 것을 좋아합니다. 아내는 이를 즐거움으로 여기지만 사실 매우 번거롭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저에게도 강요하듯 시켰습니다. 제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내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며 가만두질 않았습니다.
끝도 없이 하기 싫은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수련과 바른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 가족에 대한 인식과 환경을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수련 중 얻은 인식으로 아내에게 도리를 가르치고, 설명하고, 논쟁하며, 옳고 그름에 빠져 늘 남의 잘못만 보게 됐습니다. 결국 환경은 바로잡히지 않고 오히려 갈등만 깊어졌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화가 나서 눈물을 글썽이며 슬퍼할 때야 비로소 제가 수련인임을 깨닫고 양보하며 진정시켰습니다.
억지로 참기
이런 상황들은 갈등의 표면적 형태일 뿐이고, 진정한 문제의 원인은 저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아내의 사상과 관념이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이라고 여기며, 변질된 이기적인 사상과 행위가 아내의 전반적인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행동거지와 언행에는 변질된 관념과 중공 악당의 요소가 배어 있어서, 아내가 하는 많은 일들이 제 ‘마음’을 자극하고 괴롭혔습니다. 사실 저는 대법 수련과 속인의 관계를 바로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 사부님의 일깨움을 통해 저는 안으로 찾았고, 한동안 가족과의 갈등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아무리 좋지 않게 대해도 겉으로는 더 이상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아’라는 것이 ‘타격’을 받았고 사부님께서 좋지 않은 물질을 많이 제거해주신 것이고, 둘째는 아내가 무엇을 하고 말하든 눈에 거슬리고 못마땅해도 모두 억지로 참고 더 이상 논쟁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억지로 참는다’고 해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깊은 교훈이 있었기에 의식적으로 그것을 억제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돌려서 각종 구실을 대며 튀어나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또다시 드러나고 참지 못하게 됩니다. 겉으로는 말투가 온화해도 속에는 강한 ‘불만’과 ‘원망’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때로는 갈등이 격화되어서야 비로소 제가 수련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한탄하며 낙담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2년 넘게 반복됐습니다.
2022년 1월 7일 밤 동공을 할 때 허리가 아파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아내에게 말대꾸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이 생각이 들자 한동안 허리가 아프지 않았습니다.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문제점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동시에 ‘심성 지키기는 왜 이리 어려울까!’라며 자책했습니다.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거짓된 ‘자아’가 또 나타났습니다. 다시 가정 갈등과 허리 통증이 생겼지만, 전처럼 안으로 찾아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찾아봐도 도대체 어떤 집착심인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이 교류에서 “마음 닦기가 힘들어요”라고 했는데, 몸소 겪어보니 ‘고생’이 무엇인지 이해가 됐습니다. 대법 수련이기에 반드시 정진하고 싶었고, 안으로 집착심을 찾지 못하면 조급해졌습니다!
홀가분하고 편안함
올해 2024년 여름, 어느 날 법을 늦게 얻은 수련생과 교류를 했습니다. 제가 “아내가 잔소리할 때면 검은 물질이 날아와 부딪치는 것 같아 힘들어요”라고 하자 그 수련생이 “자신의 공간장에 똑같은 좋지 않은 물질이 있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들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10여 일 후, 아내가 늘 그렇듯 사소한 집안일로 끊임없이 화를 내자 저는 화가 나서 생각했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화를 내지?’ 저는 목소리를 높여 “좀 조용히 할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제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분명 제게 ‘불만’이 있기에 아내가 불평하는 표현이 있었던 것이고, 반드시 그것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바르게 생각하자 아내의 태도가 곧바로 바뀌어 온화해졌습니다.
이런 아내의 즉각적인 태도 변화는 제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사부님의 법을 매일 배우는데 왜 이런 방향으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안으로 찾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 저런 마음, 이것도 잘못하고 저것도 잘못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 성격이 내성적이고 온화하다고 여겼고, 법을 얻은 후로는 누구도 원망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한 것은 법의 표준으로 가늠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바뀌자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많은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해주셔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아내가 또다시 잔소리를 하고 원망할 때, 나쁜 ‘마음’이 다시 밖으로 나와도 즉시 제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고 ‘그것’을 억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게다가 그런 ‘마음’에 자극을 받아도 비교적 담담해졌습니다. 예전처럼 ‘억울하다’는 괴로움이 없어지고 편안한 느낌이 됐는데, 이는 제가 수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내의 말과 행동은 예전과 같습니다. 때때로 화를 내고 불만을 토로하며 비꼬는 말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해도 제 마음은 평온한데, 설명할 것은 설명하고 해야 할 일은 합니다. 다만 언행에서 경계하여 더 이상 논쟁을 방임하지 않고, 원망 등의 요소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남을 위하는’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로 제자는 ‘닦다(修)’에 대해 감수와 얕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심성의 본질적 변화와 대법에 동화되는 것이 바로 ‘닦다’이며 정진하는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반드시 정진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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